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92
92화. 반전
“무룡(武龍) 유신?!”
뇌진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청해에서 신혁에게 처참하게 무너진 이후 하늘에서 떨어진 건지 땅에서 솟은 건지 모를 사신혁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하였고,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유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예. 과분한 별호지만, 빈도가 맞습니다.”
뇌진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유신과 신혁의 금미산 비무는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그때의 비무 결과가 청해를 기점으로 조금씩 강호에 퍼지게 되었고,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신성의 등장을 알린 사건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무룡은 절정의 극에 도달한 고수. 그러나 사신혁이나 광마 단운천 같은 초절정의 고수는 아니다. 그런데 왜 전혀 기세가 읽히지 않는 것인가. 불안하구나…….’
“본인은 벽력궁(霹靂弓) 뇌진원이라 한다.”
“높으신 명성,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유신이 싱긋 웃으며 뇌진원에게 포권하였다. 강호의 선배를 대하는 흠잡을 데 없는 예의를 보여주는 유신이었다.
“어찌하여 무당의 도사가 관의 일에 관여하려 하는가?”
갑작스러운 초고수의 동장에 교위태감 건우 역시 긴장하며 뇌진원과 유신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유신이라는 도사가 자신들의 적이라면 그야말로 끝장이었기에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사신혁 시주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한 마디로 상황이 정리되는 뇌진원과 건우였다.
‘괴룡이 말한 대책이 이것이었나? 유신이라는 도사는 분명 뛰어난 고수일 테지. 허나, 단 한 명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까……?’
“또 괴룡이란 말이냐? 그래, 괴룡의 부탁으로 감히 연왕 전하의 앞을 막아서는 것인가? 무당에서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 하는가?”
은근한 협박이었다. 그러나 뇌진원의 협박에도 유신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답했다.
“후환이 두려워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무당이라는 이름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
“뇌진원 시주.”
유신의 호명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저 뇌진원을 부른 것뿐이었지만, 그의 기세가 달라진 듯하였다.
“말하라.”
“이대로 물러나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불가하다.”
뇌진원의 의지를 확인한 유신이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공격 준비!”
뇌진원의 명이 떨어지자 연왕의 군세가 고함을 치며 기세를 올렸다.
“우와아아아아~”
병사들의 함성과 함께 뇌진원을 위시한 제령천위대가 유신과 동창의 고수들을 얇게 포위하였다.
“공격!”
“어쩔 수 없군요. 부득이 손을 쓰겠습니다.”
유신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태극현천강기 제2식.
태극망강(太極網剛).
그리고 유신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유신의 손이 순간적으로 빛을 발했고, 그의 손에서 강기로 만들어진 실 수십 가닥이 솟구치더니 제령천위대를 향해 뿜어졌다.
“끄아아악!”
“으아악!”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처럼 비명과 함께 전신에 날카로운 자상을 남기며 우수스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말도 안 돼. 강기를 저렇게 다루는 것도 놀라운데, 이렇게 놀라운 위력을?!”
제령천위대의 무사들이 충격에 말을 잃었다. 그 순간 뇌진원이 단도를 뽑아 들고 유신에게 달려들며 명을 내렸다.
“검을 쓰는 절정고수들만 앞으로 나서라. 저 강기의 그물을 갈라 길을 터라!”
“존명!”
뇌진원의 명령에 혈륜검귀를 위시한 다섯 명의 절정고수들이 검을 꼬나쥐고 공력을 집중하며 강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있는 힘껏 검을 그으며 유신의 태극망강을 갈랐다.
촤아아악!
예상대로 강기의 그물이 갈라지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던 혈륜검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럴 수가?!”
놀랍게도 강기에 갈라진 태극망강의 그물이 언제 갈라졌냐는 듯이 갈라진 부분이 이어지며 다시 찬연한 태극의 문양의 빛을 발하였다.
태극권 제2초.
뇌공태극(雷功太極).
까아앙!
이리저리 단도를 피하던 유신의 권이 뇌진원을 공격했고, 가까스로 방어한 뇌진원의 얼굴에 난색이 어렸다.
“크으으윽!”
뒷걸음질 치는 뇌진원에게 유신의 신형이 놀라운 속도로 접근하며 양손을 휘둘렀다.
까가가강!
“대주! 위험합니다!”
매우 위태로운 신색으로 방어하는 뇌진원을 보며, 제령천위대의 절정고수들이 뇌진원을 돕고자 전방위에서 공격하였다. 그 순간 유신의 눈이 빛났다.
