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삼도연맹 (5)
“구면이라……. 중원에서 나와 마주친 놈 중 살아남은 건 셋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현아진의 말대로 그녀와 손을 섞고 살아남은 사람은 신혁과 주소천 그리고 유신뿐이었다.
“무룡 유신. 지금은 정도맹주이자, 제 의제가 된 녀석이 와있지요. 그러니 제가 말씀드린 대로 마교에서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현아진이 신혁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님.”
우아하게 공중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딛는 현아진에게 진용제가 다가와 물었다.
“저희는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잠시 대기하도록. 괴룡 말고도 또 한 명의 손님이 온다고 하니 말이야.”
진용제의 시선이 현아진과 마주한 신혁에게 향했다.
“그런 눈빛으로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부를 참이었으니까요.”
“허튼수작은 아니겠지?”
신혁을 바라보는 진용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으나.
“그럴 리가요. 형님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뭐, 뭐야?!”
돌연히 들려온 맑은 목소리에 진용제가 대경하여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무리 신혁에게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다지만, 그의 감각을 속여낼 정도의 고수는 중원에 그리 많지 않았으니…….
만약 눈앞의 괴룡이 정체불명의 고수와 합세하여 자신들을 공격하려 든다면, 그 피해는 쉬이 감당하기 어려울 터.
이는 둘을 모두 잡아낸다고 하더라도, 적이 많은 마교로선 기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무량수불, 정도맹의 유신이 마교의 교주를 뵙습니다.”
“무룡 유신!”
진용제가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유신을 겨눴다.
대기하라는 현아진의 명령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공포와 불안감의 발로였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검을 거둬주십시오.”
“으음…….”
진용제의 위협 속에서도 유신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여유를 잃지 않았고, 그것만으로도 진용제는 유신의 경지가 자신을 아득히 초월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을 거두도록.”
“존명.”
진용제를 제지한 현아진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정말 몰라볼 정도로 강해졌군.”
“과찬입니다. 교주의 무위에 비하자면 손색이 있을 테지요.”
“아아, 됐다. 인사치레는 이 정도로 하고…. 바론 본론으로 넘어가지.”
“…….”
“사신문에 맞서 힘을 합치는 것에 대한 대가로, 괴룡은 자신이 보유한 십대기보 전부와 청해를 넘기겠다고 말했다.”
현아진의 말에 진용제의 검미가 꿈틀거렸고, 유신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부교주?”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 허나 언제까지 정사연합과 본교가 동맹을 지속할지는 신중히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그래? 그럼 네가 원하는 기간은?”
“사신문을 멸할 때까지만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교주님? 물론 본교가 참전하는 대가로 십대기보와 청해는 선금으로 받아야겠지요”
“부교주가 그렇다는군, 받아들일 수 있겠나?”
현아진의 말에는 은연중 이 협상의 실권을 진용제에게 위임한다는 뜻이 내포되어있었다.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은 수정하고 싶군요.”
신혁이 별말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지?”
“동맹을 맺는다는 건 서로를 신뢰하고 하나가 되어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공통의 적을 해치운 순간 곧장 다른 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찌 상호 간에 신뢰가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크, 크흠.”
내심, 사신문이 멸망하는 순간 상황을 봐서 정도맹이나 사도맹의 뒤통수를 칠 생각까지 않고 있던 진용제가 어색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연발했다.
“흠흠, 그럼 사신문의 멸문 후 1년까지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으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정도맹주께서도 동의하시겠습니까?”
진용제의 질문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겠습니다. 사도맹주님께서도 제게 전권을 위임하셨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어차피 지금 마교를 적으로 돌리면 청해 뿐만이 아니라 중원 전체가 난리가 날 테니, 청해를 넘기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추후 상황이 된다면 언제든지 다시 탈환할 수 있는 땅이기도 했고, 정도맹의 곤륜파와 사도맹의 철혼문을 설득하는 게 사신문과 마교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좋습니다. 그 정도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군요.”
진용제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적대하던 정도와 사도 그리고 마도를 추구하는 마교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신혁.”
