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호사다마 (19)
어깨를 누르고 있는 손의 주인을 확인한 강현도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부맹주? 부맹주가 맹으로 복귀했다는 말인가?’
청천대협(靑天大俠) 백요진.
10년전 전대 무림맹주였던 모용세가의 정검(正劍) 모용군악이 물러나면서 새롭게 지금의 무림맹이 결성될 때의 일이었다. 구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소림의 공오대사가 맹주의 위에 오르고 자연스럽게 부맹주는 오대세가 측에서 나와야 했지만 하필 오대세가의 수장을 다투는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무기가 여러 가지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오대세가에서는 부맹주를 배출할 수가 없었다.
-남궁 가주가 아무리 큰 잘못을 했다지만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가주직을 내놓았으니, 구파에서 부맹주직까지 가져가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닙니까.
-그럼, 어쩌겠습니까. 그렇다고 세가의 인물을 내세우기에는 명분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구파와 세가에 적을 두지 않았지만, 최소한 중립적으로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을 인물을 부맹주로 세워야 합니다. 그게 오대세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오대세가의 수장들이 모여서 부맹주로 추대한 인물이 바로 청천대협 백요진이었다. 그는 화경의 고수였으며, 별호 그대로 푸른 하늘처럼 맑고 투명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는 공명정대한 인물이었다.
-부맹주라는 직책은 맹주의 부재 시나 맹의 위기 때나 필요한 직책인 법. 노부는 맹 내의 권력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 맹을 떠나 천하를 돌며 협의를 세우겠소.
백요진은 부맹주의 직에 오르자마자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남기고서는 맹을 떠났다. 그는 구파일방은 물론 정도무림맹에 속한 모든 문파들을 불시에 방문하며 마치 암행어사처럼, 정파의 가면을 쓰고 악행을 저지르던 자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단죄하였고, 그런 백요진의 협명은 강호에 널리 퍼져나갔다.
“큭……. 무당의 강현이 부맹주를 뵙소이다.”
백요진이 가볍게 어깨를 누른 것뿐이었지만 강현도장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상징하는 바는 컸다.
“오랜만이오 강현도장, 그리고 여러 장로님들과 맹주님도 말이오.”
아직까지도 지그시 한 손으로 강현도장을 누르고 있던 백요진이 장로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맹주님과 제갈군사가 강수를 두었구나. 맹의 일에서 손을 뗀 청천대협 부맹주를 불러들이다니.’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오대사와 제갈첨이 한 수에 감탄하였다.
“이쯤이면 손을 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부맹주님.”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백요진이 바람과 같은 신법으로 맹주부로 들어와 강현도장을 제압하였다면, 이번에는 아예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백요진의 뒤편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백요진의 손목을 잡고서는 강현도장의 어깨에서 가볍게 떼어내었다.
“더 이상 저의 사형께 무례를 범하지 마십시오.”
무룡(武龍) 유신의 등장이었다.
“저, 저…….”
“부, 부맹주님을 저토록 가볍게?”
좌중의 인물들이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맹주부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백요진이 방심했다고 해도, 화경에 이른 고수를 어린애 손목 꺾듯이 가볍게 다루다니. 왜 유신이 무룡이라 불리는지, 절대사룡이라는 별호가 왜 생겼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훗,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네. 이제 이 손을 좀 놔주겠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손목이 무척 시리구나.”
유신에게 손목을 잡혔음에도 백요진 부맹주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롭게 타이르듯이 유신에게 미소 지었다.
“결례를 범하여 죄송합니다.”
유신 역시 가볍게 사과하며 백요진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이렇게 좋지 않은 일로 정도무림의 명숙들과 맹주님을 뵙게 되어 아쉽습니다. 빈도는 무당의 유신이라합니다.”
포권하는 유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설화 속에 등장하는 청년 영웅과 같았다. 정중하되 비굴하지 않았으며 무림의 선배들을 존중하되 위축되지 않았다.
‘괴룡 사신혁과 더불어 무룡 유신의 이름이 왜 그리도 귀에 딱지가 지도록 들려왔었는지 인제야 알 것 같구나.’
