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67
67화. 도발
“누구냐!”
노왕을 대신하여 곽준이 소리쳤다.
처억.
그러나 아무 대답 없이 사뿐히 바닥에 내려서는 의문의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뒤이어 안색이 창백해진 형관오가 내려섰다.
“노왕 전하를 뵙습니다.”
창백한 표정의 형관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노왕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체투지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허리라도 깊숙이 숙일 줄 알았다. 그런데 절도 있는 군례로 끝나다니. 노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
무언가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딱히 명분이 없었다. 형관오가 노왕의 거처로 찾아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가 세자인 주윤문의 거처를 무단으로 점거한 상황이었으며, 자신보다 한 끗발 위인 주윤문의 수신호위에게 당장 무릎을 꿇으라 소리칠 수도 없었다.
‘이놈……. 언제고 네놈의 무릎이 얼마나 단단한지 내 친히 쇠몽둥이로 시험해 볼 것이야.’
부글부글 끓는 화를 억누르는 노왕의 눈에, 그제야 자신들을 놀라게 했던 정체불명의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네 놈은 누구냐?”
“…….”
“감히, 본왕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저한테 하신 말이었습니까?”
그제야 짧은 감탄사와 함께 자신을 가리키며 나 불렀냐는 듯한 표정으로 노왕을 바라보는 괴인이었다.
“이이…….”
분을 참지 못하고 가마의 손잡이를 꽉 움켜쥔 노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이 황제와 연왕, 영왕 이외의 인물에게 언제 이런 무시를 당해봤단 말인가.
“네, 이놈 감히 노왕 전하께서 몇 번이나 물어봐야겠느냐!”
결국 노왕의 눈치를 살피던 문관 하나가 분기탱천하여 나섰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같은 출신이라도 한 분 한 분의 성품이 정말 다르군요. 예의가 바르고 덕이 있으신 분도 있는 반면에 첫 대면에 반말부터 지껄이는 자도 있으니까요.”
“가, 감히?!”
노왕보다 그 말을 들은 문관들이 더욱더 분기탱천하여 부들거렸다. 물론 그렇다고 노왕이 화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잘못 들었나 싶었고, 설마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강했을 뿐이었다.
“병사들은 뭘 하는가? 당장 저놈을 포박하라!”
앞으로 나섰던 문관이 소리쳤으나, 무공을 익힌 호위 중 앞으로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술일 거라 생각은 되었지만 하늘에서 나타난 자였고, 무엇보다 그의 기세가 도무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생각이 맞는 걸까?’
‘곽준, 자네도 그리 생각하나?’
‘사술. 아니면 공령(空靈)의 경지에 들어선 초절정고수.’
‘그런 고수가 현재 강호에 누가 있겠나.’
‘그렇다면 사술인가?’
‘내 추측이 맞다면 절정 초입 정도의 무공과 아주 뛰어난 사술을 익힌 자라고 생각되네. 천잠사(天蠶絲)와 같은 얇은 실이나 줄을 이용한 무공에 능통한 자들이 가끔 실을 밟고 허공답보인 척하며 세인들을 농락하지 않나.’
‘가볍게 시험해 볼 수밖에 없겠군.’
‘그게 좋을 거 같네.’
곽준과 이광의 전음이 끝나자 곽준의 시선이 슬쩍 일류무사들을 향했다. 그의 의도를 깨달은 일류무사 세 명이 앞으로 나서며 신혁에게 쇄도하였다.
쨍그랑!
“크으윽.”
“큭.”
“으윽.”
주르륵.
세 명의 일류무사의 검을 단 일검에 모조리 쳐내고 그들의 신형마저 날려버린 패검에서 형관오의 강렬한 검기가 느껴졌다.
“감히 세자전하의 궁에서 세자전하의 손님을 공격하다니, 그대들이 정녕 삶이 권태로운 게요?”
형관오의 살벌한 협박이었다. 과연 우는 아이도 뚝 그친다는 금의위의 위장다운 살기였다.
“형관오, 오만방자함이 그칠 줄을 모르는구나. 네 눈에는 본왕이 보이지 않더냐?!”
“제 눈에는 오직 주군이신 세자전하만이 비칠 뿐입니다. 또한 그분께서 저를 지켜보고 계시온데, 어찌 그분의 손님께 위해를 가하려는 자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노왕 전하를 보아 저들을 참하지 않은 것임을 어찌 모르십니까?”
“잠시 못 본 새에 담이 몇 배나 커진 거 같구나 형관오. 네 주인인 주윤문 조카님도 그만큼 성장하였더냐? 클클.”
“노왕 전하.”
주윤문을 모욕하는 언사에 화를 내거나 최소한의 감정변화 정도는 보일 거라 여겼던 형관오는 생각과는 달리 차분하게 노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그분께서 보고 계십니다.”
“크크큭, 그래 우리 조카님이 어디 계신단 말이냐?”
“만인지상의 위에 오르실 분이 어디에서 지켜보시겠습니까?”
“크하하핫, 설마 네가 말하는 곳이 하늘이냐?”
“그렇습니다.”
“그래, 하늘 어디에 우리 조카님이 어디 계시더냐?”
노왕의 비웃음에 그의 수하들마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노왕과 동조하여 형관오를 조롱하던 그의 수하들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혼이 나간 표정으로 노왕을 찾았다.
“노, 노왕 전하.”
“응?”
“위, 위를?!”
“응?”
안 그래도 한낮의 태양을 피하려고 차양막까지 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조금 전부터 태양의 뜨거운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구름 뒤에 태양이 숨은 것 같이 시원하였다. 노왕이 별 시답잖다는 표정으로 수하들의 시선을 따라서 하늘로 눈을 돌렸다.
