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청혼쾌도 풍호
“그래서 어제 내가 투전판에서 한탕 크게 벌었지 뭔가!”
“에끼, 이 사람. 자네 마누라가 알면 또 집에서 쫓겨나는 거 아닌가. 도박이라니!”
“어허, 자고로 사내가…….”
마교 청해분타의 대문을 지키는 무사들이 오후의 나른함을 쫓아내려 잡담 중이었다. 그때 그들의 눈앞에 어디서 많이 본듯한 사내가 정문으로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내의 인사에 정문을 지키던 무사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고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은? 괴룡?!”
“이거 참, 괴룡이라는 말은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되네요. 분타주님을 만나 뵙고 싶은데, 안에 계실까요?”
사신혁의 초상화를 분타의 전 인원들에게 나눠주며 언제 어디서든 사소한 거 하나라도 반드시 보고하라던 특1급 감시대상이자, 그가 원하는 것이면 전폭적으로 협조하라는 암연백의 지시가 떠올랐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수문 경비 무사 중 한 명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사라졌다.
‘제길, 내가 안으로 들어갈걸.’
사신혁을 앞에 둔 무사가 안절부절못하고 안에서 기별 오는 것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 코드네임 : 암영 1호]슈슈슉.
빅토리노의 보고와 함께 암영 1호가 그림자처럼 신혁의 앞에서 나타났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괴룡.”
“예,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괴룡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다만, 시기가 조금 안 맞았던 거 같습니다.”
“네?”
“분타주님께서는 조금 전에 급하게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신혁이 난처한 듯이 되물었다.
“예,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기셨다며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언제 돌아오실지 기약이 없으니 오늘은 아마 만나 뵙기 힘들 거 같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혹 실례가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 분타주님을 찾아오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응당 그리하겠습니다.”
“분타주님께 좀 여쭤볼 게 있어서 방문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제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것이라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심성의껏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급한 일은 아니니 분타주님께서 복귀하시면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살펴 가십시오.”
결국 암연백을 만나지도 못하고 다시 금미산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신혁이었다.
‘빅토리노.’
[예, 사령관님. 확인 결과 저희가 오기 직전, 서찰을 받은 암연백이 급하게 수하 몇을 이끌고 분타를 빠져나갔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흐음……. 역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특이사항으로는 그가 급하게 동원한 인원들은 코드네임 : 암영 1호에 필적할 만한 사이오닉 에너지를 보유한 자들이었습니다.]빅토리노의 말을 종합해보면 청해분타 내부에서 가장 전투력이 뛰어난 인물들만을 급하게 추려서 나갈 정도의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일단 테레사함으로 돌아가자. 내부 점검과 이번에 밖에서 얻은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암연백을 기다리면 될 것 같다.’
* * *
청해의 가장 강대한 세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세인들은 누구나 곤륜파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곤륜파는 중원의 역사 깊은 도문 중 하나이며 정파의 상징인 구대문파에 속해있는 명문이기도 했다. 그런 곤륜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방문 중이었다.
“이 외진 도량까지 어인 일로 오신 분들이오?”
척 봐도 산적이라고 말하는 듯한 복장을 한 일단의 무리에게 최대한 예를 갖춰 방문목적을 묻는 곤륜의 도사였다.
“거두절미하고 곤륜의 장문인을 만나고 싶다. 본인은 녹림 사천 동호채의 채주 풍호라고 한다.”
‘청혼쾌도(靑魂快刀) 풍호?! 녹림이 자랑하는 절정고수가 어찌 청해까지 와서 본파의 장문인을 만나고 싶다고 청한단 말인가?’
사내의 말에 곤륜의 정문을 지키던 젊은 도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리 곤륜이 정파의 명문이라지만 사파 사도팔문의 일좌인 녹림72채소속의 절정고수를 문전박대할 수는 없었다.
젊은 도사가 녹림의 방문을 알렸고, 대장로와 함께 폐관 수련 중인 장문인을 대신하여 유성도장이 풍호와 마주했다.
“그래, 빈도를 찾으신 연유가 어찌 되시오?”
