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20)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20화(20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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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박사의 저서를 보면 드래곤은 동물이라기보다는 식물이나 곤충에 가깝다는 말이 있지.”
“식물이라고요?”
“그래. 대부분의 동물은 살기 위해 자기 몸무게의 백분의 일 정도 되는 음식을 먹어. 신진대사가 빠른 쥐 같은 경우는 훨씬 많이 먹고. 오죽하면 삼 일만 굶어도 죽는다고 하잖아.”
만약 드래곤이 다른 동물과 똑같이 음식을 먹어 댄다면 초식을 하든, 육식을 하든 생태계는 엉망이 될 것이다.
“게다가 드래곤은 길게는 수십 년씩 잠을 자곤 하잖아. 다른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또 드래곤 하트에는 어마어마한 마나가 저장되어 있지. 그게 전부 무(無)에서 생성되었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잠을 자는 동안 대기의 마나를 흡수해 드래곤 하트에 저장하고, 그것을 이용해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드래곤은 대부분 탐욕스럽고, 특히 금속 용 같은 경우는 금은보화를 먹기도 하잖아. 그건 땅속에서 자라난 보석 안에 상당한 양의 마나가 담겨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면 레드 드래곤은 화산, 화이트 드래곤은 설산에 둥지를 트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자신에게 익숙한 마나일수록 흡수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칼리오페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본 것 같아요. 제 요리를 먹으면 일 년 정도 꿀잠을 잔 것과 같은 양의 마나가 모인다고 했죠.”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식물과 비슷하다.
“뭐, 음식으로도 어느 정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 같으니 완전히 식물이라고 하기도 그렇지. 드래곤에 대해서는 여전히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아.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 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드래곤뿐이라고 하지. 어때, 방금 전의 가설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결론이 나오지?”
마나는 드래곤에게 있어 커다란 육체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근원이다.
괴테는 그것을 이용해 차원의 균열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당사자뿐이다.
칼리오페는 아주 곤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케인첼과 괴테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정곡을 찔린 모양이다.
“그건 말하지 않을래. 어차피 바뀌는 것은 없잖아.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이러지 말고, 로스트치킨이나 먹자. 케인첼의 요리를 먹는 것도 이번으로 마지막이니까.”
묘하게 쓸쓸해 보이는 미소가 칼리오페의 입가에 떠올랐다.
케인첼은 저런 표정을 본 기억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저건 죽음을 각오한 자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칠죄종 전쟁의 최후의 격전지 백색 산맥.
그곳으로 떠나는 페인이 분명 저런 식으로 웃었었지. 어째서 지금까지 그것을 잊고 있었을까.
“미안하지만 내게는 들을 권리가 있어.”
“으, 으응?”
“요리를 해 주는 대가로 피와, 꼬리, 뼈, 하여간 이것저것 받기로 했잖아. 내게도 네 몸의 지분이 있다고.”
칼리오페는 목에 차고 있는 증표를 어루만졌다. 분명 그런 내용의 맹약을 한 기억이 떠올랐다.
“꼬맹아, 맹약이라니! 도대체 칼리오페랑 무슨 계약을 한 거야!? 이 누님한테 사실대로 털어 놔 봐!”
난동을 피우는 엘리자베스의 몸을 모르가나가 감싸 안았다.
“그러니까 얼간이 소리를 듣는 거예요. 부외자는 끼는 게 아니랍니다.”
“누가 부외자야!”
“두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알아요. 하지만 여기서는 어떤 결말을 내릴지 지켜봐 주도록 해요, 엘리자베스.”
“……쳇.”
결국 마음을 정한 것인지 칼리오페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 * *
“괴테의 말이 맞아. 의식이 끝나면 나는 봉인식에 마나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게 돼. 그리고 천 년이 지나고, 모든 임무를 마치면 소멸할 거야.”
“……?!”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케인첼은 알고 있다.
칼리오페는 그저 억지로 눌러 참고 있을 뿐이다.
그 증거로 백색 산맥에 도착한 이후 줄곧, 떨리는 손을 등 뒤에 숨기고 있었다.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잠에서 깨면 바로 소멸한다니…….
