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8
8화. 절정고수의 전투력 (2)
신혁이 중원에 도착하기 약 일주일 전 호북의 무당산.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넘겼을까. 파란색의 정갈한 도복과 허리에 태극의 문양이 수놓아진 검집을 찬 사내가 조그만 흰색 행낭을 등에 멘 채 무당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무량수불.”
무당산의 초입인 해검지(검을 풀어 놓는 곳)에 이르자 사내의 입에서 나지막이 도호가 흘러나왔다. 약관의 외모와 달리 사내의 목소리는 중저음의 낮게 깔리는듯한 목소리였다.
사내의 도호가 끝나자마자 30대 중반의 도사가 포권을 하며 그를 맞았다.
“오셨습니까, 유신 사숙.”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신이라 불린 사내가 도사에게 마주 포권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사숙.”
“저는 이게 편합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허허, 변한 게 하나도 없으십니다. 어인 일로 하산을 하셨는지요?”
“이번에 장문인의 명을 받들어 첫 번째 세속행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세속행. 무당의 제자는 입문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거나 무공이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르면 속세에서의 생활을 체험해야만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대부분 어린 제자들이었기에 한 배분 위의 선임자가 이것저것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셨군요. 허면 동행도 없이 혼자서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하하. 어찌 그렇겠습니까? 도현 사형께서 저와 동행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다만 도현 사형께서는 청해에서 제마행을 하시는 중이기에 일주일 뒤 청해의 청라객잔에서 뵙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산문을 내려오셨군요. 알겠습니다. 헌데 도현 사숙께서 청해까지 제마행을 떠나실 정도라니 청해에 대단한 고수가 출현이라도 한 것입니까?”
“제가 장문진인께 듣기로는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이라하는 절정의 마도고수들이 출현했다고 합니다. 마침 저의 첫 세속행도 겹치는 시기인지라 저 역시 청해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부디 유익한 세속행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감사합니다.”
해검지 초입에서 서로 도호를 읊으며 인사를 나눈 유신은 무당산을 뒤로하고 청해를 향해 길을 나섰다.
* * *
한편 신혁이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의 포획을 위해 관청을 출발하기 얼마 전 무당의 도현도장은 청해에 도착하여 여독을 푼 후 마교의 청해분타를 찾았다.
“어이, 저기 봐.”
“뭐야? 무당의 도사잖아?”
누가 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고수가 다가오고 있자 마교 청해분타의 정문을 지키던 경비 무사 둘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무당의 도사가 마교분타에는 왜지? 설마 선전포고? 국지전?”
“지금 시국에 설마 그러려고. 가뜩이나 나라가 통일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어수선한데 정파의 꼰대들이 그런 짓을 벌이겠어?”
정문을 지키는 수문장 둘이 의견을 교환하며 도현도장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정지. 이곳은 마교의 청해분타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분타주님을 뵈러 왔네.”
“어떤 용무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문의 명을 받들어 무림의 공적을 처단하러 왔다네, 다만 정보가 부족해서 청해분타주님의 손을 좀 빌리려고 왔다네.”
도현도장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잘 벼려진 한 자루 검날 같은 기도. 절대 가짜가 아니다. 무당의 절정검수다. 경비 무사들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알겠습니다. 자네는 가서 분타주님께 이 사실을 전하게. 나는 손님을 안내하겠네.”
그렇게 마교 청해분타의 접객당에 들어선 도현도장은 호위들이 안내하는 대로 잠시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저를 찾으셨다구요. 청해분타주 암연백입니다.”
암연백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포권을 했다.
“무량수불. 빈도는 무당의 도현이라 합니다.”
도현도장이 정중히 포권을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양의검군 도현도장 님이시군요. 높으신 명성 많이 들었습니다.”
“혹, 무영비도 암연백 시주가 되십니까?”
“잠시 강호에 머물렀을 때 친우들이 그렇게 부르긴 했습니다. 헌데 무당의 양의검군께서 이 먼 청해까지 제마행을 나오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허허, 태상노군의 가르침을 따르는 빈도가 백성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까. 그런데 청해분타에서 어떤 도움을 받으려고 하시는지요?”
“무량수불.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의 정보를 좀 얻었으면 합니다. 귀교의 전대 태상호법님과 무림맹의 전대 맹주님이 맺은 협약이 아직 유효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현도장의 말에 암연백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무림공적에 관한 것은 정사마를 불문하고 협조하기로 한 협약이 분명 있긴 하다.
다만 지금까지 정파도 사파도 마교도 서로 적대관계인 곳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거의 없어서 거의 사문화된 협약에 가까웠다. 그러나 상대가 정식으로 그 협약을 들먹이며 정보를 요구하면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암연백은 선선히 도현도장이 요구하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은 현재 금미산으로 도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200리 정도 떨어진 곳이지요.”
잠시 말을 끊은 암연백이 진지한 눈으로 도현도장의 눈을 살폈다. 맑고 깊은 눈동자. 뼛속까지 도인의 기품이 느껴졌다.
“도장께서는 금미산으로 가시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금미산의 괴사를 들어보셨습니까?”
“괴사요? 빈도는 금시초문입니다.”
“저도 금미산에 가야 할 일이 있으니 도장님만 괜찮으시다면 저와 동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허허, 분타주님이 직접 안내해주시겠다는 겁니까? 저야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좋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나누시지요. 지금 바로 출발하려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무량수불.”
도현도장과 대화를 마친 암연백이 호위 무사 중 한 명을 손짓으로 불렀다. 암연백 앞에 부복하는 흑의무사.
