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22)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22화(20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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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첼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 페인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도대체 칠죄종 전쟁의 마지막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렇지만 헥토르는 대답할 수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새 그들을 향해 마족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쉽게도 시간이 없구려. 케인첼 공, 가시오. 그대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지 않소.”
“시간이라면 있습니다.”
케인첼은 잠들어 있던 비숍을 불렀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우묵한 목소리가 들렸다.
― 그걸 하면 되겠나, 파트너.
‘그래. 합체다!’
그러자 케인첼의 오른쪽 팔에서 굵은 촉수가 튀어나와 헥토르의 몸을 휘감았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건 무엇인가?”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길 겁니다.”
“흐음.”
헥토르는 묘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크고 아름다운 케인첼의 촉수가 그의 몸에 파고들었다.
지이이잉-!
그렇게 케인첼과 헥토르의 정신은 비숍을 통해 이어졌다.
목을 통하지 않고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헥토르가 눈을 휘둥그레 뜨려 했다.
그렇지만 눈은커녕 손가락 하나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뭐지, 왜 몸이 움직이지 않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가속되었을 뿐입니다. 대충 천 배쯤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흐음, 가끔 검을 휘두르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소. 아무래도 그것과 비슷한 상황인 모양이오.”
역시 소드 마스터답게 헥토르의 분석은 정확했다.
다른 사람과 싱크로 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다간 자아가 붕괴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그렇지만 워낙 급박한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비숍이라 해도, 이것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채 1초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신이 가속된 케인첼과 헥토르에게는 10분가량의 여유가 생긴 셈이다.
“홍차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싶지만, 이쪽도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래도 대화는 할 수 있으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알겠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말하지 않으면 동료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헥토르는 수십 년 전의 일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득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인이 가주로 있는 스벤가(家)는 대대로 소드 마스터를 배출해 온 검의 명가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기사 양성소 시절에 지겹도록 들었거든요.”
“게다가 본인은 방어에 특화된 오러 블레이드를 가졌지. 그래서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황제 폐하를 지키는 직속 친위대의 사령관이 되었소.”
그것이 벌써 20년도 전, 헥토르가 30대 초반일 때의 일이었다.
헥토르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결심했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거기서 페인을 만났소. 그가 지스타드라는 성 대신 하운드……. 제국의 엽견으로 불리고 있을 때였지.”
“하, 하운드?!”
케인첼 역시 양성소 시절 소문을 통해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브리타니아 황실에는 베일에 싸인 암부(暗部)라 불리는 조직이 있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정보 수집이나 요인 암살 등, 친위대가 하지 못하는 것들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분명 암부의 수장을 부르는 이름이 하운드(獵犬)였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존재하는 법.
케인첼은 엘 아카드에도 그와 비슷한 조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분명 발터 카이텔이 거기 소속이었지?’
“페인은 반평생을 황실에 바쳤소. 그저 묵묵히 아슬란 폐하의 명에 따라 어떤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수행했지. 그의 충성심은 친위대인 본인 이상이었소.”
“…….”
“맞소. 본인은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소. 소드 마스터조차 되지 못한 남자가 어떤 명령을 내리든 기가 막히게 해결했지. 마치 그의 눈에는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소.”
그랬던 페인이 처음으로 아슬란 폐하와 대립하는 일이 있었다.
지금부터 20년도 전에, 페인은 마계의 왕이 브리타니아 땅을 유린하게 될 거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믿는 사람은 없었소. 그러자 그는 독자적으로 칠죄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소.”
그러다가 페인은 갑자기 은퇴 선언을 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렇소. 바로, 케인첼 반 지스타드 당신이오. 그렇지만 황제는 페인의 은퇴를 허락하지 않았소. 암부는 말하자면 브리타니아의 치부라고 할 수 있소. 페인은 황실은 물론 귀족가의 온갖 더러운 정보를 알고 있었으니, 그것의 유출을 걱정한 것이오.”
그렇지만 페인은 결국 암부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그 대가로 비밀 엄수를 보장하는 수많은 서약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자유와 함께 작은 행복을 손에 넣게 된다.
“그는 북부의 작은 영지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소. 하운드라는 성 또한 그때 버렸을 거요.”
“……암부 출신이라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군요.”
“아마도 그런 이유였을 거요. 그와 다시 만난 것은 십 년 가까이 지나고, 칠죄종과 맞서기 위해 미덕들이 한데 모였을 때였소.”
페인은 은퇴 후에도 집요하게 칠죄종에 관한 조사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불완전하게나마 칠죄종을 봉인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헥토르의 목소리는 평소와 똑같이 여전히 무뚝뚝하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싱크로 상태에 있는 케인첼은 헥토르가 얼마나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칠죄종을 봉인한 것은…….”
“……혹시 미덕이 칠죄종에 대항한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바쳐 진실에 도달한 페인 덕분이었소.”
그것은 충의도, 인내도, 자비도, 근면도, 박애도, 절제도, 순결도 하지 못했던 일.
“결국 칠죄종을 봉인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희생’이었소. 그 어떤 미덕보다도 숭고한…….”
브리타니아 황제 아슬란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봉인을 위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희생했다.
‘역시 요리가 칠죄종의 저주를 풀어낸 것은 거기에 담겨 있는…….’
헥토르는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감정을 폭발시켰다.
서른 번이 넘는 희생 끝에, 상상하는 것조차 아득한 의식이 끝난다.
“거기서 유일하게 아무것도 바치지 못한 것이 바로 이 헥토르였소! 언데드로 변한 아내를 스스로의 손으로 죽인 본인은 자신의 목숨조차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오!”
