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총력전 (1)
“정말 놀랍군요.”
제갈첨이 현아진의 막강한 마법에 혀를 내둘렀다. 전설상의 용이 실제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지금의 현아진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진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런 현아진이 이끄는 마교를 적으로 두지 않은 것에 말이다.
‘연맹주님께서는 현아진 교주의 저 엄청난 힘을 알고 계셨던 것인가. 그러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전략을 보증하셨겠지만, 그래도 이건…….’
이쯤 되니 신혁이 어떻게 현아진을 꺾었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제갈첨이었다.
“연맹주님께서는 현아진 교주님의 저 놀라운 주술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중요한 건 현아진 교주의 장담했던 대로 일이 풀리고 있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이 기세를 유지한다면 강호를 배신하고 사신문에 투항한 자들을 현아진 교주 혼자서 단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지만 적도 바보가 아닐 테니 그 정도까지는 좀 어려울 겁니다.”
“예, 그래도 정말 기대 이상의 성과입니다. 절망적인 전투였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보입니다.”
“아직 낙관해서는 안 됩니다. 사신문에게 있어서 일반 문도들쯤이야 언제든지 찍어낼 수 있는 인형 같은 존재들이니까요.”
“으음…….”
희색이 가득하던 제갈첨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신혁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할수록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번 결전에서 사신문의 숨통을 끊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사신문은 더욱더 큰 전력을 갖출 테니 말이다.
‘연맹주님의 말이 옳다.’
사신문과 다르게 삼도연맹에서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즉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 싸움이었다.
이쪽은 절정고수 하나 키워내는데 수십 년의 시간과 문파의 자원을 송두리째 투자해야 하지만 저쪽은 불합리할 정도로 빠르게 전력을 충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루빈지오가 모습을 드러냈군요.”
신혁의 CEC에 경고음과 함께 루빈지오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현의령주 무명과 현의문도 움직였습니다. 저들이야말로 사신문의 모든 것이니, 우리 쪽도 증원을 보내야 합니다. 군사님, 적무강과 요백진이 현아진을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연맹주님.”
신혁의 명을 받은 제갈첨이 부채를 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빠르게 전장의 흐름을 확인한 제갈첨이 대기하고 있던 제갈세가의 식솔에게 명을 내렸다.
“공오대사님께 말씀드려 정사연합의 고수들을 이끌고 사신문의 잔당들을 막아달라 말씀드리거라. 지금쯤 출격 준비를 마치셨을 것이다.”
“예, 가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사도맹주님.”
제갈첨이 결연한 눈빛으로 각오를 다지는 주소천을 불렀다.
“적의령주를 막아 주십시오.”
“……알겠어요.”
현아진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른 적무강과 요백진의 모습을 확인 주소천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같아서는 적무강을 요절내고 현아진도 죽게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강호는 물론이고 중원 전체의 미래가 걸린 마당에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만은 없었다.
“부교주님.”
정사연합의 무사들이 결사의 각오를 다지며 전장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을 본 제갈첨이 이번에는 진용제를 호명하였다.
“기다리고 있었소.”
“안타깝지만 공오대사님과 정사연합의 무사들로는 남은 사신문의 잔당들을 막아 낼 수 없을 겁니다. 교주님의 활약으로 저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만큼 저 난리통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무위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요.”
제갈첨이 서천평야의 지도를 펼치며 우회로를 가리켰다.
“남은 흑검대의 무사들과 함께 우회하여 적의 뒤를 쳐주십시오. 속도가 중요합니다. 현의령주와 현의문이 증원되기 전에 남은 사신문의 잔당들을 앞뒤로 포위하여 순식간에 섬멸해야 합니다.”
“걱정 마시오.”
진용제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사신문과의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 짓고, 마교의 세를 늘려 본격적인 중원정벌을 시작하는 것이 마교와 그의 꿈이었건만 사신문의 공격으로 마교의 무사들도 큰 피해를 입었기에 무척 화가 난 상태였다.
“진강전 전하.”
“말씀하시오. 군사.”
철로 빚어 만들어낸 인형처럼 일말의 동요 없이 상황을 주시하던 진강전이 앞으로 나섰다.
“작전대로 사신문도들이 전멸할 때쯤에 현의문의 정예들이 전장에 투입될 것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공오대사님과 진용제 부교주가 전열을 가다듬고 현의문도들과 맞설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결코 정면으로 맞서서는 아니 됩니다. 금의위와 동창의 고수들은 대규모 전쟁과 난전에 특화된 분들이시기에 가장 위험한 임무를 부탁드립니다.”
“군사.”
진강전이 심유한 눈빛으로 제갈첨을 불렀다. 제갈첨의 말대로 가장 위험한 위치에 투입되는 것이 진강전이었다.
제갈첨의 작전대로 일이 진행된다고 하여도 미지의 전투력을 보유한 현의문도들을 가장 먼저 조우하는 입장이고 자칫 사신문도들이 진용제와 공오대사의 협공 속에서도 살아남는다면 현의문과 사신문도들의 중앙에 끼어들어 앞뒤로 협공을 당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예, 전하.”
“나와 황궁의 고수들은 그대들이 아닌 황상을 위하여 검을 들었소. 그러니 한 가지만 당부하리다.”
“경청하겠습니다.”
