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비보 (1)
비장한 사도진악의 마음에 약간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끼어들었고, 그의 심정이 그대로 투영되듯이 칠환번천장의 강기가 살짝 흔들렸다.
“한 수.”
사도진악의 일순간 틈을 놓치지 않은 적무강의 검이 어느새 그의 목에 닿아있었다.
“무인으로서 후회는 없어야겠지. 하지만 다음은 없소.”
“……배려에 감사드리오.”
검을 거두는 적무강을 향해 사도진악이 정중하게 포권하였다. 비록 적이지만 무인으로서 혈존검황 적무강은 존경할만한 강자였기 때문이었다.
“혈존검황. 후회 없는 싸움을 원하오. 그대의 무혼을 보여주시오.”
“나 역시.”
적무강의 검에서 피처럼 붉은 강기가 넘실거렸다. 본격적으로 적의신공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에 반해 사도진악의 두 손에 어린 강기는 푸르른 장강의 강물처럼 장엄하면서도 맑았다. 사파중에서도 가장 사파에 가까운 수적의 수장답지 않은 기운이었다.
“시작하겠소.”
사도진악의 양손이 구름 속을 노니는 바람처럼 휘저어졌다. 어설픈 한 수가 통할 상대가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칠환번천장의 가장 강력한 초식이자 연환식인 후반 삼초식을 펼치는 사도진악이었다.
칠환번천장(七換藩天掌) 제5초.
일수풍운(一手風雲).
일곱 개의 변화를 가진 사도진악의 칠환번천장은 연환장의 최고봉이라 할만한 무공이었다.
“하아아압!”
사도진악이 일으킨 구름과 바람이 일렁거리며 그대로 적무강을 덮쳤다. 더없이 웅장하고 장엄한 한 수였지만 그의 초식에는 일격에 바위도 부숴버릴 만한 강기가 실려있었다. 그야말로 면장의 절정을 보여주는 사도진악의 무공이었다.
“좋군.”
적무강이 사도진악의 무공에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미소 지었고,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던 그의 검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허공에 한 줄기 검사(劍絲)를 남겼다.
번쩍.
갈라졌다. 가로막고 베어도 초식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던 칠환번천장의 연환장이 적무강의 일검에 갈라졌다. 놀라운 것은 강기가 실린 사도진악의 한 수를 적무강은 검강의 아래 단계인 검사(劍絲)만으로 무력화시킨 것이었다.
“아직이오.”
사도진악은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은 어느 정도 예측하였기에 흔들리지 않고 다음 초식을 펼쳤다.
칠환번천장(七換藩天掌) 제6초.
일수경천(一手傾天).
사도진악의 손이 움직이자 공기가 진동하며 강기의 회오리가 하늘로 승천하였다.
꽈르르르릉.
사도진악의 일수에 하늘마저 놀란 듯이 구름이 흩어졌고, 승천한 강기의 회오리가 벼락처럼 적무강의 전신을 노렸다. 일수풍운의 초식처럼 적무강의 전신을 노린 공격이었지만, 이번 공격은 마치 소나기처럼 무수한 장력과 강기가 쏟아져 내렸다.
“나쁘지 않소. 그러나 그대는 아직까지도 내 능력을 그대의 시야 속에만 가둬 두는구려.”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았던 적무강이 드디어 몸을 움직였다. 전후좌우, 사방팔방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에서 떨어지는 장력과 강기의 세례를 한 자루의 검만으로는 방어할 수 없었으니까.
“흡!”
단 한 걸음이었다. 적무강이 크게 오른발을 내디디며 땅을 밟았고, 그 발을 축으로 삼아 한 바퀴 몸을 회전시켰다. 회전하는 그의 몸과 함께 그의 검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사도진악의 장력과 강기를 갈라버렸다. 여타의 검수들처럼 검으로 쳐내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베어버리는 적무강의 검술에 사도진악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검귀(劍鬼).’
