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노왕
“신혁 선생.”
“이제 좀 적응이 되십니까?”
“정말 놀랍소.”
“생각보다 적응이 빠르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금의위장님은?”
“하하……. 아무래도 그는 이곳이 불편한 듯하군요.”
어느새 비행에 대한 적응을 마치고 여유롭게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던 주윤문이 신혁에게 말했다.
“예, 제가 봐도 그런 듯하군요.”
신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는 형관오를 바라보았다.
“절정고수도 고소공포증이 있을 수 있군요.”
“어머, 오라버니. 그야 당연하죠. 본래 공포증이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그만, 거기까지.”
루시아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랐기에 신혁이 루시아의 말을 끊었다.
“유시아, 차라도 한 잔 내오는 게 어떨까?”
“네. 뭐로 준비해 드릴까요?”
“다들 안 드셔 보셨을 시원한 카페모카나 카라멜마끼아또는 어떨까?”
“네, 오라버니 준비하겠어요.”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루시아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주윤문이 본론을 꺼냈다.
“이렇게 빠르고 편안하게 또 아무 일 없이 남경에 도착하게 될 줄 몰랐소. 선생의 도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괜찮습니다. 모든 계약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하는 것이니까요.”
“하하, 참으로 옳은 말이오. 가끔 보면 신혁 선생의 말에 엄청난 세월이 녹아있는 듯한 현기가 느껴지는구려.”
신혁이 살던 시대에 있는 유명한 법조문 중의 하나였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주윤문의 감탄에 신혁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계약의 조건인 용신주와 더불어 경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 힘이 닿는 대로 이루어주겠소. 물건을 구해달라면 최대한 구해줄 것이오, 벼슬을 달라면 당연히 그리해줄 것을 약속하오. 해서 내 부탁을 하나 더 할까 하오.”
“부탁이요?”
“당분간 황궁에 머물며 나를 호위해 주시오.”
“지금 저기 계신 금의위장님과 같은 고수도 여럿 계실 테고, 무엇보다 금위제존위군이라는 분이 계실 터인데, 굳이 제 호위가 필요할까요?”
신혁의 말은 상당히 타당한 의견이었다. 주윤문의 안방과도 같은 황궁에서 왜 그의 호위가 필요하단 말일까?
“물론 평상시라면 신혁 선생의 말씀이 옳겠지요. 그러나 곧 있으면 본 세자의 즉위식이 있을 것이오.”
“그 말은……?”
“그렇소. 본인이 대명제국의 황위에 오른다는 말이지요.”
“그럼 그전에 일을 벌이려는 적대세력들이 본격적인 마수를 뻗치겠군요.”
신혁의 말에 주윤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역시 신혁 선생. 영민하시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럼 계약의 기간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선생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드릴 테니 제 곁에 머물러 달라 청하고 싶소만…….”
“불가합니다.”
누구나 혹할만한 주윤문의 제안을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거절하는 신혁이었다.
“예상했던 바요.”
그런 신혁의 대답에 주윤문이 여유를 잃지 않고 말했다.
“허면, 본 세자의 즉위식이 끝날 때까지는 어떻소?”
“계약의 기간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군요. 그 즉위식이 당장 내일이 될지 일 년 후가 될지는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건…… 신혁 선생의 말이 맞소.”
그동안 신혁과 같이 있으면서 여러 가지 사건을 겪었기 때문인지 신혁의 성품을 어느 정도 파악한 주윤문이 순순히 신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딱 3개월. 3개월만 내 곁을 지켜주시오. 물론 3개월 이전에 본 세자의 즉위식이 끝난다면, 기간이 채워지지 않았더라도 계약을 종료하는 것으로 하겠소. 어떻소?”
“흐음…….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보수는 아까 이야기한 대로 하리다.”
“일단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죠. 슬슬 황궁에 도착합니다.”
신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함 내에 빅토리노의 안내 음성이 울려 퍼졌다.
[본 수송선은 지금부터 2각 뒤 남경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착륙지점은 주윤문 전하의 세자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착륙 예정 시간 반각 전까지 승객 여러분은 자리에 착석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어머나~ 차 한잔하고 다 같이 내려가면 드디어 황궁이군요.”
어느새 나타난 루시아가 한 손에 아기자기한 분홍색의 쟁반과 그 위의 올려진 네 개의 찻잔을 주윤문과 형관오 그리고 신혁과 자신의 앞에 놓으며 미소 지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군요.”
[경고,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 카테고리 등급 절정고수 두 명을 비롯한 병력이 착륙지점에 집결해 있습니다.]가볍게 티타임을 즐기려던 신혁과 일행에게 오페라의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미확인 개체입니다.]“스크린.”
촤아악!
신혁의 명령과 동시에 수송선이 이륙할 때 유시아의 영상이 출력되던 스크린이 다시 한번 펼쳐지며 착륙지점인 주윤문의 세자궁을 비추었다.
검과 창으로 무장한 백여 명의 무사들과 그 선두에서 가마에 앉아 건방진 표정으로 반쯤 누워있는 사내.
“주단 숙부?”
형관오와 주윤문의 달갑지 않은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신혁이 손짓으로 조금 더 스크린을 확대할 것을 지시하였고, 가운데 가마의 사내를 중심으로 스크린이 확대되었다.
“아시는 분입니까?”
“노왕 주단. 저의 숙부이자 대명의 번왕 중 한 명입니다.”
“일단 내려가시지요.”
“신혁 선생, 잠시 기다려주시지요.”
착륙 명령을 내리려는 신혁을 형관오가 다급히 제지하였다.