태극현천강기 제3식.
태극벽강(太極霹剛).
쿠콰콰콰콰.
유신을 기점으로 원기둥을 이루며 태극의 기운이 상하로 분출되었다. 눈 깜짝할 새에 엄청난 기세로 커지는 태극의 벽강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젖먹던 힘까지 공력을 쏟아부으며 태극벽강에 저항했지만, 제령천위대의 고수들은 물론 근처에 있던 연왕군의 병사들마저 집어삼켰다.
“세상에 이런 위력의 강기공이…….”
뇌진원의 탄식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과 함께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무도가대의 절정고수들이 뇌진원 쪽으로 합류하였고, 그 모습을 본 유신이 검을 뽑았다.
스르르릉! 촤아아앙!
유신이 검을 뽑는 동시에 그의 검에서 더없이 맑은 검명이 울렸고, 유신의 신형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룡식(武龍式) 양의문검(兩意紋劍) 응용기(應用技).
분심양의(分心兩意) 이형혼용(二形混用)의 검술(劍術).
유신의 양손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뇌진원과 절정고수들을 흩고 지나갔다. 양손에 든 검과 검집이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생명체 같았다.
풀썩, 풀썩, 털써억.
“……죽여라.”
어느새 뇌진원의 단검을 토막 낸 유신의 검이 뇌진원의 목 앞에서 멈춰있었고, 그나마 태극벽강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은 절정고수들이 하나둘씩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쓰러졌다.
‘무당의 양의문검이란 원래 무당의 두 가지 검법을 사용하는 것일진대 어찌 여섯 가지의 초식을 배합해낸 것인가. 이건 절정의 영역이 아니로구나.’
마치 무당의 절정검수 6명이 자신들을 공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득이하게 손을 썼으나, 태상노군을 따르는 제자로서 함부로 살생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유신이 슬쩍 손을 휘젓자, 그의 뒤편에서 황궁 내부로의 침투로를 가로막던 태극망강의 그물이 사라졌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괴룡 사신혁 시주가 이렇게 말하라 하더군요.”
“뭐라고 말이냐?”
“지금이라도 물러나신다면 없던 일로 하겠다 하였습니다.”
“큭…… 크하하하!”
뇌진원의 허탈한 웃음만이 전장을 가득 메웠다.
“유신이라 하였나?”
“그렇습니다.”
“남문은 사신혁이, 동문은 네가 막았다 치고, 그럼 서문은 어찌할 생각이더냐?”
뇌진원의 물음에 유신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말했다.
“서문도 괴룡이 손을 써두었지요.”
“서문에도 너만 한 실력자를 보냈단 말이냐?”
뇌진원이 아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마주한 무룡마저 초절정이라고 해도 무방할 무력을 보여줬는데 괴룡측에는 이런 고수가 한 명이 더 있다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그리고 서문을 구원하러 가신 분은…….”
유신이 살짝 말을 끊었다.
“빈도보다 강합니다.”
“그런가…….”
뇌진원의 입에 침이 고였다.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살갗이 따가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서문을 공격 중인 노왕이 공략에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남문의 영왕 또한 사신혁에게 발이 묶여있고, 동문도 이 모양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뇌진원의 고민이 깊어졌다. 연왕군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생각지도 못한 자가 등장하였다.
“물러나도록 하겠다.”
“연왕 전하?!”
뇌진원을 비롯한 연왕군이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하며 외쳤다.
“되었다. 전장에서까지 예를 갖출 필요는 없다. 일어들 나라.”
연왕의 등장과 함께 전세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성문을 공략하던 연왕의 군사들이 연왕을 호위하는 진을 갖추며 공격을 멈췄고, 그 사이에 동창의 고수들이 한 숨돌리며 유신과 연왕을 주시하였다.
“유신이라 하였나?”
“그렇습니다.”
“괴룡에게 제안을 수락한다 전해주게.”
“무량수불. 알겠습니다.”
“교위태감!”
유신과 대화를 마친 연왕이 이번에는 동문이 수비대장인 교위태감 건우를 불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연왕 전하.”
연왕의 부름에 건우가 나서며 예를 갖췄다.
“세자에게 전하게.”
“예, 전하.”
“즉위를 축하한다고. 그리고 본왕은 향후 10년간 북경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전하도록 하게.”
