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동맹
유신이 회의를 마치고 서안의 사도맹 총단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제게 맡겨주십시오 맹주님.”
사도맹의 부맹주 사도진악이 사망한 지금, 주소천을 제외한 맹의 최고수인 이화태양궁의 궁주 초사헌이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하였다.
“적의령주 적무강이 그랬듯이 제가 사천으로 향하여 사신문의 수뇌부들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습니다.”
사신문에 이용당하며 사도맹의 내전을 일으킨 죄책감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도진악의 죽음에 분노한 초사헌이 주소천과 다른 사도팔문의 문주들에게 허락을 구했다.
“조금 진정하시지요 궁주님.”
“하오문주, 나는 흥분하지 않았소이다. 만약 나 혼자 가는 것이 걱정된다면 내 이화태양궁의 전력을 총동원하여 사천을 기습하겠소. 전면전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그깟 잔챙이들쯤이야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소.”
“어찌 제가 궁주님의 무용을 모르겠습니까. 하나…….”
“포위당할 것을 걱정하는 거라면 괜찮소. 깊게 들어갈 생각은 없으니 말이오.”
초사헌이 사공자청의 말을 자르며 다시 한번 주소천에게 몸을 돌리며 간청하였다.
“맹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이대로는 화가 나서 잠조차 잘 수 없을 지경입니다.”
“궁주님.”
주소천이 지그시 초사헌을 응시하며 말했다.
“감정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단 한마디였지만, 주소천의 뜻을 극명하게 나타낸 말이었다. 그리고 주소천 또한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 적잖이 분노하고 있었기에 초사헌도 더는 우길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초 궁주님의 말씀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닙니다.”
“그럼 남은 것은 전면전뿐인데, 그렇게 되면 피해가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지난번 사신문과 부딪혔을 때의 충격도 아직 다 가시지 않았습니다. 한창 힘을 길러야 할 이때 연달아서 대전(大戰)을 벌이는 것은 좀…….”
수틀리면 칼질부터 하고 보는 녹림도의 수장답지 않게, 녹림대왕 임병철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니오. 지금 보시오! 말이 사도팔문이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도팔문의 수장이 과연 몇이나 되는지 말이오.”
초사헌이 임병철에 말에 분노하며 반박하였다. 그의 말대로 현재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은 주소천을 제외하면 하오문주 사공자청, 녹림대왕 임병철, 이화태양궁주 초사헌, 사혼교주 연무정 넷뿐이었다. 철혼문과 흑룡문 그리고 장강수로연맹의 수장이 적무강에게 살해당했고, 지난 혼원신교와의 싸움에서 사도팔문을 배반한 광풍혈랑대주도 죽었으니 말이다.
“으음……. 그렇다고 복수를 하자니, 뒷일을 걱정해야 하고, 가만히 있자니 희생된 동지들을 볼 낯이 없구려.”
임병철이 독백처럼 중얼거렸지만, 그의 말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심경을 대변해주는 말이었다. 성질대로 하자면 사신문을 진작에 뒤집어엎었겠지만, 그랬다간 정도맹이나 마교에 어부지리를 주는 격이었으니 말이다.
“매, 맹주님!”
맹주부의 문이 열리며 맹의 내성수호대주가 급하게 들어서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슨 일이죠?”
“손님이,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이요?”
“예, 워낙 뜻밖의 인물인지라 맹주님의 허락이 필요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달려왔습니다.”
“누가 왔길래 그러시는 거죠?”
“정도무림맹의 맹주, 무룡 유신 대협께서 오셨습니다.”
“지금 뭐라 하였느냐?”
유신이라는 말에 사혼교주 연무정이 움찔하며 내성수호대주에게 되물었다.
“정도맹의 맹주께서 오셨고, 주소천 맹주님을 만나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정도맹의 지존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실례겠지요. 안으로 모시도록 하세요.”
“예.”
주소천의 허락이 떨어지자 내성수호대주가 급히 떠났고, 곧이어 유신이 나타났다.
“오랜만입니다 주소천 소저.”
“반갑습니다 도사님.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인상. 차분하면서도 바위와 같은 흔들리지 않는 의기. 그리고 추측할 수 없는 무공의 경지까지. 인중지룡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유신의 등장이었다.
‘과연, 무룡이라 불릴 만하구나.’
‘결코, 주소천 맹주님께 뒤지지 않는다.’
