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호사다마 (4)
‘보인다!’
우기찬은 유신의 손이 자신의 명치에 닿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눈으로 인식했고,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체 어떻…….”
우기찬이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유신의 손이 유령처럼 그의 방어를 뚫고 들어와 명치에 닿은 것이었고, 그 순간 시야가 어두워지며 의식이 끊겼다.
* * *
“깨어나셨습니까?”
적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유신의 담담한 목소리에 우기찬은 소름이 돋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단전이 부서진 수하들이 망연자실한 채 어깨를 떨구고 있었고, 유신이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눈으로 우기찬을 내려보고 있었다.
‘나 따위는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는 건가?’
은연중에 공력을 운기하여 몸 상태를 점검한 우기찬은 자신의 공력이 온전하다는 사실에 오히려 허탈감이 들었다. 아무런 살기도, 적의도 내보이지 않는 유신이었지만 그를 향한 투지라던가 그의 손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윽!”
갑자기 목 뒤가 억눌린 듯한 느낌과 함께 그의 공력이 역류하였다. 이대로 더 운기를 하였다가는 확실하게 주화입마에 빠질 것만 같았기에 우기찬은 다급히 일주천시키던 공력을 멈추었다.
‘전설의 의기점혈(意氣點穴)?!’
우기찬이 눈을 부릅뜨고 유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관찰했지만, 유신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기의 파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점혈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기상인(馭氣傷人)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만이 펼칠 수 있다는 의기점혈뿐이었다.
“말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빈도가 시주께 몇 가지 여쭤볼 것이 있으니, 사실대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말할 것 같으냐?”
“무량수불.”
독기어린 우기찬을 보며 유신이 조용히 도호를 읊었다.
“내 수하들은 어찌 된 것이냐?’
“모두 무공을 폐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어찌 무인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소중한 무공을 폐할 수 있단 말이냐.”
청의령주 요백진이 신신당부한 작전이었고, 모든 계획의 초석이 되는 중요한 일이었건만, 생각지도 못한 유신의 등장으로 일을 망친 울분과 좌절감이 우기찬에 유신에게 울부짖듯이 소리쳤다.
“차라리 무사다운 죽음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더냐! 그러고도 네놈이 도사라 할 수 있느냐?”
작전의 지휘관인 청현각주 우기찬은 유신에게 산채로 사로잡혔고, 청의문의 정예병력이라 할 수 있는 서른 명의 고수들은 모두 내공을 잃고 폐인이 돼버렸다. 요백진과 우기찬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참담한 결과였다.
“무공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자신의 목숨을 가벼이 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더 이상 우리를 모욕하지 말고, 깨끗한 죽음을 다오. 우리는 결코 네게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예, 그러시겠지요 시주. 사실 저 역시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유신은 우기찬의 뜻을 존중해주었다. 여차하면 단체로 혀를 깨물기라도 해야하나 싶었던 청현각의 무리들이었지만, 유신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무인이었다. 더없이 강했지만, 더없이 따뜻한 진정한 정파의 도사다웠다.
“부상을 입으신 분들은 먼저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미 죗값을 치르셨고, 빈도가 무엇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으시는 분들을 잡아두어 무엇하겠습니까.”
“…….”
놓아준다는 유신의 말에도 청현각의 무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무공을 잃었기에 사신문으로 귀환한다 하여도 짐만 될 뿐이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지휘관인 청현각주 우기찬의 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시주는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어째서냐?”
“비록 완성도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시주의 무공은 내가 아는 누군가의 무공과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괴룡 사신혁.”
괴룡 사신혁.
귀를 막고 눈을 가려도 계속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강호의 신성(新星)이었다. 그리고 그의 존재는 현재 사신문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었다. 사신문을 이루는 4대 세력의 하나인 백의문의 그에게 무너졌고, 적의령주 또한 그를 당해내지 못했다.
“어차피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으실 것이니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유신의 손이 우기찬의 단전에 닿았다.
“조금 아플 겁니다.”
“크윽, 무, 무슨 짓을?!”
청의신공을 8성까지 익힌 우기찬의 몸은 자연스럽게 청의신공이 운용되며 유신의 손을 타고 들어오는 기를 밀어내려 하였고, 그 순간 유신의 손에 모인 기운이 역으로 회전하였다.
