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43)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43화(22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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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에인션트 드래곤이라고……?’
정돈되지 않아 제멋대로 자라 있는 머리카락과 잠이 덜 깨서 흐리멍덩한 눈동자. 게다가 입가에는 하얗게 침 자국까지 말라붙어 있다.
겉모습만 보면 말 그대로 뒷골목을 전전하는 부랑자나 다름없었다.
― 조심해라, 파트너. 저건 진짜다.
몽롱한 눈빛으로 케인첼을 바라보고 있던 마그누스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뭐야, 한낱 미물 주제에 감히 본룡이 말하고 있는데 끼어들어?”
그는 케인첼의 신경망에 접속해 있는 비숍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마그누스는 입술은 물론 성대조차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멈춰라】
그러자 제멋대로 꿈틀거리고 있던 비숍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뭐야. 겨우 말 한마디로 마법을 발동시켰잖아?’
케인첼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마그누스가 적의를 가지고 공격해 온다면 도저히 막아 낼 자신이 없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일족의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 자를 함부로 공격하지는 않으니까.”
듣는 사람까지 나른해질 정도로 졸린 목소리였다.
“……그런데 도대체 진명이 뭡니까.”
“설마 그것도 모르면서 본룡을 부른 거야?”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세상의 법칙을 일그러트린다.
물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고, 활짝 핀 꽃은 봉오리로 돌아간다.
그것이 가장 오래된 마법 용언의 힘이었다.
마그누스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설명을 계속했다.
“드래곤은 마나를 흡수하며 살아가지. 그러다 보면 고룡이 되어 갈수록 세계와의 동화가 진행을……. 쿠울…….”
그러다 다시 잠들어 고개를 떨어트렸다.
케인첼은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러야 했다.
“마그누스 바실레이아 님?”
그러자 마그누스가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펄떡 하고 뛰어올랐다.
“으, 으아아악! 그러니까 자꾸 진명을 부르지 말라니까! 마치 귀에다 대고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느낌이라고!”
“……그것 참 괴로우시겠군요.”
“하여간 용언은 강력한 만큼 남발하면 동화가 가속돼. 내 경우는 아마 화산이 되지 않을까? 그것을 최대한 늦춰 주는 것이 본룡과 본룡이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해 주는 진명이야. 이 정도면 궁금증이 풀렸지? 그럼 지금부터 관련된 기억을 지우도록 할게.”
“기억을 지운다니요? 그게 도대체 무슨…….”
케인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그누스가 손을 뻗으며 용언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마그누스의 진명에 관련된 기억이 케인첼의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자 됐다. 이거로 내 진명은 물론 그것을 알게 된 경위까지 전부 없앴어. 보통 드래곤은 마음을 완전히 허락한 상대에게만 진명을 알려 주거든. 그러니까 내 풀네임을 부르는 것은 조금 더 친해진 다음에 하자고. 하암……. 그럼 다시 자러 가 볼게.”
마그누스의 용언은 인과를 뒤집어 사건을 애초에 없었던 일로 만든다.
그렇지만 그것으로도 미처 지우지 못한 것이 남아 있었다.
[미식 스킬이 ‘인과 역전’에 저항했습니다.]용언으로도 2만 번이 넘게 구운 노가다의 흔적만은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케인첼은 혀끝에 남아 있는 치킨의 맛을 떠올려 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치킨을 굽다가 드래곤 로드의 진명을 알아냈나 보네. 뭐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인간은 어렸을 때 먹은 음식의 맛을 죽을 때까지 기억한다. 아무래도 미식 스킬이 7성으로 오르면서 그것과 비슷한 능력이 추가된 모양이다.
‘하여간 드래곤 로드의 진명이 또 필요할 때가 온다면 치킨을 튀기면 되겠네.’
케인첼은 마그누스가 들었다면 비명을 지를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대가뭄의 원인이 드래곤이라는 기억은 그대로였다. 그것은 애초에 진명과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사건이었으니까.
“마그누스 님.”
“그래. 앞부분만 말하니까 얼마나 좋아. 하여간 억지로 본룡의 풀네임을 기억해 내려고 하지 마. 자칫 잘못했다간 정신이 붕괴할 수도 있어.”
“명심하도록 하죠. 그런데 혹시 최근 들어 마나를 사용할 일이 많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마그누스는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잠시 케인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묘한 신음을 토해 냈다.
“크, 크흠. 어떻게 알았지? 설마 내 잠꼬대를 엿들었나?”
“지금 그것 때문에 오스만 제국이 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거든요?”
“아, 그거? 누구를 바보로 아나.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본룡이 다른 곳에 둥지를 튼다면 더욱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을 거야. 그나마 사막이니까 이 정도 피해로 끝난 거지.”
마그누스의 말대로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힘을 보태지 않았다면 대륙은 이미 마계에서 튀어나온 마족의 손에 정복되었을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그저 사막에 비가 덜 내리는 것 정도는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렇지만 대가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간단히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압둘라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크으으윽……. 대가뭄의 원인을 찾아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니…….”