“말씀하시죠 교주님.”
“본녀는 약속을 중요시한다. 부디 날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명심하죠.”
신혁이 씨익 미소지으며 유신과 현아진에게 말을 이었다.
“구체적인 조약의 내용은 조율이 끝나는 순간 제게도 알려주십시오. 이 자리에 없는 사도맹주까지, 넷이서 한 번 만나 얘길 하고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지.”
“예, 형님.”
“오 일 후에 청해의 금미산에서 다시 만나는 건 어떠십니까.”
“알겠습니다. 주소천 소저와 함께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도록 하지.”
“유익한 거래였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신혁과 유신이 몸을 돌려 마교를 빠져나갔다.
“유신.”
신혁과 유신의 신형이 바람처럼 공간을 가르며 청해의 접경에 접어들 때, 신혁이 입을 열었다.
“예, 형님.”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자. 잠시 들를 곳이 있다.”
“바로 금미산으로 가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신혁이 어디로 갈지, 가서 무엇을 할지가 무척 궁금한 유신이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신혁이 말을 하지 않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리해야 할 게 조금 남아있다. 그럼……. 5일 후에 만나도록 하자.”
“예.”
* * *
주원장에게 멸망한 원의 잔당들이 숨어있는 대초원. 내몽고지역의 소도시 조그마한 소도시 림서에 신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히 환서 객잔을 찾으라 했던 것 같은데…….”
신혁의 CEC에 천마교의 소교주 위지천과의 마지막 대화가 표시되었다.
-내몽고지역에 림서라는 곳이 있습니다. 림서의 중앙에는 환서 객잔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암연백 부대주와 마안천이대의 거점으로 사용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중원의 소식을 끊고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삐삐삐삐~
알림음과 함께 신혁의 CEC에 상세한 지도가 나타났고, 빅토리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신혁 사령관님.]“그래, 토리야.”
[환서 객잔을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이동하시겠습니까?]“그래.”
[알겠습니다. 경로를 표시하겠습니다.]CEC의 표시된 경로대로 걸음을 옮긴 신혁이 도착한 것은 오아시스와 푸른 녹주들이 가득한 평원의 초입.
그곳에 도착한 신혁의 눈에 나무로 대충 지어 만든 것 같은 자그마한 이 층의 전각이 들어왔다.
환서 객잔.
조그마한 간판이 달린 허름한 객잔의 문이 열리며, 깊게 가라앉은 눈빛이 인상적인 정갈한 옷차림의 남자가 신혁을 맞이하였다.
행색으로 미루어봤을 때, 객잔의 주인이거나 최소한 총관 정도는 돼 보이는 남자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헌데, 신혁과 초면임이 분명한 남자가 난데없이 감격한 얼굴로 신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음?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닙니다. 데이터상에는 없는 얼굴입니다.]빅토리노의 다변에 신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남자에게 물었다.
“저를 아십니까?”
“예, 어찌 대협을 몰라뵐 수 있겠습니까?”
“하하, 이것 참. 저를 아시는 거 같긴 한데, 실례지만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기억 못 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항상 복면을 쓴 제 모습만 보셨으니까요.”
신혁을 맞이한 객잔의 주인이 옷소매로 얼굴을 반쯤 가리며 매서운 눈매를 강조하고 나서야, 그 익숙한 눈매에 신혁이 반갑게 미소지었다.
“이런, 암연백 분타주님이셨군요.”
능동방어 모드로 대기하던 오페라가 그제야 암연백의 사이오닉 에너지를 확인하며 신혁에게 보고하였다.
‘적성 사이소닉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오페라가 반응하지 않았구나.’
신혁이 약간의 미안함과 반가움을 가득 담아 암연백의 손을 잡았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하하, 대협의 도움으로 마교를 탈출한 이후, 이곳에서 소교주님과 교주님을 모시며 하루하루 힘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다행이군요.”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드시지요. 왠지 모르게 오늘은 객잔에 나와보고 싶었는데 대협께서 방문하실 걸 알고 그랬나 봅니다.”
