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47
47화. 각성
털썩.
주소천의 몸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리자 전투를 지켜보던 도현도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라마후 주약란은 어찌 된 것입니까?”
“죽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파천비에 머무를 수 없을 테니 곧 그 혼백이 소멸될 거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괴룡 시주, 빈도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소이까?”
“예, 말씀하시지요.”
“저기 모산파 소을도장님의 시신이 있습니다. 차마 같은 길을 걷던 무인을 두고 갈 수가 없군요. 해서…….”
도현도장의 말에 신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수습하겠습니다.”
신혁이 소을도장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주소천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매산곡 가득 고통에 몸부림치는 주약란의 비명을 토해냈다.
“꺄아아아아아악! 본녀가, 본녀가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주소천의 몸에서 붉은색의 기운이 빠져나와 일렁이는 형태를 이루었다.
“뺏을 몸이 없다는 말인가?!”
수라마후의 영혼이 고통에 찬 와중에도 어떻게든 빙의하기 위한 몸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사위를 살폈다.
유신과 도현도장의 몸은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도가의 내공을 쌓아 온 몸인지라 항마의 기운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신혁이라는 놈의 몸을 뺏는 것은 더더욱 어불성설이었다.
“이렇게 되면 다시 파천비에 갇히는 한이 있더라도 훗날을 모색할 수밖에…….”
결정을 내린 수라마후의 영혼이 파천비로 향했다.
스스슥.
수라마후의 붉은 기운이 파천비를 감싸며 스며들었다.
그런데 파천비에 스며든 직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주약란을 관통했다. 전과는 달랐다.
“아아아악! 이게 대체……?”
주약란의 영혼이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파천비의 특수한 기운에 당신이 기생했던 거라고. 제가 그 기운을 회수했으니, 이제 당신은 더 이상 파천비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루시아, CEC를 아스트랄 관측 모드로.’
신혁의 왼쪽 눈이 평소와는 다른 붉은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분석 결과 10초 안에 코드네임 : 주약란의 아스트랄체는 소멸될 것으로 판단되어요.]‘그래, 수고했다 루시아.’
“그럼, 부디 내세에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바랍니다. 수라마후 주약란.”
“아, 안돼에에에에에에!”
억지로 스며들었던 파천비에서 조금씩 붉은 기운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소멸의 시간이 임박한 것이다.
‘아직. 아직이다! 이렇게 된 이상!’
부우우웅~!
최후의 힘을 짜낸 주약란의 파천비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영혼이 흩어지는 와중에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신혁도 예상하지 못했다.
푸우우욱!
당황한 신혁이 미처 반응하지 못한 찰나, 빠른 속도로 움직인 파천비가 향한 곳은 머리가 반쯤 부서진 채로 숨을 거둔 소을도장의 심장이었다.
“귀검령(鬼劍靈)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훗날을 도모할 것이다. 본녀의 숙원을……. 원수를 갚지 못하고는 이대로 사라질 수 없음이야!”
소을도장의 심장에 박혀 든 파천비가 다시금 요사스러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아 제 죽음을 자각하지 못한 소을도장의 영혼을 이용해, 제 혼이 머무를 장소를 창조려는 수라마후의 마지막 주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끝까지 포기를 모르시는군요. 하긴, 악당은 악당다워야지요.”
씁쓸한 표정으로 신혁이 수라마후에게 걸음을 옮겼다.
처억!
그렇게 신혁이 파천비의 손잡이를 잡은 순간, 주소천은 가까스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사, 사부님?!’
파아아아앗!
“당신이 지은 죗값은 당신의 영혼으로 받아가겠습니다. 이만 제 에너지가 되십시오.”
사부의 심장에 꽂혀 있는 파천비를 본 충격에 다시금 주소천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금 그녀의 뇌리에 박힌 것은 처참한 모습의 사부와 그 심장에 파천비를 박아넣은 신혁 그리고 죗값을 치르라는 목소리뿐이었다.
“아, 안돼에에에에에!”
처절한 수라마후의 비명이 공동에 울려 퍼졌다. 그 비명을 잠식시키듯 신혁의 몸에서 푸른빛이 솟구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빛이 일었고, 푸른빛에 휩싸인 파천비가 그 빛을 잃었다.