그렇게 아슬란과 7대 미덕, 그리고 페인은 칠죄종의 봉인에 성공한다.
그렇지만 남은 것은 온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을 정도의 상실감뿐.
“결국 우리는 자신이 희생한 것들을 가슴속 깊은 곳에 파묻고, 그것을 서약의 힘을 빌려 기억에서 지웠소.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으니까……. 인간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필요한 법 아니겠소?”
“그럼 아버지에 대해 조사를 해 봐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 때문인 겁니까?”
“그것 또한 희생의 일부였소. 우리는 8번째 미덕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입에 담을 수 없게 된 것이오.”
엘리자베스가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던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 사실을 빈센트가 알면 슬퍼하겠군요.”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소. 지금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단 하나뿐인 아들이오.”
헥토르는 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에, 유일하게 의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결국 그때의 기억을 오롯이 가지고 있는 것은 헥토르뿐이다.
많은 것을 희생한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그가 느꼈을 감정은 과연 어땠을까.
“용서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소. 그것은 페인 또한 같은 생각일 것이오.”
슬슬 정신 가속이 끝날 시간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헥토르의 목소리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페인이 마지막 순간에 이런 말을 남겼소. 만약 자신의 아들이 소드 마스터가 된다면 전해 달라고 했지.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소. 그렇지만 이제는 알 것 같소.”
대지의 기억을 읽어 들이는 미미르의 샘물을 사용해서도 도달 할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헥토르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들아, 너라면 해낼 줄 알았다.”
“……?!”
그 한마디 안에는 수많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태의 저주에 걸려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오르지 않던 레벨과 스테이터스.
그럼에도 케인첼은 포기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전해진 한 그릇의 요리가 기적을 일으켰다.
마치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들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위대한 영웅. 희생의 소드 마스터 페인 하운드에게.
“귀공에게 페인과 똑같은 부탁을 하고 싶소.”
“……만약 빈센트가 소드 마스터가 된다면 전해 주겠습니다.”
“고맙소.”
그 순간 멈춰 있던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 배로 가속되었던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케인첼은 헥토르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작별의 인사를 전했다. 그의 말대로 가웨인과 엘리자베스와 함께 2차 저지선을 구축해야 한다.
헥토르의 눈이 가늘어지고, 입술이 뒤틀렸다.
“그럼 건투를 빌어 드리리다, 근면의 케인첼 반 지스타드. 아니, 요리하는 소드 마스터.”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12년 전에 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 * *
헥토르는 단신으로 수많은 마족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러 필드!”
그의 앞에 거대한 오러의 벽이 떠올랐다. 마치 절대로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강철의 성을 보는 것 같을 정도였다.
진격이 늦춰진 바싸고가 마법 병단을 불러들였다.
“제법 단단해 보이는 벽이로군. 그렇지만 이 몸이 이끄는 일천의 대군 앞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많았나? 진작 말해 주지 그랬나.”
바싸고는 코웃음을 치며 7서클의 화염 마법 볼케이노(Volcano)의 발동을 명령했다.
마법 병단 소속의 마족 서른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완성할 수 있는 대마법이었다.
땅이 갈라지고 용암과 돌이 튀어나온다.
그렇지만 헥토르의 오러 필드는 건재했다. 목숨마저 버릴 각오로 만들어 낸 벽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허나, 이 몸이 데리고 있는 마법 병단의 수는 삼백! 과연 대마법을 몇 발이나 버틸 수 있을까 궁금하군!”
“제법 화끈하구나. 계속해서 와 봐라.”
그와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헥토르를 덮쳤다.
아무리 오러 필드의 방어력이 강대하다 해도, 한계는 존재한다. 결국 초고온의 화염이 그의 한쪽 팔을 불태웠다.
몸을 보호하는 오러마저 오러 필드에 불어넣었기 때문일까.
그의 반신은 순식간에 숯덩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헥토르는 웃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마족이여.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 주도록 하지.”
“이 몸의 이름은 바싸고다!”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지 않나. 사실 내 오러 필드에는 또 다른 사용법이 있다.”
“뭐, 라고!?”
“내 몸에 남아 있는 오러를 매개체로 벽이 흡수한 에너지를 단숨에 폭발시킬 수 있지. 마침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지경이다.”
“그, 그러면 네놈도……!”
당황한 바싸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상대가 마법을 흡수하는 오러 블레이드의 소유자였을 줄이야.
바싸고가 자랑하는 마법 병단이 오히려 독이 된 케이스였다.
말 그대로 천적을 만난 셈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헥토르의 눈동자에는 바싸고는 물론 천에 달하는 대군의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마치 마중이라도 나온 것처럼 그의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미안하오, 마리. 원래는 12년 전에 당신이 있는 곳에 가고 싶었소. 너무 늦었구려. 지금 바로 만나러 가리다.”
붉게 물든 오러 필드가 어마어마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기세였다.
당황한 바싸고가 모여 있는 마족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이름 없는 기술의 발동 쪽이 빨랐다.
쿠쿠쿠쿠쿵-!
마치 8서클의 절대 마법 프로미넌스(Prominence)를 보는 것 같은 엄청난 화염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헥토르가 목숨을 걸고 막아 낸 마법들이 엄청나다는 뜻이기도 했다.
단 일격에 천이 넘었던 마족의 대군 중에 7할 이상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불타 사라졌다.
물론 그것은 폭발의 중심에 있던 헥토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웃고 있었다.
“너무 늦어서 코코뱅이 다 식었을지도 모르겠구려. 그렇지만 걱정 마시오. 당신이 만들어 준 요리는 식어도 맛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