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25)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25화(21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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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
“케인첼!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비프스튜를 내놓지 않으면 유혈 사태가 일어날 거야!”
“엘리자베스 님! 상처가 정말 심하십니다! 그렇게 자꾸 움직이시면 잘린 팔이 도로 붙지 않을 겁니다!”
“뭐야?! 당신도 사실은 먹고 싶잖아! 먹게 해 줄 테니까 얌전히 내가 하는 거 보고만 있으라고.”
비프스튜가 완성되려면 아직 조금 더 끓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이 아니었다.
캐롤라인은 먹고 싶은 것을 무려 두 시간이나 참고 또 참았다.
그렇지만 결국 포기하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케인첼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하아……, 하아……. 케, 케인첼 경……. 아직 멀었나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도, 이건 너무 심한 것 같았다.
끊임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흘러 들어와, 지금 당장 요리를 먹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먹고 싶으셔도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입에 넣는 순간 살살 녹아내릴 정도로 부드럽게 되려면 조금 더 익혀야 합니다.”
“너, 너무해요!”
캐롤라인은 원망 섞인 눈동자로 케인첼을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드디어 먹기 딱 좋을 정도로 스튜가 잘 끓었군요. 그럼 오븐에서 꺼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던 비프스튜가 접시에 담겨 캐롤라인의 앞에 놓여졌다.
그녀는 접시째 들고 국물을 마시려다가 케인첼이 내민 스푼을 받아 들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하하……. 설마 일국의 황녀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냥 손으로 들고 먹으려고 했을까요. 그냥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랬어요. 진짜예요. 믿어 주세요.”
“잔뜩 있으니,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죄송하지만 그건 도저히 힘들 것 같아요.”
캐롤라인은 코를 킁킁대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아, 이 냄새……. 먹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여러 식재료가 섞여 만들어 낸 심오한 풍미를 맡자,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비프스튜가 가득 담긴 접시에서 풍기는 고기와 채소, 그리고 각종 향신료가 어우러진 복잡한 향기.
케롤라인은 우선 스푼 가득 스튜를 떠서 단숨에 입으로 가져갔다.
입안 가득 퍼져 나가는 고기와 채소의 맛이 응축된 진한 수프의 맛이 느껴졌다.
살짝 볶아 물러질 때까지 끓였기에 이런 맛이 배어난 것이리라.
“……정말 맛있어요!”
한 입 먹자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캐롤라인은 도저히 제국의 황녀로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비프스튜를 퍼먹기 시작했다.
입에 넣는 순간 녹아내릴 정도로 부드럽게 변한 각종 채소와 고기.
캐롤라인은 원래 채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렇게 진한 국물이 배어든 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그럼 이제 메인인 소고기를…….”
뭉근한 불에 오랫동안 끓인 소고기는 나이프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스푼만으로도 잘릴 정도였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건져 올려 입안으로 옮긴다.
“……!”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푹 고아서, 살살 녹아내리는 소고기에서는 야채와 향신료의 맛과 향이 듬뿍 배어 있었다.
아아, 바로 이것을 위해 3시간 동안 그토록 애를 태웠구나.
결국 캐롤라인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맛있는 요리다. 게다가…….
어느새 캐롤라인의 양쪽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한 그릇의 요리를 먹고 이토록 엄청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니.
그것은 비프스튜 안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접시에 담긴 비프스튜를 전부 먹어 치운 캐롤라인은 여운을 즐기듯 의자에 등을 기댔다.
“요리를 먹는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해지다니……. 제가 먹은 것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었어요. 이건…….”
케인첼은 엄청나게 진동하고 있는 조마경을 풀어서 이차원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이제 마도구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는 캐롤라인만 봐도 이 요리의 등급을 알 수 있었다.
[8성급 요리 ‘행복을 부르는 비프스튜’가 완성되었습니다.]케인첼은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접시에 비프스튜를 담기 시작했다.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남자가 등장했다.
“으, 으음……. 아, 아슬란 폐하!?”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샌더스 셰프가 다시 기절했다.
눈을 떴는데 성왕 아슬란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같은 반응을 보이리라.
아슬란은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눈동자로 비프스튜를 먹는 캐롤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폐, 폐하?!”
“기네비어……. 아니, 캐롤라인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겠구나. 얘야…….”
그는 무언가 말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욕망을 버린 채 살아온 지난 12년.
