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재계약
“만나서 반갑소. 나는 대명제국의 세자 주윤문이오.”
“반가워요.”
생긋 미소 짓는 유시아. 일국의 세자를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생각할 때 다소 불경한 태도였으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주윤문마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눈이 풀렸는데, 이 상황에 누가 나서겠나 싶었다.
‘루시아, 적당히 하고 의천검이나 살펴보지?’
‘치잇, 알겠어요 오라버니.’
“또 뵙는군요.”
가볍게 이야기하며 걸어오는 사신혁.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례하다며 길길이 날뛰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유시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그를 저지하는 자가 없었다.
“그렇구려. 공의 덕으로 나와 신하들이 위기를 모면하였소.”
“덕이라기보다는 계약이지요.”
“하하, 그것 또한 틀리지 않은 말이오. 그래, 약속을 지키라는 말이겠지.”
주윤문의 말에 신혁이 씨익 미소 지었다.
“본 세자는 신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오. 금의위장.”
“예, 전하.”
주윤문의 부름에 형관오가 앞으로 나서며 예를 갖췄다.
“의천검을 가져오라.”
주윤문의 말에 문관들의 몸이 떨렸으나 이미 한차례 호통을 들은 뒤라 감히 나서지는 못하였다.
“예, 전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형관오가 조심스럽게 가마 속에 보관되어있던 의천검을 꺼내어 공손히 주윤문에게 바쳤다.
스르릉.
무공을 전혀 모르는 주윤문이 발검하였으나, 절정의 검수가 뽑는 것처럼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의천검이 백일하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스트랄 에너지 반응 체크. 히든 포스 에너지 반응 체크.’
의천검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루시아의 시야에 들어온 에너지의 흐름. 의천검과 주윤문의 몸에서 아스트랄 파동이 연결되며 신혁과 루시아 이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루시아.’
‘예, 오라버니.’
‘아스트랄 에너지 함량은?’
‘5.67%. 파천비보다 조금 더 높게 측정되었어요.’
‘좋아. 고무적인 일이군.’
“자, 받으시오.”
그대로 아무 미련 없이 신혁에게 의천검을 건네는 주윤문. 정말 눈곱만치도 아깝다는 느낌이 없는 사내다운 태도였다.
‘루시아.’
‘예, 오라버니. 의천검이 확실해요. 크리스탈 님의 아스트랄 반응도 확인되었구요.’
“좋은 거래였습니다. 서로가 성실하게 계약 내용을 이행한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듭니다.”
“하하, 본 세자도 좋은 거래였다고 생각하오. 헌데 말이오, 신혁 선생.”
주윤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런 주윤문의 태도에 신혁이 중요한 말인가 싶어 주윤문과 눈을 맞췄다.
“나와 다시 한번 계약하지 않으시겠소?”
“재계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신혁이 슬쩍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미소 지었다.
“이것 참, 제 서비스……. 아니, 용역이 마음에 드셨나 보군요.”
“하하,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요.”
“좋습니다. 고객의 제안 정도는 들어볼 만하지요.”
신혁이 주윤문에게 정중하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호위를 원하오.”
“호위라 하심은?”
“나와 함께 남경으로 갔으면 하오. 물론 전과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대가 우.리.들을 지켜줄 거라 믿소.”
“이거 참…….”
신혁이 쓸어올린 앞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렸다.
“쉽지 않은 일이군요.”
신혁의 말은 타당했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목적지인 청해까지는 그리 멀지는 않았다. 그러나 청해에서 남경까지는 아주 먼 길이었고, 적들이 습격할 기회도 많아질 거라는 의미였다.
“이번에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어야 합니까?”
“물론이오. 선생의 능력이라면 어려울지언정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소만?”
“뭐, 그렇긴 합니다만…….”
슬쩍 말끝을 흐리는 신혁을 보며 주윤문이 노련한 태도로 못을 박았다.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하리다. 의천검에 버금가는 보물을 하사하겠소.”
쿠웅!
“전하! 아니 되옵니다. 이미 의천검만으로도…….”
“그렇사옵니다 전하. 의천검에 버금가는 보물이라니요. 그런 보물이 있을 리가…….”
“설마 그걸……?”
주윤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문관들이 앞다투어 의견을 피력하였다. 의천검만으로도 천하의 기보를 쥐여준 것인데, 그에 버금가는 보물이라면 단 하나뿐이지 않은가.
“그건 조금 흥미가 당기는군요. 실례가 아니라면 그 보물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대대로 황가에 전해 내려오는 용신주(龍神珠)라는 보물이오.”
“용신주(龍神珠)? 구슬인가요?”
“그렇소.”
신혁이 슬쩍 유시아를 곁눈질했다. 용신주라면 분명히 윤제가 언급한 십대기보 중 황궁에 있다는 그것일 확률이 높았다.
‘루시아.’
‘네 오라버니.’
‘윤제가 이야기한 용신주를 말하는 것 같은데, 맞겠지?’
‘소녀의 생각도 그러하여요.’
‘최소한의 확인 작업은 필요하지 않을까?’
‘알겠어요, 제게 맡기세요.’
유시아가 살포시 걸음을 옮겨 주윤문의 앞에 섰다.
“전하.”
“…….”
유시아의 단아하면서도 뇌쇄적인 눈빛과 몽환적이면서도 또렷한 목소리에 주윤문이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자에게 홀린 남자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가 궁금하다면 지금의 주윤문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크흠…….”
