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08)
요리하는 소드마스터-108화(10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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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장 세계수의 수호자
“미, 미안해요. 설마 에이레네가 케인첼이 만든 요리를 먹고 싶다고 할 줄은 몰랐어요······.”
니뮤에가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그녀도 이렇게까지 호라이즌이 라이벌 의식을 불태울 줄 몰랐다고 한다.
“상관없습니다. 다른 종족의 셰프와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이기기 쉽지 않을 거예요. 세계수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 식물들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어요.”
케인첼은 엘드라드로 들어오면서 본 세계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저 커다란 나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태계 그 자체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니.
‘그래서 세계수가 불타버린 브리타니아의 엘프들이 그토록 쇠락한 거구나.’
만약 사람들의 주식을 책임지고 있는 밀과 보리와 감자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니뮤에가 먹을 것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처음 보는 식재료로 요리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호라이즌은 오랫동안 채식 요리를 만들어 왔어요. 그 실력은 상당해요. 이것들을 보시겠어요?”
니뮤에는 신기하게 생긴 버섯을 꺼내 내밀었다. 엘드라드의 특산품답게 처음 보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향이 엄청났다. 제대로 요리하지 않은 것임에도 방안 가득 송진 냄새가 퍼져나갔다.
“나팔처럼 생겼군요.”
“예, 그래서 나팔버섯이에요. 그런데 그 향과 맛은 송이버섯이랑 비슷하다고 해요. 그리고 이쪽에 있는 것은 카로트라고 해요.”
카로트를 반으로 가르자 새하얀 속살로 꽉 차 있었다. 케인첼은 눈을 빛내며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뭐야, 이거. 폭신폭신 하면서 촉촉한 것이, 잘 구운 빵의 생지 같잖아?’
그것뿐이 아니었다. 엘드라드에서는 밀과 쌀이 땅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열린다고 한다.
게다가 먹어보니 묘하게 달콤하다.
‘매콤한 맛이 나도록 토마토 대신 파프리카를 듬뿍 넣고 빠에야를 만들면 엄청나게 맛있겠는데.’
니뮤에는 귀까지 빨갛게 물든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그리고 결국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케인첼의 요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처음 보는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것은 힘들어요. 에이레네에게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저라도 괜찮으면 들어 드릴게요.”
“아,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요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최고의 채식 요리를 만들어 보도록 하죠.”
“그런데 케인첼은 엘프에게 요리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계신가요?”
케인첼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잘 만든 요리를 먹으면 인간, 엘프 상관없이 모두가 맛있다고 말해 줍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닐까요.”
니뮤에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인간은 엘프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다.
그저 요리를 하는 것이 좋아서 자신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니뮤에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고 자란 식재료는 엘프들에게 있어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엘프들은 소중한 이에게만 직접 요리를 만들어 준다.
호라이즌이 케인첼을 보고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만나는 엘프마다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가 여왕에게까지 손을 대려 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럼 이것으로 몇 가지 채식 요리를 만들어 볼 테니까 시식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니뮤에는 입술을 벌려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그리고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예 그럼요! 대신 다음에는 제가 만든 요리도 시식해 주셔야 해요.”
“물론이죠.”
니뮤에는 자신이 첫눈에 반한 요리가 다른 엘프들의 입에도 맛있게 느껴지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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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양파처럼 쓰면 되겠네. 조금 향이 더 강해서 마치 샤프란을 섞은 것 같군.’
케인첼은 엘프족의 식재료를 하나씩 먹어가며 그 맛을 분석했다.
미식 레벨이 5성이 되자, 케인첼의 혀는 더욱 예민해졌다.
1리터의 물속에 섞인 한 방울의 레몬즙을 찾아 낼 수 있었으며. 요리를 먹으면 사용한 향신료가 무엇인지까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거의 ‘절대 미각’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케인첼은 엘프들이 카로트라고 부르는 나무 열매를 어루만지며 브릴리언트 로드를 발동 시켰다.
그러자 카로트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들이 떠올랐다.