그건 지금부터 죽으러 간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모르가나의 품에 안겨 있던 엘리자베스의 바동거림이 심해졌다.
“잠깐, 정지, 스톱! 무슨 소리야? 칼리오페가 죽는다니?!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육하원칙에 따라서 설명해 봐……!”
“이래서 이야기하기 싫었던 거야……. 미안해, 엘리자베스. 같이 놀러 가기로 한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아.”
흥분한 엘리자베스를 뒤로 하고, 케인첼은 칼리오페를 마주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얼음으로 만든 조각상인 줄 알았다.
그랬던 그녀가 많은 사람과 만나고, 여행을 하며 인간의 감정을 배워 나갔다.
지금은 티격태격하는 엘리자베스와 모르가나를 보며 즐거워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진심으로 웃기도 했다.
“그건 아마 케인첼이 만든 마음이 담긴 요리를 잔뜩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내가 만든 요리 때문에 감정이 생겨났다고?”
“으응……. 전에는 없었거든. 봉인석이 쓸데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거추장스럽잖아.”
설마 7성급 요리가 이런 식으로 작용했을 줄이야.
칼리오페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생긋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원망했던 적도 있었어. 어차피 머지않아 사라질 텐데 감정 따윈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아니었어. 드래곤도 잠들면 꿈을 꾼다는 사실 알아?”
“꿈이라고……?”
“응. 케인첼과 만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설산에 혼자 앉아 있는 내용이었어. 원래라면 그렇게 쭉 천 년 동안 잠들어 있었을 거야.”
그렇지만 케인첼과 만난 이후로는 조금 더 즐거운 꿈을 꾸게 되었다.
칼리오페는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엘리자베스와 울먹거리는 바토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아벨과 니뮤에, 지스타드 영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덕분에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잔뜩 가지게 되었잖아. 아름다운 풍경도 잔뜩 볼 수 있었고……. 케인첼이 만들어 준 맛있는 음식도 배터지게 먹었어. 이제부터 꿀 꿈은 분명 아주 즐거울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 잠드는 게 무섭지 않아.”
케인첼은 입술을 깨물었다. 칼리오페는 마녀를 찾기 위한 여정에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눈동자에 떠올라 있는 슬픔과 두려움을 어째서 못 본 척한 것일까.
‘생각해라, 케인첼……. 분명 무언가…….’
그리고 자신이 만든 요리가 칼리오페의 마나를 보충해 준다는 것을 떠올렸다.
칼리오페가 앞으로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다 해도 전해 줄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오븐에서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 슬슬 로스트치킨이 다 구워진 것 같은데, 같이 먹자. 마지막으로 먹는 케인첼의 요리니까 느긋하게 먹고 싶어.”
“미안하지만 바삭한 껍질을 위해서는 조금 더 구워야 해. 혹시 맛있는 요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칼리오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식재료 손질부터 플레이팅까지. 매 순간 정성을 다하는 거야. 그래야 비로소 한 그릇의 요리가 완성 돼. 그러니까 나는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이야? 이미 이야기는…….”
“천 년 후의 일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흡수한 마나를 전부 문을 막기 위해 사용해서 결국 소멸한다는 거지? 여분을 남길 수는 없어?”
“응. 그거 무리.”
“그러면…….”
케인첼은 잠에서 깨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봉인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칼리오페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건 할 수 있어. 그래 봐야 한 시간 정도지만.”
잠든 채로 죽는 것과, 삶의 마지막을 돌아보며 죽는 것. 칼리오페가 선택한 것은 전자였다.
계획대로라면 칼리오페는 앞으로 천 년 후 잠든 채 소멸한다.
케인첼은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정도 있으면 충분하다.
“혹시 말인데. 잠에서 깼을 때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일 것 같아?”
“……분명 엄청 기쁠 거야. 그렇지만 어떻게? 케인첼은 앞으로 백 년도 지나기 전에 죽을 텐데.”
“물론 나는 그렇겠지. 하지만 내 제자. 또는 아이……. 누군가는 내게 요리를 배울 거야. 내가 고든과 적운, 그리고 수많은 셰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하지 마, 칼리오페. 네가 할 일은 그저 한 시간 일찍 일어나는 것뿐이야. 그러면 분명 눈앞에 최고의 요리가 준비되어 있을 거야.”
