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호사다마 (20)
삽시간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추풍개의 경망스러움을 질책하던 공정대사조차 말을 잇지 못했다.
“추풍개 단주.”
가슴으로 움직이는 무사와는 반대로 냉철한 머리로 행동하는 책사답게 제갈첨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제가 잘못들은 게 아니라면, 지금 서문세가주님이 피살당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흉수는, 흉수는 밝혀졌습니까?”
“서문세가의 가솔들이 서문영호 가주님을 발견하였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고 흉수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해당한 겁니까?”
풍월개가 조심스럽게 유신을 곁눈질하며 입을 열었다.
“살해장소는 가주님의 집무실이었습니다. 가주님이 발견된 것은 무룡이 서문세가를 떠난 지 한 시진 정도 후였습니다. 최초발견자는 서문세가의 총관이었고, 일과를 보고하러 집무실에 들르면서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사인은…….”
풍월개가 비참한 서문세가주의 몰골이 생각났는지 눈을 질끈 감고서 짧게 내뱉었다.
“극도의 고수가 일검에 목을 친 듯한 흔적만이 남았습니다.”
“그 말은……?”
“예, 서문세가의 식솔들이 가주님의 원수를 갚기 전에는 제를 지낼 수 없다 하여, 외람되게도 서문가주님의 수급을 모셔왔습니다.”
추풍개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천이단의 수하에게 손짓하자, 단정하게 흑의를 갖춰 입은 무사가 조심스럽게 비단으로 덮여있는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아미타불, 열어보시게.”
공정대사가 착잡한 얼굴로 말했고, 천이단의 무사가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비단을 걷어냈다.
“흡?!”
상자 안에 있는 것은 자신이 죽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는지 눈조차 감지 못하고 죽은 서문영호의 수급이었다.
“어, 어찌하여……. 벗이여, 자네가 이토록 허망하게 가다니…….”
평소 냉정하기 그지없는 제갈첨이 서문영호의 처참한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무를 중시하는 무림세가 내에서 번갈아 가며 무림맹의 군사를 배출하던 제갈세가와 서문세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제갈첨과 서문영호는 어려서 같은 스승을 모시고 동문수학하던 사이였기에 제갈첨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제갈세가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네. 반드시 흉수를 찾아내 그놈의 수급을 자네의 영전에 바칠 테니, 부디 편히 가시게.”
제갈첨의 한 맺힌 다짐에 오대세가의 장로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흉수가 누구든지 간에 결코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팽 대협의 말씀이 맞습니다.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죗값을 받아내야 합니다.”
슬픔과 분노가 교차하는 맹주부의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의 시선이 유신에게로 모아졌다.
“추풍개 단주.”
“예, 부맹주님.”
슬픔에 잠긴 제갈첨을 대신하여 상황을 지켜보던 부맹주 백요진이 말했다.
“서문세가주님의 사망 시각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시체의 사후경직 상태를 보자면 짧게는 한 시진, 길게 잡아도 두 시진을 결코 넘기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다만?”
“서문세가주님께 살해당한 걸로 추측되는 시간에 공교롭게도 여기 계신 유신 도사님과 독대하셨다고 합니다.”
추풍개의 말에 천하의 유신조차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누군가 날 모함하고 있다. 대체 누가?’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구파일방의 장로들마저 의심을 담은 눈초리로 유신을 바라보았고, 오대세가의 장로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룡.”
백요진이 무심하고 차갑게 유신을 불렀다.
“예.”
“할 말이 있나?”
“없습니다.”
“없다……. 그래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죄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백요진의 말에 강현도장이 기겁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맹주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유신이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직도 강현 장로는 동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신을 변호하는 것이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유신 사제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서문세가주도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지.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룡? 내 말이 틀린가?”
“부맹주님이 말씀이 옳습니다.”
유신의 대답에 백요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래, 죄를 자백하겠다는 말이지?”
“서문세가주님이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됐을 분이란 뜻입니다. 저는 원시천존께 맹세코 서문세가주님의 죽음과는 무관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은 유신의 말을 믿는 것은 안타깝게도 강현도장뿐이었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비치는 유신의 모습은 역효과를 불러오기 충분하였고, 그것은 곧 행동으로 나타났다.
“이, 이 후안무치한 놈, 더는 두고 볼 수가 없구나.”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가까스로 분노를 억누르던 팽진호가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날아오르며 팽가의 비전도법인 오호단문도의 강맹한 초식을 펼쳤다.
“무량수불.”
유신은 착잡한 얼굴로 도호를 읊었다.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팽진호의 도에 목을 내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유신은 팽진호의 강맹한 도법이 환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쉽게 도의 옆면을 밀어내며 팽진호의 중심을 흐트러뜨렸다.
“이익! 이놈이?!”
순식간에 몸의 중심을 잃은 팽진호가 화를 내며 다시금 도를 뻗으려 하였지만, 어느새 유신의 손이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진정하십시오 팽 장로님. 저는 서문세가주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진심을 담은 유신의 말은 아쉽게도 팽진호를 더욱 분노하게 하였다.