“무슨 문제라도?”
“혹시나 저들이 철선을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글쎄요. 그게 얼마나 피해를 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대가는 확실히 치러야겠지요?”
“그렇다면 저를 먼저 보내주실 수 없겠습니까? 제가 먼저 가서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착륙할 때 수송선이 공격당하여 주윤문의 안위에 문제가 생길까 봐 급하게 나선 형관오였다.
“예, 그럼 저와 같이 내려가시지요.”
* * *
“노왕 전하.”
노왕 주단. 주원장의 열 번째 아들로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인지 다른 형제들과 달리 뒤를 보지 않는 급한 성격과 과격한 행동이 구설수에 오르는 번왕이 바로 그였다.
“무슨 일이냐?”
가마에 앉아 황궁의 1성문을 향해 나아가던 그의 입에서 짜증이 가득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를 부른 문관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2성문으로 우회하여야 할 듯하옵니다.”
“지금 본왕의 길을 틀라는 말이냐?”
“송구하옵니다. 그러나…….”
노왕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솟았다. 짜증이 솟구쳐오르며 앞에 있는 자의 목을 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노왕이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야.”
노왕의 표정을 본 문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여, 연왕 전하께서 1성문으로 향하셨다 하옵니다. 하여…….”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날뛰는 노왕 주단이 꺼리는 인간이 딱 네 명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황제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홍무제 주원장이었고, 주원장을 제외한 그 누구의 명도 부탁도 듣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금위제존위군 진강전, 그리고 나머지 둘이 바로 그의 형인 연왕 주체와 아우인 영왕 주권이었다.
“빌어먹을…….”
퍼억!
욕설과 함께 노왕이 가마에서 그대로 발길질을 하며 문관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가!”
“크으윽……. 주, 죽여주시옵소서!”
코피를 쏟으며 바닥에 나뒹굴던 문관이 그대로 엎드려 소리쳤다. 그 모습에 조금은 화가 누그러졌는지 노왕이 한층 노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2성문으로 방향을 틀어라.”
“예, 전하.”
“그리고, 곽준과 이광을 비롯한 일백의 호위대를 호출하도록 하라.”
노왕의 명령에 그를 지척에서 보좌하던 문관이 코피를 흘리며 황급히 대답하였다.
“하오나…….”
“어차피 연왕이 먼저 수백의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궁에 들었을 터, 그렇다면 나 또한 최소한의 호위 병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황제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황궁에 수백의 호위 병력을 대동하고 입장할 수 있는 자는 극소수였고, 당연히 그중에 노왕은 포함되지 않았다. 연왕과 영왕이야 그 지닌바 권세와 실력, 그리고 군사력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었고 황손 주윤문은 대명의 차기 지존으로 그럴 자격이 있었지만, 문관의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노왕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문관이 차마 그 사실을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말끝을 흐리며 간절한 눈빛으로 노왕에게 호소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협박뿐이었다.
“한 번만 더 본왕의 말에 의문을 품는다면 혀를 뽑아놓겠다.”
곽준과 이광은 노왕이 애지중지하는 절정고수급의 무장들이었고, 일백의 호위대는 노왕이 온갖 수단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끌어모은 일류무사 백 명이었다.
“충!”
문관이 큰 소리로 복명복창하며 어디론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노왕이 다시금 그를 불렀다.
“잠깐.”
짧은 순간 연왕으로 인해 실추된 자신의 자존심과 실리를 동시에 챙길 묘책이 생각난 노왕이었다.
“예, 전하. 하명하시옵소서.”
“지금 세자의 궁은 비었으렷다?”
“그러하옵니다.”
“좋다. 본왕은 비어있는 세자궁에서 연왕의 알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노라. 호위병들도 세자궁으로 집합시키도록 하라.”
정말 할 말이 많고도 많은 문관이었지만, 법과 이상은 멀고 주먹과 칼은 눈앞에 있었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충!”
“가자.”
그의 명에 따라 다시 가마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2각쯤 나아갔을까, 노왕의 가마가 주윤문의 처소에 다다랐을 즈음에 가마를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드디어 왔는가.”
노왕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걸렸다. 그가 부른 호위 병력이 나는 듯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노왕 전하를 뵙습니다.”
노왕의 앞에 부복하며 마치 한 사람이 말하듯이 복창하는 무사들을 보며 노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어나라.”
“망극하옵니다.”
노왕이 아는 주윤문의 호위무사 중 가장 강한 자는 형관오였고, 그나마도 절정고수는 그 하나뿐이었다. 물론 황제가 살아있는 이상 황궁에서 주윤문을 어찌할 수는 없으나, 아랫것들쯤이야 얼마든지 망가뜨릴 수도 있다 생각하는 노왕이었다.
“곽준, 이광. 앞장서라.”
“충!”
우렁찬 대답과 함께 몸을 돌려 주윤문의 처소에 발을 디딘 노왕의 무리. 주윤문의 앞마당이자 그가 병사들의 열병을 즐기는 넓은 연무장의 한 가운데에 가마를 내려놓고 차양막까지 설치한 노왕이 느긋하게 연왕의 알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 저건?!”
곽준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그런 곽준의 반응에 그의 동료인 이광 역시 곽준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경악에 찬 한마디를 내뱉었다.
“능, 능공천상제?! 게다가 격공섭물로 사람 하나를 달고서?!”
그들의 놀라운 반응에 노왕을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고, 그들은 보았다. 건방질 정도로 잘생긴 사내 하나가 형관오로 추측되는 사람과 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