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venience Store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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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다가오는 얼굴. 입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곳에서 근호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장 구석을 가리키는 것뿐이었다.
“C, CCTV!”
“난 보여줘도 되는데.”
하여간 말릴 수가 없다. 결국 포기한 채 근호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다시 멀어진 미영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한 번씩 생각 해.”
그러나 그 얼굴은 금세 쓸쓸함으로 물든다.
“또 다시 사라지는 건 아닐지 말이야.”
“걱정도 팔자시네요.”
이제는 그러지 말라는 듯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그러나 근호는 손가락을 걸어주지 않았다.
“장담할 수 없는 약속은 하지도 말라!”
“…뭐가 자랑이라고 당당한 거야.”
대신 그의 손이 뻗은 것은 미영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볼을 매만지며 그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꼭 돌아올게. 이건 약속할 수 있어.”
이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미영 또한 근호에 대해 알고 있다.
“어기기만 해봐.”
“아이고, 무서워라.”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기에 손가락을 걸 수 있다.
마주보며 웃음을 지은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과 마찬가지였다.
반지하의 보금자리는 여느 때와 같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빛이 어둑했고 습한 공기로 가득했지만 평소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휴, 챙길 건 이 정돈가?”
있어야 할 물건들이 없는 안은 플라스틱 박스로 가득 차있었고, 그곳에서 근호는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별 거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짐이 있네.”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찌뿌듯한 몸을 풀고 있으니 스마트폰이 울린다. 도착한 톡을 보니 미영이 못 가서 미안하다고 보낸 것이었다.
“안 와도 된다니깐.”
괜찮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답장을 보내고 나니 이번에는 전화가 울린다. 이삿짐센터에서 온 것이었다.
“여기도 오늘로 끝이네.”
좁은 방.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습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보일러 또한 내키는 대로 작동이 되는 곳이지만 나름의 정이 든 곳이다.
“뭐, 계속 멈춰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래도 월세만큼은 저렴했기에 사정에 딱 맞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삿짐센터가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근호는 짐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는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간 참 빨리 가네.”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았을 것만 같았지만 지금은 모두 과거가 되어버렸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구도 자신과 같은 경험은 하지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용케도 살아있네, 나.”
문득 옛날 일을 떠올리면 꼭 부끄러웠던 일들만 떠오른다. 예를 들면 함께 모험을 했던 동료가 자신을 좋아했다고 착각한 그런 일들만 말이다.
“젠자앙- 이런 기억은 좀 사라지라고!”
밀려오는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 싸고 바닥을 뒹굴지만 떠오른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 고마웠던 근호는 단걸음에 현관을 열어주었다.
“용사님-!”
다시 닫았다.
“뭐예요, 왜 닫아요?!”
기다렸던 이삿짐센터가 아니었다는 것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무심코 한 행동이었다.
“뭐야, 너 왜왔어?”
“너무 차가운 반응 아니에요?”
“그래서 왜 온 거냐?”
“이사한다고 해서 도우러 왔죠!”
걷어붙인 소매를 자랑하며 목장갑을 낀 주먹을 꽉 쥔다. 그런 실비아를 보며 근호는 문을 활짝 열어 안을 보여주었다.
“이미 다 끝났어.”
“벌써요?!”
정말로 도와주려고 했다면 일찍이 올 것이지 이미 해가 중천을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다.
“그럼 탕수육은요?!”
“그게 목적이냐!”
결국 노리는 것은 잿밥이라는 것이다. 충격에 빠져 입을 다물지 못 하는 실비아를 근호는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였다.
“이사 다 하면 먹고 가. 사 줄 테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차피 그녀가 도울 것은 없다. 짐은 이미 모두 정리된 상태고, 나머지는 이삿짐센터의 사람들이 다 해줄 것이니 말이다.
안으로 들어온 실비아는 포장된 짐을 둘러보니 차갑게 식은 벽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뭐 하냐?”