‘허허, 괴룡뿐만 아니라 무룡 역시 괴물이었구나.’
연무정을 제외한 나머지 사도팔문의 문주들은 유신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감탄을 숨길 수가 없었다.
“사도팔문의 문주님들과 중요한 일을 논의 중이신 것 같은데, 제가 시기를 잘못 고른듯합니다. 부디 양해 바랍니다.”
유신이 주소천과 사도팔문의 문주들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양해라니요, 예가 과하세요.”
주소천이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사님. 아니, 정도맹의 맹주께서 직접 오실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네요.”
“예. 주소천 맹주님께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제안이요?”
모두의 시선이 유신에 입에 집중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도맹의 맹주로서 사도맹의 맹주께 동맹을 제안합니다.”
“동맹이요?!”
“허허, 동맹이라고?”
“정파와 우리가 말이오?”
만약 주소천을 앞에 두고 정파와 동맹을 맺자는 말을 정도맹주가 아닌 다른 이가 와서 했다면 사도팔문의 문주들은 덮어놓고 반대부터 했을 것이다.
“정도맹주님, 하오문주 사공자청입니다.”
정도맹에 군사 제갈첨과 개방의 항룡신개가 있다면, 사도맹에는 전략과 정보를 모두 책임지는 하오문주 사공자청이 있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어떤 생각으로 이런 제안을 주셨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유신은 조금의 꾸밈도 없이 정도맹에서 의결한 내용을 그대로 설명해주었다. 그 어떠한 사욕도 계책도 없었기에 유신의 말은 그만큼 순수하였고, 설득력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하면, 정도맹주님께서는 사신문의 사태를 해결할 때까지만 임시적인 동맹을 맺자는 말씀이시지요?”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더 이상 정과 사가 피를 흘리지 않는 항구적인 동맹을 맺고 싶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까요.”
“예, 그건 어렵겠지요.”
유신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모두 들은 사공자청과 사도팔문의 문주들이었고,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주소천을 향했다. 최종결정은 주소천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사적으로 유신 도사님은 제게 생명의 은인입니다. 은인의 청은 당연히 들어드려야겠지요. 하지만 공적으로 저는 사도맹의 맹주, 사적인 감정에 휩쓸려 맹의 중대사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동맹은 받아들이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곤륜파가 서안을 통과하는 것도 허락하겠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소천이 요구한 조건은 뜻밖의 조건이었다.
“적의령주 적무강. 그자의 목을 치는 것은 우리 사도맹에서 할 것입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유신의 입장에서는 전혀 무리한 부탁이 아니었기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유신에게 사의를 표한 주소천의 시선이 사도팔문의 문주들에게 향했다.
“사도맹의 맹주로서 사도팔문의 문주님들께 명을 내립니다. 이제부터 사도맹과 정도맹은 같은 깃발 아래 뭉친 동맹입니다. 결코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예, 맹주님.”
사도팔문의 문주들이 고개를 숙이며 한 사람이 대답하듯이 주소천의 명을 받들었다.
“다시 한번 동맹을 수락해주신 맹주님과 문주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면, 저는 청해로 이동하여 곤륜파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서로에게 유익한 동맹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량수불.”
유신이 도사답게 도호를 읊으며 인사를 대신하였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사도맹을 나섰다.
“이제 남은 것은 괴룡과 마룡뿐이군요.”
유신이 떠나는 것을 확인한 하오문주 사공자청의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녹림대왕 임병철이 밑도 끝도 없는 사공자청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강호를 좌지우지할 만한 인물이라면 지금 나간 무룡과 주소천 맹주님을 제외하고 세 명이 남습니다. 바로 괴룡 사신혁과 마룡 현아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신문의 문주겠지요. 한데, 맹주님과 무룡이 손을 잡았고, 사신문주는 우리의 적이 되었으니 남은 것은 둘 뿐이지 않겠습니까.”
“크흠. 괴룡이야 걱정할 것이 없고, 설마 자존심 강한 마교가 사신문에 붙기라도 하겠소이까.”
임병철의 말에 사공자청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러길 바랄 뿐입니다.”
* * *
테레사함의 의료실.
[치료 시퀀스 종료.]빅토리노의 음성과 함께 의료실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의료기기에서 치료의 종료를 알리는 초록색의 불빛이 흘러나왔다.