어떻게 해야 마음을 전할 수 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캐롤라인은 입에 묻은 스튜를 우아하게 닦아 내며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폐하가 저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이미 알고 있답니다.”
“정말 미안하구나……. 아니, 고맙다…….”
멈춰 있던 성왕 아슬란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슬란은 기사의 예를 취하고 있는 케인첼을 바라보았다.
“짐도 한 그릇 먹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폐하.”
케인첼이 내민 그릇을 받아 든 아슬란이 비프스튜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텅 빈 가슴을 요리에 담긴 마음이 채우기 시작했다.
주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아슬란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칠죄종 전쟁이 끝난 후, 오직 맛없는 음식만을 먹어 왔던 아슬란.
그랬던 그가,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케인첼이 만든 요리를 먹고 있었다.
비프스튜를 전부 먹은 아슬란이 말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다.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고맙다, 케인첼. 아니…….”
“……아버님!”
아슬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그의 품에 안긴 캐롤라인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아슬란이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인지, 케인첼은 알고 있었다.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단어였으니까.
케인첼은 빙긋 웃으며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슬란과 캐롤라인 부녀를 바라보았다.
“맛있게 드셨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종장. 고든 램볼튼
마게이는 오늘 시티즌에서 개업하는 레스토랑 아가페(Agapé)의 견습 셰프였다.
어리고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숲지기로 일해서인지 제법 몸이 튼실했다.
아가페의 총 주방장이자, 오너는 전직 황실 셰프였던 고든 램볼튼이다.
그 사람처럼 훌륭한 셰프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성왕 아슬란이 무릇 일주일에 한 번은 닭과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선포한 이후.
브리타니아에 미식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저곳에 수많은 레스토랑이 생겨났다. 셰프는 기사와 함께 최고로 각광받는 직업이 되었다.
개업을 앞두고 마게이는 조금 불안했다.
‘아무리 고든의 이름값이 있다 해도, 장사가 안 되어 망하면 어떻게 하지.’
그렇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오픈 시간까지 한 시간 가까이 남아 있는데, 아가페 앞은 몰려든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마게이의 얼굴에 마치 자신이 칭찬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손님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았다.
벌꿀을 바른 것같이 반짝거리는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트린 여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초조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외모가 너무나 아름다워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때, 푸른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트린 요염한 미녀가 여기사를 뒤에서 껴안았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아벨. 분명 오늘 상회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해 놓고, 한가하게 레스토랑 앞에 줄을 서 있네?”
그러자 아벨이라 불린 여기사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승님이야말로, 그렇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무슨 일이십니까.”
“나야, 꼬맹이……. 아니, 케인첼의 스승이 레스토랑을 연다고 하니까 축하해 주러 왔지. 응? 그런데 혹시 그 소중하게 들고 있는 그거, 이그드라실의 가지로 만든 국자 아니야? 설마…….”
“이, 이건 단순한 선물입니다! 케인첼에게 고백을 하려는 것이 절대…….”
“뭐? 고백? 푸하하! 우리 귀여우신 제자님께서 드디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셨네. 자아, 언니랑 잠시 저기 으쓱한 곳에서 갈등을 빚어 볼까?”
“죄송하지만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케인첼을 위해 성별마저…….”
“으아아악! 방금 그 이야기는 안 들은 것으로 할게! 젠장……! 그런 말을 들으면 나만 치사한 여자가 되잖아!”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아가페의 개업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여 있었다.
역시 전직 황실 셰프다운 인맥이었다.
그 순간 마게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잠깐만. 지금 이 많은 사람이 다 먹을 만큼 손질해 둔 식재료가 충분하던가?
정신없이 식재료 창고로 달려가자 그곳에 고든 램볼튼이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셰프!”
“음, 견습치고는 제법 손재주가 괜찮군. 손질해 둔 식재료의 상태가 썩 나쁘지 않다.”
“가, 감사합니다.”
마게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평소 거의 칭찬을 해 주지 않는 고든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그런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와서 말이다. 아무래도 식재료가 부족할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더 준비해 놓겠습니다, 셰프.”
“아니. 자네 혼자서는 시간이 부족하겠지. 그래서 내가 지원군을 불러 두었다.”
“지, 지원군이요?”
“예전에 내 밑에서 일하던 견습 셰프인데, 실력이 썩 괜찮은 남자야.”
“설마 그 자리의 주인입니까?”
