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23)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23화(20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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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릉!
헥토르가 맡은 1차 저지선에서 화산이 터지는 것 같은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엘리자베스는 한쪽밖에 남지 않은 팔로 검을 움켜쥐었다.
“아무래도 가 봐야겠어. 정이 가지 않는 녀석이긴 해도, 지금까지 함께 싸운 동료니까. 적어도 저승길 가는데 외롭지 않게 해 줘야지.”
“가지 말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그런데 엘자 누님이 합류하면 방어해야 하는 범위가 늘어나지 않을까요. 자칫 잘못하다간 오러 필드의 절대 방어가 깨질지도 모릅니다.”
정곡을 찌르는 지적에 엘리자베스가 혀를 찼다.
“……쳇. 알았어. 예정대로 이곳을 사수하도록 할게. 차라리 가지 말라고 붙잡았으면 귀엽기라도 하지.”
엘리자베스는 툴툴대면서 잘린 팔을 어깨에 대고 붕대로 동여맸다.
도저히 다시 붙을 것 같지 않은 상처에 케인첼의 눈이 가늘어졌다.
“팔은 괜찮으세요?”
“이 정도 상처쯤은 침만 발라도 나아. 하프 서큐버스의 재생력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사실 침보다 더 좋은 게 있긴 한데.”
엘리자베스는 그런 말을 하며 마치 먹이를 앞에 둔 뱀 같은 눈으로 웃었다.
“그것 참 다행이군요. 이번 일이 끝나면 신체의 재생력을 올려 주는 요리를 만들어 드릴게요.”
“아, 그래? 그것 참 고맙네.”
전혀 고마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보다 몇 배나 큰 폭발이 일어났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던 케인첼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칠 정도였다.
엘리자베스는 아련한 눈동자로 헥토르가 마지막까지 사수한 장소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5분. 결국 당신은 최후의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했구나. 걱정 마. 약속대로 로즈마리가 잔뜩 피어 있는 장소에 묻어 줄 테니까.”
전쟁에 나가는 기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유서와 함께 소중하게 보관한다.
언제 어디에서 죽을지 모르는 이상, 장례를 치를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검술의 극의에 달했다는 소드 마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엄청난 폭발에 직격을 당하고도 아직 삼백이 넘는 마족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 귀신 같은 형상을 한 바싸고가 있었다.
몸의 절반이 숯덩이가 되어 있었지만, 미래시를 이용해 가까스로 목숨만은 부지한 모양이다.
“가, 감히! 인간 따위가 이 몸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케인첼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놈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어느새 그의 등 뒤에는 일곱 자루의 프라가라흐가 떠 있었다.
‘가라, 이기어검……!’
몰아치는 폭풍처럼 날아간 프라가라흐가 바싸고의 등가죽에 내리꽂히고, 비틀거리는 측면에 또 하나의 검날이 틀어박혔다.
이미 많은 기동력을 상실한 바싸고는 자랑하던 쾌검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커헉……!”
이번에는 그 충격이 오장육부에 닿았는지, 바싸고는 그대로 붉은 선혈을 토해 냈다.
인간이었다면 몇 번이나 죽을 치명상이었지만, 마족의 내구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바싸고와만 싸우고 있을 수도 없었다.
“전군 돌격! 군단장님을 구해라!”
“인간의 목을 자르는 녀석은 이계급 특진이다!
“우와아아아아!”
살아남은 마족들이 일제히 케인첼을 향해 달려들었다.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바싸고가 전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어, 제대로 된 지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케인첼은 제면 스킬을 사용해 몰려오는 마족의 발을 묶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엘리자베스의 등 뒤에 붉게 타오르는 날개가 떠올랐다.
“역시 애매하다 싶으면 이거지! 울부짖어라, 광익光翼!”
콰콰콰콰콰쾅-!
엘리자베스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깃털이 마족의 대군을 덮쳤다.
“끄, 끄아아악!”
“이 말도 안 되는 위력은 뭐야?!”
적을 전멸시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잠시나마 그들의 다리를 묶어 놓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섬멸전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끌기만 하면 이기는 전투였으니까.
‘29, 28……! 앞으로 조금만 더……!’
마족들은 타임 리미트가 다가온다는 것을 직감하고 미친 듯이 문을 향해 다가가려 했다.
그렇지만 케인첼과 엘리자베스가 목숨을 걸고 사수하고 있는 2차 저지선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 도대.”
“무슨 이렇.”
“미.”
소리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세상이 정지했다. 길고도 길었던 칼리오페의 의식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이제 마족과 인간 모두 원래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케인첼은 흐릿해져 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 위로 새하얀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이건 설마 눈?”
숨을 고르고 있던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자세히 보면 이거 분진이야. 헥토르가 마지막에 사용한 기술이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웠잖아. 폭발의 여파로 하늘에 올라갔던 재가 떨어져 내리고 있는 거야.”
“……그렇군요. 하지만 그냥 눈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쪽이 더 분위기 있잖아요.”
“아하하, 정말 그러네. 마계에 내리는 눈이라……. 설마 여기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 몰랐어. 확실히 길었던 전쟁의 마무리로는 잘 어울리네.”
눈은 모든 것을 덮어 버리려는 것처럼 두 사람의 주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럼 슬슬 돌아가자. 칼리오페에게 잘 자라고 인사라도 해 줘야지.”
마족이 쓴 전격 마법에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가웨인이 신음을 흘렸다.
“혹시 잊은 것 없나, 후배……. 미안하지만 나 좀 일으켜 주게나.”
“푸하하!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해 보이는 것이 아주 맛있게 익었네! 마법 병단 앞에서 설칠 때부터 이럴 것 같았다니까!”