북경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연왕의 말은 지금처럼 요동지방의 외적들을 막아줄 거란 뜻이었고, 무엇보다 주윤문의 황위 계승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연왕의 말에 건우가 놀라서 되물었다.
“진정이시옵니까?”
“물론이다. 본왕이 진심으로 마음을 먹었다면 겨우 이 정도의 군세만을 동원했겠나.”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전하. 세자전하께 똑똑히 전하겠습니다.”
“좋다.”
말을 마친 연왕이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이만 돌아가자.”
* * *
쿠우우우웅!
허공에서 형성된 무형의 기운이 아지랑이가 일렁이듯 움직이며 일정한 형태를 이루어 갔다. 삐죽삐죽 돋아난 수염과 불길이 이는 듯한 부리부리한 눈이 그의 성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장군, 당신의 사모입니다.”
주소천의 말에 허공에서 아지랑이같이 일렁이던 기운이 주소천에게 덧씌워지며 장팔사모를 한 손에 쥐었다.
콰아아앙!
아지랑이로 이루어진 장팔사모를 땅에 박아넣은 주소천의 입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원래의 목소리와 위풍당당하고 사나운 목소리가 함께 흘러나왔다.
“나는 연인(燕人) 장익덕(張益德)이다. 누가 감히 나와 목숨을 걸고 일전을 벌이겠느냐?!”
천둥과 같은 고함소리였다.
“세, 세상에…….”
“정말 장비라고?!”
누구도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속삭였다. 나서면 죽는다.
“속지 마라! 사술이다. 뭣들 하는 게냐, 돌격하라. 돌격하란 말이다!”
어디서나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자가 한 명씩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자가 무리의 우두머리라면 정말 재앙과도 같을 텐데, 불행하게도 그런 자가 돌격명령을 내렸다.
“으…… 으아아아아!”
노왕의 명령에 선봉에 선 장수 중 하나가 창을 꼬나잡고 주소천에게 돌진했다.
쩌억!
격돌음도, 기합도 없었다. 무심한 눈빛으로 주소천이 창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고 달려들던 노왕군 장수가 창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방어하였으나, 주소천의 장팔사모가 적 장수의 창대부터 몸통, 심지어 타고 있던 말까지 그대로 갈라버렸고, 두 조각으로 쪼개진 말과 사람의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군기장수!”
그 모습을 본 노왕은 심장이 멎을 정도로 두려웠지만, 가까스로 지휘관으로서의 체통을 지키며 군기장수를 호명했다.
“예, 전하.”
“지금부터 돌격명령에 움직이지 않는 자의 목을 치도록 하시오.”
스르릉.
노왕의 명을 받은 군기장수가 망설임 없이 대검을 뽑아 가장 후미에서 움직이지 않는 병사들 몇의 목을 쳤다.
“아, 안돼! 빨리 앞으로 가!”
“도…… 돌격! 돌격하라아!”
후미의 병사들이 공포와 혼란에 흠뻑 젖어 이성을 잃고 소리쳤고 뒤에서 무작정 앞으로 대열을 떠미는 바람에 전방의 병사들이 파도에 휩쓸린 조각배처럼 주소천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크하하하, 가소롭구나.”
주소천의 장팔사모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휘둘러졌고, 주소천에게 다가가는 족족 무림인과 일반병사를 가리지 않고 목숨을 잃었다.
어느새 군기장수의 칼질에도 더 이상 성문을 향해 달려드는 이가 아무도 없게 되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장군.’
인혼강림술(人魂降臨術)의 지속시간이 다 되며 성문을 굳게 틀어막던 장비의 기운이 사라졌다.
“이놈들이 멈춰서서 뭐 하는 것이냐! 어서 가서 성문을 열라! 너희들의 벌레 같은 목숨 따위 나를 위해 바치란 말이다!”
노왕의 호통에 주소천의 고운 아미가 찌부러졌다.
“금의위장님.”
“예, 소저.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아니에요. 아까 제가 부탁드린걸 들어주셨으면 해요.”
“소저의 뒤로 누구도 통과시키지 말라 하신 것 말씀입니까?”
“맞아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소천의 활약으로 무공을 익힌 고수들의 숫자도 크게 줄었고, 무엇보다 적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듯 보였다.
“소녀는 지금부터…….”
인혼강림(人魂降臨)의 금주술(禁呪術).
현신(現神). 여포 봉선(呂布奉先).
쿠우우우웅!
주소천의 몸에 다시금 엄청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적장의 목을 취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