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41
41화. 주소천과 파천비
그것은 사소한 악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본녀에게 모든 걸 맡겨라. 본녀가 너를 무림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마.’
처음에는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에 무림의 여협을 꿈꾸는 평범한 여제자들처럼 영웅의 삶을 살던 여협이 나타나는 좋은 꿈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하루하루 꿈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괴로움이 그 크기를 불렸다.
처음에는 동화 같던 꿈이 점점 현실감을 더해가더니, 이제는 꿈속에서 보았던 여성의 감촉이 느껴질 정도로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아아아아……!”
파천비가 주소천의 품에 안긴 뒤로 처음 꿈에 나온 여인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 나타났고, 횟수가 늘어갈 때마다 주소천은 조금씩 야위어 갔다.
‘이리로 와라. 네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모두 이루게 해주마.’
“사라져! 제발……. 사라져!”
언젠가부터는 어렴풋이 들리던 말이 점점 또렷이 들리기 시작했고, 꿈에서 나타나던 여인이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거는 환각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소천이 17세가 되던 해.
평소와 같은 일과를 보내던 주소천에게 이변이 일어났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그녀의 꿈속에 나타나던 여고수, 악몽의 주인공이 살아있는 사람처럼 주소천의 눈앞에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렇게 수라마후의 의념이 주소천에게 닿았다.
현실에 꿈이 덧씌워졌다.
아니, 이건 더 이상 꿈 따위가 아니었다. 수라마후의 기억, 생각, 의지 모든 것들이 주소천을 잠식해 갔다.
* * *
“아, 아, 아아아악!!”
“소, 소천아!”
부적술을 수련하던 중 주소천이 갑자기 이상 증상을 보이며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자, 따뜻한 눈으로 제자를 지켜보던 소을도장이 화들짝 놀라 다가왔다.
“이건 강림소혼의 술?! 어찌 이런 일이 모산에서?”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은 잡귀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도가의 성지가 아닌가!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중의 문제였다. 당장 소을도장에게는 주소천의 안위가 먼저였다.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鬪子皆陣列前行).
소을도장이 허리춤에서 벽조목으로 만든 목검을 꺼내 들어 급하게 허공을 그음과 동시에 왼손으로 포박자의 수인을 맺었다.
“오호호호호호호.”
그러나 상당한 도력을 갖춘 소을도장의 퇴마주조차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소천아, 조금만 더 버텨다오.’
소을도장이 어떻게든 폭발하는 요기를 억누르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사이.
엄청난 요기를 느끼고 달려온 모산의 도인들이 주소천 근처로 모여들었다.
보현삼매야인(普賢三昧耶印) 대금강륜인(大金剛輪印).
외사자인(外獅子印) 내사자인(內獅子印) 외박인(外縛印) 내박인(內縛印).
지권인(智拳印) 일륜인(日輪印) 은형보병인(隱形寶甁印).
수십의 도사들이 수인을 맺으며 도문을 열창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모든 도력이 한곳에 모여 주소천을 향했다.
“무량수불.”
“갈(喝)!! 사악한 원령이여, 이곳을 떠나라!”
슈우우우우욱.
모산파의 도사들이 전력을 다해 외운 퇴마주의 기운이 주소천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붉은색과 푸른색의 기운이 주소천의 몸에서 교차로 나타나며 요사스러운 기운이 격렬히 저항하였지만, 아직은 힘이 모자랐는지 결국 다수의 도사들이 외치는 퇴마주에 요력은 그 기운을 잃었다.
털썩!
주소천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붉은색의 기운이 빠져나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동시에 그녀의 품속에서 붉은빛을 띠는 보석이 박힌 비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맑은 소리를 냈다.
“이럴 수가?! 어찌하여 파천비가 소천이의 품에서? 내 분명히 모산의 금지에 봉인해두었건만…….”
요사스러운 붉은 빛을 뿜어내는 파천비를 보며, 태을도장이 다급하게 소을도장을 다그쳤다.
“그날, 내 욕심이 소천이를…….”
“사제, 정신 차리게! 파천비. 파천비를 봉인해야 하네!”
