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73
73화. 거래
주원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가 승부처다. 괴룡이라는 놈이 원하는 것을 제시해야만 계약이 성사될 터였다. 그렇다면 과연 저놈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재물, 벼슬, 여자, 명예.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그의 머릿속에 스쳐 갔다.
‘아니야, 그런 세속적인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무엇이 남을까. 무공비급? 술법서? 그것도 아니라면 신병이기?
‘의천검과 용신주……. 오호라, 그것이구나.’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한 주원장이 자신의 패를 꺼냈다.
“무림십대기보를 네게 주마.”
주원장의 말에 신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십대기보 전부를 말씀이십니까?”
“물론이다.”
십대기보 전부라면 주윤문의 신하가 될 것인가? 그건 아니다. 십대기보를 모으려는 목적이 무엇이었나. 크리스탈의 아스트랄 파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닌가. 십대기보를 모두 모은다 해도, 주윤문에게 메어있다면 어찌 마음대로 크리스탈을 찾아 떠날 수 있겠나 싶었다.
“솔깃한 조건이지만 불가합니다. 어디에 기약 없이 메어있을 수가 없는 몸이라서요.”
“좋다. 그렇다면 세자가 황위에 오를 때까지 만으로 기간을 정한다면 받아들이겠느냐?”
“정확히 어느 정도의 기간입니까?”
“빠르면 한 달, 늦어도 백 일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었다. 십대기보 중의 하나인 파천비를 얻자고 서안에서 그 난리를 친 것을 생각하면 황제가 제시한 조건은 신혁에게 상당히 후한 조건이었다. 게다가 이미 의천검과 용신주는 확보한 상태이지 않은가.
“좋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십대기보가 모두 황궁에 있는 겁니까?”
“현재로서는 없다.”
황제의 말에 신혁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조금 전에 십대기보를 주신다고 하셨다가 지금은 없다고 하시니, 말씀을 번복하시는군요.”
“십대기보에 관한 정보를 주마.”
“정보요?”
겨우 정보를 받는 대가로 주윤문에게 무려 한 달, 길면 백 일이나 되는 시간을 투자하라는 말인가? 신혁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정도로는 불가합니다. 폐하의 생각보다 제 시간은 가치가 매우 큽니다.”
“중원의 십대기보 중 현재 나타난 것은 파천비와 의천검, 용신주와 천마보도 네 개뿐이다. 그런데 이 중 세 개는 네가 찾아냈고, 나머지 한 개는 마교라는 곳에 있을 것이다.”
신혁이 얼마 전 테레사함에서 신윤제가 천마보도에 대해 말했던 것을 토대로 주원장의 말에 답하였다.
“그 정도라면 저도 이미 알고 있었던 일입니다. 천마보도의 경우 마교의 교주를 선출하는 내부 세력전 때 그 행방이 묘연해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마교 내부의 최대세력이자 천마의 적통인 천마교의 세력이 찾아냈다고 하더군요.”
신혁의 말에 황제가 놀랍다는 듯이 되물었다.
“자세히도 알고 있구나. 그 사실을 어찌 알았느냐?”
“수하 중에 꽤 유능한 자가 있어서요.”
“허면, 나머지 여섯 개의 기보는 어디에 있겠느냐?”
“그건…….”
신혁의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여섯 개의 기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고, 중원의 누구도 그것의 행방에 대해서 아는 자가 없었다. 최소한 신혁이 이곳에 와서 수집한 정보로는 그랬다.
“그것에 대한 정보는 오십 년 전 무림 최고의 학자이자 도굴꾼이라 불리던 천기자(天記子) 암요강이라는 자가 기록해 놓은 중원보물요람이라는 책자에만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렇다, 그 책자가 짐에게 있느니라.”
“어떻게 구하셨는지는 여쭤보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신혁의 눈빛이 빛났다.