서글서글한 눈매와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인 늙은 도사가 당대의 곤륜제일검이라 불리는 유성도장이었다.
‘곤륜제일검 유성도장. 저것이 곤륜의 신검 무상검(武狀劍)인가? 과연 허명이 아니었구나.’
비록 산적질을 하는 녹림72채 소속이었지만, 천생이 무인인 풍호의 눈길은 유성도장의 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무량수불.”
기껏 만나서는 아무 말도 없이 무상검을 뚫어지게 주시하던 풍호가 유성도장의 도호에 정신을 차렸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청호가 정중히 포권하며 말했다.
“흠흠, 이거 실례했소이다 도장. 본인은 대 녹림의 사천 동호채주 청혼쾌도(靑魂快刀) 풍호라 하오.”
“곤륜의 유성이외다. 장문인과 대장로께서 현재 폐관 수련 중이시라 부득이 빈도가 시주를 맞이하였으니, 곤륜이 무례하다 생각지 말아주시오.”
“괜찮소.”
“무슨 일로 곤륜에 오셨소이까?”
“괴룡 사신혁.”
흠칫.
풍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유성도장의 동작이 일순간 멈췄다.
“허허, 그 시주 때문에 예까지 오신 게요?”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찻잔을 들어 올리는 유성도장.
“이거, 과연 도를 닦는 도사님이셔서 그런지 세속의 명리에 초연하신 듯하외다.”
“과찬이오.”
“내 태생이 배운 게 없으니, 예는 잘 모르오. 허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그러시지요 시주.”
“본 채의 부채주인 파적도(破敵刀) 청호와 수백에 이르는 본좌의 수하들이 괴룡인지 지렁인지 하는 미친놈에게 억류되어 있소.”
“무량수불.”
과격한 청호의 말에 유성도장이 도호를 읊으며 말을 아꼈다.
“그리고 본좌가 알기로 그건 곤륜도 다르지 않다고 들었소이다.”
“허허허. 시주의 말이 맞소. 빈도도 그리 알고 있소이다.”
풍호의 말은 곤류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었지만, 여유로운 미소로 넘기는 유성도장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풍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알고 계신다 하셨소? 그걸 인지하고 계심에도 이렇게 손을 놓고 있는 것이오? 귀파의 제자들이 그런 모욕을 당했는데도 말이오?”
“모든 게 원시천존의 뜻이지요.”
“좋소. 그렇다면 내 도장께 한 마디만 더 묻고 떠나리다.”
“말씀하시지요 시주.”
“본좌는 괴룡인지 지렁인지 하는 놈과 담판을 지어 수하들을 데려오려 하오.”
풍호의 말에 유성도장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사파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풍호의 말은 의외였다.
‘허허, 신의와 협을 행할 줄 아는 시주인가. 참으로 의외로다.’
“허나, 도장께서도 괴룡 사신혁이라는 놈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자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이오. 해서, 본좌는 귀파에 협조를 구하려 하오. 나와 함께 귀파의 제자들을 구하러 가지 않으시겠소?”
곤륜과 녹림이 사신혁과 부딪힐 때까지만 해도 그의 무위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매산곡에서의 전투로 괴룡이라는 별호가 중원에 울려 퍼진 시기였다.
“그래, 시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오?”
“곤륜의 장로분들 중 최소 세 분이 본인와 함께 금미산으로 가셨으면 하오.”
“허허……. 그건 빈도의 독단으로 결정할 만한 일이 아니외다.”
곤륜의 장로급이란 당연히 절정이상의 뛰어난 고수들이다. 그리고 그 어떤 문파에서도 절정고수를 함부로 밖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적대세력이라 할 수 있는 사파의 요청임을 감안할 때 더욱더 수락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빈손으로 부탁드리는 것이 아니오.”
“무슨 말이오?”
“향후 십 년간 녹림은 절대 청해의 산을 노리지 않겠소.”
산을 노리지 않겠다는 말은 틈만 나면 청해의 조그만 산이라도 하나 잡아서 거점을 마련하려는 녹림의 야욕을 완전히 접겠다는 말이었다.
“잠시 기다려 주시구려. 빈도가 장로들과 의논을 해봐야 할 것 같소이다.”
