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결전 전야
“지존께서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의령주님.”
적무강과 요백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우리는 그저 따를 뿐. 그거면 된 거다.”
지금의 무명은 광신도와 같았다.
물론, 야차 가면으로 가린 얼굴처럼 알 수 없는 속내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감정 탓에 광신도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섭긴 했지만 말이다.
“현의령주님.”
“말하라.”
“압도적인 승리라 하신다면 제물을 얼마든지 희생시켜도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요백진의 물음에 무명의 고개가 살짝 움직였다.
“그래. 중요한 것은 사신혁을 확보하는 거니까.”
“사신혁을 말씀이십니까……?”
그들에게 대항하는 정사연합의 세력을 없애는 것이 먼저가 아니냐는 의문과 함께, 요백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무룡과 주룡 그리고 마룡도 상관없다. 지존께서 원하시는 건 괴룡 사신혁 뿐이다.”
“지존께서 원하시는 것이 사신혁의 목입니까?”
이번에는 적무강이 조심스럽게 무명에게 물었다.
“아니, 그를 생포해야 한다. 절대 죽여서는 안 돼.”
“현의령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괴룡의 무위를 생각해보면 생포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다?”
“그렇습니다. 그가 혈혈단신이라면 어떻게 시도해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 그의 곁에는 주룡과 무룡 그리고 정파와 사파의 최정예 무인들이 모여있습니다.”
“확인된 정보에 따르면 무룡과 주룡이 사신혁을 만나기 위해 떠났다고 합니다. 아마 총력전을 준비할 생각인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죽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제압하여 생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제가 본 사신혁은 무인이되 무인이 아니었습니다. 전세가 불리하다면 망설임 없이 퇴각하여 훗날을 도모할 인물입니다. 설령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신혁만을 노린 뒤 그를 생포한다 해도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주룡과 무룡이 가만있을 리도 없거니와, 황제 또한 괴룡과 친분이 두터우니. 황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자칫하면 백만의 황군과 금의제존위군까지 나설 수도 있는 일입니다.”
요백진과 적무강이 무명의 의견에 반대하며 난색을 표했다.
그들이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사신문이 혼원여의신공을 바탕으로 하여 놀라운 속도로 고수를 키워낼 수 있었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사신혁 하나만을 노리고 이번 결전에서 대다수의 전력을 희생한다면 남은 정사연합과 황궁을 감당하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었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다시금 세력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했으니까.
“사신혁을 상대하는 건 나다.”
“현의령주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적무강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그래, 너는 요백진과 함께 주룡과 무룡을 막도록. 굳이 정면 대결을 할 필요는 없다. 최대한 제물들을 이용하여 시간을 끌어라. 원한다면 집혼석의 힘을 흡수해도 좋다.”
“집혼석을 말씀이십니까?”
“지존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그리하도록. 지난번에 죽은 백의령주 사무은을 통해 그 효능은 충분히 검증됐으니 부작용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집혼석 한 개에는 혼원여의신공을 수련한 제물 천명 분량의 영력이 모여있었는데.
그 힘은 지난 사도맹의 내전 당시 사무은이 한차례 보여준 바 있었다.
혼원여의신공을 익힌 낭인 천명의 힘을 흡수하며 사신혁을 상대로 엄청난 무위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비록 사무은이 사신혁의 손에 생을 마감하였다지만, 그가 자랑하는 어주술을 파훼하고 사신혁의 힘을 최대치까지 끌어내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으니 이는 두 령주에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집혼석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요백진이 들뜬 목소리로 현의령주의 말에 답했다.
“반드시 사신혁을 생포해야 할 거야. 사신혁을 포획하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너희들의 무공도 완전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이번에는 적무강이 달뜬 얼굴로 현의령주에게 물었다.
“물론, 지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기대해도 좋겠지.”
* * *
서안, 모산파를 대대적으로 증축한 사도맹의 본진.
“오셨습니까? 연맹주님.”
정문에서 사신혁을 기다리던 제갈첨은 사신혁과 한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반색하며 신혁을 맞이하였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예, 맹주전에 모두 모여있습니다. 한데 옆에 계신 분은……?”
