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호사다마 (16)
태천문의 별동대로 위장한 청현각의 무사들을 호송하는 서문우 일행이 호북의 성도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산길에 접어들었다.
“공오대사님,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질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노숙을 준비해야 할 듯합니다.”
“그리하시지요.”
“예. 대사님.”
공오대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무림맹 호북지부의 무사들이 부랴부랴 야영을 준비하였다.
“저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미타불…… 태천문이 멸문지화를 입었으니, 저 시주도 마음고생이 심하지 않겠습니까.”
서문우와 공오대사의 시선이 함거에 갇힌 우기찬에게 향했다. 처음 서문세가를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눈을 꼭 감고 무엇인가를 사색하는 듯한 우기찬은 단 한 순간도 눈을 뜨지 않고, 좌정한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
눈을 꼭 감고 좌정한 우기찬의 머릿속에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청현각주님을 뵙습니다.”
유신에게 단전이 부서진 청현각 소속 서른 명의 무사들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서문세가였고, 세가의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청현각의 무사가 품속에서 30개의 푸른빛을 띠는 구슬을 꺼내어 우기찬에게 건넸다.
“령주님께서 남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존의 뜻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거라 믿는다 하셨습니다.”
“청의마옥(靑衣魔玉)?!”
요사스러우면서도 신비한 빛을 발산하는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작은 구슬. 청의마옥의 효용은 그야말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마지막으로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금단의 사술이 담긴 구슬이었다.
“예. 이 각에 달하는 시간 동안 무공을 잃기 전의 무위를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각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겠지.”
우기찬이 말끝을 흐리는 청현각 무사의 말을 무덤덤하게 받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내공을 잃어 폐인이 된 몸에 무슨 미련이 있을까. 남은 생명력을 모두 태워 잠시나마 내공을 되찾을 수 있다면, 무인으로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렇습니다 각주님.”
“저희도 함께할 것입니다.”
우기찬의 말에 무공을 잃고 시체 같은 눈으로 상황을 주시하던 청현각의 무사들이 독기어린 눈으로 각오를 다졌다.
“청의령주님께 전하도록. 사신문의 문도로서, 영광스럽게 지존과 청의령주님을 위해 목숨을 던져 명을 이행할 테니 아무 걱정 마시라고 말이야.”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청의령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기찬이 청현각 소속 무사에게 전해 들은 명령은 간단했다. 태천문의 별동대라는 가짜 신분으로 서문세가에 붙잡혀 있다가 공오대사에게 넘겨져 무림맹으로 향한다. 이때, 서문우로 위장한 청현각 무사의 명령을 따르면 된다고 하였다.
‘령주님의 마지막 명령.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우기찬이 청의마옥을 만지작거리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라.”
그때, 우기찬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꾸물거리지 말고 나와라. 생각 같아서는 당장 네놈의 목을 치고 싶을 정도니까.”
서문우가 함거에 갖혀 있던 우기찬을 거칠게 끌어냈다.
“공오대사께서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셨다. 순순히 대답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다.”
창의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협박에 우기찬이 피식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도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무, 무엇을 말입니까?”
“사실대로 그리고 아는 대로 대답하면 된다.”
서문우와 우기찬의 눈빛이 은밀하게 교차하였다.
“따라와라.”
우기찬은 순순히 서문우의 뒤를 따랐고, 공오대사에게 우기찬을 데려간 서문우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데려왔습니다, 대사.”
“아미타불.”
우기찬을 마주한 공오대사가 습관적으로 염주를 굴리며 불호를 읊었다.
“소승은 소림의 공오라고 합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힌 공오대사가 심유한 눈빛으로 우기찬을 바라보았고, 우기찬은 공오대사의 기품에 눌린 듯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태천문의 우기찬이오.”
“태천문에서의 직책은 어떻게 되십니까?”
“호법직을 맡고 있었소.”