“끄아아아아악!”
‘인위적으로 대자연의 기를 일그러뜨렸다. 대체 누가 이런 신공을 창안하였단 말인가. 사신혁 시주의 무공이 정교하게 계산된 기의 운용을 바탕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완벽을 모방하기 위하여 자연의 법칙마저 어그러뜨린 것 같구나.’
유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신을 잃은 우기찬의 몸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고, 그의 손에서 맴돌던 청의신공의 진기는 허공에 흩어버렸다.
‘이토록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무공을 익힌 자들이 강호에 나타난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구나.’
유신이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때, 쓰러진 우기찬을 향해 내공을 잃은 청현각의 무사들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각주님!”
“무인이 목숨을 걸고 평생을 수련한 공력을 폐한 것도 모자라, 사람을 산 채로 잡아 진원진기를 뽑아내다니. 어찌 이리 악독할 수 있다는 말이오!”
넘볼 수도 없는 강자인 유신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청현각의 무사들을 보며 유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량수불, 모든 게 빈도의 업보입니다. 추후에라도 빈도의 손속이 과하다 느껴지시거든 언제든 무당을 찾아주십시오.”
유신이 청현각의 무사들을 향해 정중히 포권하며 말을 이었다.
“허나, 더는 강호를 어지럽히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시주들께서는 오신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유신의 몸이 나는 듯이 바람을 가르며 태천문으로 향했다.
* * *
서문우는 자신이 있었다. 가주의 명을 받아 태천문을 접수하고 서문세가와 서문우라는 이름 석 자를 강호에 깊이 새길 기회라 여겼다. 무엇보다 서문세가의 이(二)장로와 오(五)장로까지 함께하는 지금의 서문세가는 그저 그런 속가문파인 태산문에 비하면 지나치게 강했다.
“반항하는 자는 베어도 좋다, 가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태천문을 무너뜨린다!”
아들을 잃고 분노한 서문세가의 가주 서문영호는 주장우와 만나는 것은 별개로 무당파의 지원이 오기 전에 태천문을 끝장낼 생각을 하였기에 무려 200명에 달하는 서문세가의 정예를 태천문으로 급파한 상황이었다.
“존명!”
“서문세가에 영광을!”
비록 오대세가에는 들지 못했지만 지닌바 세력과 전투력은 결코 뒤지지 않는 강대한 힘을 지닌 서문세가의 무사들은 서문우의 명령에 용기백배하며 전투를 시작하였다.
“크으윽!”
“어찌 태천문 따위가 이정도의 힘을……?”
막상 자신 있게 공격을 시작하였지만 서문세가의 예상과 달리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은 태천문의 무사들이 아닌 서문세가의 무사들이었다.
“과연 소문주, 아니 문주님의 말씀이 맞았다.”
“본문의 태천신공(太天神功)은 무적이다!”
“이 정도라면 무당파와도 해볼 만하겠어.”
강호에 알려진 것보다 서문세가의 저력은 막강했다. 투입된 고수 하나하나가 일류의 경지를 넘어서 대부분 절정을 바라보고 있었고, 무려 열 명의 절정고수와 두 명의 장로, 그리고 서문세가주 서문영호의 조카인 서문우마저 있었으니 말이다.
“어, 어떻게?!”
“속가문파인 태천문이 대체 어찌 이런 강대한 힘을……?”
그러나 놀랍게도 무당의 속가문파이며 서문세가 전력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태천문의 힘은 서문세가의 정예를 완벽하게 압도하였다.
“이럴 수가……? 대체 이 괴이한 사공은 뭐란 말인가…….”
서문우가 무너져가는 서문세가의 무사들과 함께 이름 모를 태천문의 제자 세 명의 합공을 받아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고개를 숙여라. 평소에 거들먹거리던 꼴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덜 풀리니까.”
“큭큭큭, 꼴 좋구나. 스스로 오대세가에 비견된다고 잘난체하는 것들이 우리 태천문에 발치에 나자빠져 있는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어.”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도문인 무당파 제일의 속가문파인 태천문의 문도들이 마치 시정잡배들처럼 험악한 말을 지껄이며 쓰러진 서문세가 무사들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기기 시작고, 곧 서문세가의 인물들이 비명과 함께 하나둘씩 죽거나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끄으으으…….”