“내가 죽어도 상관없소. 그대들이 모두 이 자리에서 전장의 이슬이 되어도 상관없소. 그러나 패배는 용서치 않겠소. 저 무도한 역도들이 황상을 향해 칼을 들이미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시오. 만약 이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진용제가 말끝을 흐렸지만 제갈첨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백만의 어림군이 움직일 것이고 패전의 책임을 물어 제갈세가부터 끝장을 내겠다는 협박이 담긴 경고였으니 말이다.
“걱정 마십시오. 전하. 저 역시 가문과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믿겠소.”
과연, 대명제국을 수호하는 금의제존위군 진강전 다운 모습이었다. 무림인들과 다르게 황제에 대한 충성과 대명제국을 수호하겠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진강전과 황궁의 고수들이 검을 쥐고 전장으로 향했다.
“정도맹주님.”
“예, 군사님.”
“현의령주 무명과 현의문도들을 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 될 것입니다. 맹주님께서 현의령주 무명을 꺾고, 천마교의 정예들과 삼도연맹의 무사들이 현의문을 전멸시키는 것이 최선입니다만. 만약 그게 여의치 않더라도 주룡과 마룡이 적의령주와 청의령주를 무찌르고 본맹을 지원해줄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티셔야 합니다.”
제갈첨의 걱정을 모를 리 없는 유신이었다.
“무량수불.”
유신은 평온했다. 그를 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것처럼 덩달아 평온을 찾을 정도로 유신에게서는 일말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게 순리대로 흐를 것입니다. 사신문의 존재 자체가 역천(逆天)인 것을,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예, 맹주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호의 명운을 건 최후의 한판에, 제갈첨 역시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신의 말 한마디에 그런 긴장감이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고, 제갈첨의 마음에 약간의 여유마저 깃들었다.
“현아진의 마법을 보고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구나.”
유신을 바라보는 신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하, 이거 참. 형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언제든지 출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천마교의 정예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유신이 신혁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돌렸다.
“작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맞는 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글세……. 겸손도 그 정도면 기만이다. 유신.”
신혁이 피식 웃으며 유신의 어깨를 두들겼다. 신혁의 CEC에 표시된 유신의 PEF 수치는 변동이 없었지만 놀랍게도 아스트랄 레벨이 변해있었다.
‘아트트랄 레벨이 미지수를 뜻하는 X로 나타났다……. 이거, 유신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정말 기대되는군.’
현아진처럼 신에 가까운 생물도 아니었으며, 주소천처럼 신의 힘을 빌려 쓰는 것도 아니다.
이 시대의 무인들처럼 유신은 무공을 익혔을 뿐이었으나, 처음 유신을 만났을 때와 지금의 유신을 보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하, 제가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형님께 미칠 수 있겠습니까.”
유신이 신혁과 제갈첨에게 포권하며 자리를 떠났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형님.”
이제 남은 것은 신혁과 제갈첨 뿐이었다.
“연맹주님.”
지금까지의 포석, 이 모든 것의 목표는 다름 아닌 신혁이었다. 제갈첨의 모든 전략이 맞아 떨어진다 해도 사신혁이 패배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괜찮습니다. 대충 뭘 물어보시려는지 짐작이 되니까요.”
신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지지 않을 자신이 있냐, 제 어깨에 강호의 미래가 달려있는데 괜찮겠냐. 뭐 이런 걸 물어보시려는 거죠?”
“흠흠……. 그게…….”
속마음을 들킨 제갈첨이 민망했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랫사람으로서 연맹의 총수에게 함부로 물어볼 만한 질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연맹주님께 여쭤볼 만한 사안은 아니지만 삼도연맹의 군사로서 언제나 최악의 상황은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군사님.”
“예, 연맹주님.”
신혁의 시선이 전방에서 사신문의 잔당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기 시작한 공오대사와 정사연맹의 무인들에게 옮겨졌고, 제갈첨의 시선도 신혁을 따라 전장으로 이동하였다.
“군사님의 전략대로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부딪치는 순간 삼도연맹의 무사들이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죠.”
신혁의 말대로 정사연합의 고수들은 사신문의 잔당들에게 초전부터 기세를 내주고 밀리기 시작했다.
공오대사를 비롯한 정사연합의 명숙들이 이를 악물고 분투하였지만, 절정고수들의 숫자에서 워낙에 차이가 컸기에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저분들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희생을 강요당하는 자리, 죽음이 다가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저분들이 검을 들고 나선 이유는 뭘까요? 무공이 약해서? 아니면 지위가 낮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맹주님…….”
씁쓸한 얼굴로 전장을 주시하는 신혁을 보며 제갈첨이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신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념이라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에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저분들은 신념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고 전투에 임하였습니다. 지키고 싶은 게 있을 테니까요.”
신혁과 제갈첨의 눈동자에 어느새 사신문의 뒤편으로 우회한 진용제와 흑검대의 무사들이 기습적으로 사신문의 후위를 강타하는 것이 들어왔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게는 지금의 중원과 제가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의 희망을 지켜내야 하는 사명감과 신념이 있습니다.”
“연맹주님…….”
“저는 지지 않을 겁니다.”
신혁의 호연지기가 가득한 대답에 제갈첨이 고개가 힘차게 끄덕여졌다.
“물론입니다. 연맹주님.”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전장을 주시하던 신혁의 눈동자에 결연한 각오가 어렸다.
“제게도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