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75
75화. 유시아 (2)
“노가주님께 보고 드립니다.”
세자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전각의 최상층에서 아래를 주시하던 중년인에게 남색의 무복을 걸치고 검을 패용한 열여덟 명의 무사들이 나타나 부복하였다.
“무슨 일이냐?”
열여덟 명의 대표로 가장 무공이 고강해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노왕 전하의 전갈입니다. 만약 자신을 도와 치욕을 갚게 해준다면 노가주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하셨습니다.”
“크하하하하, 일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그래, 그 외의 다른 내용은 없더냐?”
“또한 영왕 측에서 말하길 만약 사신혁이란 자가 항복하거나 자신들과 뜻을 같이할 마음이 있으면 데려오라 하였습니다.”
“참으로 재밌는 이야기구나.”
코웃음을 치는 자는 남궁세가의 노가주 남궁무기였다.
“굳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줄 필요가 있겠느냐. 독수리인 우리가 있는데 말이다.”
영왕은 인재를 몹시 아낀다. 그런 그에게 사신혁이라는 또 다른 전투 병력을 제공해 줄 필요가 있겠냐는 뜻이었다. 오히려 그가 없어짐으로 인해서 무공을 익힌 자, 특히나 일류무사 이상의 고급전투원이 부족한 영왕이 더욱더 남궁세가를 중히 여길 테니 말이다.
“노가주님의 뜻을 받듭니다.”
“그래,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이구나. 드디어 가문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황실과의 유대가 결실을 맺는 날이니 말이다.”
“감축드리옵니다.”
남궁세가에서는 황실과의 연을 위해 여러 번왕들과 접촉하려 노력하였다.
‘드디어 결실을 보는 것인가.’
남궁무기의 얼굴에 뿌듯함이 어렸다. 그동안 황궁에 줄을 대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던가.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진척은 없고, 황궁에 줄을 대는 것을 포기하려던 차에 전혀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하늘의 도우심이었지.’
사신혁이라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나타나 노왕에게 크나큰 모욕을 주었고, 노왕은 다른 번왕들과 힘을 합쳐 사신혁을 벌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무공이 강한 무사들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왕에게 접근한 것이 바로 남궁무기였다.
* * *
“노왕 전하 되십니까?”
“누구냐?”
“강호의 동도들은 본인을 창궁검호(蒼穹劍豪)라 불렀지요.”
“정파의 검귀?!”
남궁무기의 그 악랄한 손속에 대한 소문은 노왕마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곳에 왜 나타났다는 말인가?
“전하께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크크크, 안휘성의 패자가 내게 무슨 볼일이오?”
“대명제국의 신민으로서 전하께 충심으로 간언할 게 있사옵니다.”
“말해 보시오.”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무림의 혁혁한 명성도 있으며 귀가 따갑게 들어본 정파의 오대세가 중 한 곳의 전대가주가 이토록 저자세로 나오니 흥미가 동하는 노왕이었다.
“조금 전 황궁에 지기를 만나기 위해 잠시 들렀사온데, 우연히 노왕 전하께서 당한 수모에 대해 들었습니다.”
“…….”
남궁무기의 말에 노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천하디천한 야인이 감히 만백성이 우러러보는 노왕 전하께 그런 대역죄를 범하다니요. 대명제국의 신민으로서 이 남궁무기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만약 이곳이 황궁이 아니었다면 당장 그놈의 목을 베어 저잣거리에 걸어 놓았을 것입니다.”
노왕의 입장에서는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무엇보다 사신혁의 목을 베어버린다는 말이 십 년 묵은 체증이 한 번에 내려가는 듯한 쾌감을 주었다.
“과연 명문세가의 전대 가주다운 충심 깊은 생각이오.”
“망극합니다. 대명제국의 신민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니겠습니까?”
“클클클, 이를 말이오. 그래서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딱히 바라는 것은 없사옵니다. 다만 이번에 노왕 전하의 고민을 덜어드린다면 앞으로도 저희 남궁세가가 전하를 비롯한 황궁의 여러 가지 일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하! 좋소. 허나 내 노가주를 못 믿는 것은 아니오만, 사신혁이라는 놈이 꽤나 강한 놈인 것 같은데 확실히 그를 처리할 수 있겠소?”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저와 창궁십팔수라면 사신혁뿐만 아니라 금위제존위군의 목도 충분히 노려볼 만합니다.”
* * *
“총관으로부터 이번 작전의 설명은 충분히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입니다, 노가주님.”
마치 한 몸처럼 대답하는 창궁십팔수(蒼穹十八首)였다.
“일수가 보기에 사신혁이라는 놈의 무공수준은 어떻더냐?”
창궁십팔수의 최고수인 창궁일수가 남궁무기의 질문에 답했다.
“금의제존위군과 가벼운 수 교환에서 밀리지 않는 정도로 보아 최소 절정상급 이상은 돼 보입니다.”
“그뿐이더냐?”
“최대로 치면 절정의 극에 도달한 고수, 그리고 굉장히 사이하고 특이한 사술을 사용하며 독특하게도 어주술을 극한까지 익힌 것 같습니다.”
“청해의 촌구석에 그런 놈이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세자께서는 어떻게 그놈을 구워삶아서 황실까지 데려오신 걸까 궁금하구나.”
“본가에 기별을 넣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그 말에 남궁무기가 잔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 어차피 오늘 모가지가 몸통과 분리될 녀석인데. 클클클.”
그런 남궁무기의 표정을 보며 오싹해지는 창궁십팔수였다. 자신들이 모시고 있고 모셔왔던 전대 가주였지만 가끔 보여주는 남궁무기의 지금과 같은 모습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예, 노가주님.”
