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비밀통로
연무정의 사혼교 일행과 함께 매산곡에 진입한 도현도장과 유신은 그곳에서 단 한 명의 문인도 볼 수가 없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연무정은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거침없이 매산곡의 심부로 진입하더니 어렵지 않게 비밀통로를 찾아냈다.
“사형, 이곳은 어디입니까?”
연무정과 명왕대의 잔존병력을 앞세우고 그들의 뒤를 따라 걷던 유신이 도현도장을 향해 물었다.
“모산의 비밀통로일세.”
“사형께선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있으십니까?”
“허허, 사제. 모산이 비록 구파일방의 좌에 앉지 못했다고는 하나, 사혼교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강대한 문파일세.”
도현도장의 말에 유신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당 역시 상청각에 만일을 대비한 비밀통로가 있었고, 유비무환의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당 같은 강대한 명문 문파조차 조심에 조심을 기하는 험난한 강호인데, 모산파 또한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크기 정도의 비밀통로였고, 만약의 사태를 생각한 도현도장은 연무정을 가장 선두에 세우고 그 뒤를 유신이 따르게 했다.
‘과연, 양의검군이라 불릴 만하군. 빈틈을 보이지 않는구나.’
연무정의 시름이 깊어져 갔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모산파의 문주를 내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파천비의 회수 실패에 이어 사혼교의 치부마저 드러날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룡이라 칭한 무당의 저 어린 도사 놈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직접 부딪혀본 바로는 사혼교주가 친히 나선다고 하더라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초고수였다.
‘대체 무당은 어떤 방법으로 제자를 키워냈기에, 이제 막 솜털이 가신 것 같은 어린놈이 저토록 무서운 무공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유신과의 대결이 떠오르자 연무정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강대한 공력과 엄청난 파괴력의 무공은 둘째치고, 강호 초출로 보이는 자가 이런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마저 가지고 있었다.
연무정은 저놈이 반로환동한 무당의 전대 고수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사제, 아직 기척이 잡히지 않는가?”
지하통로는 처음엔 사람 하나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이었지만, 어느덧 건장한 성인 남자 대여섯 명은 한 번에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넓이로 넓어졌다. 두 시진쯤 이동하던 도현도장이 유신에게 물었다.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무언가 느껴집니다.”
연무정의 주먹이 꽈악 쥐어졌다. 비밀통로 내부에서도 가장 은밀하게 숨겨진 공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거리였다.
“파천비의 기운을 느끼다니, 과연 감이 좋구나.”
연무정의 입에서 파천비라는 단어가 나오자 도현도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헌데, 파천비는 사혼교의 기보일진대 그게 왜 매산곡에 있는 것이오?”
“모산파에서 파천비를 탈취했기 때문이지.”
“대체 모산파의 누가 사혼교의 기보를 아무도 모르게 가져갈 수가 있단 말이오?”
“클클클, 그런 파천비를 솜털이 이제 막 가신 여아가 탈취하였다면 믿을 수 있겠느냐?”
“파천비를 말이오?!”
도현도장이 크게 놀랐다. 파천비 정도의 무기라면 사혼교의 심처 중의 심처에 보안에 보안을 거듭하여 엄청난 무장병력이 지키고 있거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에 교주가 보관하고 있었을 터였다.
어찌 그런 무상의 기보를 도둑맞을 수 있는지 의문이 샘솟았다.
“물론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만, 겨우 열다섯을 넘긴 여자아이였으니 놀랄 일이긴 하지.”
도현도장이 허탈한 웃음과 함께 도호를 읊었다.
신혁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단연코,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는 유신이라 생각하던 도현도장이었다.
그런데 십 대의 나이에 단신으로 사혼교의 비처에서 파천비를 탈취할 정도라면, 분명 범상치 않은 기재일 것 같았다.
