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삼도연맹 (1)
기계처럼 망설임 없는 동작으로 초사헌의 숨통을 끊으려던 현의령주 무명이 몸을 돌려 주소천의 공격을 막았다.
“이런, 이런. 역시 요백진으로는 무리였나.”
무명의 공력이 집중된 무형심검이 더욱 강렬한 검은빛으로 물들었고, 놀랍게도 주소천의 여의봉을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사신문에 합류한 중소방파들은 거의 전멸했고, 정도맹이 주살하기로 다짐한 무수각과 야율기의 목도 취했으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어떻겠나 사도맹주 주소천.”
“뭐라구요?”
“아니면 끝을 볼 텐가?
현의령주의 말대로 정도맹과 사도맹의 연합이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 대가로 수많은 무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초사헌과 명검진인을 앞세워 적의 예봉을 꺾었다지만 혼원여의신공으로 강해진 중소방파 무인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다.
“으음…….”
주소천이 망설였다. 전장을 정리하고 부상 당한 무사들을 수습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이는 그녀 혼자 결정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천혼강림술이 지속되는 동안 현의령주의 힘을 가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제갈첨이 눈썹이 휘날리도록 경공을 발휘하며 주소천에게 다가왔다.
“사도맹주님.”
제갈첨이 곧바로 전음으로 주소천에게 말했다.
‘지금은 후퇴해야 합니다. 적의문과 청의문이라 알려진 사신문의 최정예 무사들이 남은 병력을 이끌고 전장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갈첨이 주소천과 현의령주 무명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운 좋게 격전에서 승리한다 하여도 정도와 사도는 재기할 수 없을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아직까지 사신문의 숨겨진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또한 마교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알겠어요, 철수하도록 해요.’
정도맹주인 유신은 적무강을 상대하기 위해 나설 때, 뒷일을 제갈첨에게 맡겼다. 그렇다면 제갈첨의 말은 정도맹을 대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주소천은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좋아요, 지금은 철수하도록 하죠.”
“현명한 선택이야 주소천. 다음에 보도록 하지.”
주소천의 결정에 무명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주소천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반드시…….”
꾸욱.
주소천이 주먹을 꾹 쥐고서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초 궁주님.”
초사헌에게 다가간 주소천이 품속에서 부적을 한 장 꺼내어 불태웠고, 주소천의 손에 맑은 기운이 어렸다.
“허, 허억……. 맹주님 죄송…….”
주소천의 응급처치로 정신을 차린 초사헌이 참담한 눈빛으로 주소천에게 고개를 숙였다. 양팔이 부러지고 내장이 보일 정도로 가슴이 길게 갈라진 처참한 모습의 초사헌이었다.
“아무 말씀 마세요. 저는 궁주님이 살아계신 것만으로 하늘에 감사해요.”
주소천이 초사헌의 마혈을 짚어 고통을 덜어주었다. 그 사이 제갈첨이 무사들에게 명을 내려 현의령주 무명과 사도맹주 주소천이 싸움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을 알렸고, 유신과 적무강 그리고 요백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명…….”
현의령주를 본 유신의 눈빛이 활활 불타올랐다. 당장이라도 의천검을 뽑아 들 것 같은 모습에 주소천이 조심스럽게 유신의 손목을 잡으며 만류하였다.
“도사님. 지금은 아니에요.”
“후우~ 무량수불.”
도호를 외우며 마음을 다스린 유신이 참담한 심정을 억누르고 죽은 명검진인의 시체를 수습했다.
“……퇴각하겠습니다.”
유신이 나직한 목소리로 제갈첨에게 말했고, 엄청난 숫자의 무인들이 죽어간 사천의 대전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승자도 패자도 명확하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사신문의 승리였다. 정도맹과 사도맹은 주력이 되는 무사들의 사상자가 상당했으며 무엇보다 명검진인이라는 초절정고수마저 잃었지만, 사신문은 새롭게 합류한 중소방파의 무사들만 소모됐을 뿐, 그 주력은 건재했으니 말이다.
“명검사제에에!”
화산의 장문인 명진진인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퇴각하는 정도맹과 사도맹 무사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였다.
* * *
섬서의 화산파.
정도맹과 사도맹의 무사들이 퇴각한 곳은 전장에서 가까운 섬서지역이었다. 사도맹도 정도맹처럼 주력을 한곳에 집중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섬서는 사도맹의 본진이 있는 서안을 거쳐 가는 곳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명검진인의 장례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하여 정과 사의 수뇌들이 화산파에 집결하였다.
“빈도의 사제를 위해 강호의 명숙들께서 이렇게 자리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화산의 장문인 명진진인이 며칠 사이에 십 년은 늙은 것 같은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강호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명검진인의 마지막을 조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장례기간임에도 이렇게 강호의 앞날을 의논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신 화산의 배려를 잊지 않겠습니다.”
주소천이 사도맹을 대표하여 명진진인에게 말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사도맹주님. 화산은 정도맹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하니, 빈도는 이만 사제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습니다.”
“무량수불, 그렇게 하십시오 장문인.”
