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소정군주 (1)
“황궁에 말씀이십니까?”
“예. 필요한 일이니까요.”
제갈첨이 부채를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황궁의 힘을 끌어들이려 하십니까?”
“절반은 맞습니다. 일반 병사들은 이번 결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해서 황제에게 청하여 제 수하가 이끄는 찬황부와 금위제존위군을 위시한 금의위와 동창의 절정고수들을 지원받으려 합니다.”
“오오, 금의제존위군이라면 화경의 고수 진강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혁의 말에 제갈첨이 반색하며 물었다. 비록 진강전이 강호를 떠나 황궁에 투신하였다지만 화경의 경지에 도달한 초절정고수였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은 차치하고 그 한 명만으로도 신혁이 황궁에 다녀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제갈첨이었다.
“그렇습니다.”
“만약 그를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한데, 황권을 수호하는 금위제존위군이 과연 황궁을 떠나려 할지가 걱정되는군요. 혹시 그와 친분이 있으십니까, 연맹주님?”
“친분이라…….”
신혁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난 황위 쟁탈전에서 진강전과 가볍게 손을 섞은 것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서로를 존중하며 무공을 겨루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진강전의 금의제존위군이라는 칭호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황제가 사신혁에게 내린 황사와 찬황지존위군이라는 직함 때문에 말이다.
“그다지 좋은 기억은 없는 것 같군요.”
“흠흠, 그렇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봐야죠.”
“알겠습니다. 연맹주님. 무운을 빌겠습니다.”
“잠시만요 연맹주님.”
신혁이 제갈첨을 뒤로하고 맹을 벗어나려 할 때, 주소천이 신혁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시죠, 사도맹주님?”
“황궁에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구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평생 황궁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세상이 끝날지도 모르는데, 미련을 남겨서는 안 되잖아요.”
“음? 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주소천이 살포시 미소지으며 맹주부를 빠져나갔다.
“군사님.”
“예, 연맹주님.”
“사도맹주가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을 겁니다. 하오문주님도 계시고,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연맹주님께 위험한 일이라도 생긴다면 사도맹주님만큼 든든한 사람도 없을 테니까요. 맘 편히 다녀오십시오.”
제갈첨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소천의 편을 들었다. 안 그래도 신혁이 혼자 황궁에 간다기에 조금이지만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는데 주소천의 동행은 그로서도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신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앞서나간 주소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주소저.”
“기다렸어요.”
“황궁까지는 꽤나 먼 거리입니다. 테레사함의 수송선을 타고 가도록 하죠.”
“어머나, 저야 좋죠. 오랜만에 루시아도 만날 수 있겠네요.”
신혁의 제안에 주소천이 달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 보면 또래의 여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주소천의 모습에 신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네, 황궁에 가려는 이유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주소천이 잠깐 턱을 괴고 고민하더니 이윽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협이라면 황사의 직위가 있으시니 말씀드려도 괜찮을 것 같군요.”
“음? 설마, 출생의 비밀 뭐 이런 겁니까? 사실은 주소천 양께서 전대 황제의 숨겨둔 딸이라던가?”
신혁은 농담삼아 주소천을 놀리듯이 물었지만 돌아오는 주소천의 대답은 신혁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비슷해요.”
“예? 비슷하다니요?”
“제 성은 주(朱) 씨랍니다.”
“설마……?”
신혁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네, 맞아요. 당금 대명제국의 황제인 주윤문 폐하와 같은 성이죠.”
* * *
대명제국의 황궁.
무언가 중요한 일이 벌어졌는지 황제와 대소신료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님?”
대명제국의 젊은 황제 주윤문이 이제 막 스물을 넘겼을 것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향해 어이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누님이 아니라 소정군주이옵니다 폐하.”
조금 화가 난 것처럼 살짝 올라간 눈썹이 매력적인 여인의 정체는 주윤문의 배다른 누이인 주소정이었다.
대명제국의 시조인 주원장은 일찍이 주윤문의 부친인 의문황태자 주표를 태자로 봉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주표가 요절하여, 그의 아들이자 주원장의 손자인 주윤문이 황위를 이어받았고, 주소정은 주표의 첩실이 낳은 자식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하면 소정군주, 지금 짐에게 뭐라 간언하신 겁니까?”