“왠지, 용사님께서 이런 곳에서 생활했다는 게 안 믿겨져서요.”
이곳에서 생활한 것만 벌써 몇 년이다. 근호는 새삼 무슨 소리를 하냐고 했지만 실비아는 벽에서 손을 때지 않았다.
“역시 돌아가진 않을 거죠?”
“어디로? 아르티니아?”
고개를 끄덕이는 실비를 쳐다본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은 근호는 하품을 내뱉었다.
“또 모르지. 내키면.”
“그런가요.”
나쁘지 않은 대답이라는 듯 입꼬리가 올라간다. 벽에서 물러난 실비아는 근호의 옆에 자리를 잡았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고개를 흔들었다.
“너야말로 안 돌아가냐? 평생 여기서 살 거야?”
“어떻게 아셨어요?”
“정말 눌러 앉을 셈이냐.”
“네!”
더 이상 마물의 침공은 없기에 협력자로서의 역할은 끝이 났다. 이제 이곳과 저곳은 별개의 세상이 되었음에도 실비아는 힘차게 대답했다.
“오라버니도 허락하셨어요.”
“레오날이? 여동생으로 고생하는 건 국왕 전하도 똑같네.”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면 예전처럼 생활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원을 해주던 지부도 지금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실비아가 우수한 학생인 것도 아니니 말이다.
“밥 안 굶으려면 돌아가는 게 나을 텐데.”
“괜찮아요.”
걱정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외, 외… 외교! 이제는 외교 머시기로 있기로 했거든요.”
“그 머시기가 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냐.”
이런 아이한테 대체 무엇을 맡기겠다는 건지, 아르티니아 왕국관의 외교가 심히 걱정이 된다.
허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비아가 남게 된 것은 아마 레오날의 배려에 의해서 일 것이다.
외교는 어디까지나 명목을 뿐인 것으로 말이다.
“너도 참 금수저구나.”
“정확히 말하면 왕관수저죠.”
“…그걸 네 입으로 말 하냐.”
“에헴!”
두 손으로 허리에 얹은 채 가슴을 내미는 모습이 참으로 당당하다. 어이가 없는 근호는 그저 헛웃음만 흘렸다.
째깍째깍 시간은 흐르지만 아직 이삿짐센터는 도착하지 않는다. 지루해진 근호는 자신보다 더 그렇게 느낄 실비아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 뭐냐?”
“용사님 기억하고 있어요?”
느닷없는 질문이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실비아가 오크를 끌고 온 날을 떠올린다.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것 같아.”
“헤헤, 그런 일도 있었죠.”
옛날 일들은 잊고 지내려고 했지만 지난 시간과 지금은 연결되어 있다는 듯 과거는 뒤따라왔다.
단지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일을 없앨 수는 없다는 듯 시간은 계속 흘러갈 뿐이었다.
너무 지쳐있던 것이다. 검을 쥐는 것에, 사람에게.
“근데 뭐,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해.”
하지만 상처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곪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당장은 아플지언정 치료가 된 후에야 힘들었던 시간들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할 수 있었다.
“전부 제 덕분이네요?”
“누가 그렇게 말 했냐.”
“조금은 칭찬 해달라고요.”
“오냐, 손톱 때만큼 네 덕분이다!”
전혀 칭찬 같지 않은 소리지만 본인은 만족한 듯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실비아가 있어주었기에 바뀔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막무가내로 나오는 그녀의 행동에 가라앉을 여유는 없었고 멈춰 설 수도 없었다.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 정도는 인정해줘야겠지.”
무겁게 몸을 일으킨 근호가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런 그의 행동에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아, 미안. 싫었냐?”
순간적으로 어두워진 분위기를 느껴 다급히 손을 땐 근호였지만 실비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용사님 기억하고 있어요?”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한 번 묻는다. 방금 나누었던 이야기가 아님을 안 근호는 잠깐 생각을 해보았지만 집히는 것은 없었다.
