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배신 (3)
복호산.
구파일방의 일좌를 차지 하고 있는 아미파가 위치한 곳이었다.
사천의 명문 아미파. 여인들로만 구성되어 천년을 이어왔다는 검의 명가이자 소림사와 비견될 정도의 성세를 누리는 사찰이었다.
“아미타불, 이게 무슨 짓이오!”
아미파의 장문인 복마검(伏魔劍)화영신니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사방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아미파의 전각이 불타고 있었다. 그 옛날 수라마후 주약란의 침공 이후에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던 아미파의 전각들이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쓰러졌다.
“제자가 오랜만에 문주님을 뵙습니다.”
느물느물한 웃음기를 머금은 사십 중반의 중년인이 공손하게 화영신니를 향해 포권하였다.
“야율기?!”
야율기라 칭해진 중년인을 본 화영신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예, 장문인. 접니다.”
“내 너를 박하게 대한 적이 없거늘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야율세가의 가주 야율기. 그는 수십 년 전 모용세가와 패권을 다투다 몰락한 야율세가의 당대 가주였다. 모용세가에 패한 야율세가는 대부분의 고수를 잃고 비전으로 전해지던 무공마저 소실되었다. 그 뒤로 야율가의 소가주들은 대대로 아미파에서 무공을 배워 나이가 차면 하산하여 가문을 이었다.
“예, 물론 박하게 대하신 건 없지요. 다만, 애타게 상승무공을 갈구하는 제게, 장문인께서는 냉정하게 선을 그으셨지요. 그 대단한 아미의 복마이십이검(伏魔二十二劍)의 전수를 불허 하신 것이 이 제자의 천추의 한이 되었을 뿐입니다.”
“적전제자에게만 전수되는 비전무공을 어찌 속가제자에게 전수한다는 말이냐.”
“하하하. 괜찮습니다.”
야율기의 욕망이 가득 찬 웃음이 복호산에 울려 퍼졌다.
“그 대단한 복마이십이검이란 게 사신문의 혼원여의신공에 비한다면 어린애 장난이었지 뭡니까. 정말 제자는 스승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약 스승님께서 저를 내치지 않으셨다면 저는 혼원여의신공을 익히지도 못하고 아미에서 늙은 여승들의 수발이나 들며 살뻔했지 뭡니까”
“네, 네놈이 기사멸조의 죄를 범하려 하느냐!”
“저런, 그거라면 이미 범했습니다. 안타깝군요.”
야율기가 뒷짐 지고 있던 손을 앞으로 내밀며 동그란 무언가를 화영신니에게 던졌다. 바닥을 굴러 화영신니의 발치에 멈춰 선 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사, 사매!”
아미파의 최고수 화진신니. 절정의 극에 달한 검도고수로서 그 무공은 아미파의 장문인 화영신니보다 뛰어나다 알려진 정파의 검후였다. 그런 그녀의 잘린 목이 원통함에 눈을 부릅뜨고 화영신니를 바라보았고, 화영신니의 눈빛이 불자답지 않은 살기에 휩싸였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스승님. 제자가 근래에 무공이 급상승했다고 해도 화진사숙을 꺾을 정도는 아닙니다.”
“무슨 비겁한 짓을 한 것이냐? 그리고 어찌 야율세가가 아미를 도모하려 하느냐?”
“신기하죠? 아무리 혼원여의신공을 익혔다곤 해도 몰락한 야율세가 따위에 아미파가 무너져내리는 게 이해가 가지 않으실 겁니다.”
“네이노오오옴!”
분노한 화영신니가 몸을 날리며 검을 뽑았고, 곧 그녀의 손에서 아미파의 비전무공인 복마이십이검이 무서운 살기를 머금고 야율기의 목을 노렸다. 일검에 그 더러운 입과 함께 목을 뚫어버리려는 화영신니의 의지가 그녀의 검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어이쿠, 스승님. 나이가 드셔서 조금이나마 온화해지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욱 급해지셨으니 이 제자가 슬픔을 감출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죽거리던 야율기가 화영신니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발검하였고, 얄궂게도 그가 펼치는 검법은 아미파의 절기로 유명한 항마십삼검(降魔十三劍)이었다. 두 사람의 검에는 시릴듯한 검강이 서려 있었고, 공력과 초식에서 모두 우위를 점하는 화영신니가 기세를 더욱 북돋우며 야율기의 목을 베려 하였다.