“천황부를 폐하고 사신혁에게서 황사의 직책과 찬황지존위군의 작위를 거두시라 간언하였습니다.”
“하하, 제가 잘 못 들었나 봅니다.”
주윤문이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주소정에게 말을 이었다.
“대명제국의 은인이자 짐의 스승을 아무 이유도 없이 폐하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석 달 전.
자신을 의문황태자 주표의 딸이라 밝힌 주소정은 갑작스럽게 황궁에 나타났다.
그녀는 주윤문과 그의 부친인 주표만이 알고 있는 요화장을 언급하며 자신을 주윤문의 배다른 누이라 밝히며 여러 가지 정황증거를 제시하였고, 대소신료들의 동의하에 공식적으로 군주의 작위를 하사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군주의 작위를 하사받아 황궁 내부의 감찰권을 손에 쥔 주소정이었지만, 주윤문에게 있어서 사신혁은 가장 소중한 은인이자 스승이었으니 주소정의 청은 결코 들어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유는 충분합니다.”
“소정군주 아니, 누님.”
계속해서 뜻을 굽히지 않는 소정군주를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주시하던 주윤문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지금, 사신혁 황사를 모함하는 말을 하고 계십니다. 만약 누님이 아닌 다른 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자의 목이 붙어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십 년 만에 만난 혈육이기에 짐이 많이 참고 있다는 것을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폐하, 정녕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신혁이라는 자를 친 누이인 저보다 더 신뢰하시는 겁니까?”
“누님만큼 진하게 피가 섞인 수많은 번왕 숙부님들 중에 지금 살아계신 분은 연왕 주체 숙부 한 분뿐이란 걸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주윤문에게서 전대 황제인 주원장을 연상시키는 위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실상, 신혁의 도움으로 황제가 된 주윤 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황권의 강화를 위해 남아있는 번왕들을 숙청한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예외가 있다면 주윤문의 말대로 외적의 침입을 막고 원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군권의 절반을 손에 쥔 연왕 주체뿐이었다.
“알지요, 어찌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신혁의 작위를 회수하여야 합니다. 황권의 강화를 위해 번왕 숙부님들을 모조리 숙청하셨지 않습니까. 한데, 번왕에 버금가는 아니, 그보다 더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를 누리는 사신혁은 어째서 그냥 두시는 겁니까.”
“누님, 그만하십시오. 더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망극합니다. 폐하. 하나,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입니다. 신녀의 말을 새겨들으셔야 합니다.”
“그만하라 하지 않았소이까!”
콰앙!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주윤문이 용상을 내리쳤고, 그의 손에 피가 흘렀다.
“폐하, 소정군주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철혈의 황제 주원장에 버금갈 정도로 황권을 강화시킨 주윤문의 진노에 평소라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할 신하들이었지만, 놀랍게도 그들 중 일부가 소정군주의 편을 들며 읍소하였다.
“그대들이 감히 짐의 뜻에 반하려 하는가!”
주윤문이 진심으로 노기를 드러내며 몸을 일으켰지만, 신하들은 오체투지하며 더욱더 목소리를 높였다.
“폐하, 추밀사 노주희가 감히 목숨을 걸고 간언드립니다. 조금만 소정군주님의 충언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신 우군대도독 좌평이 간청드립니다.”
“병조판서 광우기가 아룁니다, 신들의 뜻을 헤아려주시옵소서 폐하~!”
이쯤 되니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는 주윤문이었다.
지금 읍소하고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군부와 병권에 관련이 있는 자들이지 않은가.
주윤문이 살짝 고개를 들려 그가 가장 신임하는 금의위장 형관오를 향해 눈을 찡그렸고, 형관오가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잠시 두고 보자는 형관오의 신호였다.
“후우~ 좋아요. 조금 더 들어보도록 하지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주윤문이 화를 삭이며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엎드렸던 신하들이 몸을 일으키며 주소정의 뒤편에 도열하였다.
명백히 주소정과 뜻을 같이하겠다는 신호이자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러니까, 소정군주의 뜻은 사신혁 황사를 탄핵하겠다는 것이지요?”
“망극하지만, 그렇사옵니다. 폐하.”
“어째서 그를 탄핵해야 하오? 그는 대명제국의 은인이오!”
“그가 너무나 큰 권세를 휘두르기 때문입니다.”