고개를 든 실비아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빛이 새어 들어오는 작은 창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옛날에도 이렇게 해주셨어요.”
“옛날? 언제?”
두 개의 달이 하나가 되던 날. 마왕군과의 전투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머쥔 그 날.
“아, 그때. 근데 너도 있었냐?”
“역시 기억 못 하고 있네요.”
자신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상했는지 볼을 잔뜩 부풀린 실비아는 토라진 듯 고개를 획 돌렸다.
“그땐 만나는 사람을 모두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니까.”
변명은 있다. 감았던 눈을 뜨면 누군가가 죽어갔던 현실 속에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그럴 수도 있겠죠.”
“뭐냐, 내가 혼자는 입장이냐?”
하지만 실비아는 기억하고 있다. 칠흑과도 같이 어두웠던 세상 속에서 불씨를 태워냈던 눈동자를 말이다.
“옛날 얘기를 왜 꺼내, 비교되게.”
“왜요?”
그리고 지금. 그때와 똑같은 눈동자를 한 근호를 바라본다.
“지금도 그때처럼 멋진걸요.”
조금의 여과도 없는 직설적으로 건네는 말에 시선과 손을 어찌 할 줄을 모른다.
“어, 그, 뭐냐. 고맙다.”
쑥스러운 듯 콧잔등을 문지르며 시선을 피하는 근호의 얼굴은 조금 달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뭐에요,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시, 시끄러. 그러니까 갑자기 그런 말하래?!”
“칭찬한 거잖아요!”
“누가 하래?!”
분명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는 이에 가깝다. 숨이 찰 정도로 씩씩 거린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많이 컸네.”
“기억 안 난다면서요.”
“어렴풋이 떠올랐어.”
“둘러 대는 거 아니에요?”
쉽사리 들통나버리고 말았다. 서운하다는 듯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실비아를 근호는 좁은 집안을 피해 다녀야했다.
*
두 개의 달이 하나가 되는 날. 연속된 패배로 지친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른 날 처음으로 거둔 승리는 마치 가뭄 속에 단비와 같았다.
이제부터는 다르다. 앞으로 뒤집어질 전황에 승리를 기념하는 파티는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분위기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승리의 주역이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호, 잠깐 이쪽으로 오게나.”
“왜 그래, 레오날?”
그곳에서 한 소녀는 그를 만난다.
“처음 뵙겠습니다. 실비아 알 아르티니아입니다.”
작은 소녀는 배워온 데로 치마의 끝자락을 살짝 들어 올린 채 인사를 건넨다.
무르익는 자리. 슬픔은 잠시 잊은 채 웃음만이 떠도는 회장 속에서 소녀가 청한다.
“용사님, 앞으로도 아르티니아 왕국을, 세상을 이끌어주세요.”
바람을 담은 청에 용사는 대답한다.
“공주님, 전 한 명에 병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뻗어오는 손은 작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같이 만들자고.”
그 눈동자에는, 미소가 가득한 그 얼굴에는.
“좋은 세상을 말이야.”
올곧음만이 가득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봐주셨나요. 재미있게 봐주셨다면 좋겠습니다.
…라고 여쭙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안녕하세요, 편의점의 소드마스터 글쓴이 파실(홍형우)입니다.
124화, 다섯 권의 분량으로 편의점의 소드마스터가 끝이 났습니다.
이번 작품은 봐주신 분들에게도 그렇겠지만 글쓴이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소재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지 못 했다는 것입니다.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완결을 조금 서둘렀습니다.
여러분들의 충고와 더불어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바꿔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수와 실패만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길게 예정되어 있던 내용을 압축시키다보니 더욱 엉망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글을 쓰며 가장 신나게 쓴 만큼, 너무 신을 낸 탓에 주변과 뒤를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지 못했을까 후기를 적는 지금도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배운 것도 많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새롭게 만나는 작품에서는 배운 것들을 더욱 살려 더욱 좋은 작품, 재밌는 작품으로 만나 뵙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편의점의 소드마스터를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