“정말……? 정말, 그렇게 해 줄 거야?”
“단골손님에게 그 정도 서비스도 못해 줄까.”
천 년.
까마득하다 못해 현기증마저 일어나는 긴 시간이지만, 칼리오페가 해 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사람들의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용하는 식재료는 더욱 다양해지고, 요리 기술 또한 발전 중이다.
천 년 후에는 지금은 브릴리언트 로드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당연해지겠지.
엘리자베스가 감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꼬맹이가 칼리오페를 위해 제자를 키운다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무의 탑에서 수련하고 있는 놈 중에 똘똘한 녀석으로 몇 놈 골라서 보내 줄까?”
“엘자는 제자 말고 다른 쪽에 더 관심이 가는 거 아닌가요?”
“남세스럽게 무슨 소리야!”
괴테 역시 가슴을 치며 장담했다.
“나는 이 내용을 글로 써서 후대에 남기도록 할게. 괴테 님의 명문이니까 앞으로 천 년이 아니라 만 년은 전해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칼리오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봤지. 인간은 채 백 년도 살지 못하지만, 너를 생각하는 마음은 앞으로 천 년이 지나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배불리 먹고 한숨 푹 자다 일어나도록 해.”
칼리오페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다릴게……. 그러니까, 꼭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러 와야 해.”
“물론이지. 아, 슬슬 로스트치킨이 완성될 시간이다.”
케인첼은 오븐에서 완성된 요리를 꺼냈다. 두 번 구워 낸 로스트치킨은 보기만 해도 바삭바삭해 보인다.
“정확히는 로스트 코카트리스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맛은 닭고기보다 더 좋을 거야.”
트레이 안에는 고기에서 배어 나온 육즙과 각종 향신료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향기를 내고 있었다.
“여기에 잘 구워진 레몬 즙을 섞어서 그레이비 소스를 만들 거야. 짭짤한 감칠맛과 고기 육즙 특유의 기름진 맛이 레몬의 새콤함 덕에 더욱 잘 느껴지겠지.”
두 번 구워지는 동안, 초리소(Chorizo)와 맨드레이크에서 진한 맛이 우러나와 따로 간을 해 줄 필요도 없었다.
케인첼은 고기 안에서 놀라울 정도로 잘 익은 소를 꺼냈다.
접시에 담고 닭 육즙 소스를 끼얹자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요리였다.
“이제 로스트치킨을 잘라 보도록 하실까. 우선 커다란 가슴살을 어슷썰기로 썰어 볼게. 여기 아름다운 살결이 보이지?”
“너무해……. 이야기할 시간에 빨리 먹게 해 줘.”
“이제 거의 끝났어. 닭에 레몬 향을 듬뿍 머금은 소스를 듬뿍 끼얹어 주면 속을 채워 구운 로스트치킨 완성이야.”
그리고 마침내 초조하게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칼리오페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표정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움켜쥐었다.
“잘 먹을게, 케인첼. 마지막 식사에 어울리는 정말 최고의 요리야.”
“마지막 아니야. 또 먹을 거잖아?”
“응!”
먼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소를 가득 퍼서 입으로 가져간다.
잘 익은 콩 특유의 부드러우면서 탄력 있는 맛이 입안 가득 느껴졌다.
초리소의 짭짤하면서 매콤한 맛이 듬뿍 배어 있는 콩은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질릴 것 같지 않았다.
“하아, 하아…….”
입을 열자 뜨거운 입김이 계속해서 새어 나온다. 그렇지만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번에는 메인 메뉴인 로스트치킨을 먹을 차례였다.
칼리오페는 기대감에 부푼 눈동자로 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바라보고는 손을 움직였다.
뜨끈뜨끈한 치킨에서 뿜어져 나오는 농후하면서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한 입 가득 베어 문다.
그러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우면서 촉촉한 고기의 맛이 느껴졌다.
기름이 쫙 빠져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뿜어내며 찢어지는 껍질은 또 어떤가.