아가페에는 오래 전부터 비어 있는 조리대가 있었다. 거기에는 케인첼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다른 셰프들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과연 얼마나 실력 있는 셰프기에 고든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마게이는 묘한 경쟁심을 느끼며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도착한 것은 마게이와 그리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은 흑발의 청년이었다.
내심 연륜 있는 셰프의 얼굴을 기대했던 마게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케인첼이라고 합니다. 아가페가 바쁘다고 해서 잠시 도와주러 왔어요.”
“견습 셰프인 마게이예요. 잘 부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을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았다.
“분명 7대 미덕 중에 저 사람과 비슷한 이름이……. 뭐, 우연이겠지.”
시골에서 상경한 지 얼마 안 되는 마게이에게 있어 도시는 놀라움의 연속일 뿐이었다.
마게이는 케인첼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식재료 앞으로 데리고 갔다.
“양이 조금 많지만, 힘내서 같이 해 봐요.”
그러자 케인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혼자서 해도 10분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 잘 못 들었습니다?”
마게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식재료 손질의 신을 보았다.
* * *
도마 위에서 여덟 자루의 식칼이 춤추듯 움직인다. 그때마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식재료가 줄어들고 있었다.
케인첼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게이를 바라보았다.
마치 기사 양성소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케인첼 셰프. 어떻게 하면 허브를 그렇게 깔끔하게 자를 수 있나요. 저는 도마만 더러워지던데…….”
“아, 이거 말이죠? 차이브를 손질할 때는 먼저 끝부분을 조금 잘라 주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향이 날아가지 않거든요. 칼질을 할 때는 중지를 앞에. 나머지 두 손가락을 뒤에 놓고 이렇게 가볍게 칼질을 해 주면, 기본적인 칼질만으로 아주 가볍게 자를 수 있죠.”
마게이는 케인첼이 알려 준 대로 칼질을 해 보았다.
그러자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게 허브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차이브를 누르고 있는 손에 힘을 너무 주면 으깨져요. 살짝 감싸 안듯이……. 아, 그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정말 금방 배우시는군요.”
도마 위에는 아주 잘게 다진 차이브만이 다소곳하게 놓여 있었다.
“에헤헤…….”
마게이가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묘한 기분인 것은 케인첼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든에게, 그리고 적운에게 요리를 배웠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설마 자신이 다른 견습 셰프를 가르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때, 당황한 얼굴의 고든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터번을 깊게 눌러쓴 남자가 함께였다.
“이 손님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를 만나야 한다고 해서 데리고 왔네.”
“저를요?”
“그래. 무려 오스만에서 왔다고 하더군. 오픈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어.”
터번을 쓴 남자가 말했다.
“케인첼 공.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점 사과하겠소. 본인은 술탄의 말을 전하기 위해 온 메흐메트라고 하오.”
묘하게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했더니, 수여식 때 오스만 제국의 술탄과 함께 있던 남자였다.
분명 예니체리의 수장이라고 했었지.
“아무래도 정말 급한 일인 것 같군요. 목이 많이 마르신 것 같은데 물이라도 한 잔 드시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죠.”
“괜찮소이다. 제국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는데, 본인 혼자만 목을 축일 수는 없지 않소.”
“멸망의 위기라니요?!”
메흐메트는 케인첼의 손을 덥석 쥐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오스만 제국이 위험하오. 이대로 있다가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전부 말라 죽을 것이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마게이는 경악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케인첼 공이라고?
설마, 설마……!
“새, 생각났어. 분명 브리타니아에 그 어떤 셰프보다도 요리를 잘하는 소드 마스터가 있다고…….”
입을 다물고 잠시 케인첼을 바라본 메흐메트가 말을 이었다.
“……요리하는 소드 마스터 바로 당신뿐이오.”
<요리하는 소드마스터> 1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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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막에서 찾아온 손님
오늘 새롭게 문을 연 레스토랑 아가페에 먼 이국에서 온 손님이 방문했다.
흙먼지가 잔뜩 쌓인 터번과 망토.
그리고 옷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구릿빛 피부는 이 근방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오랜 여행으로 지친 것인지 남자의 피부는 몹시 거칠었다.
그렇지만 터번 사이로 언뜻 비치는 눈빛만은 강한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오너이자, 총 주방장인 고든 램볼튼의 지인이었다.
그는 한동안 일손이 부족한 아가페를 돕기 위해 부 주방장으로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손님이 원하는 것은 요리가 아니었다.