“허허, 또 다른 신성의 출현이란 말인가? 괴룡 말고도 사제와 견줄 만한 젊은 천재가 또 있다니, 과연 세상은 넓은 거 같구려.”
“괴룡?”
연무정의 물음에 도현도장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직 서안까지는 괴룡의 명성이 퍼지지 않은 모양이오.”
“클클, 괴룡이라니 광오하구나.”
연무정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처음 얻는 별호에 용(龍)이라는 말을 집어넣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괴룡이라는 아해는 어느 정도더냐? 사제와 견줄 만하다고 했나?”
주의를 돌리려는 목적에 아무 생각 없이 도현도장의 말을 받아주던 연무정의 몸이 일순간 굳었다. 무룡에 견줄 만한 고수라고?
“허허, 그는…….”
“클클클, 물론 저놈만큼의 고수는 아니겠지만.”
“당신의 말은 틀렸소.”
지금까지 묵묵히 도현도장과 연무정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신이 말했다.
괴룡에 대한 은근한 무시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뭐가 틀렸단 말이냐? 아무리 그래도 너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는 말인가?”
“아니오.”
“호오, 그렇다면 정말 너와 비견될만한 기재가 또 있단 말이더냐? 그래 어디 출신이냐? 곤륜? 아니면 화산인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싶었지만, 그나마 그런 고수를 키워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문파 두 곳을 호명했다.
“모르오. 그는 중원인이 아니오.”
“오호라, 세외의 고수라? 북해빙궁이나 남해검문의 제자더냐?”
유신의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해동권문이더냐?”
“아니오. 그는 먼 곳에서 왔다고 하였소. 중원인이 아니오.”
“허면, 그놈의 실력은 어떻더냐? 겨루어 보았더냐?”
“그렇소.”
“오호라. 결과는 어떠했느냐?”
연무정의 말에 유신이 씨익 미소 지었다.
“네가 이겼더냐?”
“단 한 줌의 미련도 없이 깔끔하게 패했소.”
“허허…….”
연무정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단 한 줌의 미련조차 없을 정도라니, 설마 20대의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라도 개척했다는 말인가.
그런 일은 유구한 강호의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좋다, 믿기 어렵지만 네가 허언을 할 것 같지는 않구나. 그렇다면 그자의 무공은 어느 정도더냐? 내게 말해줄 수 있겠느냐?”
“암기술을 사용하는 괴룡에게 빈도가 최선을 다했을 때, 대등하게 겨룰 수 있었소. 허나 장기전이 되었다면 괴룡이 암기만으로도 빈도를 제압했을 테지요.”
유신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차마 괴룡과의 격차를 직접 물어보지 못했던 도현도장도 흥미가 동했는지 연무정과 유신의 사이에서 그들의 대화를 끊지 않고 경청했다.
“그럼 그자가 검을 쓴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더냐?”
“본인은 그의 삼초지적이 되지 못할 것이오.”
“허허 그런 고수가…….”
유신의 말에 연무정이 어이가 없었는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사혼교도들의 심정 또한 연무정과 다르지 않았다.
얼마 전 유신의 무공도 천외천 그 자체였는데, 그런 유신이 삼초지적이 되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의 고수란 말인가.
“도현 사형, 이쯤에서 멈추셔야 할 거 같습니다.”
매산곡의 비밀통로를 나아가던 중에, 갑자기 걸음을 멈춘 유신이 나직하게 도현도장을 불렀다.
그의 심유한 눈빛을 본 도현도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무정을 향해 물었다.
“빈도가 부교주께 하나 여쭤봐도 되겠소?”
‘빌어먹을……. 유신, 저놈이 기어코 주술의 기운을 느낀 듯하구나.’
“말하라.”
“모산의 문주님과 문도들은 어디 있소?”
“매산곡 어딘가에 있겠지.”
연무정이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성의 없이 내뱉었다.
어떻게든 지금 사혼교가 진행 중인 일을 숨겨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최대한 시간이라도 끌어야만 하는 상황.