“좋소. 기다리겠소.”
사실 곤륜에서도 괴룡에게 구류되어있는 제자들을 구하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드높은 정파의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그에 비견될 정도로 명분을 중요시하는 것도 정파였다.
사신혁과 곤륜의 문제는 대의명분이 곤륜에 없었기 때문에 다짜고짜 금미산에 쳐들어가기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사제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유성도장이 그를 기다리던 곤륜의 장로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사형,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빈도가 금미산으로 가겠습니다.”
* * *
며칠간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용신주의 개조작업을 완료한 신혁은 더 이상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빅토리노, 암연백은 아직인가?”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코드네임 : 암연백 같은 첩보원들의 행적은 위성과 스파이 버그로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서…….]빅토리노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그래서 차선책은?’
[청동현에 들러서 현령과 관리들에게 정보를 얻는 것을 추천드립니다.]‘그래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밑져야 본전이겠지.’
빅토리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혁이 청동현의 현청으로 나아갔다.
* * *
“응? 저게 뭐야?”
청동 현청에 다다를 때 즈음에 무언가를 발견한 신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 자식들아, 구겨지지 않게 쫙 펼쳐서 걸란 말이야.”
“예, 형방 나으리.”
분주하게 병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그 중심에서 청동현의 형방 미종이 작업을 지시하고 있었다.
“내 말 못 들었어? 쫙 펴서 걸라고! 현청의 현판이 가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현수막은 최대한 잘 보이게 걸란 말이야. 이 새끼들이 진짜, 빠져가지고. 간만에 한따까리 해? 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
“죄, 죄송합니다.”
미종의 짜증이 가득 담긴 지시에 병사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어쭈? 표정 봐라? 얼굴 안 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병사들이 미종의 갈굼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바쁘게 작업을 계속했다.
‘그럴 거면 지가 하지.’
‘운 좋게 금미산에 한 번 올라갔다가 괴룡을 만나서 벼락출세한 놈이…….’
‘으휴, 진짜 더러워서. 포졸을 관두든가 해야지. 형방이 되고 아주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구만.’
병사들이 속으로 미종에 대한 욕을 하며 작업을 서둘렀다.
“흐음~ 좋아. 아주 잘 걸렸구만. 나중에 황사님께서도 보시면 매우 좋아하실 거야. 흐흐흐흐…….”
경축!
황사(皇師) 찬황지존위군(讚皇至尊位軍) 괴룡 사신혁!
사신혁 대인의 영전(榮轉)을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합니다.
위 내용의 현 수막 수십 개가 청동현의 정문의 현판을 가릴 정도로 크게 걸려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사령관님. 역시 낭중지추라고 여기서도 사령관님의 능력은…….]‘조용히 해라.’
[…….]신혁이 현청의 문 앞에 다다를 즈음에 그를 발견한 누군가가 신혁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화, 황사 찬황지존위군을 뵈옵니다~!”
“응?”
“황사?!”
그 병사의 말이 기폭제가 되어 모두의 시선이 신혁에게 집중되었고, 미종이 들고 있던 마지막 현수막을 집어 던지고는 나는 듯이 다가와 넙죽 엎드려 크게 외쳤다.
“대명제국의 황사, 찬황지존위군을 뵈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신혁이 말릴 생각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굳었다.
‘창피해…….”
“일단, 일어나시지요. 이건 좀…….”
“명을 받듭니다.”
신혁의 말에 우아하게 예를 갖춰서 일어나는 미종과 수십 명의 병사들을 보며 귀까지 빨개지는 신혁이었다.
끼이이익!
신혁이 얼굴에 오른 열기를 가라앉히며 평정심을 찾으려는 찰나, 현청의 문의 열리며 현령이 뛰쳐나왔다.
우당탕탕! 꽈앙!
“으악. 내 무릎!”
“현령님 괜찮으십니까?”
“끄으응……. 대, 대명제국의 황사, 찬황지존위군을 뵈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현령이 아려오는 무릎의 고통을 억누르며 신혁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고, 다시 한번 방금 전의 촌극이 반복되었다.
‘그냥 테레사함으로 돌아갈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