서걱.
하지만 놀랍게도 야율기의 목이 잘리기는커녕, 화영신니의 검이 종이처럼 야율기의 검에 잘려 나갔다.
“이럴 수가?!”
“놀랍죠? 아미의 검을 쪼개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혼원여의신공이 저의 소원을 이루어주었습니다. 하하, 그래도 실망입니다. 화진사숙의 검강은 제가 베어낼 수 없었는데 말이죠.”
비열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야율기가 가볍게 손목을 털었다.
“그래도, 손목은 좀 시큰거리네요.”
“아아아악~!”
“꺄아아악!”
아미파의 전각은 화마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으나, 마지막 단말마를 끝으로 더 이상의 비명도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덜컥.
화영신니와 야율기가 대치하는 아미파 대웅전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이남일녀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은 저마다 손에 잘린 수급을 하나씩 지고 있었다.
“어머, 아직도 여흥을 즐기고 계시다니. 우리 야율가주님이 풍류를 아시는군요.”
화사한 미소와 함께 속살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는 궁장을 입고 등장한 여인은 산동악가의 장녀 악비연이었다. 악가창법으로 유명한 산동악가의 후예답게 그녀의 등에는 그녀의 키보다 큰 장창이 비스듬하게 걸려있었다. 다만 용맹하거나 우아하기보다는 아슬아슬한 옷차림 때문인지 거친 여자 산적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건 소녀가 아미문주님께 드리는 선물이니 부디 어여쁘게 받아주시어요.”
그녀가 던진 수급의 주인은 바로 오대세가의 일원인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현우의 수급이었다.
“내 선물도 받아주시오. 보시면 아시겠지만, 장문인께서 사천당가와 청성, 점창의 구원을 기다리신다면 포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큰 덩치의 사내가 들고 있던 수급을 화영신니에게 날렸다.
“이, 이럴 수가…….”
날아온 수급을 받아든 화영신니의 눈동자가 암울하게 젖어 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수급은 바로 점창파의 최고수 금강일권(金剛一拳)노태주였으니 말이다.
“크큭, 야율가주.”
마지막으로 음침한 웃음과 함께 입을 사내의 손에는 청성파의 대제자 관자림의 수급이 들려있었고, 그는 화영신니에게 수급을 던지지 않고 야율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내 야율가주의 청을 받아들여 화영신니의 목을 베는 데 일조하였으니, 가주께서도 약속을 지키실 거라 믿소.”
“하하, 이를 말이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지요.”
“크크크, 내 도도한 구파일방의 적전제자를 품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 대상이 아미의 장문인이라면 금상첨화겠구려. 클클클클.”
“이, 이놈들!”
“낭군 될 사람에게 이놈이라니, 내 열두 번째 첩실로 들어서기에는 너무 성깔이 괄괄하니 부득이 무공을 폐하고 자결하지 못하게 혀 정도는 잘라야겠소. 부디 부인이 이해하시구려.”
“네, 네이노오오옴~!”
“네 이놈이 아니라 낭군이라 칭하시오.”
구파일방에는 들지 못하나 태산파와 함께 정파에서 최고의 성세를 구가하는 형산파의 장문인 무수각이 보통 사람보다 유독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크크큭, 첫날밤이 기대되는구려.”
화영신니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여러 문주님들께 후배가 부탁드립니다. 비록 제가 정도맹의 맹주가 되었으나, 아직은 강호의 경험이 일천하여 선배님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사신문이 어찌 움직일지 모르니, 문파의 정예들을 한곳에 모았으면 합니다.
-맹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사천은 청성과 아미 그리고 점창과 당가까지 있으니 결코 사신문 따위에 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자만이고 오만이었다. 유신이 맹주에 오르고 제갈첨 군사와 상의하여 내린 첫 명령을 가볍게 무시한 과거의 결정이 너무도 후회되는 화영신니였다.
“아미타불. 내 색마의 손에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지옥의 나찰이 되어 한 명이라도 더 저승길 동무로 삼겠다!”