넋이 나간 주윤문을 보다 못한 형관오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왜 그러시오 소저. 아니, 내총관.”
“소녀,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요.”
“말해보시오. 본 세자가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답변해 드리겠소.”
“용신주라는 게 어떤 구슬이길래 의천검과 같은 보물이라는 건가요?”
“감히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보물이지 않겠소. 역대 원의 황제들이 대를 이어 물려준 기보가 의천검이라면, 용신주는 역대 황후들의 손을 거쳐, 세자가 장성하면 건네주어 세자빈이 될 여인에게 하사하는 신물이니 말이오.”
“답변에 감사드려요 전하.”
윤제가 말했던 용신주의 정보와 일치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유시아와 신혁을 바라본 주윤문이 재차 물었다.
“자, 그러면 신혁 선생. 어찌하겠소. 내 제안을, 아니 나와 다시 한번 계약하시겠소? 대가는 들었다시피 용신주요.”
주윤문의 말에 잠자코 있던 문관들이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는지 또다시 반대하고 나섰다.
“전하!”
“또 무슨 할 말이 있소?”
짜증이 섞인 주윤문의 표정에 문관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어디서나 눈치 없는 자는 한 명씩 있었다.
“전하, 신 정계정 아뢰옵니다.”
“후우…….”
주윤문이 정계정이라 밝힌 문관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이야기해보시오.”
“전하 의천검과 용신주는 단순히 좋은 기보인 것이 아니라 대대로 황실을 상징해온 보물이옵니다. 이미 의천검까지 하사하셨사온데 용신주까지 하사하신다는 것은…….”
“결론만 말하시오.”
주윤문의 말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아마도 심기가 매우 불편한 듯하였다. 그러나 그런 눈치가 있는 자라면 지금 상황에 앞에 나서서 의견을 피력했겠는가.
“예, 그것은 무리한 조건입니다. 의천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소신과 여러 중신들의 의견입니다.”
“큭…… 크크크…….”
어이가 없었는지 주윤문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저, 전하?”
“첫째, 그럼 경이 나를 비롯한 이곳의 모든 인원을 무사히 황궁으로 귀환시킬 방법을 말해보시오.”
“…….”
“둘째,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있소? 아, 물론 있을 수도 있겠지요. 황상에 대한 충성, 부모에 대한 효 뭐 그 외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말이오, 정공.”
조목조목 정계정의 의견을 반대하던 주윤문이 정색했다.
“예, 전하. 신 경청하겠나이다.”
“그대가 감히 나의 목숨과 한낱 물건을 저울질하는 겐가?”
평범한 청년 같은 주윤문의 몸에서 주원장과 유사한 기도가 뿜어져 나왔다.
우우웅!
[아스트랄 에너지 반응 체크. 의천검의 아스트랄 파동이 공명합니다.]“그대는 모시는 주군의 뜻을 타당한 대안도, 합당한 뜻도 없이 반대하며 꺾으려 하였다.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는가?”
“주, 죽여주시옵소서…….”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정계정이 오체투지 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저, 전하…….”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전하, 정계정이 위급한 상황에서 한 실언이니 부디…….”
여기서 정계정이 처벌을 받는다면 그와 같은 배를 탄 문관들 또한 곱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유야무야 정계정만 처벌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무사히 황실에 복귀하고 나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지금 정계정을 옹호하는가?”
문관들의 태도는 주윤문을 달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더 그의 화를 돋웠다. 문관들은 깨달았다. 주윤문 또한 주 씨의 후손. 난세의 간웅이자 절세의 효웅이라 불리는 주원장의 직계혈통이었음을 말이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인가.’
형관오가 주윤문의 서릿발 같은 기도를 보며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늘 주윤문의 주위를 맴도는 어중이떠중이 같은 문관들이 눈에 거슬리던 그였다. 깊은 지혜를 가진 자는 없고, 자신과 가문의 영달을 위해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간신들만 가득했다. 그런 와중에 주윤문이 세자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니, 감개가 무량한 형관오였다.
“경들이 본 세자를 시험하는가?”
주윤문의 감정이 드디어 폭발 직전까지 몰렸다. 그야말로 참고 참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 학문은 얕아도 눈치 하나만은 깊고도 깊은 문관들이었다.
“전하, 죽여주시옵소서.”
“송구하옵니다 전하!”
“백번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죽여주시옵소서!”
“흠흠, 세자전하?”
상황을 지켜보던 신혁이 헛기침을 하며 주윤문을 불렀다. 저게 죽을죄인가 싶은 의문이 들었으나 주윤문과 신하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니 꽤나 상황이 심각해 보이는 것이, 시간이 얼마나 더 지체될지 알 수가 없었다.
“미안하오. 내 못난 꼴을 보였구려.”
신혁과 유시아의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 주윤문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저로 인해 생긴 일이니 이만 화를 푸시고 계약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심이 어떨런지요?”
신혁은 정말 시간이 아까워서 한 말이었지만, 엎드려서 벌벌 떨던 문관들은 그야말로 신혁이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고맙소 사신혁 선생. 내 언젠가 반드시 보은하겠소!’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고 비록 유학이 아닐지라도 글깨나 읽으신 분이실 게야. 암, 그렇고말고.”
본의 아니게 문관들의 마음에 은혜를 새긴 신혁이었다.
“좋소, 그러면 조금 전의 제안대로 용신주를 계약의 보수로 걸겠소. 받아들이시겠소?”
“좋습니다. 현 시간부터 제가 안전하게 남경까지 모셔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