암연백이 신혁을 객잔으로 이끌고 이 층의 가장 좋은 자리를 내주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교주님과 소교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주님을 뵈러 왔는데 잘 됐군요.”
“예,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동안……. 변변치 않지만, 차라도 한잔하시지요.”
암연백은 점소이가 들고 온 찻잔을 받아 들고서 조심스럽게 신혁의 앞에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예, 곧 모셔오겠습니다.”
암연백이 준비해준 찻잔의 차가 비워질 때쯤, 위지현오와 위지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협, 교주님을 모셔왔습니다.”
다시 나타난 암연백이 신혁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군. 괴룡.”
“예, 오랜만입니다. 위지현오 교주님.”
“은공을 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소교주님.”
“예, 이곳은 너무 평화로워서 탈입니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고 위지현오와 위지천 부자가 신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 코드네임: 위지천의 사이오닉 파동에 변화가 생겼습니다.]‘호오? 그래?’
[코드네임: 위지천의 사이오닉 파동에서 아스트랄 에너지가 감지되었습니다. 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경지, 즉 화경에 접어든 것으로 확인됩니다.]신혁이 기억하는 위지천은 유신과 주소천 만큼은 아니었어도, 기재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없던 이였으니.
마교에서 쫓겨난 설움과 분노를 양분 삼아 절치부심하며 수련에 매진한 결과, 절정의 극에서 화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어찌 지내셨습니까?”
“보다시피 이곳에서 은인자중하고 있었네. 마교에서 현아진에게 패한 우리가 할 일이 뭐가 있겠나. 무공을 갈고 닦아 다시 마교를 탈환할 때만을 노리고 있었지. 고생은 좀 했지만, 수확이 없던 것은 아니야.”
“그렇군요. 아주 큰 수확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위지천 소교주가 화경의 경지에 올라섰으니 말입니다.”
신혁이 밝게 웃으며 위지현오의 말을 받았다.
“클클, 역시 자네 눈을 속일 수는 없구만.”
위지현오가 길고 탐스러운 턱수염을 가다듬으며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비록 우리가 중원을 떠나 있었지만 암연백과 마안천이대를 통해 어느 정도는 중원의 일을 파악하고 있었다네. 자네가 우릴 찾아온 것은 혹시 사신문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신혁이 단도직입적으로 위지현오를 찾은 목적을 밝혔다.
“자네는 언제나 솔직 담백하군.”
“부탁하는 입장에서 속일 게 뭐가 있겠습니까.”
“부탁이라……?”
“예, 사신문을 멸하는데 한 손 거들어 주십시오.”
“호오? 천하의 괴룡이 도움을 요청할 정도였단 말인가?”
위지현오가 조금은 놀란 얼굴로 신혁에게 물었다.
그가 아는 신혁은 누구에게든 아쉬운 소리를 할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이리 찾아와 부탁한다는 것은, 사신문의 저력이 범상치 않다는 말과 같았으니 말이다.
“당장에 질 것 같진 않지만, 교주님과 소교주님. 그리고 천마진천대의 무력을 제가 알고 있으니……. 보험은 들어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크크크큭, 그래 맞는 말이지.”
“다만 부탁을 드리기에 앞서 밝힐 것이 있습니다.”
“뭔가?”
신혁이 살짝 굳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정도맹과 사도맹이 연합을 맺고 사신문과 사천에서 결전을 벌인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이네. 그 과정에 화산제일검이 전사하고, 이화태양궁주 역시 치명상을 입어 족히 몇 년은 정양해야 한다는 소식까진 들려오더군.”
“자세히 알고 계시는군요.”
“과찬일세. 암연백이 일을 잘한 게지.”
“예, 하면…….”
신혁이 진지한 눈빛으로 위지현오에게 말했다.
“사신문을 멸하기 위해 정도맹과 사도맹에 이어 마교까지 동맹을 맺은 것은 알고 계십니까?”
신혁의 말에 이건 정말 뜻밖이었는지 위지현오를 포함한 모두의 낯빛이 싸늘하게 굳었다.
“마교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