사도진악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였다.
“마지막이오. 이것이 무인 사도진악의 최후의 한 수외다.”
칠환번천장(七換藩天掌) 제7초.
일수파천(一手破天).
사도진악의 최후의 한 수는 말 그대로 하늘을 무너뜨릴 것 같은 무거운 초식이었다. 환(換)의 묘리가 중첩되어 중(重)의 묘리를 담고 붕(崩)의 묘리로 변하니 그야말로 면장의 최고경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수였다.
촤아아악!
다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새 적무강의 검이 사도진악의 강기막을 잘라내며 그의 목을 긋고서 지나갔다.
“훌륭한 무공이었소. 그대의 무공은 완벽했소. 다만 내 검이 조금 더 빠르고 날카로웠을 뿐이오.”
적무강이 검을 늘어뜨리자 한 방울의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살짝 검을 휘둘러 피를 떨쳐낸 적무강이 검을 수납하며 사도진악을 지나쳐 수련장의 문으로 향했다.
“그대와 같은 강자의 손에 최후를 맞게 되다니. 무인의 최후에 이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있겠…….”
사도진악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투욱.
깔끔하게 잘린 사도진악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적무강이 고개를 돌려 씁쓸한 눈빛으로 애도를 표했다. 수련장의 문이 열렸고, 애타게 사도진악과 적무강의 비무 결과를 기다리던 장강수로연맹의 간부들이 적무강과 눈이 마주쳤다.
“이럴 수가…….”
적무강이 수련장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장강수로연맹의 간부들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하나둘씩 주저앉았다.
“크흐흑, 총채주님. 어허어어어엉!”
“으흐흐흐흑.”
마교만큼은 아니지만 사파도 약육강식의 율법이 존재하는 철혈의 세계였고, 상대도 되지 않는 강자에게 덤벼들 만큼 멍청한 무인들은 없었다. 하지만 사도진악은 이런 사파의 특성이 무색해질 만큼 수하들이 진심으로 따르는 우두머리였다.
“화경의 무인다운 장엄한 최후였소.”
“……기다리시오.”
적무강의 말에 장강수로연맹의 간부 중 하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에게 말했다.
“장강수로연맹의 진두현이라 하오.”
“말씀하시오.”
“내 말이 만용으로 들릴 거라 생각하지만, 한가지는 약속하겠소.”
비통한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문 진두현이 적무강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반드시, 총채주님의 복수를 할 것이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이어지는 진두현의 말에 적무강이 숙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를 찾아가 자결이라도 하겠소.”
“사도진악은 좋은 수하를 두었구려. 부디 그대의 뜻이 이뤄지길 바라겠소. 진심이오.”
그 말을 남기고 적무강은 장강수로 연맹을 떠났다.
“문주님, 문주니이이이임!”
그다음 적무강이 향한 곳은 흑룡문과 철혼문이었고, 그곳 역시 장강수로연맹과 마찬가지로 곡소리가 울렸다. 다만, 죽은 철혼문주 이상희와 흑룡문주 조양언은 사도진악과 달리 적무강에게 존중받지 못한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요백진이 만족하겠지. 사도진악 말고는 잔챙이들 뿐이라 조금 아쉽군.”
적무강은 강자를 존중하지만, 약자는 배려하지 않았으니까.
* * *
서안에 위치한 사도맹.
사도맹의 맹주 주소천의 사문이 위치한 서안에는 모산파뿐만이 아니라 사혼교도 위치한 곳이기에 사도맹의 총단은 자연스럽게 서안으로 정해졌다.
“맹주님.”
“어머, 하오문주님이 아니세요?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어요?”
사도맹의 군사이자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하오문주 사공자청이 주소천이 머무는 맹주부에 들어섰다.
“예, 급하게 보고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급한 일이요?”
“사인아 사안인지라 이미 사도팔문의 수장들에게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늦어도 모래까지는 모두가 모일 수 있을 겁니다.”