소을도장이 자신을 자책하는 순간에도, 파천비는 사이한 기운을 뿜어내며 다시금 주소천을 점령하려 했다.
“지금 당장, 파천비의 봉인 의식을 거행하겠네.”
* * *
하지만, 모산파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천비를 완전히 봉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임시방편으로 폭주를 막아내긴 했지만, 언제 또 파천비가 폭주할지 몰라 이후 주소천과 모산파는 매 순간을 긴장 속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심신이 지쳐가던 모산파에게 사혼교에서 보낸 한 장의 서찰이 도착했다.
주소천에게 강림하려 하는 것은 본교의 15대 교주 수라마후 주약란의 혼.
매산곡의 심처에서 본교와 귀문의 힘을 합쳐 서로의 은원을 종결짓는 것이 어떠한가?
“장문 사형…….”
소을도장의 간절한 눈빛에 태을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게, 사제. 비록 빈도 역시 세속의 욕을 다 떨쳐내지 못하였지만, 비도 한 자루에 모산의 제자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걸세.”
그렇게 모산파와 사혼교는 매산곡의 심처에서 힘을 합쳐 파천비에 수라마후의 혼을 담아내기로 합의했다.
* * *
“허어, 모산파와 사혼교에 그런 비사가 있었단 말인가.”
수라마후의 혼과 파천비를 둘러싼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도현도장의 시름이 깊어졌다.
“잠시.”
“무슨 일인가 사제?”
“사형, 여기서 멈춰서야 할 거 같습니다.”
유신의 말에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도현도장의 걸음이 멈추자, 연무정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이윽고, 유신이 갑자기 몸을 돌려 지금껏 걸어왔던 방향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일운검(一雲劍).
일검무진(一劍舞進).
어느새 뽑힌 그의 검에 눈부신 강기가 형성되더니, 빛살이 번쩍였고.
끼아아아악.
아무것도 없는 단단한 돌벽에 검강이 부딪히자, 무언가 귀신이 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어두운 기운이 사라지며 조그마한 길이 드러났다.
“이쪽입니다. 사형.”
* * *
“사부님, 큰일이에요!”
사슴같이 크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소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소천아?”
“굉장한 고수가 이곳을 찾아냈어요.”
“그게 무슨 말이더냐, 그리고 그것을 네가 어찌 안단 말이냐?”
허리에 벽조목을 찬 소을도장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이상에야, 이곳을 찾아낼 정도의 고수라면 초절정고수 급의 감각을 가졌을 것이다.
‘헌데, 소천이가 그걸 어떻게?’
“그것이…….”
“괜찮다 소천아. 자세히 이야기해 보거라.”
“소녀가 리매(魑魅)를 불러서 부탁했었어요. 주변을 경계해달라고요.”
“리매를 말이더냐?”
리매란 혼령의 일종으로, 동물이나 사물에 깃든 원념 혹은 사념의 백(魄)이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탄생한 것이다.
인간의 영향을 받아 혼은 갖게 되었으나, 육체는 얻지 못해 요괴는 되지 못한 령(靈). 그것이 리매였다.
“네, 사부님.”
“허허, 빈도도 눈치채지 못하게 리매를 소환해 부릴 수 있다니. 놀랍구나.”
지금 상황에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자의 성취에 소을도장이 만족스러운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부님,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흠흠, 미안하구나. 그래 계속 이야기해 보거라.
“예, 사부님. 리매가 전해주기를. 음양이 완벽하게 조화된 용의 기운을 가진 자가 악을 제압하고 비밀통로에 접어들었다고 했어요.”
‘설마, 연무정 부교주가 누군가에게 제압당한 것인가?’
“리매가 공포에 떨고 있었어요. 자신은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해서 자세한 사항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그가 이곳을 찾아냈다는 말만 남기고 소멸되었어요…….”
소을도장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리매가 아무리 사람이 부릴 수 있는 령의 일종이라고 하여도 결코 잡귀 따위가 아니었다.
어지간한 원령 정도는 그야말로 씹어먹을 수 있는 강력한 혼령일진대, 그런 리매를 이리도 빠르게 소멸시켰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리매를 그렇게 쉽게 소멸시켰단 말이냐?”