이쯤되면 이게 정파를 지향하는 문파인지 사파의 문파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마음껏 한을 풀어라. 너희들은 당당한 태천문의 무사이며, 곧 무당을 넘어 호북의 지배자가 될 태천문의 제자들이다!”
서문세가의 무사들이 몰살당하기 직전, 낭랑한 젊은 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추십시오. 같은 정파의 소속된 무인들 간에 이게 무슨 짓입니까.”
훤칠한 키에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질 것 같은 눈빛이 인상적인 젊은 도사. 모두의 시선이 유신에게 집중되며 일시적으로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졌다.
“괜찮으십니까?”
태천문도들의 합공에 탈진 직전이었던 서문우에게 유신이 다가서며 물었다.
“아무리 무당의 제자라지만 지금 서문세가와 생사결을 하는 와중에 끼어드는 것은 경우가 아니지 않소.”
서문우를 몰아붙이던 태천문의 문도 중 하나가 유신의 앞을 막아섰다. 다 잡아놓은 서문우라는 거물을 침몰시키기 직전에 끼어든 유신이 상당히 고까웠기에, 그의 언행 또한 부드럽지 않았다.
“이보시오, 지금 내 말이…….”
태천문도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젊은 도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를 붙잡을 요량으로 태천문도가 손을 뻗었다.
“뭐, 뭐야?”
분명히 어깨에 손이 닿는 감촉이 느껴졌지만, 젊은 도사의 몸은 마치 귀신처럼 그대로 태천문도의 손에 잡히지 않고 서문우의 앞에 섰다.
“일어서실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체력과 공력이 고갈되어 거의 주저앉다시피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서문우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몸을 일으켰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서문세가의 서문우라고 합니다.”
서문우가 진심을 담아 정중하게 포권하였다. 고개를 숙여 유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서문우의 표정은 말과 달리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치욕이다. 허나 어쩔 수가 없구나.’
서문우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태천문은 무당의 속가문파이다. 지금 나타난 무당의 젊은 도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느낌만으로도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무당은 태천문을 도와 본가를 적대할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었다. 허나, 지금은 무당의 힘을 빌려서라도 중재를 요청하고 식솔들을 살려야 한다.’
전투중에 전사한 이장로와 오장로의 시선에 눈이간 서문우는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결심을 굳혔다.
‘본가 전력의 4할을 투입한 결과가 이 꼴이라니……. 내 어찌 가주님을 뵐 수 있겠는가.’
서문세가의 무사 중 절정고수는 서문우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사망하였다. 서문우가 살아있는 것도 그가 다른 절정고수들에 비하여 무공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서문세가주의 조카이면서 이번 전투의 최고 지휘관이었기에 가솔들이 몸을 던져 지켜줬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인원은 나를 포함해도 겨우 열 명 남짓인가.’
피눈물이 흐르는 결과였고, 길고 긴 서문세가의 역사에 남을 정도의 처참한 패배였다. 더욱 화가 나고 어이가 없는 사실은 서문세가가 이토록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천문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당의 유신입니다.”
담담한 유신의 한 마디에 모든 이들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무룡(武龍) 유신!”
“절대사룡의 일좌, 정파 최고의 후기지수!”
“마교의 교주를 꺾었다더니 과연, 과연이로구나.”
무당의 속가문파인 태천문의 문도들은 물론이고, 비참하게 패배하여 고개를 떨군 서문세가의 무인들조차 속으로 감탄할 정도였다. 무당에서 장로급의 인사를 보낸다고는 하였지만 그것이 무룡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일로 뵙게 되어 참으로 유감입니다.”
“무량수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서문우와 마주한 유신이 도호를 읊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서문 소협께서 현재 이곳의 서문세가를 대표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서문우의 대답을 들은 유신이 몸을 돌려 태천문도들을 향해 물었다.
“현재 태천문을 대표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본인이오.”
서문우와 유신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주위연이 앞으로 나섰다.
“태천문의 총관, 주위연이외다.”
주위연과 서문우를 앞에 둔 유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자초지종은 나중에 따졌으면 합니다.”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이야기하려는 유신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무당의 이름으로 두 세력 간의 다툼을 중재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