유신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명진진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명진진인이 세상을 다 잃은 허망한 표정으로 화산의 접객당을 떠났고, 모두가 명진진인의 슬픔을 헤아리며 그를 배웅하였다.
“아미타불, 안타까운 일입니다. 명검진인께서 그렇게 가실 줄이야…….”
먼저 입을 연 것은 소림의 공오대사였고, 제갈첨이 침중한 어조로 공오대사의 말을 받으며 회의를 소집한 이유를 언급했다.
“그렇습니다. 정도맹에 있어서 뼈 아픈 손실이지요. 그러나 명검진인 뿐만이 아니라 정과 사의 모든 문파에서 수많은 동량들이 피를 뿌렸습니다. 하니, 우리는 슬픔을 딛고 앞일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정과사의 수뇌부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정파의 경우 유신을 포함하여 구파일방을 대표한 공오대사와 오대세가를 대표한 제갈첨, 그리고 정보를 책임지는 항룡신개 네 명이 참석하였고, 나머지 문파의 문주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사천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한 피해를 집계하고 수습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사파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기에 주소천은 하오문주 사공자청만을 대동하고 회의에 참석하였다.
“군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사신문의 이름 아래 모인 중소방파의 구할 이상을 소탕하였지만, 너무도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초사헌 궁주님께서는 족히 몇 년은 정양하셔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으셨으며 사도맹 전체전력의 사할이 부서졌습니다.”
“정도맹 또한 피해가 막심합니다. 정도맹 전력의 삼할이 무너졌고, 무엇보다 화경의 고수인 명검진인께서 돌아가셨으니까요.”
제갈첨과 사공자청의 말에 모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느 정도 피해를 봤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각설하고, 제가 하오문주님과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방법을 모색한 결과,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제갈군사?”
개방의 항룡신개가 눈을 빛내며 제갈첨에게 물었고, 제갈첨이 잠시 망설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새로운 세력과 새로운 고수. 그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세력이라면 남은 곳은…… 마교겠군요. 새로운 고수라면……?”
“괴룡, 사신혁. 어떻게든 그를 끌어 들어야 합니다.”
“사신혁 시주를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대사.”
“물론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떻게 그를 설득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까지 괴룡의 행보를 보자면 그의 능력에 대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다만 문제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를 설득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유신이 신혁의 의형제라고는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으니 말이다.
제갈첨이 민망한 얼굴로 유신과 주소천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부끄럽습니다만, 두 분 맹주님들께서 어떻게든 괴룡을 설득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량수불…….”
유신이 도호를 읊었고, 주소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괴룡과 마교를 어떻게 끌어들여야 할지는 둘째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았습니다.”
사공자청이 중원의 지도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벌어진 사천의 대전으로 사신문의 명성이 천하에 퍼졌습니다. 이로 인해서 중원 각지에 있는 중소방파들이 앞다투어 사신문에 합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도맹과 정도맹의 전력이 섬서에 집중되어있기에 서안과 섬서 지역은 다행히 그런 움직임이 없지만, 비어있는 사도맹과 정도맹의 거점이 되는 곳에서는 중소방파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 거지가 방도들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중과부적인 상황입니다. 더는 손을 쓸 도리가 없어서 제갈군사님과 상의 끝에 방도들을 철수시켰고, 섬서로 집합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항룡신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십만 명이 넘는 방도수를 자랑하는 개방이라지만 방도들의 대부분은 무공이 보잘것없었으니 개방에서도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잘하셨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사공자청이 항룡신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아직까지 사신문에 합류한 중소방파들은 수만 많았지 걱정할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두 달의 시간만 지나더라도 혼원여의신공을 바탕으로 그들의 무위가 급격하게 강해질 테고, 그렇게 되면 도저히 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으음…….”
“아미타불…….”
사공자청의 말에 모두가 침음을 흘렸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고, 참혹한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던 마교 또한 결코 우리의 우군이 아닙니다. 최악의 경우 마교가 사신문과 손이라도 잡는다면 중원은 끝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그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아미타불.”
공오대사가 염주를 굴리던 것을 멈추고, 불호를 외우며 침중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신혁 시주를 어떻게 끌어들일까를 고민할 때가 아니라, 이 상황에 사신혁 시주마저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정말로 정도맹과 사도맹은 화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제가 금미산으로 가겠습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아닙니다. 사도맹주께서는 여기 남으셔야 합니다.”
유신이 빙긋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언제 적들이 도발해 올지 모르니 제가 없는 동안 사도맹주님께서 섬서를 지켜주십시오. 저는 어떻게든 신혁 형님을 설득해보겠습니다.”
“아, 알겠어요. 섬서는 걱정 마시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예, 그럼.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제갈군사님.”
“맹주님! 이렇게 갑작스럽게…….”
유신에게 신혁의 설득을 부탁한 제갈첨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유신이 움직일 줄은 몰랐기에 민망한 얼굴로 유신을 불렀다.
“아닙니다. 시간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데 지체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제가 신혁 형님을 모시고 올 때까지 최대한 맹을 정비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제갈군사님.”
“맹주님의 명을 받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