“무슨 일이죠?”
주소천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사공자청은 심계가 깊고 신중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주소천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사도팔문의 문주들을 모두 소집할 정도였다면 보통 큰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얼마 전에 정파의 이변에 대해서 보고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 알고 있어요. 사신문이 움직였고, 사신혁 대협과 유신 도사님이 힘을 합쳐 해결하였다고 하셨죠? 그리고 유신 도사님께서 정도맹의 새로운 맹주가 되셨구요.”
“예, 그렇습니다 맹주님.”
주소천의 고운 손가락이 가볍게 탁자를 두들겼다.
“놀라운 소식이지만 그건 사도맹의 일이 아닌 외부의 일. 그것만으로 사도팔문의 문주님들을 소집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직 말씀하시지 않은 정보가 있나요?”
“맞습니다 맹주님.”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지금처럼 번뜩이는 총명함을 보일 때마다, 하오문주 사공자청은 주소천을 사도맹의 맹주로 추대한 선택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사신문이 그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사신문이요?”
“어쩌면 정도맹이 큰 위기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분명히 하오문주님께서 제게 사신문의 청의령주를 정도맹에서 물리쳤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사신문이 실체를 드러내다니요?”
바로 얼마 전에 요백진에 의해서 정도맹의 전대 맹주인 공정대사가 사망하고 서문세가가 멸망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은 정도맹이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는 말에 주소천이 의문을 표했다.
“그것이…….”
사천은 중원의 요지이자 정파의 중심지였기에 하오문 역시 사천에서 많은 객잔과 기루를 운영 중이었고, 비교적 빠르고 자세하게 사천의 참변에 대한 정보를 취합할 수 있었다.
하오문주는 사신문의 발호부터 사천에 있는 정도맹 소속의 문파가 사신문에 의하여 무너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중원 각지에서 암약하던 사신문이 발호하여 사천에 모여들었고, 청성과 점창 그리고 아미파와 사천당가까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아미파의 피해가 심각한데 아미의 장문인인 화영신니가 사신문도들에게 제압당해 포로로 잡혀갔다고 합니다.”
“사신문도들의 수가 대체 얼마나 많길래, 정도의 명문문파를 넷이나 무너뜨릴 수 있었단 말입니까?”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족히 일만은 넘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사공자청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는지 잠시 말끝을 흐렸다.
“일만이요?”
“예,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사공자청이 중원의 전도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사천은 중원의 요지입니다. 언제든지 사신문이 마음만 먹는다면 사도맹의 주요 거점으로 진격할 수 있다는 의미지요.”
“큰일이군요. 사신문은 예측할 수 없는 집단이에요. 대비책이 필요합니다.”
“예, 그래서 급하게 사도팔문의 문주님들께 소집을 요청하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때, 맹주부의 문이 벌컥 열리며 사혼교의 교주 연무정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맹주님, 비보입니다.”
“비보라니요?”
연무정이 침중한 얼굴로 주소천에게 말하였다.
“흑룡문과 철혼문 그리고 장강수로연맹에서 급하게 전갈이 왔습니다. 그런데…….”
“말씀해 보세요.”
“흑룡문주님과 철혼문주님 그리고…….”
연무정이 눈을 질끈 감고 비통한 심정을 가득 담아 말을 이었다.
“장강수로연맹의 총채주 사도진악 부맹주님께서 피살당하셨습니다.”
“……흉수는 누굽니까?”
사도진악이 죽었다는 소식에 주소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신문의 적의령주, 적무강이었습니다.”
“……그래요?”
“맹주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셔야 합니다.”
사공자청이 분노하는 주소천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사도맹은 결코 원한을 잊지 않습니다. 하나, 아직 다른 사도팔문의 문주님들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피해를 입은 문파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후우~”
주소천이 깊게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억눌렀다.
“좋아요, 다른 문주님들이 도착하신 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하지만 우리 사도맹을 건드린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