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99
99화. 교섭결렬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분들을 풀어드릴 수 없습니다.”
“이리 찾아와서 부탁까지 드리지 않소이까. 그대가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대 녹림과 원한을 맺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외다. 내 수하들을 대신하여 정중히 사과드리겠소이다. 저들을 풀어주시오.”
“안됩니다.”
“대체 왜 안 된다는 것이오? 이유나 좀 압시다.”
신혁의 단호한 대답에 풍호가 화를 삭이며 이유를 물었다.
“저분들은 제게 금전적, 시간적, 신체적으로 피해를 주었습니다. 뭐 신체적인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제 목숨을 노렸지요. 제가 만약 힘없는 사람이었다면 꼼짝없이 죽었겠지요. 그러니 저들은 그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그런…….”
“물론 언젠가는 풀어드릴 겁니다. 다만 그 시기는 제가 입은 물질적, 금전적 피해의 손해 배상이 끝나는 날이겠지요.”
신혁의 말에 말문이 막히는 풍호였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풍호의 뒤에서 사태를 주시하던 유성도장이 신혁에게 말했다.
“시주, 빈도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괴룡 시주가 말씀하신 이유는 타당하오. 그것을 부정할 마음은 없습니다. 따라서 빈도는 순리대로 우리의 은원을 해결하였으면 좋겠소.”
“순리요?”
“괴룡 시주의 조건을 들어드리겠소. 시주의 말대로 곤륜에서 보상을 하겠소이다.”
“보상이라…….”
신혁이 흥미가 동한다는 듯한 얼굴로 유성도장을 바라봤다.
“괴룡 시주가 원하는 만큼의 금전적 보상을 해드리겠소. 그리고 빈도가 곤륜을 대표하여 본파의 제자들이 그대에게 저지른 무례를 사과하겠소.”
“사과는 받겠습니다. 다만 금전적인 보상은 필요치 않습니다.”
신혁과 유성도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풍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이보시오. 지금 나와 장난을 하자는 거요?”
풍호의 말투가 직설적이고 다혈질적으로 바뀌었다.
“그럴 리가요.”
“허면 대체 뭘 바라는 거요? 정파의 명숙인 유성도장이 저토록 예를 갖춰서 사과하고 금전적인 보상을 해준다는데 그대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존중도 없는 것이오?”
“예의와 존중이라…….”
신혁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제 거처에 허락도 없이 무리를 이루고 무장한 채 찾아오신 분들을 이렇게 직접 응대해드리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예의와 존중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까?”
“그건…….”
“제가 이곳에 온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아주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배웠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강호인, 무림인이라 불리는 분들은 재미있는 점이 있더군요.”
신혁이 슬쩍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명분이나 지위 따위를 내세워서 상대방에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로 거절하면 그때부터는 강호의 도리대로 하자며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건…….”
신혁의 말이 맞았다. 강호의 몸담은 자로서 그 역시 본신의 무력이 신혁을 압도했다면 진작에 칼을 뽑고 날뛰었을 테니 말이다.
“이곳 금미산에 가둬둔 이들을 풀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은 죗값을 치른 뒤에 풀려날 것입니다. 그게 싫다면 제가 원하는 것을 가져오십시오.”
“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십대기보 중 하나. 혹은 그것의 위치를 제게 제보하십시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않소!”
“후우…….”
신혁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좋게 이야기하면 말을 안 들어먹는지 이해가 안 가는 신혁이었다.
“제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강호의 도리대로 하시겠습니까?”
“…….”
그 한마디에 풍호의 입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다물어졌다.
“……좋소. 오늘은 비세를 인정하고 물러가리다.”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뜨는 풍호였다. 이 자리에 남아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여기서 신혁과 더 입씨름했다가는 사달이 날 것만 같았다.
“도장께서도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허허허, 아니오. 빈도도 이만 가보겠소이다. 시주의 뜻을 잘 알겠소.”
유성도장 역시 제자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곤륜과 녹림의 인원들이 모두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신혁이 청호와 유양도장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자, 손님들은 가셨고. 의도치 않았지만 약간의 면회시간 정도는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만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십시오.
* * *
한편 유성도장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자, 풍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렸소 도장.”
“동호채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소이까?”
“이대로 수하들을 포기할 수 없소. 그건 도장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하오. 그렇지 않소이까?”
“그거야…….”
유성도장 역시 사제와 사질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어쩌랴, 여기서 괴룡과 사생결단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좋은 생각이 있소. 이것은 괴룡과 싸우지 않아도 수하들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이오.”
“그런 수가 있소이까?”
“그자가 수하들을 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이곳 현령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오. 개인의 신분으로 제국의 신민들을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오.”
“그러니까 시주의 말씀은……?”
유성도장의 예상과 달리 풍호는 과격하지만, 머리를 쓸 줄 아는 자였다. 풍호가 유성도장을 보며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곤륜과 녹림이 나서서 청해성주에게 조금만 압박을 가하면…….”
유성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라면 신혁과 부딪힐 일도 없고 국가의 법대로 하자는 것이니 나중에 신혁이 따지러 와도 할 말도 있었다.
“응? 웬 병사들이?”
유성도장이 풍호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고민하던 그때, 풍호의 눈에 멀리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병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뭐야? 왜 도사들하고 산적들이 여기 있는 거지?’
병사들의 선두에 선 자는 청동현의 형방 미종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병사들은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었고, 풍호가 시력을 돋워 자세히 보니 각종 나무 팻말들이 주를 이루는 것들이었다.
“본관은 청동현의 형방 미종이라 하오. 그대들은 누구시길래 감히 금미산에 무장을 하고 온 것이오?”
