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8
28화. 곤륜의 도사들
“비천검(砒天劍) 태성도장!”
미종의 외침에 흰색의 도포를 걸친 준수한 청년이 포권을 하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괴룡 시주가 어느 분이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일견 예의를 갖춰 물어보는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미종과 병사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현사님을 왜 찾으시는 겁니까?”
“관이 아닌, 강호의 일입니다. 무량수불.”
미종의 눈꼬리가 치켜져 올라갔다. 아무리 관과 무림이 불가침의 관계라도 최소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도호와 함께 정중히 미종에게 포권하는 태성도장이었지만, 태성의 말은 현의 병졸 따위는 감히 곤륜의 행사에 끼어들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런 방자한…….’
속이 부글부글 끓는 미종이었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척 봐도 곤륜의 중진으로 보이는 도사들이었고, 무엇보다 비천검의 뒤에 있는 검은 도포의 중년 도사가 무척이나 위험하게 느껴졌다.
“청동현에 괴룡이라는 별호가 더 있지 않다면, 제가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미종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신혁이 병사들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
태성도장을 비롯한 곤륜의 도사들은 누구도 신혁의 기세를 잡아내지 못했다.
정말 이자가 청해색마와 흡혈마군, 그리고 파적도 청호를 제압한 자가 맞나 싶었다.
‘어떤 무공을 익혔길래 전혀 기세를 읽을 수가 없단 말인가?’
태성도장뿐만 아니라 유양도장의 생각도 깊어졌다.
그들의 목적은 신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력권에 침입한 동호채 산적들의 신병을 인도받는 것이었지만, 혹여나 괴룡이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해 들은 바로는 절정의 극에 달한 고수로 추정되건만…….’
상대를 만나 제압하거나, 실력 행사를 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상대의 무력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병사들에게 다가가도 괴룡의 기세가 전혀 읽히지 않아 혹시 이곳에 괴룡이 없나 하는 생각까지 했던 유양도장이었다.
“사제는 물러서게.”
“예 사형.”
유양도장이 앞으로 나서자 태성도장이 군말 없이 물러섰다. 신혁과 관군들의 시선이 유양도장에게 집중되었다.
“무량수불. 빈도는 곤륜의 유양이라 합니다.”
“멸마광검(滅魔光劍) 유양도장?!”
탄성은 뒤편의 산적들에게서 튀어나왔다.
가뜩이나 곤륜과 부딪혀서 자신들에겐 좋을 일이 없건만, 곤륜의 장로 중에서도 사도에 가장 적대적인 유양도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오늘은 화가 끊이질 않는구나…….”
청호의 시름이 깊어져만 갔다. 유양도장과 태성도장만 해도 벅찬데, 그들의 뒤에서 푸른 도포를 휘날리며 상황을 주시하는 남은 도사들도 결코 만만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느껴지는 기세로 보아 거의 절정에 근접한 수준의 무인들이었다.
“빈도가 괴룡 시주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신혁의 담담한 한마디에 도사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이로 보나 강호의 배분으로 보나, 유양도장은 신혁보다 윗줄에 있는 강호의 명숙이었다.
그런 그가 소속 성명까지 먼저 말하며 예를 갖췄으나, 감히 별호조차 말하지 않고 질문에 답만 하는 신혁이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녹림의 죄인들을 저희에게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유양도장의 한마디에 산적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신혁에게 잡혀가는 것과 곤륜에 끌려가는 것은 달랐다. 곤륜에 간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신병을 빌미로 곤륜에서 녹림에 어떤 요구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된다면 녹림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로 인해 동호채의 채주인 풍호도 큰 징계를 받을 수 있었다.
“죄인이라…….”
신혁이 짧게 생각을 마치고 말을 이었다.
“저들은 제게 피해를 줬기에 그 책임을 묻고 손해를 배상할 자들입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신혁 시주.”
“예.”
“곤륜에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죄인들을 저희에게 넘겨주시지요.”
은근하게 곤륜의 이름을 팔며 신혁을 압박하는 유양도장의 태도에 청호와 산적들은 물론이고 미종과 관군들마저 신혁의 반응을 주시했다.
“저들이 도장님이 소속되신……. 공륜? 곤륜? 중원 말은 발음이 쉽지 않군요. 어쨌든 그곳에 죄를 지은 게 있습니까?”
“그건…….”
“아, 도장님께 여쭤본 것이 아닙니다. 형방님께 여쭤본 겁니다.”
유양도장의 말을 자르며 신혁이 미종을 바라보았다. 마치 곤륜파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구는 신혁의 태도에, 곤륜 도사들과 무시당한 유양도장의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괴룡 시주, 언행에 예를 갖춰 주셨으면 합니다.”
보다 못한 태성도장이 앞으로 나서며 신혁을 제지했다.
“예의요?”
신혁이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도대체 무슨 예를 갖추라는 말인가.
다짜고짜 우르르 나타나서 자신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이들을 그냥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더 어이가 없는데.
자신은 그래도 상대의 존대에 맞춰서 상대는 해주고 있지 않은가.
“형방님?”
슬쩍 태성도장을 곁눈질한 신혁이 미종을 불렀다.
“아. 예, 현사님.”
곤륜의 도사들과 신혁의 대화에 긴장하고 있던 미종이 재빨리 대답했다.
“저들이 여기 계신 분들에게 죄를 지었습니까?”
“아직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는군요.”
신혁의 대답에 태성도장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시주, 저들은 감히 곤륜의 영역인 청해를 무단으로 침범한 자들입니다.”
“형방님.”
“예.”
“청해가 곤륜의 영지인가요?”
“예?”
