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21)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21화(20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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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요리하는 소드마스터
마계(Pandemonium)는 이상할 정도로 어비스와 닮아 있었다.
‘어비스는 여러 차원의 파편이 모인 집합체라고 했으니, 마계와 닮은 것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은가.’
방과 통로로 이루어져 마치 던전 같았던 어비스와는 달리, 광활한 대지가 케인첼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케인첼보다 한 발 늦게 마계로 들어온 엘리자베스가 대뜸 말했다.
“꼬맹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의식이 끝날 때까지 문을 사수하는 것뿐이야.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곳을 벗어나면 안 돼. 절대로야.”
“물론이죠. 들어오자마자 악마가 습격해 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무것도 없군요.”
“과연 그럴까?”
그때였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 살려 주세요! 악마가 저를 죽이려고 해요! 제발! 누구 없어요!?”
케인첼은 프라가라흐를 뽑아 들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엘리자베스는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케인첼의 목에 오러가 깃든 칼날을 들이댔다.
“……무슨 짓입니까.”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케인첼은 너무 상냥하다니까. 여기가 어디인지 그새 잊은 거야?”
마계의 열기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케인첼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이런 장소에서 구해 달라고 외치는 여자가 있을 리 없잖아?’
“꺄아아아악! 제, 제발 살려 주…….”
케인첼은 비명이 들려온 곳을 향해 폴른 스타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능선 너머에 수많은 적의가 모여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다면 숨어 있는 악마의 기습을 받았으리라.
엘리자베스는 신중한 표정으로 근처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상위 십 마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네. 그들의 위험성은 칠죄종에 버금가거든. 하여간 이제 알았지? 악마는 정말 교활해. 너를 속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거야.”
악마는 그 후로도 한동안 다양한 환상을 통해 케인첼이 자리를 떠나도록 유혹했다.
급기야는 기억에도 흐릿한 페인의 흉내까지 내 가며 케인첼의 마음을 흔들어 댔다.
― 아들아…….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이곳으로 와서 나를 구해 다오……. 아버지를 버리고 가주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그토록 즐겁단 말인가…….
케인첼은 입술을 깨물었다. 앞으로 한 시간.
한 시간만 버티면 된다. 그러면 모든 상황이 끝난다.
뒤를 돌아보니 엘리자베스와 가웨인 또한 자신 내면에 존재하는 약함과 싸우고 있었다.
“팔라메데스 형님……. 그때 당신을 죽이지 않았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프 서큐버스? 혈통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비겁하게 이런 식으로 떠들지 말고 불만이 있으면 직접 나와서 말해!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어느 순간 눈과 귀를 어지럽히던 정신 공격이 멈췄다.
아무래도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태세를 정비하고 다른 수단으로 공격을 해 오겠지.
엘리자베스는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옷을 고쳐 입으며 말했다.
“흐앙. 잡졸들이 제법 애를 먹이는 구나……. 놈들이 직접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은 아마 네가 가진 프라가라흐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칠죄종과는 달리 검에 베이면 피를 흘리고 심한 부상을 입으면 소멸하는 놈들이니까.”
“그런데 색욕의 왕은 분명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했잖아요. 다른 칠죄종을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도 분명…….”
“그건 애초에 그런 식으로 태어나서 그래. 색욕의 대상이 하나가 아닌 경우가 많잖아.”
“……확실히 그러네요.”
“아하하! 아주 가끔 꼬맹이 같은 별종도 있지만 말이야.”
엘리자베스는 생긋 웃으며 칠죄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칠죄종Seven Deadly Sins.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데우스의 피에서 흘러나온 일곱 가지 죄악.
교만의 왕 루시퍼.
질투의 왕 레비아탄.
분노의 왕 사탄.
나태의 왕 벨페고르.
탐욕의 왕 마몬.
탐식의 왕 바알제붑.
색욕의 왕 아스모데우스.
인류 최악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결국 데우스에게서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목숨을 끊는다 해도 그 피를 뒤집어쓴 악마가 새로운 칠죄종이 될 뿐이다.
결국 그들을 막기 위해서는 욕망을 억누르고 미덕을 행하듯 억눌러 봉인하는 것이 유일한 수단인 셈이다.
“브리타니아에서 소드 마스터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미덕인 이유도, 악마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오러 블레이드가 필요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한동안 잠잠하던 악마 진영에서 느닷없이 엄청난 존재감이 출현했다.
쿠쿠쿠쿠쿵-!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대지진과 함께 놈이 등장했다.