“자네는 부분타주에게 오늘 내 업무를 대행하라 전하게. 나는 현 시간부터 여기 도현도장님과 금미산에 다녀오도록 하겠네. 별일은 없을 것이야. 만에 하나 내가 3일 안에 돌아오지 않거든, 본교에 이 사실을 전하고 여기 도현도장님과는 상관없는 금미산의 요괴로 인한 실종이라 보고 하게나. 알겠나?”
“존명.”
금미산의 요괴라니? 그게 무엇인가. 그리고 절정의 고수들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자신과 암연백이 함께하는데 무슨 큰일이라는 말인가?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이 그사이 기연이라도 얻어 무공이 진일보한 것인가?
“허허, 시주 금미산의 요괴라니요?”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문의 초절정 고수의 출현에 관한 것이지요.”
“방금 초절정 고수라 하셨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암연백이 도현도장을 재촉했다.
“일단 출발하시지요. 이야기는 가면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말을 마친 암연백이 순식간에 몸을 날려 그대로 청해분타의 담장을 넘어 금미산 쪽으로 달려갔다.
“허허, 참으로 활동적인 시주일세.”
도현도장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순식간에 몸을 날려 암연백을 따라 몸을 날렸다.
* * *
[경고, 굉장한 사이오닉 에너지를 보유한 두 개체가 탐지되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사령관님께 접근 중입니다.]빅토리노의 음성이 신혁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좋아, 고도를 더 높이도록.’
신혁은 고도를 높여 구름 사이에 몸을 숨겼다.
‘그 두 개체가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인가? 금미산은 아직 좀 거리가 남아있지 않았나?’
[맞습니다. 아까 포착한 PEF 650,000과 850,000의 개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두 개의 개체입니다. 곧 이곳을 통과할 겁니다.]‘좋아, 정밀 스캔으로 표적의 정보를 입수하도록.’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5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던 도사 차림의 사내와 검은색으로 몸을 둘둘 감싼 사내 하나가 빠른 속도로 신혁이 머물던 공간을 통과해 지나갔다.
‘빅토리노, 보고하라.’
[네, 사령관님. 한 개체는 오늘 새벽 금미산에서 숨어서 우리를 관찰하던 개체입니다. PEF 1,000,000 전후의 위험 객체입니다. 옆에 동행하는 객체는 새로운 표본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표본 중에 최고의 PEF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PEF 수치가 1,200,000을 넘겼습니다.]‘굉장한데? 저들의 이동 경로와 목적은?’
[두 객체의 대화를 음성 증폭하여 도청한 결과, 아무래도 PEF 1,000,000의 목표는 테레사함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PEF 1,200,000의 목표는 우리와 같습니다.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의 탐색 및 격멸입니다.]‘테레사함에 접근하려는 목적은 뭐지?’
[아무래도 적대적인 목적은 아닌 거 같습니다. 사신혁 사령관님과의 대화를 원하는 듯합니다.]‘좋아, 그러면 저들이 나와 부딪힐 확률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을 저들에게 양보할 수는 없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금미산으로 가자. 가는 길에 저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사령관님.]신혁의 모습이 구름 사이에서 빠져나와 무시무시한 속도로 암연백과 도현도장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도현도장님. 잠시 멈추십시오. 뒤에서 파공음이 들립니다.”
“무량수불. 무슨 일이십니까?”
“무언가가 다가옵니다. 굉장한 속도입니…….”
암연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들의 머리 위 약 5m 정도의 높이로 신혁이 그들을 지나쳐 금미산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구, 궁신탄영?”
“능공천상제를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암연백은 오늘 새벽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먼 거리의 멧돼지를 한 번에 죽인 이기어검술, 그리고 자신의 기척을 정확히 찾아내는 기감탐지능력, 거기에 수많은 사람과 멧돼지를 격공섭물로 이동시킨 전대미문의 내력.
태어나서 만난 최고의 고수. 사신혁의 대한 암연백의 이미지였다.
“처음 보는 고수인데, 대체 저 시주는 누구입니까? 혹,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저 괴인이 바로 제가 말한 금미산의 괴인 사신혁입니다.”
“무량수불, 경공 하나만 보아도 빈도 같은 자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불세출의 고수라 느껴집니다. 빈도가 분타주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 의구심이 있었는데 지금 직접 보니 말씀하신 것이 오히려 모자라다 생각될 정도입니다.”
둘은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신혁의 뒤를 추적하였다.
그 순간.
‘두 분께서는 제 뒤를 쫓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도현도장님께서 처단하시려는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은 제가 오늘 안에 청동현 관청에 데려가겠습니다.’
암연백과 도현도장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엄청난 거리에서 전달된 천리전음. 그리고 이렇게 떨어진 거리에서도 둘의 대화를 듣고 답한 듯한 내용.
실상은 스파이 로봇을 이용한 도청과 메시지 전달이었지만 암연백과 도현도장이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둘은 약속한 듯이 걸음을 멈췄다.
“아무래도 지금 금미산으로 가는 것은 멈추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시주.”
암연백이 그에 동의한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초고수가 친절하게 자신의 뒤를 쫓지 말라고 경고까지 해주는데 그걸 무시하고 쫓아갈 생각은 없었다.
“오늘 안에 청해색마와 흡혈마군을 찾아서 제압한다는데 그 두 마두가 정면 대결을 해준다면 모를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오늘이 지나기 전에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왕 이리된 거 관청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때가 되면 관청을 방문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도장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허면 저와 같이 분타로 돌아가시지요. 분타에서 대기하다가 연락을 받으면 관청 근처로 가서 상황을 살피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분타주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무량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