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68
68화. 응징
“괴룡……?”
노왕이 신혁의 말을 되뇌었다. 얼마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괴룡이라는 자가 나타나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의 목을 베었다고 하옵니다 전하.’
‘그래서?’
‘청해에 사람을 파견하시어 일단 그를 살펴보심이…….’
‘되었다, 출신성분도 알려지지 않은 그런 천한 놈을 어디에 쓰려고.’
흔들리는 눈동자를 추스르지 못하는 노왕이 뭔가 생각났는지 소리쳤다.
“무릎을 꿇어라!”
“?”
“감히 대명의 신민이 어찌 본왕의 명을 업신여기는가! 네놈의 삼족이 하나도 남김없이 목이 잘려야 오늘의 일을 후회할 것이냐! 가장 먼저 네놈의 아들을 죽여주마.”
명의 백성이라면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무서운 협박이었다. 명의 백성이라면 말이다.
“크…….”
신혁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대인……?”
그런 신혁을 보며 형관오가 조심스럽게 신혁을 불렀다. 만에 하나 여기서 신혁이 난동이라도 부린다면 그를 막을 사람도 수단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다른 놈들이야 죽어도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겠지만 노왕이 죽거나 다치면 꽤 골치가 아파질 터였다. 그에게도 주윤문에게도 말이다.
“하하하하하!”
정말 너무 재미있어 죽겠다는 웃음을 터뜨리는 신혁을 보며 형관오와 노왕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란 말인가 저놈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웃어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사고 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인가. 노왕의 생각은 전자였지만 형관오의 생각은 후자였다.
“아아, 미안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참 재미있으신 분이군요. 노왕님?”
“네놈이 본왕을 능멸하는 것이냐!”
“저한테 언제부터 아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협박의 대가는 받아야겠지요? 어떻게 보상하시겠습니까?”
“감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봅니다.”
“이, 이노오오오옴!”
노왕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에게 이토록 오만불손한 놈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성질을 긁는 놈도 처음이었으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례하기가 짝이 없었다.
“당장 저놈의 사지를 분질러 내 앞에 데려오라!”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노왕의 명이 떨어졌다.
곽준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조금 전 이광이 순식간에 박살 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도와주려고 나서기도 전에 순식간에 당한 이광.
‘허나, 온전한 초절정의 고수라 생각되진 않는다. 무언가 아주 특수한 사술을 쓰는 절정고수.’
곽준의 판단이었다. 무려 일백 명의 일류고수가 노왕의 호위대로 함께하였으며 그중 열 명 정도는 절정에 아주 근접한 뛰어난 무사들이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판단이 서는 곽준이었다.
“충! 노왕 전하의 명을 받듭니다.”
채채챙!
곽준의 복명에 맞추어 일백 명의 무사가 일제히 검을 빼 들었다. 그야말로 살벌하고 흉흉한 기세가 그들에게서 흘러나왔다.
“지금 세자전하께서 기거하시는 곳에서 발검한 것이오?!”
그들의 흉흉한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형관오의 분노한 음성이 궁을 가득히 메웠다.
“형관오,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본왕이 조카님께 추후 정중히 사과하도록 하지. 또한 아무리 자네라도 본왕을 모욕한 저놈을 보호할 요량이라면 네놈에게도 죄를 물을 것이다.”
“…….”
노왕의 대답에 형관오가 입을 다물었다. 노왕이 저렇게까지 분노한 상태라면 무슨 말을 해도 결국 성질대로 할 것이 자명하였기에 굳이 입씨름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고민은 여기서 신혁의 편을 들어 같이 검을 뽑을 것이냐 방관할 것이냐 둘 중 하나였다.
“금의위장님.”
“예, 신혁 선생 말씀하시지요.”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예,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이거, 정당방위입니다?”
“아…… 예……. 물론입니다.”
형관오가 쓴웃음 지으며 신혁의 말에 대답했다. 신혁의 태도를 보아하니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벽령궁 뇌진원을 비롯한 연왕의 제령천위대 이천 병력도 단신의 신혁에게 박살 나는 것을 보았는데, 저 정도 인원 가지고 가당키나 하겠는가 싶었다.
“수송선의 착륙장소나 확보하는 셈 쳐야겠군. 그냥 곱게 물러날 것이지 귀찮게…….”
“예?!”
“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흠흠.”
신혁의 혼잣말에 형관오가 놀라서 되물었지만, 신혁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얼버무리며 앞으로 나섰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신혁의 기세는 변함이 없어 보였지만 조금이나마 곁에서 그를 지켜본 형관오는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한판 하기로 마음먹으셨군.’
“노왕 전하, 신(臣) 형관오. 관여치 않겠나이다.”
“오냐, 현명하구나.”
드디어 자신의 위세가 먹혀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노왕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쳐라!”
노왕과 형관오의 대화를 지켜보던 곽준이 명령을 내렸고, 일백 명의 무사와 함께 신혁을 향해 살기를 드러내며 공격을 시작하였다.
[적성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 파괴하겠습니다. 적의 빠른 섬멸을 위하여 S4 위성의 한정사용을 요청합니다.]‘승인한다.’
[Copy that. S4 위성 시동. 전투컴퓨터 오페라, 현 시간부로 적성 개체의 요격을 시작하겠습니다.]파아아아앗!
오페라의 음성과 함께 세 개의 구슬이 더 나타나 전보다 더 선명한 푸른 불꽃을 두르고 신혁의 주변을 불규칙하게 공전하기 시작했다.
“극성의 어주술(馭珠術)! 조심하라!”