“……요리하는 소드 마스터, 바로 당신뿐이오.”
마침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하프엘프 아벨 카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요리하는 소드 마스터’라는 전대미문의 칭호로 더 유명한 케인첼 반 지스타드의 오랜 지인이었다.
“흐음, 케인첼…….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를 좋아하는지 몰랐군. 그런 취향이었으면 진작 말해 주지 그랬나. 아무래도 니뮤에 님에게 말씀드려서 도로 붙여 달라고 해야겠어.”
케인첼은 그제야 눈앞에 있는 남자가 애틋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떨어져 주시죠. 그리고 아벨. 무슨 상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니야. 바토리랑 어울려 다니더니, 도대체 뭘 배운 거야?”
“이런……! 본인이 의도치 않게 실례를 범했구려. 아무래도 오랜 여행으로 지친 것 같소.”
아벨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케인첼에게 터번을 쓴 남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사막에서 온 손님이야.”
“정말인가? 어디만 갔다 오면 손님이랍시고 라이벌들을 잔뜩……. 크, 크흠! 아무래도 바쁜 것 같으니 홀에서 기다리고 있지.”
우선 케인첼은 남자의 말 중에 마음에 걸리는 단어에 대해 묻기로 했다.
“그런데 오랜 여행이라면……, 설마 메흐메트 공께서는 저를 만나러 오스만 제국에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편하게 압둘라라고 불러 주시오. 허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본인이니.”
압둘라는 쓰고 있던 터번을 벗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마치 스스로 자른 것처럼 엉망진창인 산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 저렇게 머리가 짧지?’
오스만 제국의 전사는 남자도 머리를 길게 기른다. 그것을 감싸 묶어 터번 안에 넣고 다니는 것이다.
머리를 자를 때는 결투에서 지거나, 큰 치욕을 겪었을 때뿐이다.
결국 머리의 길이를 보면 얼마나 강한 전사인지 알 수 있다.
짧게 자른 머리는 전사의 수치. 머리카락을 자르느니, 목을 자른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예니체리의 수장, 압둘라의 머리가 저렇게 되었을까.
그렇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우선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드리겠소.”
“그전에, 여기는 레스토랑입니다.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못 먹은 것 같은 사람을 그대로 놔 둘 수는 없어요.”
“말했지 않소. 본인은…….”
“제국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는데 혼자만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하셨죠.”
“……그렇소이다.”
오스만 제국은 대륙의 남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광활한 사막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사막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메마른 모습과는 달리, 우기(雨期)에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그때는 드넓은 초원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것을 이용해 양이나 염소를 키우는 유목민의 수가 제법 된다고 들었다.
케인첼은 압둘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한동안 물을 마시지 않은 것인지, 탈수 증상이 훨씬 심해져 있었다.
강한 의지로 버티고 있었지만 더 이상 물을 마시지 않았다가는 죽는다.
‘그렇다면 그 요리밖에 없어.’
생각을 정한 케인첼은 적운에게 배운 레시피를 떠올리며 말했다.
“브리타니아에서는 티타임이라고 해서, 차와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전통이 있습니다. 물은 안 된다고 하셨으니, 간단한 디저트라도 먹으면서 자세한 사정을 듣도록 하죠.”
압둘라는 미간 사이에 깊은 주름을 만들었다.
그저 물을 입에 대지 않았을 뿐, 이곳까지 오며 과일이나 수프 같은 것을 먹은 적은 있었다.
티타임을 위한 디저트라면 ‘그분’이라도 이해해 주시겠지.
“알겠소. 그것이 전통이라면 따르리다. 여기서 더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
케인첼의 눈이 빛났다. 압둘라의 몸은 분명 수분을 원하고 있다.
그것을 먹으면 분명, 수분과 함께 잃어버린 기력까지 되찾을 수 있으리라.
“그럼 극락의 디저트를 만들어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극락의 디저트?”
“먹어 보시면 이해할 겁니다.”
도대체 어떤 요리기에 저토록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장담하고 있는 것일까.
잠시 후, 압둘라는 그것이 말 그대로의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됐다.
* * *
마계의 문을 닫은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케인첼은 최근 다도(茶道)에 흠뻑 빠져 있었다.
5성이 된 이후 좀처럼 오르지 않던 다도 스킬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명나라 출신 숙수인 적운에게 배운 지식을 이용해, 브리타니아에서는 접할 수 없는 재료로 차를 끓인다.
