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흑막 (2)
모든 시선이 신혁에게 집중되었다. 다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다.
일순간에 이만 명에 가까운 삼도연맹의 무사들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킨 거대한 비행체는 무엇이고, 사신문의 지존이라는 자와는 무슨 관계인가 등의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미타불, 연맹주님.”
소림의 공오대사가 반장을 하며 신혁에게 말했다.
“소승 또한 연맹주님께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산더미 같습니다. 허나, 지금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삼도연맹을 수습하고 장렬하게 산화한 시주들의 제를 먼저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은 서안으로 후퇴한 뒤에 나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그럴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사님. 그리고……. 서안으로의 후퇴는 없습니다.”
“연맹주님. 떠나간 맹원의 제도 지내지 않으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지금은 조금의 시간도 지체해선 안 됩니다. 속전속결로 사신문을 멸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공오대사의 간절한 청에도 신혁은 요지부동이었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조급함마저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다급함을 드러내는 신혁이었다.
“죽은 이들의 제를 지내기 위해 시간을 허비했다간 강호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의 미래마저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습니다. 죽은 맹원에 대한 보상이나 사죄에 대해서는 제가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움직여야 합니다.”
“아미타불, 사신혁 시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호는 물론이고, 미래라니요?”
신혁의 말이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는지 연맹주라는 공대도 생략한 채 공오대사가 급하게 물었다.
“지금은 사신혁의 말을 듣도록 하지.”
“그렇게 해요. 연맹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사도맹주님과 마교주님까지…….”
조금 전 하늘에서 내려온 녹색의 광선에 의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것은 정도맹만이 아니었다.
사도맹과 마교도 정도맹 못지않은 피해를 본 상황이었는데, 그들의 대표, 주소천과 현아진이 신혁을 두둔하고 나서니 공오대사도 더는 따지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잠시만, 괜찮겠습니까? 연맹주님.”
그때,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제갈첨이 조심스럽게 신혁에게 양해를 구했다.
“예, 말씀하세요. 군사님.”
“지금 하실 말씀은 수뇌부들만 들으면 되겠습니까?”
“일단……. 그렇게 하시죠.”
신혁의 출신부터 사신문의 정체와 루빈지오라는 흑막의 출현까지 모든 정보를 한 번에 공개했을 때,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신혁은 잠시 말끝을 흐리며 생각을 정리하고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가 세가의 아이들을 시켜서, 전장을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이 어느 정도인지에 더해 전사한 무사들의 수도 파악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대사님……. 무사들의 위령제를 지내는 것은 연맹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판단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미타불.”
제갈첨의 중재안에 공오대사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고, 유신이 입을 열었다.
“이제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하실 말씀이 대체 무엇입니까? 형님.”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지만, 다른 얘기에 앞서 저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중원의 인물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현실이 될 것이라 생각한 신혁의 눈매가 살짝 떨렸다.
“저는 미래에서 왔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다른 차원이라고 하는 게 좀 더 맞겠군요.”
“미래?”
“연맹주님, 지금 뭐라고…….”
“아미타불…….”
역시나 신혁의 예상대로 신혁의 정체를 들은 일행의 반응에는 웅성거림과 혼란만이 가득했다.
현시대의 인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연맹주님.”
“예.”
“하늘에 나타난 알 수 없는 비행물체도 목격했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두를 대표해서 제갈첨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며 신혁의 눈치를 살폈다.
“믿기 어려우신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말은 사실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증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증거라면……. 하늘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빅토리노, 테레사함의 스텔스 모드를 해제하도록.”
“예? 지금 뭐라고-”
알 수 없는 신혁의 말에 제갈첨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되물었으나, 신혁은 묵묵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억?! 저, 저건?!”
“어찌 저 저주받은 것이 하늘에…….”
“아미타불, 아미타불.”
테레사함이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의 인물들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있던 곳에서도 저 정도 부피와 무게를 가진 비행물체는 구현해 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떠 있는 저 구조물은 이 시대의 문명 수준에서 구현 가능한 것이 아닐 테니, 사신혁의 말은 사실이라고 봐야겠지.”
“예? 그게 무슨……?”
현아진의 말은 오히려 대중들에게 더한 혼란을 초래했다.
“잠깐, 그럼 마교주님도 다른 곳에서 오셨단 말입니까?”
“설마, 연맹주님과 같은 곳……? 아니, 그건 아니라 하셨으니, 그럼.”
“사신문 놈들이랑 아는 사이였던 건 아닙니까?”
“그래, 그럼 그렇지. 이 잔악한 마교놈들이 사신문과 작당 모의를…….”
조금만 진정한 채로 상황을 바라보면, 현아진과 사신문은 전혀 접점이 없었음을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미래와 다른 차원이라는 얘기도 나온 마당에, 안될 건 없다는 생각이 무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이만 명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죽어버렸다.