쑤욱.
씁쓸한 표정으로 신혁이 소을도인의 심장에서 파천비를 회수했다.
그리고 도현도장의 품에 있던 주소천의 심장이 사부의 죽음을 목격함과 동시에 급격히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사부님……. 소을 사부님…….’
그녀가 아버지처럼 따르던 인자한 사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자의 보잘것없는 영혼을 태워서라도 사부님의 한을 풀어드리겠어요.’
[삐삐삐삐삐삐.]신혁의 귓가에 요란한 경보음이 울려 퍼지며 루시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피하셔야 해요. 크리스탈 님의 아스트랄에 40%에 육박하는 아스트랄 파동이 코드네임 : 주소천에게서 감지되었어요!]‘40%?! 그 정도의 아스트랄 에너지가 왜 갑자기?’
[크리스탈 님의 아스트랄 에너지가 코드네임 : 주소천에게도 상당량 흡수되어 있던 것 같아요. 수라마후의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잠재되어 있던 아스트랄 에너지가 1차 충격을 받았고, 사령관님의 아스트랄 에너지에 의해 2차 충격을 받아 각성한 것으로 추측되어요. 곧 각성한 아스트랄 에너지의 폭발이 예상돼요!]‘오페라.’
[Copy that. S4 위성 재가동 시퀀스 시작. 아스트랄 에너지의 흡수로 인하여 재가동 시까지 약 5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이런 빌어먹을.’
신혁의 머리에서 잊고 있던 ‘위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도현도장님, 뛰십시오. 매산곡의 출구로 나가셔야 합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곧 이곳에 큰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제가 여기 남아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만 도현도장님과 유신 도사님의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유신 도사님을 부축하여 이동하십시오. 서두르셔야 합니다.”
“무량수불, 알겠소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신혁의 다급한 말투에 도현도장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신을 둘러메고 매산곡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 *
“계속 이야기해 보시지요.”
암연백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태을도장을 재촉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주술을 익힌 자가 술법을 사용하면 자신의 혼을 담아 둘 수 있는 법기로 사용할 수도 있소만, 파천비의 주된 능력은 주술력의 증폭이외다.”
“어디서 거짓을 고하는 것이냐!”
연무정이 대노하여 태을도장의 말을 잘랐다.
“내 사혼교와의 협약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고 생각하시오? 모산파 나름대로 파천비에 대해 조사해 보았지만, 파천비에는 베인 자를 조종하는 능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소. 아마 사혼교의 간악한 사술을 파천비를 이용하여 증폭한 것이겠지.”
“설령 그렇다 한들 수라마후께서 재림하시고 파천비를 손에 넣으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느냐?!”
“소천이는 빈도가 지금까지 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력이 강한 아이외다. 잠시 수라마후에게 몸을 빼앗겼다지만, 그 아이를 완전히 잠식하는 것은 불가능하오.”
연무정과 태을도장의 언쟁이 계속될수록 이를 지켜보던 세력들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그렇다면 수라마후께서 완전히 재림하신 건 아니라는 말인가?”
“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군.”
사파의 세력들 역시 당장 연무정의 말만을 믿고 모든 세력과 대적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수라마후가 정말 깨어난 거라면, 이곳의 인원들만으로는 절대 막아낼 수 없을 것이오.”
“당장 후퇴하여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오. 수라마후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인물. 과거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상당히 부풀려진 부분도 있을 것이오.”
정파와 사파의 세력들 역시 여러 가지 의견이 갈리며,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
“갈!”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운 가운데 마교의 대표인 암연백이 노도와 같은 일갈을 내뱉었다.
“어이가 없군. 근래에 본교가 아무리 은인자중하였다곤 하나, 감히 본교를 앞에 두고도 이토록 날뛸 수 있는 자들이 있을 줄이야.”
현재 모인 세력 중 단일 세력으로는 가장 강력한 마교가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암연백에게 집중되었다.
“더 들어줄 것도 없다. 파천비든 수라마후든 죽이고 빼앗으면 그만인 것을.”
일촉즉발의 분위기에 마교가 먼저 움직였다.