케인첼은 조리대 위에 있는 새빨간 열매를 바라보았다. 동방의 특산품 중 하나인 오미자(五味子)라는 열매였다.
맵고, 짜고, 달고, 쓰고, 시다.
하나의 식재료가 다섯 가지 맛을 가지고 있어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그리고 꿀.
‘이 두 가지 재료로 차를 끓이면 탈수로 잃어버린 수분을 보충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케인첼은 호박, 딸기, 계피, 클로렐라에 효과 증폭 스킬을 사용했다.
지금부터 이것들을 사용해서 다섯 종류의 원소병(圓小餠)을 만들 생각이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단순히 목이 마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변으로 배출되지 않은 독소가 몸에 쌓여 내장을 망가트리는 것이다.
물을 마시는 것 정도로는 잃어버린 체력이 회복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케인첼은 각기 다른 효과가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 디저트까지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역시 파트너다운 선택이군. 클로렐라로 몸에 쌓인 독소를 해독하고, 호박으로 그것의 배출을 돕고, 딸기와 계피로 손상된 내장을 보완한다. 정말 완벽하게 멋진 디저트다.
‘하나 빼먹었어. 계피의 향이 뇌의 기능과 인지 능력을 상승시켜 주거든. 그러면 부족한 수분이 보충되는 쾌감을 아주 생생하게 느끼게 되겠지.’
― ……악마와 싸우더니 많이 사악해졌군. 허나 그래야 내 파트너지!
케인첼은 본격적으로 오색 원소병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찹쌀가루를 체에 쳐서 다섯 등분한 후, 미리 준비해 놓은 식재료를 섞어 반죽한다.
그때 뜨거운 물을 사용해 살짝 익혀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말랑하면서 쫀득한 식감이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물에 꿀과 오미자를 넣고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심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압둘라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마치 온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달콤하면서 상쾌한 오미자 꿀차의 향기가 전해진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먹히겠는데? 차는 다 끓인 뒤에 듀렌달을 이용해서 차갑게 식혀 주도록 하고, 안에 넣을 소를 만들어야겠다.’
소는 설탕에 절여 둔 귤과 잘게 다진 호두, 그리고 대추를 섞어 만든다.
케인첼은 약간의 계핏가루와 꿀을 넣어 맛과 향을 더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동글동글하게 반죽한 원소병 안에 소를 넣고 감자 가루를 입힌 후, 뜨거운 물에 삶아 주는 것이다.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견습 셰프 마게이의 눈이 커졌다.
“케인첼 셰프! 그저 찹쌀을 반죽해서 삶았을 뿐인데, 매끈거리는 것이 엄청 예쁩니다! 완전 작은 조약돌 같지 말입니다!”
마치 잘 따르는 강아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엉덩이를 들춰 보면 분명 커다란 꼬리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녹말(綠末)을 사용해서 그래. 감자 가루를 물에 담그면 밑에 앙금이 가라앉는데, 그걸 말린 거야. 튀김옷에 넣어 주면 엄청 바삭거리는 튀김이 되고, 삶으면 이런 식으로 투명하면서 매끄러운 탄력을 가지게 되지.”
“감사합니다, 셰프!”
전부 적운에게 배운 기술이었다. 애초에 오색 원소병 자체가 동방에서 왕의 수라상 후식으로 내놓는 음식이었다.
그만큼 맛있고, 갈증 해소에 좋다는 뜻이다.
먹기 좋은 크기의 원소병을 빗어 내는 솜씨에 마게이의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마치 손끝에서 보석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요리가 있다는 것은 정말 처음……. 아! 제가 시골뜨기라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 케인첼 셰프의 요리 실력이 정말! 정말 대단해서……!”
그렇지만 오색 원소병의 대단함은 외형뿐이 아니다.
케인첼은 잘 삶아진 원소병을 건져 찬물에 헹궜다.
그래야 말랑하면서 쫀득한 식감이 살아난다.
그것을 오미자 꿀차에 넣고, 몇 가지 견과류로 장식을 하자 극락의 디저트가 완성되었다.
20분도 지나기 전에 그럴듯한 디저트를 만들어 가져오자 압둘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한 분홍빛의 액체 안에, 마치 보석처럼 보이는 구슬들이 가득 담겨 있다.
디저트가 담겨 있는 그릇은 신기한 문양이 새겨진 도자기였다.