화영신니가 전의를 불태우며 진원진기까지 아낌없이 검에 쏟아붓자, 석 자가 넘는 검강이 그녀의 검에서 발현되었다.
“살아남은 아미의 제자들은 본 장문인의 명을 받들라. 무룡이, 맹주님께서 계신 호북으로 퇴각하라!”
아미파의 장문인으로서 마지막 명령을 일갈한 화영신니의 손에서 최후의 복마이십이검이 펼쳐졌다.
“쯧쯧, 치욕을 당하기 싫었으면 그냥 자결을 하셨어야지요 부인.”
무수각이 손에 낀 현철권갑에 강기를 둘러 여유롭게 화영신니의 공격을 막았고, 그 찰나의 순간을 야율초가 놓치지 않았다.
“이거, 죄송합니다 스승님. 하지만 약속은 중한 것이니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율초가 부드럽게 화영신니의 품에 파고들어 그녀의 단전에 검을 꽂았고, 무너지듯이 쓰러지는 화영신니의 마혈을 짚었다.
“약속은 지켰소이다 형산 장문인.”
“크하하하하. 물론이오 야율가주. 고맙소이다.”
이날, 청성과 점창파의 문주와 사천당가의 가주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세력의 대부분을 사신문의 기습에 잃어버렸고, 아미파는 장문인이 사신문의 포로가 되는 치욕을 겪었다. 이들은 그들의 터전인 사천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훗날 사천의 참변이라 불릴 사신문의 충격적인 발호였다.
* * *
중원의 광서지역.
중원의 젖줄이라 불리는 장강의 지배자는 황제로부터 사략면장까지 부여받은 장강수로연맹이었다. 처음 장강수로연맹이 결성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수적이라 비하하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누구도 그들을 만만히 볼 수 없었다.
일수번천(一手藩天) 사도진악.
장강수로연맹의 연맹주 혹은 총채주라 불리는 불세출의 무인이었다. 사파의 고수로서는 정말 드물게 화경에 도달한 고수였으며, 새롭게 결성된 사도맹의 부맹주직을 역임하고 있는 사내였다.
“총채주님.”
사도맹의 부맹주라는 높은 지위와 화경의 고수라는 지고한 경지를 개척했음에도 사도진악은 하루에 한 시진 이상은 반드시 무공을 수련하는 무공광이었다.
“무슨 일이냐.”
장강수로연맹에 속한 인물 중에서 수련 시간을 방해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도진악의 성격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수련장에 있는 그를 찾아왔다면 필경 보통 일은 아닐 것이었다.
“…….”
사도진악을 찾아온 간부급 수적이 몸을 떨며 사도진악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
막 역정을 내려던 사도진악의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도진악의 수련장의 문을 열고 등장하는 한 명의 남자 때문이었다.
“수련을 방해해서 미안하오.”
“너, 너는?!”
사도진악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어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는가.
사신문의 적의령주.
혈존검황(血存劍皇) 적무강.
사도맹과 사신문과의 싸움에서 화경의 고수인 이화태양궁주 초사헌과 협공을 하고도 막아내지 못했던 괴물이었다.
“오늘은 길보다 흉이 크겠구나.”
화경의 고수답게 순식간에 감정을 다스린 사도진악이 서서히 공력을 끌어올리며 적무강에게 다가갔다.
“그래, 혈존검황께서 장강에는 어인 일로 오셨소?”
“주군께서 그대의 목을 가져오라 하셨소.”
적무강이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검집을 툭 쳤다.
“쉽게 줄 마음은 없는데, 직접 손을 쓰심이 어떠하오?”
“바라던 바요.”
“그대 혼자 온 것이오?”
“그렇소.”
적무강의 대답에 사도진악이 피식하고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굳이 수하들에게 도주하라 명을 내리진 않아도 되겠구려. 내 목만을 노린 것이라면 수하들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 말이오.”
“그대의 말이 맞소.”
사도진악의 손에 서서히 칠환번천장(七換藩天掌)의 강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쉽진 않을 것이오.”
적무강 역시 화경의 고수인 사도진악을 경시할 수는 없었는지 부드럽게 허리에서 검을 뽑았고 적의령주를 상징하는 적의신공의 날카로운 강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기대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