케인첼은 티격태격하고 있는 가웨인과 엘리자베스를 뒤로 하고 헥토르가 마지막으로 서 있던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는 과연 그토록 바라던 아내와 만났을까?
기회가 되었다면 빈센트에게 했던 것처럼 추억의 코코뱅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 승리를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헥토르.’
케인첼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마계는 마치 백색 산맥처럼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 * *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자 혼란에 빠진 괴테가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동굴 같은 데 잡혀 있는 거야? 설마 아크 씨가 범인이야? 그러니까, 지금 괴테 님이 납치된 거고? 물론 내가 지난 3년 동안 신작을 하나도 안 쓰기는 했어!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 아차, 아주 끝내주는 제목을 생각해 놨는데 한번 들어 볼래? 바로 파우스트야. 어때? 듣기만 해도 엄청난 대작이 될 것 같지? 이건 베르테스보다 훨씬 더 끝내주는 작품이 될 거라고!”
아무래도 마계와의 연결 고리가 사라지며, 기억에 혼선이 온 모양이다.
괴테는 쥐도 새로 모르게 자신을 납치해 온 아크의 무서움에 치를 떨며 외쳤다.
“으아니 챠! 괴테 님도 행복하고 싶은데! 왜 행복할 수가 없어! 괴테 님은 그저 마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 당장 쇼크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을 입은 엘리자베스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방금 들은 이야기 아크 씨에게 그대로 전해 줄게.”
“다, 당신은 엘리자베스 공?! 설마 아크가 소드 마스터마저 납치해 온 거야!? 무섭다……, 정말 무서운 남자야…….”
케인첼은 이차원 주머니 안에서 콜라를 꺼내 괴테에게 던져 주었다.
“이거 드시고 머리를 조금 식히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를 겁니다.”
괴테는 그 귀하디 귀한 콜라를 받아 들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켰다.
“……꺼억. 어……, 그러고 보니 나는 분명 오월의 신부가 되기 위해 아크 씨와 결혼을…….”
아무래도 괴테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려면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혹시 괴테 선생님 아니십니까? 이럴 수가……. 하, 항상 베르테스를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정도로 팬입니다. 사, 사인을 부탁드려도…….”
기억에 혼란이 온 것은 바토리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물론이지. 이름은 부토리라고 적으면 되나?”
“바토리입니다…….”
“……그러면 친애하는 독자 바토리에게, 정도로 해 줄게. 자 여기 있어.”
“우오오오! 가문의 영광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대문호 괴테와 처음 만나는 기쁨을 두 번이나 가질 수 있다니.
멀고 먼 타향까지 온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케인첼은 고개를 흔들며 칼리오페가 잠들어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 뒤를 엘리자베스가 말없이 따라왔다.
이곳은 앞으로 천 년 동안 드래곤 로드에 의해 엄중하게 관리 될 예정이었다.
앞으로는 칠죄신교 같은 놈들이 이곳에 침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레어의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다.
드래곤은 죽을 때까지 자란다.
그래서 성체의 몸은 커다란 성만하다. 그렇지만 칼리오페는 작았다.
기껏해야 지스타드 저택의 절반 정도나 될까.
인간으로 치면 12~13살 정도 되는 나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케인첼은 마치 눈으로 만든 조각으로 보일 정도로 온통 새하얀 드래곤의 꼬리를 어루만졌다.
“……인사하러 왔어, 칼리오페. 이게 네 본래의 모습이구나. 정말 예쁘다. 진작 이 말을 해 주었어야 했는데……. 아하하……. 그럼 앞으로 천 년 동안 마계의 봉인을 잘 부탁할게. 잘 자.”
잠결에 케인첼의 말을 들은 것일까.
칼리오페가 고로롱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어쩌면 그토록 좋아하던 케인첼의 요리를 먹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칼리오페의 머리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모르가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초감각의 소유자답게 다른 마녀와 달리, 그녀의 정신은 멀쩡해 보였다.
모르가나가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너무 큰 짐을 짓게 한 걸까요…….”
“칼리오페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잖아요. 아슬란 폐하와 7대 미덕,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
12년 전.
데우스가 벗어던진 욕망에서 태어난 칠죄종과의 전쟁이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드넓은 대지가 불타 사라졌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성왕 아슬란과 8대 미덕의 활약 덕분이었다.
케인첼은 눈을 감았다.
그때 당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나약함이 싫었다.
몰락한 가문의 재건 같은 것은 스스로 내건 핑계일 뿐이다. 그저 강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위대한 영웅담의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더할 수 있었다.
모르가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왕 아슬란과 미덕의 이야기는 이미 십 년 전에 끝났어요.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영웅담의 주인공은 케인첼 바로 당신이에요.”
모르가나는 입고 있던 갑옷을 벗고 옷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적당히 근육이 잡혀 있어 보기 좋은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마녀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마계의 문을 닫은 것도 전부 당신이 해낸 일이잖아요. 자부심을 가지세요. 이것으로 당신은 진정한 영웅이 되었어요.”
목이 메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지만 도저히 목소리로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칠죄종 전쟁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케인첼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떼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남아 있다는 건가요? 적어도 앞으로 천 년간은 마족이 브리타니아 땅을 밟을 일은 없어요. 전부 당신의…….”
모르가나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떨렸다. 마치 지금 당장에라도 케인첼에게 안겨 울고 싶은 것 같았다.
“저는 지금부터 브리타니아에 걸린 저주를 풀러 가야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브리타니아가 저주에 걸렸다고요? 그게 도대체 무슨…….”
“예. 나라 전체가 칠죄종 전쟁이라는 저주에 걸려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풀 수 있는 것은 마음이 담긴 요리뿐입니다.”
이제 소드 마스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끝마쳤다.
지금부터는 셰프가 활약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