그것을 받아 들자 손끝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신기하구려. 얼음을 넣은 것 같지는 않은데, 어찌 이렇게 차갑게 식힌 것이오?”
“이렇게요.”
케인첼은 듀렌달을 쥐고 오러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모든 것을 얼리는 극한의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과연 요리로 칠죄종 전쟁을 끝내신 분답구려. 그런데 그거 말이오, 아무리 봐도 대기사 롤랑의 듀렌달을 닮은 것 같소만.”
“그거 맞아요.”
“…….”
설마 이런 신기(神器)를 이용해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듀렌달로 차갑게 식힌 디저트는 어떤 맛일까.
압둘라는 조심스럽게 스푼을 들어 먼저 묘하게 걸쭉한 액체를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차갑게 식혀서인지 식감은 마치 부드러운 젤리 같았다.
그것이 혀에 닿는 순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미로운 맛이 입안 전체에 퍼져 나갔다.
달콤하면서 쌉쌀하고, 새콤하면서 맵다.
그러면서 묘하게 떫은데, 그것이 벌꿀의 달콤함을 더욱 잘 느껴지게 만들었다.
산뜻한 산미가 느껴지는 단맛이 이토록 맛있을 줄이야.
“단순히 꿀로 만든 시럽이라 생각했거늘, 어찌 이런 복잡한 맛이…….”
뜨거운 태양빛의 열기에 달아오르고, 근심에 짓눌려 있던 가슴이 순식간에 시원해졌다.
이제는 동글동글 예쁜 보석을 먹을 차례였다.
먹기 편하도록 섬세하게 가공해 놓은 알록달록한 구체가 말간 빛깔의 오미자 꿀차 속을 떠다닌다.
잘 다듬은 루비와 에메랄드, 그리고 라피스 라줄리가 생각날 정도였다.
몇 번을 봐도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운 요리였다.
“설마, 진짜 보석을 넣었을 리는 없고…….”
스푼으로 가볍게 건드리자 묘한 탄력이 느껴진다. 압둘라는 원소병을 오미자 꿀차와 함께 듬뿍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경악했다.
“……!”
입안에서 녹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랑거리고, 묘한 탄력이 있어 씹을수록 쫄깃하다.
놀라움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원소병 안에는 고소하면서 달콤한 소가 들어 있어, 엄청난 풍미가 느껴졌다.
매끄러운 질감을 가진 원소병이 압둘라의 혀를 타고 미끄러지듯 배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만족감.
10년째 계속된 대가뭄.
게다가 전 백성의 목숨 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압둘라는 이 디저트를 계속 먹고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정직했다. 계속해서 오색 원소병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결국 압둘라는 텅 빈 도자기를 보고 멍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저 예의상 한 입 정도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전부 먹어 치웠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제법 먹을 만하죠?”
“후우……. 잘 먹었소이다……. 제국민들이 대가뭄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마치 큰 죄를 저지른 것 같구려.”
“그럼 잠시 거울을 보시겠어요?”
케인첼은 빙긋 웃으며 압둘라의 앞에 작은 손거울을 내밀었다.
거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압둘라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게 본인이란 말이오?!”
거칠었던 피부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치 유약을 발라 구운 도자기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뿐인가.
피로와 근심으로 검게 물들었던 눈매 역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푸석푸석했던 머릿결마저 매끄럽게 변해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만 깎으면 족히 10년은 젊어 보이리라.
“오색 원소병을 입에 넣는 순간,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었죠? 그건 압둘라 공의 몸이 음식을 원해서 그런 겁니다. 물론 제국민들의 고생을 외면하고, 음식을 입에 대는 것은 힘들고 괴로우시겠죠.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안위를 돌보셔야죠. 만약 압둘라 공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누가 임무를 완수하겠습니까?”
“…….”
자신보다 10살은 어린 청년에게 이런 충고를 듣게 될 줄이야. 하지만 전부 맞는 말이었다.
만약 체력이 떨어져 임무에 실패한다면 우스갯거리도 되지 않으리라.
압둘라는 묘하게 상쾌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저 한 그릇의 요리를 먹었을 뿐인데, 마치 다시 살아난 기분이오.”
“그래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정말 극락에 오신 기분이죠?”
케인첼을 바라보는 압둘라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 남자라면 오스만 제국의 운명을 믿고 맡길 수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대가뭄과 우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도록 하겠소.”
케인첼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우인이라면 적운에게 들어 본 적이 있는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