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차기 맹주
무명은 유신을 앞에 두고서도 여유 있게 무형심검을 소멸시켰다.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다.”
무명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절대자의 여유와 기품이 느껴졌으나 그의 말에서는 높낮이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나겠다는 겁니까?”
“그럴 생각이야. 왜, 괴룡의 뒤를 이어 자네도 나와 검을 섞어 보고 싶은가?”
“아니오, 막지 않겠습니다.”
“과연, 무룡다운 협의군. 괴룡의 목숨을 포기한다면 내 목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말이야.”
무명이 살짝 유신을 도발하였다. 신혁과의 싸움으로 공력의 상당 부분을 소진하였고, 유신도 비록 만전의 상태는 아니지만, 그가 시간을 조금만 끌어 무명의 발을 묶는다면 곧 무림맹의 정예들이 도착할 것이었다.
“내겐 호승심보다 형님의 목숨이 더 소중하오. 떠나시오. 그리고 언제고 빈도가 반드시 형님의 빚을 갚을 것입니다.”
“기대하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괴룡이 깨어나면 내 말을 전해다오.”
“무슨 말입니까?”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현의령주가 자리를 떴고, 곧 제갈첨과 무림맹의 장로들이 현장에 들이닥쳤다.
“무룡!”
제갈첨이 한달음에 유신에게 달려왔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서 형님을…….”
유신이 신혁의 상처를 손으로 막으며 상태를 살폈다.
“서, 설마 괴룡이 패배……?!”
제갈첨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괴룡 사신혁이 무너졌다. 그것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말이다. 지금껏 정사마의 세력을 가리지 않고 강호의 내로라 하는 고수들을 꺾은 신혁이 패한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대체 현의령주라는 자는…….”
“이럴 시간 없습니다. 출혈이 심각합니다. 어서 의원을.”
유신이 충격에 빠져있는 제갈첨을 재촉하였다.
“그, 그렇지! 의원, 빨리 의원을 대령하라!”
* * *
“제갈군사,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유신과 요백진의 싸움으로 무너져버린 맹주부를 대신하여 제갈첨의 군사부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이 모였다. 맹에 파견한 장로들이 있음에도 각 세력의 수장들이 모인 것은 아주 중요한 사안의 의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우두머리가 없는 조직은 힘을 쓰지 못하는 법입니다. 하물며, 정도맹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수많은 문파들이 속해있는 거대 조직이 아닙니까. 하루빨리 새로운 맹주를 선출하여야 합니다.”
사천당가의 가주인 암왕(暗王) 당사현이 제갈첨의 결단을 촉구하였고, 진주언가의 가주 언가해가 당사현의 말에 동조하였다.
“두 분 가주님들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이번에 불미스러운 일로 모용세가의 가주님과 화산파의 문주님께서는 참여하지 못하셨고, 여러 장로님들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뜻을 전달하셨습니다.”
서문세가나 태천문과 마찬가지로 화산파의 명운도장과 모용세가의 모용추가 사신문의 주구가 변장한 인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상황에, 내부 단속만으로도 벅찬 화산파와 모용세가였다.
“그럼, 이곳에 계신 구파일방의 문주님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님들의 추천을 받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전대맹주이신 공오대사님께서 장로들이 추천한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하여 차기 맹주를 지명하는 것이 순리지만…….”
제갈첨이 비통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맹주님과 부맹주님의 자리가 모두 공석인 지금, 여기 모인 분들의 추천을 받고 전대 맹주님의 사제이자 소림의 방장인 공정대사님께 최종 결정을 맡기려 합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오.”
“그렇게 하겠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문주들이 모두 동의하였다. 이 상황에서 맹주 후보로 추천할만한 인물도 몇 없었거니와 위기가 없는 평온한 시기도 아니었다. 게다가 사신문이라는 전대미문의 흑막과 현아진의 마교, 주소천의 사도맹의 기세가 강맹한 이 시기에 정도맹의 맹주 자리를 꿰차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 정사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맹주를 배출한 문파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전대 맹주이신 공정대사께서 구파일방의 소림 출신이셨으니 이번에는 오대세가에서 맹주를 선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이는 공동파의 장문인 벽력신검(霹靂神劍) 순우일이었다.
“해서 저는 사천당가의 암왕 당사현 가주님을 차기 맹주 후보로 추천합니다. 지난 정사대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사천당가를 지금의 성세를 누릴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신 지략과 경험. 그리고 대량살상에 있어서는 강호제일인 사천당가의 특성까지 고려해본다면, 차기 맹주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허허, 노부를 말입니까?”
공동파의 장문인 순우일의 추천을 받은 당사현이 슬쩍 웃는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이 패기만 앞세운 젊은 장수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기 위해 나서는 것처럼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먼저, 순우일 장문인의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곧 죽을 날을 받아놓은 늙은이를 그리도 높게 평가해주시니 말입니다.”
“아닙니다 가주님, 저는 진심으로…….”
순우일이 멋쩍게 웃으며 당사현을 재차 추천하려 했지만, 당사현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사천당가는 부족함이 많은 문파입니다. 아무리 위기라고 하지만 독과 암기를 전면에 내세워 전쟁이라도 벌인다면 세상이 정도맹을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또한 제가 아무리 사천당가를 일으켜 세운 지략과 경험이 있다 한들 그것만을 놓고 보면 정도무림맹 전체의 살림을 책임진 제갈첨 군사만 하겠습니까?”