“그러니까, 나라의 황제 폐하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이 나라의 지배자가 곤륜이라는 곳에 청해를 영지로 줬다거나 곤륜의 장을 청해의 영주로 책봉했다거나 하신 겁니까?”
“아닙니다. 대명의 모든 국토는 황제 폐하의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혁이 다시 태성도장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는군요.”
이번에는 정말로 화가 폭발했는지, 태성도장뿐만 아니라 곤륜의 도사들이 주먹을 꽉 쥐었고, 눈에 핏줄이 돋아났다.
유양도장의 명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신혁을 향해 출수할 기세였다.
‘크크크큭, 정파 놈들의 쓸데없는 자존심은 여전하구만.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걸?’
비록 신혁에게 패하여 갇힌 신세였지만, 청호는 영민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자신이 겪어본 신혁은 감히 절정고수 정도로는 측정할 수도 없는 강자였다.
만약 지금 곤륜의 도사들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비록 자신들이 패할지라도 곤륜의 도사들 또한 적지 않은 피해를 볼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달리 생각하면, 결국 저들 역시 신혁의 옷깃 한번 스쳐보지 못하고 제압당한 자신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크큭, 역시 곤륜의 말코 놈이야. 저 쓸데없는 자존심이 어디 갈 리가 없지. 그래, 이번에 네놈들도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시주, 저들은 곤륜과 부딪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청해에 온 자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들의 신병을 넘겨주십시오.”
태성이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화를 억누르고 다시 한번 신혁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말은 정중했지만, 결론은 우리 말에 따르라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곳의 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있던 곳에서는 범죄를 계획한 것만으로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범죄를 실행에 옮긴 자들만을 처벌하지요.”
“시주. 계속 말장난이나 할 만큼 곤륜이 우습게 보이십니까?”
신혁의 말에 결국 태성도장이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며 발끈했다.
“곤륜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찌 웃을 수 있겠습니까.”
“크크크크.”
“읍…… 큭……. 크하하하하.”
신혁의 말에 산적들은 부상에 신음하면서도 호탕하게 웃어 재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정파의 인물들이 신혁에게 대놓고 무시당하는 꼴을 보니 속이 후련했던 것이다.
조금 전에 자신들도 산길을 내려가던 신혁을 붙잡고 윽박지르다 이 꼴이 되긴 했지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었다.
“푸흡…….”
“크흡…….”
미종과 관군들마저 숨을 죽이고 웃음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
마교가 위치한 신강이나 사파들이 득세한 다른 지역에서라면 모를까, 청해에서는 누가 뭐라 해도 곤륜이 지배자였다.
그런데 그런 청해에서 이렇게 신랄하게 곤륜을 무시할 수 있다니……. 내심 고압적으로 상대를 깔보던 곤륜이 고까웠던 병졸들도 후련함을 느꼈다.
“감히…….”
태성도장의 뒤편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유양도장이 노기를 드러냈고, 순간적으로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
수양이 가장 깊은 유양도장이 그럴진대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도사들은 어떻겠는가.
처억.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자연스럽게 곤륜의 운룡검진의 방위로 이동하고 있었다.
“멈추어라.”
유양도장의 한 마디에 끓어오르는 혈기를 억누르며 두말없이 물러서는 곤륜의 도사들.
입문한 그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곤륜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 사문을 모욕한 자를 그냥 두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사제도 물러서시게.”
“예, 사형.”
그들이 분노하건 말건 상관없다는 태도로 신혁이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용무는 다 보신 거 같으신데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형방님, 가시지요.”
“예, 현사님.”
끝내 신혁과 관군들이 다시 길을 나서려는 순간, 폭풍전야처럼 고요하던 장내에 갑자기 흉포한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웅~
기파가 공명음을 만들어내며 장엄하지만 오싹한 기운이 그들을 엄습했다.
기운의 근원지는 유양도장이었다. 그가 공력을 북돋우며 금방이라도 출수할 듯한 모습으로 신혁에게 다가왔다.
“괴룡 시주. 빈도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소. 지금이라도 곤륜에 대한 무례를 사죄하고 녹림도들의 신병을 넘겨준다면 이전의 무례는 없던 일로 하겠소이다.”
“후우…….”
신혁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라도 검을 뽑으신다면, 뒷일은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 * *
“죄송해요. 사부님, 저 때문에…….”
소녀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소녀는 붉은빛이 감도는 경장 차림에 하얀 면사로 얼굴의 반을 가렸지만, 눈동자와 흘러내린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하얀 피부만으로도 굉장한 미인임을 알 수가 있었다.
“아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다. 소천아.”
“하오나, 저 때문에 파천비가…….”
동굴 안에 들어온 듯, 빛 한점 비치지 않는 좁은 길을 호롱불 하나에 의지하며 나아가던 그림자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허허 괜찮대도.”
호롱불에 드러난 그림자의 모습은 검은색 도포와 도관을 머리에 쓴 노인이었다.
특이하게도 그의 허리춤에는 나무로 만든 목검 같은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혼교에서 약속을 지킬까요?”
“허허, 맹약을 맺고 파천비를 넘겨주기로 하지 않았더냐.”
“그러나 그들은…….”
소녀의 걱정 어린 말에 노인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다. 아무리 사파라고 해도 사도팔문에 속한 자들이다. 쉽사리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을 터. 게다가 파천비의 회수는 그들에게도 숙원일 것이다.”
“우리 모산파는 정사마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고 조용히 있었잖아요. 그런데 한낱 단검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소녀는 아직도 악몽을 꾸는 것 같아요.”
“십대기보는 자격이 있는 자가 나타나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오히려 우리가 네게 못 할 짓을 한 거 같아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허허, 일단 가던 길을 마저 가자꾸나.”
“예 사부님.”
그렇게 두 명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