[눈을 뜨셔도 좋습니다 사령관님.]의료기기 속에 가득 찬 치료액이 조금씩 빠져나갔고, 기기 속에서 눈을 감고 있던 신혁의 눈이 떠졌다.
[오픈.]의료기기의 문이 열렸고, 신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했다 토리야.”
[다행히 상처가 깊진 않았습니다. 현의신공이 사령관님의 신체에 남긴 잔여 파동에 대해 걱정이 컸습니다만 패턴 블랙에 가까웠던 에너지로 판명되어 쉽게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일단 함교로 가자.”
[Copy that.]신혁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오페라가 용신주를 시동하며 신혁의 몸을 살짝 띄웠다.
[사령관님께서 입장하십니다.]함교의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신혁이 들어왔고, 노심초사하고 있던 전조가 신혁을 맞이하였다.
“주군!”
“아아,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전조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신혁이 손을 내밀며 전조를 만류하였다. 그대로 뒀다가는 주군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를 물어달라며 오체투지라도 했을 테니 말이다.
“하, 하지만.”
“괜찮대도.”
신혁이 피식 웃으며 소파에 몸을 파묻고 전조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토리야.”
[네, 사령관님.]“현의령주와 싸우던 중에 발생한 S4 위성의 오작동 원인은 밝혀냈나?”
[루시아가 오페라로부터 전투데이터를 인계받아서 분석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아직?”
신혁으로서도 빅토리노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최첨단 하이테크놀로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테레사함이 컴퓨터들이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으니 말이다.
[예, 지금도 루시아는 S4 위성의 오작동 원인을 찾기 위해 작업 중입니다.]빅토리노의 보고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신혁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루시아가 아직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없는 일이란 건데…….’
“루시아.”
[네, 오라버니.]“잠시 작업을 중단하고 나와봐.”
[네.]신혁의 명령에 루시아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최첨단 AI답게 홀로그램으로 드러난 그녀의 표정은 미안함과 곤란함이 가득했다.
[죄송해요 오라버니, 아직까지 S4 위성이 정지한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명확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말해보렴.”
신혁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루시아를 다독였다.
[확실하진 않지만…….]루시아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괜찮아,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지금까지 정말 잘해주었다. 판단은 내 몫이니 너는 분석한 정보만을 보고해주면 돼.”
[하지만…….]“괜찮대도. 너는 최선을 다했잖아. 그럼 된 거야. 네가 모르는 것은 세상 누구도 모르는 거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정보가 부족했을 뿐이야. 걱정 말고 이야기해봐.”
[네, 오라버니.]신혁의 위로에 그제서야 루시아가 원래의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단 지난번에 토리 씨가 말한 두 가지 가설 중 하나였던 현천포의 능력이 아닌 것은 밝혀졌어요. 지금까지의 십대기보들과 을 분석해본 결과 추가적인 특징이 발견된 적은 없었으니까요.]“그럼 두 번째 가설이었던…….”
[네 맞아요. 코드네임 : 무명, 현의령주의 패턴 블랙의 영향으로 보여요. 하지만 수집된 데이터가 너무 적어 확실한 결과를 도출해내지는 못할 것 같아요.]“그렇다면 시스템 업데이트를 했어도 현의령주와 다시 싸웠을 때 또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네.”
[맞아요. 만약 보완한 부분과 다른 방법으로 S4 위성이 정지된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을지도 몰라요.]“S4 위성은 내 전투력을 보조하는 수단이면서도, 아스트랄 에너지를 완벽하게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안전장치이기도 하지.”
신혁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함교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빅토리노.”
[예, 사령관님.]“코드네임 : 무명을 특별 적성 개체로 설정하도록.”
[그 말씀은?]“다시 한번 현의령주 무명과 전투가 벌어진다면 S4 위성을 해제하고 아스트랄 에너지를 100% 운용하여 적을 말살한다.”
[하지만 함선 운영 지침상 위성의 도움 없이 전투를 개시하는 건…….]“그렇기 때문에 현의령주 무명을 특별 적성 개체로 지정한 거야. 만에 하나 또다시 무명과 전투 중에 S4 위성이 오작동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으니까. 그것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전력으로 적을 말살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닌가?”
[사령관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좋아. 추후 S4 위성에 정지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질 때까지만 특별 적성 개체로 지정하지.”
[알겠습니다 사령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