“이놈!”
까마득한 후배에게 제압당했다. 팽진호가 몸을 떨며 전 공력을 끌어올리며 최후의 절초를 준비하려 할 때, 모용추가 나서며 팽진호의 손을 잡았다.
“팽 장로님.”
“놓으시오 모용 장로! 내 오늘 여기서 죽더라도 저놈과 끝장을 봐야겠소.”
“진정하십시오. 여기서 팽 장로님이 무룡을 죽인다면 무당과 척을 지는 것은 둘째치고, 죄인에게 너무도 편안한 죽음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모용추가 교묘한 언변으로 마치 팽진호가 유신을 제압할 수 있음에도 무당파의 면을 봐서 물러서야 한다는 식으로 팽진호를 설득하였다.
“그, 그렇군. 고맙소, 내가 흥분하여 일을 그르칠 뻔했구려.”
모용세가주의 말에 어느 정도 화가 풀리면서 현실을 직시한 팽진호가 마지못해 물러서는 것처럼 도를 거두었다.
‘내 면을 살려주어 고맙소 모용 장로.’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까마득한 후배와 드잡이질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가만히 둬도 부맹주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마음 편히 지켜보시지요.’
“이게 무슨 짓이오!”
팽진호의 돌발행동에 강현도장이 분개하며 검을 뽑았다.
“지금 발검을 한 것이오 강현도장?”
팽진호가 흥분하며 다시 한번 도를 뽑아 들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더는 두고볼 수가 없었는지 백요진이 고개를 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만.”
자연스럽게 강현도장과 팽진호의 사이에 선 백요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현도장과 팽진호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한 번만 더 무공을 사용한다면 그게 누가 되었건 노부가 용서치 않겠소.”
“부맹주님.”
강현도장이 검을 접으며 정중하게 백요진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서문세가주님의 일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빈도가 감히 부맹주님께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해 보세요.”
“무당과 빈도는 유신 사제를 믿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해서, 부맹주님께 여쭙겠습니다. 정황만으로 사람을 의심하여 죄를 묻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옳지 않소.”
“백번 양보해서 유신 사제가 서문세가주님을 살해하였다 가정하여도, 증거도 증인도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의심이 된다 한들, 단 하나의 증거도 없이 정황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어리석은……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강현 장로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오.”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것은 유신을 추궁하던 요백진이었다.
“허면 증거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소?”
백요진이 씁쓸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더니, 허리를 굽혀 서문우의 수급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일격에 잘라낸 목. 잘린 단면만 보아도 절정의 검술로 서문세가주가 대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보였소. 그 당시 호북에서 서문세가주를 일검에 제압할 수 있는 검도고수라면 무당의 태극검제 정진진인과 무룡 유신뿐이겠지.”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아직 노부의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현 장로.”
백요진이 단호하게 강현도장의 말을 자르며 유신에게 물었다.
“무룡, 그대는 서문세가와 태천문에서 무공을 사용할 때도 특기인 검을 단 한 번도 뽑은 적이 없다지?”
“그렇습니다.”
“왜 그랬는지 물어봐도 될까? 검을 사용했으면 훨씬 적은 공력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건…….”
유신이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굳이 검을 뽑지 않아도 제압이 가능한 상대였고,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기에 만약 검을 뽑는다면 의도치 않게 상대를 죽일 수 있어서 뽑지 않았다고 말하면 가뜩이나 화가 난 오대세가의 장로들을 더욱 자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검을 뽑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었던 건가?”
유신이 대답을 망설이자 백요진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없습니다. 굳이 검까지 쓸 필요가 없었을 뿐입니다.”
“무룡의 무공이 그토록 뛰어날 줄은 몰랐군. 무당의 검수가 수십의 절정고수들을 상대하는데 검조차 쓰지 않았다니 말이야.”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이야 무룡.”
백요진이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집요하게 유신을 물고 늘어졌다.
“노부는 이런 생각이 든다네. 아무리 자네가 뛰어나다 해도 적수공권으로 순식간에 서문세가주의 목숨을 취할 수는 없었겠지. 그래서 검을 쓴 적이 없는 무룡이 서문세가주의 목을 치는 그 순간만큼은 발검했을 거라는 상상이 말이야.”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서문세가주님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검을 뽑아보게. 서문세가주의 목이 잘려 나간 선과 의천검의 검신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지 않겠나?”
요백진이 마치 이것도 아니라고 증명해보라는 듯이 회수했던 검을 내밀며 물었다.
“그것으로 의심이 풀린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신이 다시 검을 받아 들고 천천히 검을 뽑았다. 아름다운 의천검의 검신이 드러나며 모두의 시선이 유신에게 집중되었고, 그 순간 의천검의 붉은 보석이 반짝이며 사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건?!”
공오대사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아미타불, 태천문의 태천신공의 기운! 무룡, 설마 태천신공을 전수한 곳이 무당이었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