“권세로 치자면 금의제존위군 역시 그에 못지않거늘 어째서 찬황지존위군만을 탄핵해야 하오?”
주윤문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주소정을 다그쳤지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금의제존위군 진강전은 황실을 수호하고 황궁을 지켜왔습니다. 한데, 사신혁은 찬황지존위군과 황사라는 작위를 제수받고도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알량한 권세를 믿고 청해성주와 섬서성주를 자기 맘대로 임명하고 폐하께 바쳐야 할 세금조차 백성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절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역모에 준하는 죄입니다. 폐하!”
“찬황부주!”
“신(臣) 윤신제, 여기 있사옵니다. 폐하.”
속으로 수백 번을 주소정의 목을 치는 상상을 하던 신윤제가 황제의 부름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지금 소정군주의 말이 사실이오?”
“예, 그렇습니다. 찬황지존위군 사신혁은 폐하께서 하사하신 청해성에서 단 한 푼의 세금도 거두지 않았고, 모든 곡식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또한 강호에서 암약하는 사신문이라는 악적들을 단죄하시어 억울하게 살해당한 청해성주의 한을 풀어주었으며 능력이 뛰어난 청동현의 현령 진근화를 청해성주로 봉하였습니다.”
“청동현의 현령 진근화는 금의제존위군 진강전의 아들이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섬서성의 성주와 제형안찰사사가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있기에 찬황지존위군이 벌을 내린 것이 맞는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윤제의 대답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주윤문이 주소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보시오. 사신혁 황사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말이오? 그 역시 대명제국을 위해 동분서주하지 않았소이까.”
“찬황부주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 하여도 그가 폐하게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은 중죄이옵니다. 봉지의 세금을 걷는 것은 그의 권한이지만 세금의 삼 할은 폐하께 바쳐야 하는 것이 대명제국의 법도입니다. 또한 그가 청해와 서안 일대에서 어마어마한 병력을 키우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소문? 지금 소문이라 하였소?”
“예, 그렇습니다. 그는 발칙하게도 삼도연맹이라는 무림단체를 조직하여 정도맹과 사도맹은 물론이고 저 위험한 마교까지 휘하로 거둬들였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그는 그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강호의 낭인들과 힘없는 무사들의 씨를 말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부디 소정군주님의 충언을 알아주시옵소서 폐하~!”
주소정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주윤문에게 열변하였고, 그와 뜻을 같이하는 신하들이 눈물을 쏟으며 무릎을 꿇었다.
“지금 경들은……. 사신혁이 역모라도 꾸미고 있다는 것처럼 말씀하는 것 같소이다. 짐은 말이오.”
주윤문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정군주와 신하들을 보며 힘주어 말했다.
“지금 내 눈앞에서 사신혁 황사를 의심하는 그대들은 믿지 못해도, 내 목숨을 구해준 그의 충절은 신뢰하오.”
“폐하.”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주윤문을 주소정이 달래듯이 차분하게 불렀다.
“정말 사신혁이, 대명제국의 충신이라면 폐하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작위를 해제하시고 삼도연맹을 해산하라 명하십시오. 그가 그 말을 따른다면 정녕 그가 폐하께 충성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일 겁니다. 만약 그가 폐하의 명을 거부한다면…….”
주소정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그것이야말로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습니까!”
“…….”
“신녀의 충언을 받아주십시오. 폐하. 만약 사신혁이 폐하의 명을 받아 삼도연맹을 해산시킨다면 다시 그를 황사로 봉하고 찬황지존위군의 작위를 내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사신혁이 폐하의 명을 따라 충심을 증명한다면 제가 그에게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의 충정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
주윤문은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사신혁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소정의 논리에는 전혀 허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정군주, 금의제존위군도 그대와 같은 생각이오?”
“아닙니다. 금의제존위군은 찬황지존위군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충정 또한 의심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는 오로지 폐하의 명만을 따를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후우……. 짐은…….”
어두운 얼굴의 주윤문이 한숨을 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때, 어전 밖에서 대기하던 내시가 큰 소리로 알현을 청하는 자의 등장을 알렸다.
“폐하~. 찬황지존위군 사신혁 황사께서 오셨습니다.”
주유문의 안색이 거짓말처럼 밝아졌다.
“어서 모시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