호법이라면 문주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렇기에 우기찬에게서 생각보다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오대사가 한층 더 부드럽게 우기찬에게 물었다.
“우기찬 시주, 태천문과 서문세가의 결말은 알고 있으십니까?”
“……그렇소.”
“결말을 알고 계신다고 하니, 소승이 거두절미하고 시주께 묻겠습니다. 태천문의 문주 주장우와 태천문도들이 사용하던 태천신공이라는 괴공(怪功)은 누구에게 배운 것입니까?”
“죽은 주장우 문주가 전수해주었소.”
“하면, 주장우 문주는 그 무공을 누구에게 전수받았습니까?”
“그건 나도 모르오.”
“소승에게 솔직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소림의 명예를 걸고 시주들의 안전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정말 모르오.”
공오대사와 우기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문우가 조심스럽게 둘 사이에 끼어들면서 말했다.
“공오대사님, 제가 저자에게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감사합니다.”
태천문의 태천신공은 결국 청의문의 청의신공에서 유래된 것이기에 화제를 돌릴 필요가 있던 서문우였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슬슬 청의령주가 유신을 노리고 준비한 마지막 함정을 발동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태천문이 서문세가를 노린 이유가 무엇이냐? 대체 무엇 때문에 서문세가를 노렸단 말이냐? 단순히 명성을 높이고자 벌인 일이라면 문주인 주장우가 소가주님을 살해한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을 왜 그랬냔 말이다.”
“모르오, 주장우 문주의 독단이오.”
“나는 태천문이 단독으로 이런 일을 벌였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가 감히 서문세가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믿고 있는 뒷배가 있던 것이 아니냐? 예를 들면 무당파라던가 말이다.”
“……무당파의 유신이 태천문을 몰살시킨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대신 서문세가도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지.”
“아미타불, 서문우 시주. 지금 설마…….”
서문우에 말에 뼈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공오대사가 염주를 굴리며 서문우에게 물었다.
“무당파를 의심하는 겁니까?”
“저 역시 아니길 바랍니다. 하지만 태천문과 서문세가가 모두 망하면 가장 득을 보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하지만 유신 시주는…….”
“아닙니다, 대사. 제가 괜한 말을 하여 대사님의 마음을 어지럽힌 것 같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서문우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몸을 돌렸다. 마치 무너진 서문세가로 인한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슬슬 시작해볼까. 곧 유신이 도착할 테니까.’
서문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우기찬 각주님. 시작하십시오.’
공오대사를 등진 서문우의 전음이 우기찬에게 전달되었고,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우기찬이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크, 무당을 언급하다니, 서문세가의 애송이가 용케도 눈치챘구나.”
공오대사에게 위축되어 고분고분하던 우기찬이 가슴을 펴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얘들아.”
“예, 호법님!”
우기찬의 호명에 태천문의 무사들이 우렁차게 복명하였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우기찬의 명령에 청현각의 무사들이 미리 복용해놓은 청의마옥의 힘을 개방하였다.
꽈아아아앙!
청의마옥의 힘으로 절정의 무위를 되찾은 청현각의 무사들이 함거를 부수고 뛰쳐나와 무자비하게 살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으아아아악!”
“아니, 이들은 유신 시주에 의해 내공을 잃은 것이 아니었나?!”
태천문의 별동대는 내공이 전폐 되어 폐인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유신이 직접 언급한 일이었고, 실제로 이들은 서문세가에 포로로 잡혀있다가 이렇게 무림맹으로 호송되는 중이었으니까.
“아미타불!”
순식간에 우기찬과 청현각의 무사들을 호송하던 무림맹의 무사들이 쓰러졌고, 격노한 공오대사의 불호(佛號)에는 살기마저 담겨있었다.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
반야신장(般若神掌).