사신혁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자를 보며 제갈첨이 물었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고수로 보였지만 무엇보다 신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만으로도 제갈첨의 호기심을 자아내기는 충분했다.
“인사하시지요. 천마교의 위지천 소교주님입니다. 위지현오 교주님을 대신하여 저와 함께 왔습니다.”
흑월마검(黑月魔劍) 위지천.
절대사룡이라 불리는 이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강호의 후기지수 중에서 가장 강한 인물로 평가되던 기린아였다.
“정도맹의 군사 제갈첨입니다.”
“위지천입니다.”
“과연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나 봅니다. 화경의 경지에 드신 위지천 공자를 두고 감히 후기지수라고 칭했으니 말입니다.”
제갈첨은 위지천의 무공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오대세가니 구파일방이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었구나. 만약 정도맹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미래는 사도의 주소천과 마교의 잠룡 위지천의 천하가 되었을 터….’
“과찬입니다.”
제갈첨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위지천이 짧게 제갈첨의 말을 받았다.
“모시겠습니다. 연맹주님.”
“헌데…. 이렇게 군사께서 직접 마중 나오신 걸 보면, 제게 전할 말이 있으신 게 아니었습니까?”
신혁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는 제갈첨에게 물었다.
“허허, 사실 그렇습니다. 현재 상황을 연맹주님께 간략하게나마 먼저 보고해두기 위해 제가 직접 맹주님을 마중하였지요.”
“주룡과 무룡이라면 잘 준비했을 거 같긴 합니다만……?”
“예, 정도맹과 사도맹은 모든 준비를 끝마쳤고, 마교의 병력 또한 은밀하게 서안에 합류하였습니다. 하나, 정보란 주머니 속의 공기와 같습니다. 곧 사신문에서도 마교의 합류 소식을 알아챌 테니 대비를 해야겠지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사신문도 천마교의 고수들까지 합류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죠. 까마귀들 속에 섞여 있는 매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신혁의 적절한 비유에 제갈첨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마기를 흘리는 마교의 고수들로 인하여 천마교의 고수들은 자연스럽게 마교도들 사이에서 그 존재를 숨길 수 있었다.
“이제 거의 다 도착했군요. 자, 얼른 들어가시죠. 정도맹주님과 사도맹주님 그리고 마교에서는 현아진 교주 대신 진용제 부교주가 참석하여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 * *
“도착했습니다.”
거대한 맹주부의 정문이 열리고, 각 세력을 대표하는 수뇌부들 외에도 정보를 책임지는 사공자청이 신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시작해 볼까요?”
천마교의 소교주 위지천을 일행들에게 소개하며 신혁이 자리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예, 연맹주님.”
제갈첨이 한쪽 벽면에 걸려있던 중원전도를 가져와 맹주부의 중앙 탁상에 펼쳤고, 재빨리 사공자청이 사신문의 세력과 삼도연맹의 세력들을 지도 위에 표시하였다.
“기본적인 전략은 총력전의 형태를 띠지만 적의 수괴들을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참수하여 전쟁을 종결시키려 합니다.”
제갈첨이 사공자청과 머리를 맞대고 구상한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신문에 새롭게 흡수된 중소방파의 무인들은 오만에 달합니다. 정확한 무공수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얼마 전에 정도맹을 뒤흔든 태천문과 비슷한 정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즉, 양적인 면에서는 사신문이 월등하다 할 것입니다. 삼류 무사부터 절정고수의 숫자 모두 저들이 우리를 압도할 테니까요.”
제갈첨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저들을 앞서는 비대칭 전력이 있습니다.”
“비대칭 전력이라…….”
마교의 부교주 진용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나와 위지천, 그리고 위지현오를 말하는 거로군. 본교의 교주님은 물론이거니와 여기 있는 연맹주와 무룡 그리고 주룡마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더욱이 위지현오뿐 아니라 위지천 역시 화경에 도달하였으니….”
진용제의 시선이 위지천을 향했다.
“과연, 마도 제일의 후기지수 위지천다워. 이렇게 천마교와 본교가 갈라졌다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진용제 부교주.”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게 소교주. 개인적인 원한으로 거사를 망치는 일 따위는 없을 테니까.”