곽준의 명령과 함께 그들의 머릿속에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혁 선생, 주윤문 전하께서 기거하시는 곳입니다. 궁은 최대한 부수지 말아주십시오!”
* * *
“…….”
“어머, 윤문 오라버니, 왜 그러셔요? 이제 내리셔야죠”
“…….”
“오라버니?”
“아…… 미안하오.”
유시아의 거듭되는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주윤문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수송선의 스크린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이는 신혁의 어마어마한 무력과 추풍낙엽처럼 박살 나는 노왕의 호위병들을 입을 쩍 벌린 채 지켜보던 주윤문과 그 일행들이었다.
“흠흠……. 내립시다.”
유시아의 인도대로 주윤문 일행이 수송선의 탑승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 스크린을 통해 본 엄청난 장면들이 다시 한번 재생되었다.
“쳐라아!”
고함과 함께 제일 먼저 신혁에게 쇄도한 곽준의 검격이 신혁의 오른손에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쥐어져 있는 푸른색의 불꽃과도 같은 검과 충돌하였다.
“끄아아아악!”
까아아앙! 퍼어어어엉!
검과 검이 격돌하는 소리와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쇄도하던 속도의 세 배는 될 것 같은 속도로 튕겨 나가 조금 전 나가떨어졌던 이광의 옆에 처박혔다.
철푸덕.
그리고 단발적으로 꿈틀거리며 살아는 있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숨만 헐떡이는 두 절정고수 곽준과 이광이었다.
“어……?”
지휘관이 일격에 박살 나는 모습에 노왕의 호위대들의 의기충천하던 전의가 수직 낙하듯이 사그라들었고, S4 위성과 A4 위성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그야말로 떨어지는 우박에 팔다리를 맞고 울부짖는 어린아이들처럼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는 호위병들이었다.
“끄으으으……”
“으으으으…… 괴, 괴물…….”
최소한 사지 중 두 군데는 부러진 상태로 일백 명의 무사들이 땅을 뒹굴고 있었고, 그들의 뒤편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노왕이 손을 부들거리며 신혁을 가리키고 있었다.
“뭐, 대충 정리는 됐군.”
수송선이 착륙할 지점에서 노왕의 호위병력을 멀찍이 날려버린 신혁이 손바닥을 툭툭 털며 씨익 미소 지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수송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세자전하~ 납시오오~~!”
가장 먼저 수송선에서 내린 금의위의 무사 하나가 소리 높여 외쳤고, 그 뒤를 줄지어 나오는 오백의 병사들과 문관들이 재빨리 도열하며 주윤문을 맞았다.
“천세, 천세 천천세!”
그리고 금의위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수송선에서 걸어 나오는 주윤문을 향해 목이 터져라 천세를 외쳤다.
“일어들 나시오.”
“망극하옵니다!”
주윤문이 그 어느 때보다 우아하고 여유 넘치는 말투와 행동으로 신하들의 연호에 답했고, 신하들 또한 충성심이 넘치는 목소리와 태도로 복명하였다.
‘저것이 만인적이 가능한 하늘의 무사인가. 괴룡이라는 별호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구나.’
주윤문의 눈에 감격이 어렸다. 그가 언제 늑대와 호랑이 같던 숙부들 앞에서 이토록 후련한 감정을 느껴보았을까. 아마도 지금이 처음이리라. 주윤문의 그런 심경이 반영되어서인지 그의 눈빛에는 뿌듯함과 자신감이 담겨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주단 숙부.”
씨익 미소 지으며 여유롭게 인사를 건네는 주윤문을 보며 노왕이 똥 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세자.”
아무리 성질머리 더럽고 자존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노왕이라도 지금 상황에서 주윤문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쓸모없는 것들. 고작 낭인 하나를 당해내지 못해 본왕에게 이런 치욕을 안겨주다니.’
그의 눈에 불쌍하게 쓰러져있는 그의 호위대가 들어왔고 곧이어 경멸의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차라리 모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노왕의 생각대로 호위대가 싸그리 죽어버리거나 최소한 몇 명이라도 사망자가 나왔다면 노왕으로서도 주윤문에게 감히 번왕의 호위병들을 죽이다니 아무리 세자라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 식으로 따질 거리라도 있었겠지만, 고의인지 우연인지는 노왕의 호위대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전하.”
“말씀하시오 세자.”
“전하.”
“내 말하라 하지 않았소?”
“세자, 다음에 전하라는 말을 빼먹으신 거 같습니다, 주단 숙부.”
“뭐, 뭣이라?!”
지금까지, 아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치도 못한 주윤문의 자신감이 가득 찬 오만한 말투였다.
“다시 한번 말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일국의 세자에게 하대라니요? 노왕께서 그 정도로 예를 모르지는 않으실 터, 호위병들의 허약한 모습에 충격을 많이 받으신 듯합니다?”
“가, 감히……?”
“감히? 이거, 정말 충격이 크신 듯합니다. 본 세자를 상대로 감히라 하셨습니까? 그런 것입니까?”
“주, 주윤문…….”
“전하.”
“으…….”
“또 전하라는 단어를 빼먹으셨군요. 마지막입니다, 다음은 용서치 않습니다.”
“감히!”
그동안 운 좋게 세자의 위에 오른 어린 조카라 생각하던 주윤문의 건방진 태도에 노왕이 발작하려는 순간, 주윤문의 차가운 명령이 떨어졌다.
“금의위장은 노왕의 죄를 물으라.”
“충!”
형관오가 복명과 함께 노왕 주단을 노려보며 말했다.
“세자전하의 명이 떨어졌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노왕 전하.”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노왕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자,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