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수라마후의 재림
“사신혁?”
질문한 무인의 고개가 45도로 꺾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분명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암연백이 이리도 공손하게 대하는 인물이라면 대체…….
“마교의 인물이시오?”
사신혁이라는 인물의 등장에 궁금증을 참지 못해 호기롭게 앞으로 나선 사파의 무사였다.
그런데 불현듯 밀려오는 싸늘한 느낌에 무사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대를 존대로 바꿔 재차 물었다.
“마교요? 아닙니다. 그냥 동행 중이지요.”
“동행이라……. 대관절 어떤 위치에 계신 분이길래. 청해분타주는 물론, 천마교의 소교주와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이오?”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할지…….”
신혁이 애매한 미소와 함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대협,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처억.
암연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교의 무력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보다 칼이 앞서는 단체,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철혈의 율법을 가진 자들.
마교에 대한 풍문이 이곳에 모인 이들의 머릿속에 되새겨졌다.
“무량수불, 잠시 걸음을 멈춰주시겠소?”
지금까지 정사의 세력이 대치하는 상황을 이용해 아무도 매산곡의 내부로 들여보내지 않았던 모산의 제자들이었지만, 마교와 신혁의 출현으로 인해 교착상태가 무너지자 급히 나설 수밖에 없었다.
“모산의 제자인가?”
모산파 특유의 주술을 상징하는 부적과 목검을 허리에 찬 도사가 암연백에게 포권했다.
“모산의 선순이라하오.”
“본인는 마교의 청해분타를 책임지고 있는 암연백이오.”
언뜻 정중해 보이는 미소를 띠는 암연백이었지만, 그 눈빛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산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가…….’
“시주, 매산곡은 모산의 영역이오.”
암연백은 모산파 제자의 말에도 코를 긁으며, 느긋하고 태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강호의 도리를 따라주시길 청하는 바요.”
선순의 진중한 말에 암연백이 선순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뭘 바라는 것이오?
“무량수불…….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그거 나쁘지 않은 제안이구려. 좋소이다. 내 그리하리다.”
암연백의 말에 모산 제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단, 조건이 있소.”
“무엇이오? 빈도가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리하겠소.”
“파천비를 가져오시오.”
“파천비는 이곳에 없소이다. 어찌하여 사혼교의 보물을 여기서 찾는단 말이오!”
선순도인의 대답에 피식 웃은 암연백의 말투가 달라졌다.
“본인은 자네 같이 기개 있는 자를 싫어하지 않아. 그렇지만 자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무슨 말을?”
“옆에 대협이 계시지 않았다면 자네는 이미 시체가 되었을 것이란 말일세. 본좌는 결코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지금 협박하시는 것이오?!”
“대사형…….”
분기를 참지 못하고 부적에 손이 가는 선순의 소맷자락을 순수한 눈빛을 가진 도사가 붙잡았다.
‘참으셔야 합니다. 넉넉잡아 반 시진만 더 버티시면 됩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이들이 매산곡에 진입한다 한들 이미 사매의 주술은 끝나고 사혼교에서 파천비를 가져갔을 겁니다.’
“으음…….”
사제의 만류와 안타까움이 섞인 전음을 들은 선순이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는 천마교의 소교주도, 암연백도 아닌 괴룡이라는 저 자인가?’
“괴룡, 사신혁 대협이라 하시었소?”
선순이 정중히 포권하며 신혁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시주께서도 파천비를 찾으시는 것이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파천비가 이곳에 없다는 빈도의 말을 믿어주실 수는 없겠소?”
“도장님의 말씀은 알겠으나, 저는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그럼 빈도가 한 가지만 부탁을 드려도 되겠소?”
“무엇인가요?”
“시간을 조금만 주시오. 반 시진……. 아니, 2각이면 충분하오. 내부에 기별을 넣어 문주님께 허락을 구해보겠소이다. 설령 문주님의 답이 없더라도 2각 뒤에는 대협께 길을 열어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줄 수는 없겠소이까?”
선순이 생각하기에도 사제의 말대로 조금만 더 시간을 벌면 파천비는 이미 매산곡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선순의 말을 들은 암연백의 표정이 굳어졌다.