이것을 위해 그토록 정성스럽게 트레이를 밀봉하고, 두 번이나 구워 준 것이다.
살코기에 붙어 있는 껍질의 기름과 속살에 배어 있는 촉촉한 육즙.
거기에 바삭한 껍질이 합쳐지자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맛있다.
“게다가 레몬의 새콤함이 얄미울 정도야. 자극적인 산미가 고기의 강렬함에 전혀 밀리지 않고 있어. 아니, 오히려 조화를 이루어서 더 맛있는 것 같아.”
커다란 코카트리스는 열 명 가까운 대인원이 먹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다만 닭다리를 통째로 들고 뜯어 먹는 즐거움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럼 가슴살을 먹었으니, 이번엔 다리 살로 가 볼까요.”
“이때를 기다렸어요!”
“역시 치킨은 다리가 맛있지 말입니다.”
칼리오페는 잠시 로스트치킨을 먹는 것을 멈추고, 떠들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 년이 지나서 눈을 뜨면 이들은 전부 사라지겠지.
그렇지만 이 기억만은 절대로 잊지 말자고.
화이트 드래곤은 다짐했다.
* * *
식사를 마치자 괴테와 바토리의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이제 문에서 악마가 튀어나온다 해도 반나절가량은 안전하다.
“호우! 설마 내 배가 이렇게 단단하게 변할 줄이야. 미안하지만 식칼 좀 빌려도 될까?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나 시험해 보고 싶은데.”
“죄송하지만 이거 미스랄이라서요. 베이면 아픕니다.”
“아, 그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겠네. 모르가나 공, 차고 있는 검을 좀…….”
“제 것도 미스랄이에요.”
“에잉. 알고 보니 다들 장비빨이었구만!”
괴테의 넉살 덕분에 의식을 앞둔 긴장을 잊을 수 있었다.
그때, 본체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칼리오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지막 순간에 와서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일까.
그때, 마치 차원과 공간이 일그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에 검게 물든 대지가 떠올랐다.
“……저긴 마계잖아?!”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저, 저도 모르겠어요! 칼리오페 님,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요?”
칼리오페는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어비스가 붕괴되면서 차원의 틈이 급격하게 확장된 것 같아.”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이대로 계속해서 커지면 중위권은 물론 상위권 악마까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을 거야.”
결국 멀린이 최후를 맞이한 모양이다.
어비스를 빠져나온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그는 과연 그 안에서 몇 년이나 버틴 것일까.
“쳇, 죽을 때까지 속 썩이는 놈이네.”
차원의 틈이 벌어지자 마계에서 빠져나오려는 악마의 울부짖는 비명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문은 닫을 수 있는 거지?”
“응……. 그건 문제없어. 그렇지만 안에서 밀고 나오려는 악마를 잠시 물러나게 해야 해.”
결국 누군가가 마계로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모르가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제가 갈게요. 악마에게 아주 아프게 한 방 먹여 주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예요.”
칼리오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가나는 안 돼. 마녀는 세 명 전부 이쪽에 있어야 해.”
그러자 어느새 전투 준비를 마친 가웨인이 가슴을 쭉 펴고 앞으로 걸어왔다.
“드디어 이 몸이 나설 차례군. 한 번쯤 선배의 멋진 모습을 보여 주도록 하지.”
“나도 갈게. 이러려고 따라온 거니까.”
쿠구구구구궁-!
차원의 일그러짐이 더욱 심해졌다.
아무래도 완전히 문이 열리기까지 남아 있는 여유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모르가나를 제외한 소드 마스터 전원이 마계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엘리자베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꼬맹이는 여기에 남아 주었으면 싶었는데…….”
“나는 후배의 의견에 찬성. 힘이 부족해서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결말은 이쪽에서 사양이라고.”
케인첼은 가웨인과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이들이라면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다.
“들어갈 때는 셋이었으니, 나올 때도 셋이서 나오도록 하죠.”
“설마 이런 식으로 고향에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네…….”
차원의 틈을 향해 발을 내딛자, 새하얀 빛이 케인첼을 덮쳤다.
눈을 떠 보니 그곳은 어느새 마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