문이 있는 곳에서 채 수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다.
잿빛 피부와 검게 물든 눈동자를 제외하면 귀공자로 보일 정도로 훤칠한 청년이었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놀라움과 함께 경악이 떠올랐다.
“검마 바싸고!”
“……바싸고라면 상위 십 마잖아요?!”
무려 26개나 되는 악마 군단의 군주이며, 암중모략이 난무하는 마계에서 검술 실력만으로 서열 6위에 오른 마족.
인간의 영혼을 탐내는 것은 대부분 악마 중에서도 덜떨어진 하위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저런 거물이 등장할 줄이야.
가웨인이 사납게 웃었다.
“위대하신 악마 대공께서 어인 일로 이렇게 외진 곳까지 행차를 나오셨을까.”
“실로 흥미롭군. 설마 인간 중에 이렇게 강한 놈이 있을 줄이야. 비록 아바타를 통한 현신이라고 하나 왕의 군세를 막은 이유를 알겠군.”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데?”
“강함이야말로 곧 율법이니! 마계는 강자존의 규칙에 의해 움직인다! 허나, 1만 년 동안 계속된 서열전이 끝나고 이제 남은 것은 지긋지긋한 소모전뿐이다. 서로 물어뜯으며 제 살을 깎아 먹느니 차라리 새로운 먹잇감에 달려드는 것이 건설적이지 않은가.”
바싸고는 턱으로 차원의 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때를 놓치면 또다시 천 년을 기다려야 문이 열린다. 비켜라. 강자에 대한 예우로 살려 주마.”
결국 인구에 비해 영토가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마족이나 인간이나 전쟁을 하는 이유는 비슷하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가웨인이 주의를 끄는 사이, 케인첼과 엘리자베스가 바싸고의 뒤로 돌아갔다.
엘리자베스가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에는 푸르다 못해 새하얀 오러가 맺혀 있었다.
바싸고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그렇지만 케인첼도, 엘리자베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바싸고를 압박해 나갔다.
그것을 바싸고는 너무나 간단히 막아 냈다. 마치 등 뒤에도 눈이 달려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예언의 귀공자답네. 도대체 몇 초 앞을 내다보는 거야?”
“몽마의 여식인가. 그런 것치고는 제법 검이 매섭구나. 칭찬 삼아 알려 주도록 하지. 이 눈에 비치고 있는 미래시는 정확히 2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이 몸은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지.”
“으윽……!”
그와 동시에 엘리자베스의 왼쪽 팔이 날아갔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참격에 당한 모양이다.
케인첼은 입술을 깨물었다.
부상을 입은 엘리자베스를 돕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역시 그것을 바라지 않으리라.
바싸고는 명백히 자신이 들고 있는 프라가라흐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심장을 꿰뚫린다면 아무리 대단한 악마라 해도 그 자리에서 소멸하리라.
‘미래시를 보는 검마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지만, 내게도 비슷한 스킬이 있거든. 브릴리언트 로드……!’
그러자 새하얀 빛이 바싸고의 왼쪽 허리에 작렬했다. 그는 명백히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런 미래는 보이지 않았건만. 호오……, 젊은 나이에 엄청난 성과로다. 이름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인간.”
케인첼은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바싸고는 강하다. 게다가 만약 문이 돌파된다면 마계에 거주하고 있는 수많은 마물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바싸고는 2m는 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검을 무기로 사용했다.
그것이 공간을 가를 때면 온몸이 얼얼해질 정도로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이 무식한 힘은 도대체 뭐야?!’
근접전을 계속해 봐야 승산은 거의 없다. 케인첼은 바싸고와의 거리를 벌린 후 제면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다섯 가닥의 면이 튀어나와 바싸고의 몸을 휘감았다.
엘리자베스는 케인첼이 만들어 준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을 발동시켰다.
“광익……!”
한쪽 팔이 없다 해도 그녀의 오러는 건재하다. 불타는 것처럼 새빨간 빛의 날개가 그녀의 등 뒤에 떠올랐다.
“어림없다!”
바싸고가 코웃음을 치며 바다마저 가를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광풍이 엘리자베스를 덮쳤다.
그녀는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케, 케인……. 뒤, 뒷일을…….”
케인첼은 그대로 바싸고의 등 뒤로 돌아갔다. 이기어검을 발동시키자 손을 떠난 프라가라흐가 허공에 빛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호오, 제법 재미있는 잔재주를 부릴 줄 아는군.”