“괴룡, 굳이 시간을 주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루시아.’
[네, 오라버니.]‘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뭔가 있나 본데? 아스트랄 오브젝트의 특이 사항은?’
[아스트랄 파동이 강해지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오라버니의 접근에 자연적으로 반응하는 것인지는 불명이에요. 지금 스파이 버그들이 동굴의 내부를 수색 중이에요.]‘위치를 특정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군.’
[네.]‘좋아.’
“소교주님? 그리고 분타주님?”
신혁의 부름에 암연백과 위지천이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예, 대협.”
“예.”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암연백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소교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뜻에 따르겠습니다.”
암연백의 대답을 들은 신혁이 모산의 제자들을 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약간의 시간을 드리도록 하지요.”
* * *
붉은색의 빛과 함께 사이하고도 강렬한 요기가 발산되며 주술이 완성되었다.
파아아아앗!
그러자 붉은색의 빛이 사라지며 깨끗하고 시원한 시냇물과 같은 푸른색의 기운이 주소천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허억허억…….”
“하악, 하악…….”
털썩.
주술이 끝남과 동시에 모산파와 사혼교의 제자들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이 무릎을 꿇고 땅에 손을 짚었다.
“소천아, 정신이 드는 게냐? 어서 파천비를 손에서 놓거라.”
주술에 모든 도력과 공력을 쏟아 넣은 여파로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소을도장은 주소천에게 다가서며 파천비를 버릴 것을 재촉했다.
“으음……. 사부님……?”
“그래, 소천아 사부다. 내가 여기 있느니라.”
“사부……님…….”
“왜 그러느냐 소천아?”
“도, 도망치셔……. 아아아아악!”
푸욱! 퍼억!
갑자기 기세가 일변한 주소천이 소을도장의 가슴에 파천비를 찔러 넣고 걷어차자, 소을도장은 무방비로 당한 공격에 정신을 잃고 날아가 유신과 도현도장 발끝에 나뒹굴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영혼이 침식당하며 내는 고통에 찬 비명이 주소천에게서 흘러나왔다.
파아아아아앗!
시냇물처럼 맑게 흐르던 푸르른 기운이 급격하게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호호호호~”
요기를 가득 담은 웃음이 흘러나오며 주소천의 몸을 붉은 기운이 감쌌다.
“아니, 어찌 이런 일이……! 이보시오, 연무정 부교주. 이야기가 다르지 않소!”
그 모습을 본 도현도장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리쳤다.
“사형, 지금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쐐애애애액!
어느새 주소천의 손을 떠난 파천비가 눈에 비치지도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허공을 수놓으며, 주술을 마치고 숨을 헐떡거리는 모산파 제자들의 숨을 끊어놓기 시작했다.
“이기어비(理氣馭匕)?!”
도현도장이 쓰러져가는 모산의 제자들을 보며 검을 뽑으려는 순간, 유신이 움직였다.
“제가 막겠습니다.”
일운검(一雲劍).
일검무진(一劍舞進).
허공을 종횡무진하며 모산파 제자들을 도륙하던 파천비가 유신을 향해 날아왔지만, 거칠 것 없어 보이던 파천비의 행보도 유신의 일검에 기운을 잃고 다시 주소천의 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따앙!
파천비를 손에 든 주소천이 요사스럽고 색기가 가득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호호호, 젊은 아해가 무공이 제법이구나.”
“무량수불. 시주는 누구시오.”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생각한 도현도장이 앞으로 나섰다.
“호호호호, 과연 영력이 쌓인 도사인가? 본녀를 앞에 두고도 정신을 유지하다니, 대단하구나. 그래, 어디 본녀가 누구인지 한번 맞춰 보아라.”
주소천의 광오한 말에 도현도장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그대는…… 설마 사혼교의 15대 교주 수라마후 주약란이오?”
“눈치는 좋구나, 아이야.”
주소천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도현도장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사제.”
“예, 사형.”
“파천비를 조심하시게. 파천비에 베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현도장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며 유신이 한 걸음 나섰다.
“본녀와 대적하려는 게냐?”
“파사현정(破邪顯正). 악을 눈앞에 두고 지나칠 순 없습니다.”