“지금 저기서 푸닥거리를 하고 있는 저 여아는 누구인고?”
“괴룡 사신혁의 수하인 듯합니다. 괴룡이 머무는 청해의 금미산이라는 곳에 철로 지어진 거대한 궁이 있사온데 그곳의 내총관이라 합니다.”
“클클, 꽤나 무공이 뛰어난 듯하구나.”
따귀 한 번에 일류무사 하나를 기절시킨 유시아를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는 남궁무기의 말에 재빨리 창궁일수가 답했다.
“예, 가주님. 어쩌면 절정의 단계에 도달한 여류고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클클, 저런 계집을 품는다면 그 정복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 같구나.”
“허나 번왕들의 조건이…….”
“클클, 번왕들이 노리는 것은 사신혁뿐. 결론적으로 세자 주윤문의 세력이 강화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더냐.”
“가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리고 저 여아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저 정도는 내 재량으로 처리해도 되지 않겠느냐?”
마지막에 희번덕거리는 남궁무기의 눈을 본 창궁십팔수가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노가주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클클클, 그래. 사신혁이라는 놈이 오기 전 저 여아를 먼저 챙기자꾸나. 놈이 왔을 때 그 목을 따서 노왕에게 선물하고 본좌는 저 여아와 함께 안휘로 가겠다.”
“노가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오냐, 적당한 때에 나서도록 하자.”
* * *
“…….”
말을 잃은 번왕의 무인들.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눈을 비비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보다 더욱 대단한 소저였군 그래.”
“예, 형님. 아무리 못해도 절정의 경지에 이른 낭자였던 것 같습니다.”
홍태일이 피떡이 돼버린 스무 명의 일류무사들을 몹시 아까운 눈으로 훑으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명령하였다.
“발검.”
차차차창!
남은 무사들이 일시에 검을 뽑았다.
[적성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 적성 개체들의 사이오닉 에너지가 상승하였습니다. 코드 네임 : 춤추는 인형의 A4 위성의 사용을 권고합니다.]사태가 점점 심각해짐에 따라 경고메시지가 유시아의 눈동자에 출력되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그래 상황은 보고 받았다.’
[춤추는 인형의 A4 위성 사용에 대한 승인을 부탁드려요.]‘승인하겠다. 그런데 괜찮겠니?’
[아니요, 오셔야 할 거 같아요. 지금 눈앞에 있는 적들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는 19명의 적성 개체들을 상대한다면 제가 파괴될 확률이 98.97%에요.]‘그래, 곧 가도록 하마. 굳이 세자궁을 지킬 필요는 없다. 주윤문이 거기 있는 것도 아니고 목표는 나일 테니 상황이 불리해지면 내 쪽으로 도주하도록.’
[어머나 상냥하셔라. 감사해요 오라버니.]신혁에게 A4 위성의 사용승인을 받은 유시아의 미소가 짙어졌다.
“백주대낮에 가녀린 아녀자를 상대로 무기를 뽑으신 것. 이제부터 제 행동은 정당방위예요. A4 위성 시동!”
[테레사 함의 메인컴퓨터 빅토리노. 사령관님의 승인 명령에 따라 현 시간부로 정보컴퓨터 루시아의 안드로이드 코드네임 : 춤추는 인형의 A4 위성 사용을 보조합니다.]‘좋아요, 빅토리노 씨. 위성의 원격조종을 부탁드려요.’
[Copy that. I have a control.]우우우웅!
순간 유시아의 몸주변에 옅은 푸른빛을 흘리는 세 개의 구슬이 나타나 그녀의 몸을 공전하기 시작했다.
“사술?!”
“암기술? 아니 저게 뭐지?”
유시아가 소환한 A4 위성을 본 홍태일의 무리가 혼란에 빠졌다.
“어주술(馭珠術)?!”
‘허허, 과연 괴룡의 수하시군. 유시아 소저가 괴룡의 절반 정도만 어주술을 활용할 수 있어도 저들은 추풍낙엽이겠구나.’
지금껏 수많은 위기를 넘겨온 신혁의 어주술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형관오였기에 유시아가 어주술을 펼치자 한결 편안하게 전투를 지켜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사술에 현혹될 것 없다. 쳐라!”
홍태일이 혼란에 빠진 수하들을 독려하며 공력을 담아 소리쳤다.
“와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유시아를 향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파아아아앗!
그 순간, 신혁의 어주술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지만 찬연하게 빛나는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유시아의 A4 위성이 그 위용을 뽐냈다.
[초소형 이온 캐논 응용. 파괴광선 Ready. 타겟 록 온.]“Fire.”
유시아의 고운 입에서 사격명령이 하달되었다.
“끄아아아악!”
“아아악!”
재앙의 시작이었다. 파괴광선이 날아들자 일류무사들은 허수아비처럼 우수수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과연, 신혁 선생의 내총관! 이 형관오 진심으로 감탄했소이다.”
“오오오! 유시아! 유시아!”
여차하면 검을 뽑아 들고 유시아에게 합세하려던 형관오와 금의위 무사들이 박수를 치며 유시아를 연호했다.
‘아직은 나서지 않아도 되겠구나.’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기척을 지우고 몸을 숨기고 있던 신윤제도 유시아의 신위에 안심하며 상황을 주시하였다.
이제는 신혁을 치기 위해 출정한 절정고수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
곳곳에서 신음하는 일류무사들의 한복판에서 전쟁의 여신이 강림한 것 같은 위엄과 발랄함을 뽐내며 유시아가 말했다.
“이제라도 돌아가시는 게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