‘허허, 놀랍고도 놀랍도다. 과연 무당의 잠룡답구나. 저토록 젊은 나이에 도달한 무의 경지가 화산제일검인 명검사제에 결코 뒤지지 않는 듯해.’
구파일방의 장로들이 유신을 보며 감탄하였고, 저런 기재가 자파에 하나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부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강현도장과 유신을 곁눈질하였다.
‘강현도장과 무당파가 왜 그리 무룡을 싸고 돌았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군. 제갈세가의 아이들이 제법 뛰어나다지만 무룡과는 비교조차 되지 못한다.’
‘하하, 강현도장. 이래서 그토록 유신을 감싼 것이었소? 하긴, 나 같아도 무룡 같은 아들이 있다면 모용세가의 절반을 주더라도 결코 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오대세가의 인물들은 유신을 보며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왜 오대세가의 이름은 언제나 구파일방의 뒤에 있었는지를 말이다.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아니 된다. 설령 무룡이 결백하더라도 차후 무룡과 같이 강호를 헤쳐나갈 세가의 후인들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한 번쯤은 무룡을 꺾어놓아야 한다.’
오대세가의 장로들이 이심전심으로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하였다.
“부맹주 백요진일세.”
백요진이 공오대사와 제갈첨에게 눈빛으로 무언의 허락을 구하며 유신의 앞에 섰다.
“청천대협의 높으신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인사치레는 그만하면 되었네. 노부 역시 그대의 명성은 귀가 따갑게 들었으니 말일세.”
“과찬이십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인걸? 직접 마주해보니 확실히 알겠어, 청의신공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제압은 불가능해.’
청의령주 요백진, 아니 지금은 무림맹의 부맹주 청천대협 백요진으로 유신을 마주한 상황이었다. 백요진이 본연의 목적을 상기하며 나직하게 입술을 떼었다.
“노부는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예외를 두지 않는다네. 하니, 무림맹의 규약에 따라서 자네는 무장을 해제하여야 하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신은 의외로 순순히 허리에 차고 있던 의천검을 풀어서 백요진에게 건네주었다.
‘의천검이 확실하군.’
유신의 검을 손에 쥔 백요진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훌륭한 검이군.”
“찬황지존위군께서 직접 하사하신 명검이니까요.”
“과연……. 기인이라 불리는 괴룡답구만. 이런 명검을 아무 대가 없이 선물하다니 말이야.”
백요진이 짐짓 감탄하며 검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붉은빛이 감도는 보석이 박혀있는 의천검의 손잡이를 역수로 잡고서는 등 뒤로 의천검을 숨겼다.
‘응? 지금 태천신공과 유사한 공력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
맹주부 내의 누구도, 심지어 완숙한 화경의 경지에 도달한 공오대사조차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한 기운이었으나, 유신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의천검을 뒤로 숨긴 청의령주에게서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사이하면서도 익숙한 기운을 말이다.
‘이런, 설마 눈치챈 건가? 단순히 무공이 높다고 해서 느낄 수 있는 기운이 아니거늘. 이 무당의 어린놈은 번번이 내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구나.’
요백진은 은밀하게 청의신공을 일으켜 의천검의 붉은 보석 속에 청의신공의 기운을 살짝 불어넣었다. 의천검은 사신문의 일부였던 혼원신교에서 만든 기물로, 손잡이에 있는 보석은 기와 주술력 등을 담아들 수 있는 특수한 보석이었다. 유신은 요백진이 청의신공을 순간적으로 살짝 끌어올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잡아낸 것이었다.
“검은 잠시 후에 돌려주겠네.”
검사가 손에서 검을 놓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안다는 듯이 백요진이 푸근한 미소와 함께 유신에게 말했다.
“군소방파도 아니고 봉문한 남궁세가를 대신하여 새롭게 오대세가로 올라설 수 있었을 서문세가가 봉문하였고, 무당의 속가 문파 중 가장 큰 태천문은 멸문하였다지?”
“…….”
굳이 다 아는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언급하며 백요진이 유신의 반응을 살폈다.