순간 실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량수불, 사제는 빈도와 달리 망설임이 없소.”
협박이었다. 아까도 나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너희들은 이미 염라대왕의 판결을 기다렸을 자들이 아니었느냐. 한마디로 허튼수작 부리면 이번엔 나도 안 말린다는 뜻을 조금은 직접적으로 내비친 도현도장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쭤보리다. 모산의 문주님과 문도들은 어디 있소이까?”
연무정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확실한 건 지금 이 자리에서 발악해봤자 다시 한번 유신에게 부하들과 함께 박살 난다는 것이었다.
‘저 애송이는 이미 초절정에 육박하는 강자다. 정면 대결은 자살행위. 차라리 심처로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상책인가…….’
“심처에서 파천비를 깨우는 중일 게다.”
깨운다?
도현도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파천비가 일반적인 신병이기와는 다른 주술적인 면이 강한 무기라는 것은 강호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깨우다니?
“파천비를 깨우다니요? 대체 파천비에 무엇이 잠들어 있기에……? 아니, 그보다 왜 모산파의 사람들이 파천비를 깨우고 있는 것이오?”
“본좌가 사혼교와 모산파, 파천비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를 해주지.”
“숨겨진 이야기 말이오?”
“그래. 사혼교와 모산의 비사를 말이다…….”
* * *
15년 전.
화르르르륵.
삼경이 조금 지난 시간. 호통깨나 치는 지역의 유지 정도나 살법한 거대한 장원이 화마에 휩싸여, 먼지와 재를 날리며 불타올랐다. 요화장이라는 이름의 장원이었다.
“찾아라. 숨이 붙어 있는 것은 가축 한 마리까지도 놓치지 마라.”
검은 복면의 야행복을 뒤집어쓴 수백의 무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두운 밤을 태울 듯한 수백 개의 횃불과 함께 사위를 누비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사, 살려…….”
촤아아악!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비정하게 휘둘러지는 칼날 앞에 생명의 불꽃들이 무더기로 사그라들었다.
“대주, 보고드립니다.”
“말해라.”
“아직 3세 이하의 여아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장원의 모든 인물을 주살 중이옵니다만…….”
야행복을 입은 한 명의 무사가 지휘관으로 보이는 무사에게 보고했다.
검은색의 야행복 일색인 무리에서 구분되는 빨간 머리끈을 매고 고색창연한 보검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찾아라. 금위제존위군께서 친히 지시하신 일이다. 실수는 용서치 않겠다.”
크진 않지만 작게, 그리고 넓게 울려 퍼지는 어두운 목소리. 마치 쇠가 갈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존명.”
지휘관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더욱더 수색에 박차를 가하는 야행복의 무리에, 장원의 방방곡곡을 누벼가며 숨소리가 느껴지는 곳에는 칼이 먼저 파고들었다.
처마 밑과 지붕 위까지 그야말로 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끼잉…….”
사람은 물론이오, 가축들조차 도륙이 되는 처참한 상황.
콰아아앙!
그때 장원의 외진 곳에 있는 전각이 부서지며 다섯의 흑의무사들이 장원의 후문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익~
장원을 수색하던 야행복의 무사들은 즉각 호각을 불었고, 그 신호의 맞춰서 속속들이 증원 병력이 도착했다.
흑의무사들은 흰 천으로 갓난아이들을 하나씩 동여매고 있었고, 빠른 속도로 장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쫓아라.”
필사적으로 도주를 감행하는 흑의무사들이었으나, 결국 다수의 야행복을 입은 무사들에게 따라잡혀 하나둘 생을 달리했고.
그들의 품에 있던 갓난아이들조차 운명의 손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대주, 보고드립니다.”
“결과는?”
“생존자는 전무, 오늘 일을 목격한 자 중에 숨이 붙어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흔적을 지우고 철수한다.”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