미종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풍호가 어이가 없어서 나섰다.
“본인은 대 녹림의 동호채 채주 풍호라 하오. 이곳이 어디길래 감히라는 표현까지 쓰시는 거요?”
그의 말투는 누가봐도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청동현 같은 조그만 관청의 형방이 감히 자신과 맞먹으려 들려는 것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흠흠, 본관의 말을 그대가 오해한듯하오. 이곳은 황제 폐하의 명으로 인하여 누구도 허락 없이 접근해서는 아니 되는 곳이오.”
뜬금없는 황제의 명이라는 단어에 유성도장과 풍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여기서 황제가 왜 나온다는 말인가?
“소식을 못 들으신 거 같소이다. 이곳은 황사이시며 찬황지존위군이신 사신혁 대인께서 머무시는 곳입니다. 게다가 청해성 또한 그분의 봉지로 봉해졌으니, 당연히 금미산에 아무나 오르게 할 수는 없지 않겠소? 본관은 그 내용이 담긴 출입금지 팻말을 설치하기 위해 온 것이라오.”
미종의 말에 입이 떡 벌어지는 풍호와 유성도장이었다.
‘주윤문이 황제로 즉위한 것도 얼마 전에 알았건만, 대체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허허허……. 청혼쾌도 시주의 계략은 시도조차 할 수가 없겠구나. 괴룡 시주가 황제의 스승이 된 것도 놀랍건만 찬황지존위군이라니.’
풍호와 유성도장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찬황지존위군이라니……. 헙?!”
치밀어오르는 분노로 신혁에 대한 욕을 하던 풍호가 급하게 입을 막았다. 그 말고도 보고 듣는 눈이 많았다. 신혁에게 욕을 하는 것은 번왕에게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돌아가자.”
* * *
‘암호문의 그것은 분명 대주님의 표식이었다. 여기가 맞을 텐데…….’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신강과 청해의 경계 지점. 울창한 나무와 수풀로 가득 찬 숲속의 한 곳에 암연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이다 부대주.]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오는 전음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마안천이대주의 목소리였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대주께서 직접 행차하신 걸까?’
생각을 거듭하는 암연백의 움직임이 더욱 은밀해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만이 사위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달빛이 암연백을 비출 때, 연기처럼 누군가가 나타나 암연백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군 부대주.”
“예. 대주님.”
암연백이 정중하게 포권하였다. 검은색 야행복에 괴이한 문양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 바로 마교의 정보조직 마안천이대의 대주 비연귀살(秘煙鬼殺) 신무외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지. 본교에 내전이 발생했네.”
생각지도 못한 신무외의 말에 암연백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예?! 내전이요? 대체 누가?”
“암흑밀교가 창천명교를 굴복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천마교를 기습했네.”
“예?! 설마, 암흑밀교의 교주가요? 광마 단운천 교주와 저희 천마교의 교주님이 건재하신데 어떻게 그런 짓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철저하게 상명하복의 논리에 길들여진 암연백조차 반문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해가 안 가는 명령이었다.
“간략하게 현 상황을 설명해주도록 하겠네. 그리고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게.”
“명심하겠습니다.”
“마교의 새로운 지존이 탄생했네.”
“……!”
암연백의 머릿속에 여러 인물이 떠올랐다. 천마교, 암흑밀교, 창천명교의 교주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초절정고수들이었고, 마교의 대장로인 흑익검마 진용제 역시 극마에 오른 초절정의 고수였다.
지금까지 균형을 이루고 있던 현재 마교의 세력을 누가 무너뜨린 것일까.
“대체 누가 지존의 위에 올랐다는 말씀이십니까?”
“현아진. 이름과 공포스러운 무위 말고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자네.”
“그게 대체 누구입니까?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더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네. 본교에 귀환해야만 하네.”
마교의 장로 중 한 명인 마안천이대주 신무외가 장시간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고, 그 부분은 암연백도 충분히 동의하는 바였다.
“본인을 비롯한 천마교의 교인들이 힘을 합쳐서 가까스로 위지천 소교주님과 천마진천대의 절반을 탈출시킬 수 있었네.”
아직까지 신임 교주에게 충성서약의 명을 받지 않은 것은 마교의 외부 분타에 파견되어있는 일부 인원들 뿐이었다.
“본좌 또한 마교인. 자랑스러운 천마신교의 신도로서 본교의 율법을 거스를 수는 없네. 허나 아직 명을 받기 전인 자네가 위지천 소교주님께 충성을 맹세한다면 천마교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나…….”
신무외가 말을 흐렸다. 그에게 암연백에게 스스로 모실 주군을 선택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 천마교의 교인으로서 천마교의 적통인 위지천 소교주를 택할 것인지, 그게 아니면 그 근본은 알 수 없으나 새롭게 교주가 된 현아진이라는 자를 따를 것인지를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왜 신무외가 왜 자신을 급하게 불렀는지 이해가 되는 암연백이었다. 신무외 역시 천마교의 입장에서 위지천의 편에 서주고 싶었으나, 이미 마교의 율법에 따라 교주가 된 현아진이라는 자에게 충성을 맹세하였으니, 새 교주의 취임식이 있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을 활용하여 위지천 소교주를 부탁한 것이리라.
“본인의 뜻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네. 자네는 자네의 길이 있을 테니 말일세.”
만약 암연백이 신무외의 기대와 달리 신임교주에게 위지천을 팔아먹는다면, 마교내에서 탄탄대로를 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위지천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이길 확률이 거의 없는 마교의 권력 쟁투에 쓸쓸히 죽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예, 이렇게 속하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신 대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암연백이 정중하게 포권하였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신무외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