유신이 공력을 일주천 시키자 강기가 유형화되며 찬란한 태극의 문양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질 거 같은 푸른 기운을 내뿜기 시작하는 유신의 태극현천강기가 발현된 것이었다.
“생각보다는 대단한 아해로구나.”
유신의 태극현천강기의 발현을 지켜본 주소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스스스스슥!
그리고 주변을 잠식하고 있던 붉은 기운이 줄어들더니, 이내 주소천의 몸속으로 회수되었다.
“사혼의 종들은 나 주약란의 명을 받들라.”
처억!
연무정을 위시한 모든 사혼교도들이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주약란의 명을 기다렸다.
“사혼의 염원을 이루리라. 세상에 널리 알리거라, 수라마후 주약란의 재림을.”
“존명.”
“사제, 막아야 하네.”
사혼교의 교도들이 일제히 매산곡의 출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고, 대경한 도현도장 역시 검을 빼 들었다.
만약 이들이 매산곡을 탈출하여 사도팔문에 주약란의 재림을 알린다면, 수라마후 주약란의 이름 아래 사도의 세력이 집결하며 강호에 큰 혼란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농후했다.
태극현천강기 제1식.
태극선강(太極線剛).
“하압!”
유신의 손에서 채찍 같은 강기의 선이 형성되어 길게 뿌려졌다.
하지만, 날카로운 강기의 발현에 주약란의 신형 역시 움직였다.
쉬이이이익!
공기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파천비가 날아와 사혼교도들을 향해 뻗어 나가던 유신의 태극선강과 충돌하였다.
서걱!
“오오오……. 사혼의 지존이시여.”
파천비에서 발산된 예리한 기운이 유신의 태극선강을 그대로 잘라버렸고 주약란의 신위를 목격한 사혼교도들이 용기백배하여 매산곡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아직, 한 수가 더 남았습니다.”
유신의 눈이 빛났다.
태극현천강기 제2식.
태극망강(太極網剛).
유신의 손에서 연속적으로 방출된 태극선강이 촘촘히 형성되며 마치 그물과 같은 형태를 이뤘다. 수십 개의 태극선강이 중첩된 듯한 모양이.
그러나 죽음의 강기 그물이 넓게 펼쳐지며 사혼교도들을 감싸려는 순간, 싸늘한 기운이 유신을 향해 쇄도했다.
“본녀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아이야.”
주소천, 아니 수라마후(修羅魔后) 주약란의 성명절기가 유신에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섭혼마라장(攝魂魔拏掌) 제1초.
소수귀현변(素手鬼現變).
파바바바방!
허공을 수 놓은 희고 여린 손이 태극망강의 그물을 잡아채며 땅바닥으로 내던져버렸는데, 그 손은 주먹이 되기도, 날카로운 수도가 되기도 하며 엄청난 변화와 함께 유신을 덮쳐왔다.
“핫!”
낭랑한 기합 소리와 함께 공력을 집중시킨 유신이 왼손을 펼쳐 허공을 짚고, 왼발은 반보 정도 앞으로 내밀고 발뒤꿈치를 들었다.
오른손의 손날을 세워 명치 앞에 둔 채로 살짝 몸을 흔드니, 태극권의 기수식이었다.
터억, 타다닷!
이윽고 유신은 태극권의 기수식을 응용한 동작으로 수라마후의 수많은 수영(手影)들을 깔끔하게 소멸시켰고, 그 모습에 수라마후마저 감탄을 터뜨렸다.
“오호라, 참으로 발군의 무재를 지녔구나, 아이야. 본녀가 강호에서 한창 활동할 때도 이 정도의 태극권을 구사하는 도사는 본 적이 없거늘, 정말로 본녀를 놀라게 하는구나.”
지금껏 본 적 없는 고수들의 격돌에, 적아를 막론하고 무인이라면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무얼 꾸물거리는 게냐.”
수라마후의 일갈에 놀란 사혼교도들의 이탈이 다시 가속화되었으나, 이번에는 유신 역시 눈앞의 수라마후를 의식하여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사형, 모산의 도우들을 부탁드립니다.”
“걱정 말게, 사제.”
유신과 수라마후가 본격적으로 공력을 끌어 올리며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