[매운 칠리와 카로트를 넣은 부리또] [블루베리 카로트 케이크] [카로트를 사용한 매콤한 면요리] [구운 카로트, 호박, 훈제 파프리카를 넣은 스튜]하나같이 맛있어 보이는 요리들이었다. 브릴리언트 로드를 사용하면 엘프들을 위한 채식 요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거 나팔버섯이라고 했지?’
케인첼은 악기 모양으로 생긴 버섯을 들어올렸다.
엘프들은 이것을 세계수 주변에서 흔하게 채취 할 수 있다고 한다.
겉보기는 이상해도 맛과 향이 영락없는 송이버섯이었다.
송이버섯은 아삭아삭한 식감은 물론, 그 맛과 향이 강해서 어떤 식으로 요리해도 맛있는 식재료다.
그렇지만 동방의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어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버섯이었다.
‘담백하게 숯불에 구워 먹거나, 닭고기 육수에 넣고 끓여 먹으면 아주 죽여주겠는데.’
나팔버섯 외에도 엘프들이 사용하는 식재료는 대부분 맛이 좋았다. 이 정도면 평생 채식만 하고 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향신료가 눈에 띠었다.
마치 동물의 가죽처럼 느껴지는 잎을 가진 콜라라는 나무의 껍질이었다.
아주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 시험 삼아 브릴리언트 로드를 사용해 보았다.
그러자 이상한 것이 보였다.
‘검은색의 음료수?’
케인첼은 콜라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향신료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묘하게 대박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케인첼은 우선 익숙하게 사용 할 수 있는 식재료를 모았다. 그리고 브릴리언트 로드가 보여준 레시피대로 요리를 시작했다.
우선 밀가루 열매의 속을 꺼내 올리브유와 찬물로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조금 더 길고 복잡한 이름이었는데, 대충 밀가루 열매라고 부르면 되지 않겠어.’
밀가루 열매는 파스타를 만들기에 딱 이었다. 계란을 넣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적당한 기름기를 가지고 있었고, 조금만 반죽해도 쫄깃하다.
혹시나 싶어 가지고 온 이스트를 넣어주자 적당히 부풀어 올랐다.
그것을 손가락을 이용해 한 입 크기로 떼어낸 후 끓는 물에 넣고 삶았다.
케인첼은 고함을 지르며 파스타를 끓이는 요령을 설명하던 고든의 모습을 떠올렸다.
― 파스타를 넣은 다음에는 굵은 소금과 올리브유를 한 스푼씩 넣어주란 말이다! 그래야 서로 엉겨 붙지 않아!
그리고 파스타의 중심이 약간 설익어 씹히는 느낌이 드는 ‘알 텐테’ 정도가 먹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시험 삼아 입에 넣어 보니 이빨을 튕겨낼 정도의 탄력이 느껴졌다.
‘좋았어. 파스타는 완성이군.’
다음으로는 곁들여 먹을 고명을 만들 차례였다. 케인첼은 나팔버섯을 도마 위에 올려두고 오러 소드를 발동 시켰다.
그리고 결을 따라 잘라내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로 매끄러운 절단면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간장과 달콤한 나무 열매를 넣고 끓여 만든 소스를 발라가며 굽기 시작했다.
짭조름한 간장의 맛이 배어든 나팔버섯은 진한 소나무 향을 내며 익어갔다.
‘그리고 양파에 사프란을 섞은 것 같은 뿌리채소인 피아가놀을 잘게 썰어서 올리브유에 볶아주는 거야.’
거기에 마치 삶은 브로콜리처럼 느껴지는 케민잎과 카로트를 넣어 준다.
피아가놀의 향이 케민잎과 카로트에 적당히 배길 즈음.
마지막으로 나팔버섯과 파스타를 섞어 줄 차례였다.
치이이익!
팬을 들고 있는 케인첼의 손이 불꽃 위에서 춤을 췄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조금도 덥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엘프들의 식재료.
그것으로 아주 익숙한 버섯 브로콜리 파스타를 만든다.