“과찬이십니다 가주님. 제가 비록 작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 하나 어찌 맹주의 자리를 넘보겠습니까. 저는 맹주의 자리에 어울리는 영웅이 아닙니다.”
자신을 치켜세우는 당사현의 칭찬에 제갈첨이 살짝 고개를 저으며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곧 이어질 당사현의 말이 짐작되었기에 얼굴에 쓴웃음이 걸릴 것을 대비하여 미리 가린 것이었다.
“허어~ 큰일이구려. 노부보다 지모가 뛰어난 제갈군사조차 거절하시니 아무래도 맹주는 영웅의 자질과 대협의 기질을 모두 가진 인물로 모셔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럼 당가주님께서 추천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노부는 무당의 태극검제 정진진인을 추천하외다. 현경에 이른 뛰어난 무공과 그분의 경륜이이라면 정도무림맹의 맹주에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당사현의 시선이 무당파의 장문인 청현진인에게 향했다.
“무량수불. 당가주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습니다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청현진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먼저 정진사숙께서는 후인들에게 무당의 대소사를 일임하시고 은거에 드셨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뿐인 적전제자인 유신의 일로 잠시 강호에 나오셨으나, 사숙께서는 유신 사제의 일을 제외하고는 일절 강호에 관여치 않겠다 선언하셨습니다.”
“허어~ 그래도 지금은 정도맹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니오. 무당문주님께서 태극검제 어르신을 한 번 설득해 보심이 어떻겠소이까?”
당사현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청현진인을 설득하였다.
“빈도가 어찌 사문의 어른이신 정진사숙의 뜻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가주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빈도가 사숙과 독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태극검제 어르신과 말이오?“
“그렇습니다. 당가주님께서 직접 정진사숙을 설득하신다면…….”
“크흠, 아니오. 태극검제 어르신의 뜻이 그리도 완고하시다면 노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젊었을 때 강호에서 활동하던 태극검제 정진진의 또 다른 별명이 열혈광검(熱血狂劍)이라 불릴 정도였다. 비록 지금은 나이가 들어 많이 온화해졌다 해도,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당사현은 깔끔하게 뜻을 접었다.
“당가주님과 무당문주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차기 맹주님을 선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진주언가의 가주 언가해가 말문을 열었다.
“지금은 전시. 무엇보다 맹주님의 무공이 중요시 되어야 합니다. 해서, 저는 차기 맹주에 입후보할 수 있는 분들은 최소 화경의 경지를 돌파한 초절정고수들로 제한을 뒀으면 합니다.”
언가해의 말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청현진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럼, 언가주님께서는 어느 분을 차기 맹주로 추천하시겠습니까?”
제갈첨이 흥미로운 얼굴로 언가해에게 물었다.
“저는 화산파의 매화일검(䊈花一劍) 명검도장님을 추천합니다. 세력이면 세력 무공이면 무공, 게다가 연륜과 경험까지 흠잡을 데가 없는 분입니다.”
“명검진인이라…….”
언가해의 말에 대부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특히나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의 장문인 명진도장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했을 테지만…….’
언가해의 속내를 짐작한 제갈첨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대세가의 입장에서는 구파일방의 힘을 약화시키면서도 정도맹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한 수다. 그러나 그렇게 뻔히 보이는 수에 넘어갈 만큼 만만한 구파일방이 아니라오 언가주.’
제갈첨의 생각대로 지금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개방의 방주 항룡신개(降龍新䒓) 강건우가 딴지를 걸고 나섰다.
“언장로님.”
“예, 방주님.”
“언장로님의 말씀대로 지금은 정도맹의 위태로운 상황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병석에 누워있는 화산의 명검도장이 과연 무림맹주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겠소?”
“그건…….”
항룡신개의 촌철살인의 질문에 언가해의 말문이 턱 막혔다.
“본 방에서 알아본 바로는 명검진인께서는 앞으로도 족히 수개월은 정양하셔야 한다고 하셨소. 허먼, 명검진인께서 맹주직을 승낙하신다 해도 그 수개월동안 맹주의 자리를 공석에 둘 생각이시오?”
“아니, 제 말은…….”
“지금 맹주부가 박살이 나서 군사부에 모여서 회의를 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렇게 아전인수하며 우리끼리 눈치싸움이나 해야겠소이까!”
정보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뛰어난 문파를 꼽자면 사파의 하오문과 정파의 개방이었다. 정보단체의 수장답게 평소에는 냉정하고 차분한 항룡신개였지만 의와 협을 중시하는 개방의 방주답게 불의를 보면 결코 분노를 참지 않는 의인이기도 했다.
꽈앙!
그의 손이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적당히 하시오. 좀 적당히!”
“이익, 지금 말 다 했소 방주?”
“아미타불.”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둘 사이에 공오대사가 끼어들며 무언의 눈빛으로 싸움을 말렸다.
“무림의 명숙들께 소림의 공오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대사님. 경청하겠습니다.”
제갈첨이 재빨리 공오대사의 말을 받았고, 머쓱해진 항룡신개와 언가해가 화를 참고 자리에 앉았다.
“아미타불, 소승이 심사숙고 해봤지만, 이분만큼 정도맹의 차기 맹주에 어울리는 분이 없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