패전의 분노와 동료를 잃은 비참함에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필요했고, 정도맹의 무인들은 애꿎은 현아진과 마교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 후안무치한 놈들이 도움을 청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감히 본교의 교주님을 모함해?”
채앵!
말보다 칼이 앞서는 곳. 누가 마교 출신 아니랄까 봐 진용제가 검을 뽑았고, 그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진정하십시오. 지금 저희끼리 다툰다 한들 해결되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결국 보다 못한 유신이 마교를 변호하기 위해 나섰다.
“무량수불, 무당의 도현입니다. 우선 연맹주님의 말씀을 다 듣고 다시 얘기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신에 무당의 도현도장까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자, 다들 솟아난 마음속의 의심은 접어두고 다시 얘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먼저, 제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신혁은 미래에서 인류가 멸망하게 된 사실과 인류 재건을 목적으로 십대기보에 아스트랄 에너지를 모으고 있음을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인물 중에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현아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다.
“호오……. 과연, 그렇게 된 것이었군. 마나의 구도자들이 없는 세상을 연금술사들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이끌어왔구나. 재미있어, 무한한 차원의 가능성이 그런 식으로 발전하게 될 줄이야.”
“저…. 교주님.”
“왜 그러나 부교주?”
“속하가 어리석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사온데, 교주님께서는 괴룡의 말이 정녕 사실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않느냐. 앞뒤가 맞아떨어지고 증거마저 확실한데 이해를 못 할 리가 없지.”
“아……. 예. 교주님께서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속하도 믿겠습니다.”
“흐음, 상심하지 마라. 그게 호비트들의 한계일 테니 어쩔 수 없지.”
“호비트라 하셨습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신경 쓸 거 없다.”
“……예, 알겠습니다.”
솔직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며 현아진에게 자문을 구한 진용제였고, 다른 이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데, 자세한 설명은커녕 진용제를 무식한 놈 취급하며 면박을 주는 현아진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신혁에게 사실 여부를 물어보기도 민망한 상황이 되었다.
“흠흠, 연맹주님.”
“예 군사님.”
“연맹주님께서 왜 이곳에 오셨고 십대기보를 모으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온데…….”
주소천이 보유한 크리스탈의 아스트랄 에너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신혁이었지만, 그가 머나먼 미래에서 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긴 제갈첨이었다.
“사신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사신문의 지존과 무슨 말씀을 나누신 겁니까?”
“예,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현의령주를 패퇴시키고 사신문의 지존을 쫓았을 때…….”
신혁은 담담하게 사신문의 지존, 루빈지오와의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 * *
“루빈지오오오오~!”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추락하는 유성처럼, 신혁의 신형이 한줄기 빛살이 되어 퇴각하는 사신문을 쫓았다.
“모두 사천으로 퇴각하도록.”
“위험합니다. 지존.”
“그렇습니다. 저희가 막겠습니다.”
루빈지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요백진과 적무강이 검을 뽑으며 그의 앞을 가렸다.
“경고는 한 번뿐이다. 다시 한번 지존의 말씀을 거스른다면 내가 직접 네놈들의 목을 벨 것이다.”
현의령주 무명 특유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잘 벼려진 칼날처럼 적무강과 요백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무명의 말대로 하거라. 괴룡은 나를 죽일 수 없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지……. 크크큭.”
루빈지오의 몸이 가볍게 하늘로 떠올랐고, 그 자리에서 신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동한다.”
“존명.”
다가오는 신혁을 슬쩍 곁눈질한 무명이 퇴각명령을 내렸고, 잠시 움직임을 멈췄던 사신문의 문도들이 빠르게 사천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뭐가 그리 급한가 사신혁 사령관?”
오랜 친우를 만나는 것처럼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는 루빈지오의 모습에 신혁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닥쳐!”
“아스트랄 에너지가 급격하게 상승하는군. 그렇게도 나를 죽이고 싶은 건가?”
“죽어라.”
신혁의 에너지 소드에 어마어마한 양의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고.
무명을 패퇴시켰을 때의 에너지양을 아득히 초과한 엄청난 양의 아스트랄 에너지가 집중되자, 중력마저 왜곡되기 시작했다.
“멈추는 게 어떤가, 조금만 더 나아갔다가는 초소형 블랙홀이 생성될 것 같은데?”
“…….”
“이런, 전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구만. 자네, 못 본 사이에 많이 진지해졌어. 그렇게 꽉 막힌 성격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
“에너지 낭비일세 사신혁. 아스트랄 에너지를 이용한 패턴 블랙이라해도 하데스를 뚫을 수는 없어.”
“더 하고 싶은 말은 저승에 가서 하도록.”
루빈지오의 도발을 가볍게 일축한 신혁이 검을 들어 루빈지오를 겨눴다.
“정말이지, 자네를 멈출 수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만. 혹시 자네는 크리스탈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은 건가?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 텐데?”
당장이라도 검을 움직여 루빈지오와 사생결단을 낼 것 같았던 신혁의 동작이 이어지는 루빈지오의 한 마디에 거짓말처럼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