“과연 그럴까. 양파 검술……!”
그러자 한 자루의 검이 일곱 개로 늘어나 동시에 바싸고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바싸고는 미래시를 사용해 케인첼의 움직임을 읽었다.
자신의 1/1000도 살지 않았을 젊은 기사가 계속해서 최선의 검로만을 선택해 공격해 온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싸우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기이이이잉-!
결국 또다시 오른쪽 가슴에 유효 타를 허용했다. 프라가라흐의 검날이 베고 지나간 자리가 검게 타올랐다.
소드 마스터 세 명을 상대로도 한결같이 여유로웠던 그의 입가가 부르르 떨렸다.
“일곱 자루의 성검을 다루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과연 당당히 마계에 발을 디딜 만하군. 조금 더 놀아 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이쪽도 시간이 촉박해서 말이다.”
잘린 팔을 들고 응급 처치를 하고 있던 엘리자베스가 외쳤다.
“막아야 해! 부하를 부르려고 하고 있어!”
“부하라고요?!”
바싸고가 팔을 치켜들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자루의 프라가라흐가 양쪽 어깨를 베어 냈지만 바싸고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너라, 나의 군세여!”
쿠구구구구궁-!
그러자 인과가 뒤틀리고, 수 km 밖에 주둔하고 있던 1천의 마족이 바싸고의 뒤에 집결했다.
대부분이 하급 마족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한 것은 아니다.
혼자서 소드 나이트 서넛 정도는 무난히 상대할 강자들이었다.
바싸고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기토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들어라! 제 26 악마군단장이 명한다! 눈앞에 있는 인간들을 유린하고, 쓰러트려라! 목표는 브리타니아!”
“오우! 오우! 오우!”
그러자 대지가 진동할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케인첼은 어째서 드래곤 로드가 소중한 일족의 아이를 희생하면서까지 마계의 문을 막았는지 이해했다.
일만 년간 끝없이 전쟁을 반복해 온 마족은 무식하게 강하다. 만약 이들이 풀려나왔다간 브리타니아는 물론 전 대륙이 위험해진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어째서인지 그 순간 케인첼의 눈앞에 아벨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최선의 수를 내놓던 소중한 친구.
그가 여기 있었다면 무언가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을까.
‘아니, 아벨은 여기 없어. 내가 생각해 내야 해.’
케인첼은 허리에 차고 있는 식칼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쥔 순간 인연이 없는 줄 알았던 기연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진심을 알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마족을 이곳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케인첼이 각오를 마친 눈으로 바라보자 가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침대에 누워서 죽는 것은 기사에게 어울리지 않잖아? 이렇게 마지막을 맞이할 줄 알고 있었어. 그래도 새로 생긴 후배에게 조금쯤은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아쉽네.”
“충분히 멋졌어요. 선배님의 조력이 없었으면 바싸고를 상대로 그렇게까지 분투하지 못했을 겁니다.”
“쳇, 짜식. 자, 그럼 가 보자. 1초라도 더 버텨 보자고.”
이제 남은 시간은 7분.
바싸고와 그의 군세를 상대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후의 최후까지 검을 휘두른다.
엘리자베스 역시 남은 한쪽 팔로 검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 이럴 줄 알았으면 모르가나가 남긴 치킨을 달라고 하는 건데. 그게 뭐라고 아쉽네. 그래도 뭐, 꼬맹이랑 같이 죽는 거면 그렇게 외롭지 않겠네.”
그리고 부끄럽다는 것처럼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꼬맹……. 아니, 케인첼.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나는 너를…….”
그렇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했다. 어디선가 엄청난 오러가 폭발하듯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오러 필드.”
거대한 오러의 벽이 수십이 넘는 하급 마족을 단숨에 일소시켰다.
그 중심에는 케인첼에게도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헥토르……?”
* * *
헥토르의 오러 블레이드는 방어에 특화되어 있다. 거대한 오러의 벽을 만들어 어떤 공격이라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 낸다.
지금 그는 그것을 공격에 사용하고 있었다.
헥토르는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심한 눈동자로 케인첼을 바라보았다.
“5분이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동안 이곳을 지나가려는 마족을 막아 보겠소. 케인첼 공과 가웨인,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문을 사수해 주시오.”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러자 헥토르의 눈에 분노, 노여움, 안타까움, 미안함……. 그 외에도 수많은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12년 전에 못다 한 것을 하러 왔소. 페인은 했고, 나는 하지 못했던 일을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