“그 책자 하나로 십대기보를 찾을 수 있었다면 이미 진즉에 폐하의 손에 십대기보가 들어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그 책자만으로 찾는 것은 많이 어렵겠지. 그러나 그 책자만이 십대기보를 탐색할 유일한 단서이니라.”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하라.”
주원장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신혁이 눈을 감고 루시아와 통신을 시도했다. 그 모습이 주원장과 주윤문의 눈에는 신혁이 깊은 생각과 고민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루시아.’
[예, 오라버니.]‘주원장의 제안에 대해서 의견을 말해다오.’
‘하긴…….’
신혁의 머릿속에 매산곡에서 만났던 주소천과의 사투가 떠올랐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에 비하면 파천비 급의 두 아이템 의천검과 용신주는 거저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루시아가 슬쩍 말끝을 흐렸다.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신혁이 충분히 알아들으리라.
‘제안은 받아들여야겠구나.’
[네, 오라버니. 지난번에 말씀드렸다시피 크리스탈 님의 아스트랄 파편은 위성이나 스파이 버그로는 탐색이 거의 불가능해요. 자그마한 단서라도 있다면 훨씬 탐색이 수월해질 거예요.]‘하긴 아무런 단서 없이 온 중원을 뒤지는 것은 비효율적이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구나.’
[네, 맞아요. 오라버니 일단 통신은 이쯤에서 끝내야 할 거 같아요. 이쪽에도 손님이 오신 거 같아서요.]‘손님?’
[네, 다시 연락드릴게요.]그 말을 끝으로 루시아의 연결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문구가 신혁의 CEC에 표시되었다.
‘나 원, 컴퓨터가 먼저 연락을 끊다니. 뭐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으니 큰 상관은 없으려나.’
너무 A.I의 인공지능화가 잘 된 것이 문제일까, 신혁이나 테레사함의 안전과 관련된 사항이라던가 신혁의 직접적인 명령이 아닌 이상은 테레사함의 컴퓨터들에게 굉장히 커다란 자유의지가 부여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뭐 아직은 괜찮겠지.’
어이가 없었는지 신혁의 입가에 헛웃음이 걸렸다.
* * *
“어머나, 누구세요?”
세자궁의 외곽. 세자의 주요 귀빈들이 머무는 조그마한 별궁의 화원에서 꽃들을 감상하던 유시아가 물었다.
“감각이 좋은 아이구나.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 아는 대로만 말해주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목소리만 들려왔다. 유시아가 사이오닉 감지기를 통해 분석된 사이오닉 파동을 확인하고서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
“윤제 오라버니, 소녀 깜짝 놀랐네요.”
“응? 설마……?”
“네네, 맞아요. 루시아랍니다.”
“정말이오?”
“어머나, 서운해라. 오라버니의 가짜 시신을 꾸밀 때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저인데…….”
유시아의 말에 신윤제가 다급히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만! 루시아 님이 확실하군요.”
“그럼요. 다만 지금 사용하는 이름은 유시아랍니다. 테레사함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유시아라 불러주시어요.”
“예, 알겠습니다. 헌데…… 사람이셨습니까?”
“어머나, 숙녀에게 실례되는 질문이군요.”
“……그런가요? 그나저나 주군께서는 어디 계시는 겁니까?”
유시아가 특유의 말투로 살포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신혁 오라버니는 주윤문 세자와 함께 황제를 알현하러 갔어요.”
“예?! 황제를요?”
“그렇답니다. 그런데 윤제 오라버니께서는 갑자기 이곳에 어떻게 오신 건가요?”
유시아의 존재에 자신이 여기까지 온 목적을 잠시 잊고 있던 윤제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 원래 주군께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급히 달려왔습니다. 지금 세자궁을 향해 일단의 무인들이 접근 중이기에 그것을 알려드리러 급하게 왔습니다. 대체 주군께서 무슨 일을 벌이신 겁니까?”
“어머, 어쩌죠? 오라버니는 여기 안 계시는데.”