세상의 모든 사마의 기운을 정화한다는 불문 최고의 무학이 공오대사의 손에서 펼쳐졌다. 비록 소림제일고수이자 무림맹주인 공정대사에게는 미치지 못했지만, 십성의 경지에 도달한 공오대사의 반야신장은 능히 무림일절의 절기라 할만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공오대사, 과연 천년소림의 이인자라 할만하구나. 무림맹주인 공정대사만 아니었다면 능히 소림의 방장이 되고도 남았을 재목이다.’
우기찬은 못내 아쉬웠다. 비록 화경의 경지에는 들지 못했지만 우기찬과 공오대사는 절정의 극에 도달한 고수였다. 청의마옥을 복용하여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최고 무공인 청의신공으로 공오대사와 자웅을 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청의신공을 사용한다면 우리의 정체를 의심할 수도 있다. 청의령주님을 명을 어길 수는 없는 법.’
태천신공(太天神功) 공력(功力) 극(極)!
청의신공의 하위호환이라 할 수 있는 태천신공의 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우기찬과 청현각의 무사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태천문의 문도들로 보였고, 공오대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분명 내공을 잃었다 하였거늘, 어찌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오?”
“크크큭. 글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었을까? 우리를 제압한 사람이라면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었겠지?”
“무룡이 결국……!”
공오대사는 유신의 말만 믿고 안일하게 죄인들을 관리하던 과거의 자신을 탓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 어떻게든 이 사실을 무림맹에 전해야 한다.
“서문우 소협. 소승의 뒤에 서십시오.”
결연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드는 서문우의 귓가에 공오대사의 은밀한 전음이 들려왔다.
‘시주, 소승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다 하여도 나서서는 아니 됩니다. 만약 소승이 여기서 발을 빼기 어렵게 되더라도 시주만은 반드시 무림맹으로 보낼 것입니다. 가서 무당파와 무룡 그리고 태천문의 만행을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서문우가 공오대사의 전음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을 확인한 공오대사의 반야대능력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미타불!”
전력을 다하는 공오대사의 무위는 정말 놀라웠다. 서문우를 지키면서도 우기찬과 30명에 달하는 청현각 무사들을 상대로 팽팽한 접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차아아앗!”
“백보신권(百步神拳)?! 맞서지 말고 피해랏!”
공오대사는 백보신권을 펼쳐 비교적 원거리에 있는 청현각의 무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서는, 그의 지척에서 현란한 각술로 눈을 현혹하는 우기찬과 몇몇 무사들을 향하여 금빛에 휩싸인 일권을 내질렀다.
“여래금강권(如來金剛拳)까지?”
청의문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고 태천신공과 태천문의 무공만으로 쓰러뜨리기에 공오대사는 너무 강한 상대였지만, 우기찬은 포기하지 않았다. 청의신공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태천신공 역시 청의신공의 묘용이 가미된 신공이었기에 무리 없이 공오대사의 공격을 튕겨낼 수 있었고, 공오대사와 청현각 무사들의 피가 마르는 접전이 계속되었다.
“으음…….”
이 각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접전을 벌이자 퍼도 퍼도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공오대사의 공력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공오대사가 강하다 해도 우기찬과 30명에 달하는 청현각의 무사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미타불…….”
이대로라면 파국을 맞을 거라 예상한 공오대사가 서문우라도 도피시키려 마음먹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큭……. 무사로서 마지막을 소림의 고승과 겨룰 수 있어서 다행이군.”
우기찬을 비롯한 무사들이 갑자기 동작을 멈췄고,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피를 토하며 숨을 거뒀다. 청의마옥의 지속시간이 다했기 때문이었다.
“대, 대사님!”
막대한 공력과 심력을 소모한 공오대사가 너무나도 허망한 결말에 넋이 나갔을 때, 다급한 서문우의 목소리가 공오대사의 정신을 일깨웠다.
“저, 저기! 하늘을 보십시오.”
“저것은……?”
저 멀리서 말 그대로 하늘을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인영.
“유신, 무룡 유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