“알겠소. 약속대로 우리의 원한은 사신문을 멸한 뒤에 해결하기로 합시다.”
“즐겁게 기다리겠네.”
과연 진용제는 노련했다. 위지천을 도발하는 듯하면서도 사신문을 상대하는 동안에는 천마교와 마교가 반목하지 않을 것에 대해 다시금 확정 지었으니, 이는 이후 현아진이 위지현오와의 생사결에서 반드시 승리하리라 의심치 않기에 나오는 여유였다.
“본교는 교주님의 뜻을 받들어 삼도연맹주의 명을 따를 것이니. 부담 없이 생각한 전략을 말씀해보시오. 제갈 군사.”
“예. 현재까지 밝혀진 사신문의 최대전력은 세 명의 령주와 그들의 직속 무력대입니다. 특히 현의령주 무명은 그 무위를 추측조차 어려우니 각별히 주의해야겠지요. 게다가……”
“게다가?”
제갈첨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사신문의 문주, 지존이라 불리는 자는 아직 그 정체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최소 현의령주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전략을 구상했습니다.”
“으음……”
“해서 연맹주님을 비롯하여 정사연합의 맹주님들 그리고 귀교의 현아진 교주님은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그분들께서 움직일 때는 사신문의 령주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다음이어야만 하니까요.”
“그렇다면 부족한 무사들의 숫자는 본좌와 위지현오 교주, 그리고 위지천이 채워야 한다는 말이구려.”
“그렇습니다. 다만, 초절정고수라는 귀중한 전력을 처음부터 소모시킬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마교와 천마교의 무인들을 최전방에 세울 줄 알았던 진용제가 제갈첨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정사연합의 무사들이 앞장서겠습니다.”
“허허실실이로군.”
“그렇습니다. 총력전이 벌어진 이상 피해는 당연히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연스럽게 적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인 뒤에 압도적인 전력으로 단숨에 괴멸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순서는?”
“적의 허를 찔러야겠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제갈첨이 지도 위에 표시된 깃발들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처음 정사연합의 고수들이 사신문과 부딪힌다면 수적인 열세로 인해 밀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때, 이 지점에 미리 매복하고 있던 마교의 고수들이 정사연합의 창이 되어 반격을 개시하고 후퇴하던 정사연합의 무사들은 학의 날개처럼 펼치며 적을 포위, 섬멸코자 합니다.”
“그렇다면 사신문쪽에서도 증원부대를 보낼 텐데.”
“그렇겠지요. 그때 다시 한번 뒤로 물러서시면 됩니다. 굳이 결사 항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갈첨의 눈빛이 반짝였다. 과연 대대로 정도맹의 군사를 역임해온 제갈세가의 가주다운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정사연합과 마교의 고수들은 이 지점까지 후퇴합니다.”
제갈첨의 부채가 또 다른 매복지점을 짚었다.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원래 대로라면 위지현오 교주님께 많은 부담을 드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위지천 소교주님 마저 초절정의 경지를 돌파하셨기에….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확신이라…….”
진용제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지금까지 제갈첨이 설명한 작전대로라면 마교는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실리를 챙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위지현오 교주님과 위지천 소교주님이 천마교의 최정예 무사들인 천마진천대와 진마천위대를 이끌고 교전에 임하신다면. 그 순간부터 전세는 뒤집어질 겁니다. 이후 후퇴한 마교와 정사연합의 고수들이 방원진을 형성하여 쪼개진 사신문도들을 섬멸한다면 아무리 사신문의 무인이 많다 한들 처음의 교전에서 저희가 반드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을 겁니다.”
제갈첨의 책략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표시하였지만, 오히려 제갈첨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다만 이다음이 문제인데…. 이 상황까지 몰린다면 사신문은 령주들이 나설 수밖에 없을 터, 어쩌면 지존이란자도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전술은 삼도연맹의 절대자 네 분이 사신문의 수뇌들을 제압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을 겸하고 있기에. 만에 하나 연맹주님을 비롯한 다른 사룡분들이 패한다면…….”
제갈첨이 불안한 얼굴로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날부로 강호는 끝을 맞이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