“유시아 님,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무인들이 접근 중…….”
“할 수 없죠.”
깊게 한숨을 쉬는 루시아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걱정이 가득한 모습이 아닌, 마치 어린아이가 어질러 놓은 자신의 방을 치우기 귀찮아하며 내쉬는 한숨에 가까웠다.
“신혁 오라버니가 안 계시니, 제가 치워버릴 수밖에요.”
그녀의 말에 윤제의 눈동자가 커졌다. 누가 봐도 전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유시아가 한 말이 맞나 싶은 윤제였다.
“예……?”
루시아는 스파이 버그와 위성의 감시시스템을 활용하였다. 사실 윤제가 이야기한 무인들의 움직임은 이미 파악이 된 것이었으나 신혁이 있는 어전에 대한 탐색이 우선순위였기에 세세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정확히는 101명의 카테고리 등급 일류무사와 5명의 절정고수가 이쪽으로 오고 있군요.”
“그, 그렇습니까?”
‘하긴, 이미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하게 알고 계셨을 수도 있을 테지.’
전조와 함께 테레사함에 붙잡혀 있을 당시, 사신혁과 루시아가 보여주었던 능력이 떠올랐다. 테레사함에 앉아서 멀리 떨어진 마교의 청해분타와 청동현의 현청까지 마치 눈앞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파악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대책은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좋은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 듯한데 말입니다.”
“일단 만나보면 되지 않겠어요? 앞으로 반각 뒤면 도착할 듯하여요.”
“그럼, 더더욱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해맑은 루시아의 태도는 뭘까. 윤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뾰족한 수라도 있다는 말인가? 사신혁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윤제였다. 여차하면 싹 쓸어버리고 손을 툭툭 털고 있을 신혁이었으니 말이다.
“뭐 별일 있겠어요? 일단 좋은 말로 저리 가세요~ 라고 부탁을 해보는 거지요.”
“상대가 그렇지 않으면요? 유시아 님을 적대하면 어찌하려 하십니까?”
“뭐,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겠지요? 오라버니가 여기 오자마자 ‘노왕’이라는 자와 큰 다툼이 있었거든요.”
“그런……?”
윤제가 말을 잃었다. 경비가 삼엄한 세자궁이어서 신혁과 노왕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네, 아마도 노왕이라는 분이 화가 나서 수를 쓴 것 같아요. 그런데 어디서 저렇게 또 부하들을 끌고 온 것인지 모르겠네요.”
“아마 노왕의 호위대일 것입니다.
유시아가 빙그레 웃으면서 윤제에게 말했다.
“말씀하신 노왕의 호위대라면 신혁 오라버니에게 어디 한군데씩은 부러진 채로 세자궁에서 기어나갔어요.”
“예? 아니 어떻게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하단 말입니까? 라는 말을 가까스로 꿀꺽 삼킨 윤제가 되물었다.
“그럼, 그 뒤에 노왕은 어찌하였습니까?”
“화를 좀 내다가 신혁 오라버니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세자궁을 나갔어요.”
“그 뒷감당을 어찌하시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예?”
갑자기 무슨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소리인가. 윤제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유시아를 바라보았다.
“오라버니의 좌우명이죠. 저도 상당히 좋아하는 좌우명이기도 하구요. 어느새 불청객들이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 윤제 오라버니는 어쩌시겠어요?”
“무엇을 말입니까?”
“윤제 오라버니는 공식적으로 황궁에 초대받지 못하신 몸. 정체가 발각되어서야 곤란하지 않겠어요?”
“……몸을 숨기겠습니다. 혹시나 유시아 님이 위험해 보인다면 즉각 나타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그러길 바라야지요.”
그 말을 끝으로 윤제의 몸이 꺼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윤제가 사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고함소리가 세자궁 밖에서 들려왔다.
“죄인 사신혁은 나와서 오라를 받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