“저게 뭐야?! 구름이! 거대한 구름이 세 개나 추락하고 있…….”
노왕의 외침에 모두가 패닉에 빠져서 우왕좌왕하였다.
“어차피 착륙할 거긴 한데 혹시나 깔리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도록 멀찍이 피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때까지 형관오와 주윤문의 입씨름을 권태롭게 바라보던 신혁이 입을 열었다.
“이런, 오만방자한……!”
다시 한번 노왕의 심정을 대변하던 문관이 앞에 나서 신혁의 무례를 단호하게 꾸짖으려는 순간, 신혁이 그의 말을 끊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 구름 같아 보이는 거, 이곳 말로 하면 최소한 만년한철 이상의 강도로 만들어졌으며 무게가 수만 근은 나갈 겁니다.”
“감히 어디서 사술로 무인을 농락하려 드는 것이냐!”
신혁의 장난스러운 어투와 여유 넘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노왕의 자랑하는 두 명의 절정고수 중 한 명인 이광이 평소의 급한 성정을 참지 못하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사술은 검기(劍氣)로 가르면 그만!”
이광의 검에 붉은색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모욕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쌍방과실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려 하였는데, 기물파손은 안 되지요.”
까아앙!
“크으윽!”
이제 막 공력이 집중되어 검기가 만들어진 검을 내리그으려던 이광의 손목에 망치로 내리친 듯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뭐, 뭐야?!”
까앙! 까앙! 까아앙!
어디선가 나타난 작은 구슬 세 개가 푸른빛을 은은하게 뿜어내며 계속해서 이광의 검을 가격하였다. 그럴 때마다 속이 진탕되고 손목뼈가 시큰거릴 정도의 충격에 몸을 떠는 이광이었지만, 절정고수라는 칭호는 도박으로 딴 것이 아니었다.
“크으윽!”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낸 이광의 단전에서 거친 기운이 올라와 그의 전신을 가득 메웠다.
혈파검술(血破劍術) 제5초.
혈파진뢰검(血破振雷劍).
‘네 놈의 잔재주도 여기서 끝이다. 조잡한 암기를 박살 내고 저 사술 또한 부숴주겠다.’
그를 방해한 조그만 구슬은 아마도 비검술을 구슬에 응용한 암기술일 것이라 판단이 되었고, 그렇다면 끽해야 저 구슬에 담긴 기운은 검기 급일 테니 말이다.
“하아앗!”
검기를 가득 담은 검이 푸른빛을 뿜어내는 세 개의 구슬을 베어버리려고 하는 순간.
‘오페라.’
[적성 사이오닉 반응 체크. 파괴하겠습니다. 목표는 적의 완전 침묵.]파아아아앗!
신혁의 부름에 오페라가 본격적으로 A4 위성을 운용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렬한 푸른빛을 내뿜으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까아아앙! 까아앙! 까앙!
그리고 마치 다가오는 이광의 검을 기다렸다는 듯이 세 기의 A4 위성이 돌아가며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어주술(馭珠術)?!”
A4 위성에 부딪힐 때마다 눈에 띄게 사라져가는 이광의 검기.
‘내, 내 상대가 아니다!’
“공중에서 오래 몸을 가누실 정도로 사이오닉 에너지가 충분하신 분 같지는 않은데, 이만 내려가시지요.”
구슬을 막기에 급급하여 경공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는 이광의 뒤에 신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툭.
“으아아악!”
신혁이 마치 앞사람을 부르는 듯 가볍게 이광의 왼쪽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가볍게 보이는 행동과는 달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이광이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콰아앙!
너무나도 빠르고 쉽게 절정고수가 제압당하자 모든 사람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신혁을 바라보았다.
우우우웅!
순식간에 세 기의 A4 위성에 에너지가 모이며 고출력의 에너지 캐논이 추락하는 이광을 향해 발사되었다.
“크으으윽.”
신혁에게 공격당해 한쪽 어깨가 부서지며 그대로 추락한 이광이었으나, 땅에 부딪히기 전에 가까스로 자세를 잡아 머리부터 떨어지는 참화는 면하였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엄청난 위력이 강기공이 자신을 노리는 것이 보였다.
퍼어어엉!
피하기엔 공간도 시간도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전개하였지만, 유신이나 주소천조차 맨몸으로 신혁의 에너지 방사형 기술을 때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끄아아아아!”
호신강기가 뚫리며 기혈에 큰 무리가 왔는지 한 움큼 피를 토하며 괴성을 지른 이광의 신형이 그대로 비산하여 노왕 앞에 떨어졌다.
철퍼덕.
“그러니까……. 제가 누구냐 물으신 분이?”
방금의 공격으로 지면이 많이 손상되었고, 그 와중에 이광마저 날아와 약해진 지면에 처박히니 흙먼지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흙먼지를 뚫고 들리는 이제는 악마처럼 들리는 목소리.
“노왕? 이라고 불리던 분이셨던가요?”
“……보, 본왕은…….”
“궁금해서 물어보신 것이 아니었나? 왜? 생각이 조금 달라지셨나요?”
“그, 그럴 리가 있겠느냐! 누구냐 네 놈은?!”
자신이 보유한 최고의 패 중 하나가 순식간에 망가진 장면을 목격해서인지, 노왕의 태도가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천성이 어디 가진 않는지 마지막에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고 노왕이 물었다.
“사신혁.”
“응……?”
“괴룡 사신혁이라고 하면 알아들으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