그녀의 고개가 슬픈 듯이 끄덕여졌다. 아마도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다 소멸당한 리매가 가여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듯했다.
“음양의 조화와 용의 기운을 가진 자라……. 음양의 조화라면, 설마 무당인가?”
“사부님…….”
“괜찮다. 오히려 무당이라면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이야.”
“하오나…….”
“걱정 말거라. 슬슬 주술이 완성되어가는 것 같구나. 들어가자꾸나. 소천아.”
사이한 문양이 그려진 돌벽이 붉은빛을 뿜어냈다.
스르릉.
부드러운 마찰음과 함께 돌벽이 열렸고, 마치 저승의 문이 열리듯이 차갑고 사이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새어 나왔다.
“무량수불…….”
주소천이 먼저 돌벽 사이로 사라졌고, 도호를 외우고 허리에 찬 자줏빛의 목검을 뽑아 크게 휘두른 소을도장이 그 뒤를 따랐다.
저벅저벅.
잠시 후, 나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주소천과 소을도장이 있던 곳으로 무당과 사혼교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럼 협상을 마무리하도록 하지. 들어와라.”
연무정이 마음을 먹었는지 막혀있는 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 판관필을 빼 들어 예의 기묘한 붉은 기운을 바위벽에 방출하니 이변이 일어났다.
드르르르륵.
바위가 반으로 갈라지며 조금 전 주소천과 소을도장이 사라졌던 길이 나타났다.
“본좌가 앞장서도록 하지.”
연무정이 돌벽 사이로 걸음을 옮기며 유신과 도현도장을 향해 손짓했다.
‘경계를 늦추지 말게, 사제.’
‘예, 사형.’
어두운 길을 1각 정도 걷다 보니 갑자기 밝은 빛이 드러나며 넓은 실내가 드러났다.
“이게 대체……. 무량수불…….”
그곳의 모습은 도현도장과 유신의 눈이 휘둥그레지기에 충분했다.
아직 약관에 들지도 못해 보이는 소녀가 알 수 없는 주술의 한 가운데에 떠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가슴 앞에 모든 중원인이 찾고 있는 파천비가 붉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鬪子皆陣列前行)…….”
공동에는 모산파의 도사들이 경건하게 좌정하여 주문을 외우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혼교의 교인들이 무릎을 꿇고 사이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저 소녀가 주소천이다.”
유신과 도현도장의 귓가에 연무정의 목소리가 바늘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런…….”
유신이 금방이라도 주소천을 저 사이한 주술의 가운데에서 구해내려는 순간, 연무정이 비릿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금 저 소녀가 명옥소혼술(冥獄蘇魂術)의 중앙에서 벗어나는 순간, 소녀는 죽는다.”
“무슨 말씀이오?”
“본좌는 약속을 지켰다. 저기 모산의 문주와 제자들이 보이지 않더냐?”
연무정의 말대로 주소천을 기준으로 왼쪽에 자리한 모산의 문주와 제자들이 보였다.
“그럼 지금 진행되고 있는 주술이 일전에 말했던 수라마후의 혼을 파천비에 담아내는 일이오?”
“클클, 맞다. 그래서 지금 주소천은 물론이고 모산파와 사혼교도들 또한 움직일 수가 없다. 저들 중 하나의 몸에라도 충격이 가해진다면 모두 죽겠지.”
“지금 문도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시는 게요?”
도현도장의 분노를 연무정이 느물느물한 태도로 받아넘기며 말을 이었다.
“사혼판관. 본좌는 별호처럼 지금껏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무슨 뜻이오?”
“약속대로 모산파 문주의 목숨을 구해주려면 저 주술이 완성되어야 한다.”
“사형, 틀린 말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조금만 틀어진다면, 주술의 기운이 저들의 몸을 잠식할 것 같습니다.”
유달리 기운의 흐름에 민감한 유신이 신중한 어투로 도현도장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좋소. 저 주술이 끝나고 주소천이라는 소녀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소녀와 모산파 문인들의 신병은 우리가 맡겠소.”
흔들리던 도현도장의 표정이 결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