고든 램볼튼은 국경은 물론 종족마저 초월한 요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에 한발 다가간 것이 아닐까.
파스타 외에도 케인첼은 몇 가지의 요리를 더 만들었다.
메이플 시럽을 넣은 샐러드. 채소와 콩을 또띠아에 싸서 만든 엔칠라다.
그리고 렌틸콩 파이.
전부 엘프들의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인간식 요리.
‘그래,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야.’
케인첼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하나같이 5성급 완성도의 채식 요리들.
이제부터 엘드라드의 여왕이 이것을 시식한다.
과연 어떤 평가를 듣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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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은 케인첼이 만든 요리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분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인간 따위가 피아가놀을 사용한 요리를 만들다니······.”
“먹어보니 의외로 맛있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몇 개 정도 얻어가도 되겠습니까.”
“······멋대로 해라.”
다른 요리들도 하나같이 맛있어 보인다.
수십 년 동안 채식요리만을 만들어 온 호라이즌의 요리에 비교해 봐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완성도였다.
그렇지만 승패를 정해주는 것은 엘프 여왕의 몫이었다.
호라이즌은 공손하다 못해 애정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님. 인간이 만든 요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세계수의 가지에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던 여왕이 뛰어 내렸다.
“이게 니뮤에님이 맛있다고 칭찬하던 요리구나! 어서 먹고 싶어! 포크를 줘!”
케인첼은 엘프 여왕의 모습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묘하게 익숙한 얼굴이다 했더니 반나절 전에 과자를 얻어먹었던 엘프 소녀였다.
인간으로 치면 1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과 녹색 눈동자에서는 싱그러움마저 느껴진다.
니뮤에는 커녕 아벨보다도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에이레네는 쾌활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인간! 과자는 잘 먹었어!”
“여, 영광입니다, 여왕님.”
“어차피 우리 일족도 아닌데, 딱딱하게 여왕이 뭐야. 그냥 편하게 에이렌이라고 불러도 돼.”
“······.”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나 다른 모습에 케인첼은 한동안 말을 잃고 에이레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니뮤에님과는 언제 맺어질 생각이야? 인간은 싫지만 니뮤에님이 선택한 남자라면 인정해 줘야지.”
그러자 멀리서 세계수를 바라보고 있던 니뮤에가 달려왔다.
“무, 무슨 소리인가요, 에이레네! 매, 맺어진다니요! 제가 언제 그런 소리를!”
“첫눈에 반했다고 했잖아.”
“그, 그건 요리에요! 그러니까 요리에 반했다고요!”
에이레네가 키득거렸다.
“진짜로 요리 뿐인 거야?”
케인첼은 두 엘프의 대화를 듣고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첫 번째 검이 강하다고 해도 다른 일족의 여왕에게 존대를 받고 있었다.
도대체 니뮤에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에이레네는 당황한 케인첼의 얼굴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흐응, 설마 니뮤에님. 또 백 살이니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다닌 거야? 인간. 잘 들어. 여기에 있는 니뮤에님은 말이야······.”
에이레네가 니뮤에의 비밀을 폭로하려는 순간이었다.
머리가 검게 그을린 엘븐 나이트가 달려와서 호라이즌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첫 번째 검이시여! 습격입니다! 폭발 마법을 쓰는 마법사들이 소중한 숲을 태우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여 있던 엘프들의 얼굴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언제 웃고 떠들었냐는 것처럼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니뮤에는 분노와 증오가 섞인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설마 방화광 안타레스가?”
만약 그렇다면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브리타니아의 세계수에 이어 엘드라드의 세계수마저 잃을 수는 없으니까.
그녀는 조용히 장미다발을 빼어들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한발 먼저 케인첼이 달려 나갔다.
브리타니아에 있는 세계수를 태운 방화광 안타레스.
칠죄종들의 부활을 바라는 그의 마수가 드디어 여기까지 미친 것이다.
엄청난 화염저항력을 가진 케인첼이야 말로 안타레스를 상대할 최강의 한 수였다.
세계수의 수호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