“사실 맹주부에 도착하기 전에 무림맹의 천이단(天耳團)을 통해 어느 정도 사건의 내막은 파악했었다네.”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반반이야.”
백요진이 유신의 앞을 천천히 오가며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
“정황은 자네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거든.”
“그렇습니까?”
“진심일세. 해서 자네만 괜찮다면 대질 심문을 해봤으면 하네.”
대질 심문이라는 단어에 강현도장의 얼굴이 굳어지며 백요진을 제지하려 하였으나, 스스로가 떳떳하고 아직은 강호경험이 부족한 유신이 일고의 여지도 없이 백요진의 청을 수락하였다.
“원하는대로 하십시오.”
“고맙네.”
강현도장이 끼어들기 전에 재빨리 유신에게 답한 백요진이 몸을 돌려 제갈첨과 공정대사에게 말했다.
“사건의 당사자인 서문세가의 서문우와 목격자인 소림의 장로 공오대사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맹주님.”
“꼭 필요한 일이라면 그래야겠지요. 그리하시지요 부맹주.”
공정대사의 허락이 떨어졌고, 강현도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사제, 때로는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법이라네.’
강현도장이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와 반대로 오대세가의 장로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노회한 백요진이 자연스럽게 유신을 심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과연, 청천대협답군. 훌륭한 한 수였어.’
‘무룡은 아직은 어리다. 무공은 뛰어나지만 심계는 그렇지 않아. 누가 무당의 도사 아니랄까 봐 아주 맑구나.’
공정대사의 허락을 구한 백요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림맹이 무사에게 명하였다.
“서문세가의 서문우를 데려오게.”
“예, 부맹주님.”
“그리고 공오대사님은 무룡의 왼편에 서주시면 됩니다.”
“아미타불.”
공오대사가 반장으로 답하며 유신의 옆에 섰다.
“그럼, 서문우가 도착하는 대로 대질 신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백요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사건의 결말을 궁금해했다. 강현도장과 구파일방은 유신의 무죄를 희망하였고, 오대세가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유신에게 제약을 가하고 싶어 했다.
‘지금 절대사룡이라는 이름과 함께 무룡의 명성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하니 이번 기회에 최소한 10년 이상의 근신 처벌은 받아내야 할 것이야. 허명이라면 모르되, 무룡은 지닌바 실력에 비하여 오히려 명성이 부족할 정도다.’
오대세가 장로들의 속마음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10년도 짧은 세월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가문의 동량들이 무공을 익혀 강호에 명성을 떨친다면 어느 정도 무룡의 위명을 지울 수 있을 거란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맹주님.”
이 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백요진의 명을 받아 서문우를 데리러 갔던 무사가 돌아와서는 난처한 얼굴로 백요진을 불렀다.
“왜 혼자인가? 서문우는?”
“그게…….”
무림맹의 무사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서문우 소협이 실종되었습니다.”
“뭣이?!”
서문우가 실종되었다는 보고에 백요진이 놀라며 되물었고, 오대세가 장로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거 봐라? 지금껏 무룡은 누명을 썼다고 생각했거늘 이 정도면 의심해볼 만도 하지 않은가?’
‘정말 유신이 결백하더라도 정황상 무사히 빠져나갈 수는 없겠구나.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군.’
모용추와 팽진호가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콰앙!
맹주부의 문이 부서질 듯이 열리며 무림맹의 정보부대인 천이단의 단주이자, 개방의 장로이기도 한 추풍개(秋風丐) 황포영이 다급하게 회의장에 들어서며 외쳤다.
“맹주님, 급보입니다!”
“아미타불, 무슨 일인데 그리 방정맞은가 천이단주.”
공정대사가 품위 있게 천이단주를 나무라며 물었다.
“서, 서문세가주 서문영호 대협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언급되자, 모두의 시선이 추풍개에게 쏠렸다.
“서문영호 가주께서 무림맹에 오셨습니까?”
군사 제갈첨이 차분하게 부채를 펼치며 추풍개에게 물었다.
“서, 서문영호 대협이 살해당하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