암연백의 명이 떨어지는 순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들 이들.
마교는 승산이고 피해고 그런 걸 고려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강하면 취할 것이고, 약하면 부서질 뿐. 그것이 마교였다.
매산곡에 모여든 정사의 세력과 사혼교, 모산파의 제자들마저 암연백의 다음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그때, 매산곡의 입구에서 도현도장이 젊은 도사를 부축한 채 나타났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저분은 도현도장님이 아니신가?”
“양의검군?!”
“무당의 12장로 중 한 명이 왜 이곳에…….”
대체 매산곡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군중은 이제 저 안에서 누가 나와도 더 놀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도현도장과 무룡?! 어찌하여 저들이 매산곡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심지어 저리 큰 부상이라니, 어느 누가 무룡에게 저만한 부상을 입힐 수 있단 말인가? 설마 조금 전에 매산곡에 진입한 괴룡이? 아니, 괴룡은 결코 그럴 인물이 아니다. 그럼 대체 누가……?’
암연백은 유신과 도현도장을 확인하자, 더욱 매산곡 내부의 상황을 추측할 수가 없었다.
‘대체 매산곡 내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이냐…….’
콰아아아아아앙!
암연백의 고민이 깊어지던 중, 굉음과 함께 매산곡 내부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오더니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날아왔다.
꽈앙!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매산곡 안쪽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거친 충격음과 함께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며 땅속에 처박혔다.
꽈르르르르릉!
그리고 천하의 모든 벽력탄을 모아 폭파시킨 듯 매산곡이 부서지며 입구의 무너진 잔해들이 뭉게뭉게 먼지를 피워올렸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매산곡이 폭발하다니, 여기가 화산지대였나?”
“지금 날아와서 땅에 처박힌 저건 또 뭐야?”
퍼어어엉!
군중들이 놀랄 새도 없이 이번에는 그들의 앞 깊게 파인 구덩이에서 폭음과 함께 흙먼지를 뒤집어쓴 인형이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그대로 허공을 가로질러 매산곡의 입구로 향하던 괴인은 곧 뭔가 생각난 듯 그대로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
“이럴 수가……. 능공천상제(凌空天上梯)?”
“궁신탄영(弓身彈影)을 능공허도(凌空虛渡)의 수법으로?”
신혁의 역중력 시스템을 처음 본 정사마의 무인들이 각자가 아는 무공지식을 총동원해 그 보법을 유추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생각에 저 괴인은 보법만으로도 최소 절정의 극은 가볍게 돌파한 고수였다.
“저건……?”
“괴룡?”
매산곡에서 무언가가 튕겨 날아올 때부터 설마 하는 마음에 구덩이를 주시하고 있던 도현도장과 암연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흙먼지를 뒤집어썼다지만, 괴인의 정체는 분명 괴룡이었다.
“이런, 이런.”
허공에서 흙먼지를 툭툭 털던 신혁이 낭패라는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투두둑.
흙먼지와 함께 신혁의 상징과도 같은 A4 위성 세 기가 부서져 내렸다. 항상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이던 구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암연백과 도현도장만은 그 구슬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럴 수가! 괴룡의 구슬이? 어주술의 기운이 담긴 구슬을 대체 누가 부쉈단 말인가?!”
“무량수불……. 설마 주소천이라는 아이가?”
그들은 이 믿기 어려운 광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S4 위성의 활성화는?’
[현재 82%입니다.]퍼어어엉!
[적성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 코드네임 : 주소천이 접근합니다.]“이건 또 뭐야?!”
“갑자기 무슨 폭발이…….”
반쯤 무너진 매산곡의 입구가 다시 한번 폭발하며 돌덩어리가 사방으로 흩날렸고, 앳된 얼굴의 소녀가 그 사이로 나타났다.
“소, 소천아?!”
태을도장을 위시한 모산의 제자들이 반가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감정을 가득 담아 그녀를 불렀으나, 귀화로 불타오르는 그녀의 눈에는 오로지 신혁만이 맺혀있었다.
“사부님의 원수……. 살려두지 않겠다.”
소녀의 외형과는 다르게 그 표정과 음색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