그렇지만 마그누스에게 적의를 뿜어내지는 못했다.
아무리 그가 예니체리의 수장이자 사막의 소드 마스터라 해도 눈앞에 있는 것은 에인션트 드래곤.
신화시대부터 살아온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으니까.
“……케인첼 공. 드래곤 로드와의 협상은 그대에게 맡기겠소. 오스만 제국의 수십만 백성의 목숨이 당신의 손에 달려 있소. 제발 잘 처리해 주기를 바라오.”
케인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제가 만든 요리를 먹으면 주위에서 흡수하지 않고도 충분한 양의 마나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오스만 제국을 덮친 대가뭄 또한 해소되겠죠. 어떠십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최고로 맛있는 요리를…….”
그렇지만 마그누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모두의 기대를 완전히 져 버린 것이었다.
“먹기 싫은데?”
압둘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마그누스는 그저 케인첼이 만든 요리를 먹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오스만 제국에 다시 비가 내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어째서 마그누스는 그토록 간단한 일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한 표정이군. 빨리 끝내고 잘 거니까 최대한 간단히 이유를 말해 줄게. 이렇게 성격 좋은 레드 드래곤은 본룡뿐이라니까?”
마그누스는 벌써 천 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주식은 주위에서 흡수한 마나뿐이다. 지금도 그것을 통해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즉, 본룡에게 음식을 먹으라는 것은 엘프에게 고기를 던져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야.”
‘엘프에게 고기라…….’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표현이었다.
아무래도 마그누스에게 직접 만든 요리를 먹이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일 것 같았다.
그렇지만 까다로운 상대일수록 불타오르는 법이다. 케인첼은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마그누스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먹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는 말씀이시죠?”
“물론 가능이야 하지. 그런데 얼마 전에 누군가가 제물로 바친 음식을 먹어 봤거든. 근데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더라고. 마치 모래를 씹는 것 같았어. 아무래도 나이를 먹다 보니 미각을 잃어버렸나 봐.”
‘윽. 난이도가 더 올라갔군. 그런데 제물로 바쳐진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식욕이 남아 있다는 거잖아?’
케인첼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어쩌면 거기에 이번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자 마그누스는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맞아. 드래곤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점점 생명체라 불리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간다는 뜻이야. 미각이 사라져 가는 것은 그 시작일 뿐이지. 본룡은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릴 거야. 하암……. 완전히 풍화되어 사라지기 전에 로드의 자리를 물려받을 놈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는데…….”
마그누스는 그런 말을 하며 또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케인첼과 비슷한 나이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실체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 드래곤이었다.
“그럼 미각을 되찾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오면 드실 겁니까?”
“으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할 것 같은데? 아, 맞다. 내가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방법으로 요리해서 가지고 오면 까짓것 먹어 주지. 이 정도면 엄청 많이 양보해 준 거야.”
마그누스는 무려 1만 년을 살아온 드래곤이다. 그런데 과연 그가 먹어 보지 못한 방법의 요리가 존재하기는 할까?
* * *
케인첼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밤새도록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해야 했다.
단순히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것이라면 브릴리언트 로드를 이용해 간단히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마그누스의 주문은 자신이 먹어 보지 못한 방법으로 요리한 음식이었다.
대륙에는 별의 수만큼이나 많은 요리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요리하는 방법의 종류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이 찌거나 삶거나 무치거나 볶거나 굽는다. 가끔은 생으로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까다로운 마그누스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잠깐만, 그거라면…….’
케인첼은 초거대 골렘의 공격으로 생긴 마그마로 고기를 굽던 일을 떠올렸다.
마그마 구이라면 마그누스가 먹어 보지 못한 방법으로 만든 요리가 아닐까?
“미안하지만 그거라면 먹어 본 적 있어. 정확히는 오크 고기였지만 말이야.”
“…….”
어떤 상황에서 먹은 고기인지는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아 묻지 않기로 했다.
결국 케인첼은 혼자서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브릴리언트 로드조차 보여 주지 못한 방법으로 소고기의 맛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남자를 찾아갔다.
케인첼에게 간단히 사정을 들은 자이메는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케인첼 셰프와 공동 작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료가 된 셈이군요. 하하하!”
“하여간 자이메 셰프의 성형육이라면 분명 지금까지 없었던 방식으로 만든 요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아쉽게도 성형육은 그 손님의 요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분명 지금까지 없었던 방식으로 만든 식재료이긴 합니다만, 그 사람이 요구한 것은 특이한 방식으로 만든 요리 아닙니까. 차라리 저온에서 숙성시킨 닭고기로 만든 치킨이 훨씬 더 그 조건에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도 이미 먹어 봤다고 하더군요.”
“……거 참 어렵군요.”
잘 생각해 보니 비슷하면서 확실히 달랐다.
케인첼은 자이메에게는 요리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상대가 드래곤 로드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입맛이 까다로운 손님이 있다는 정도로 둘러댔다.
만약 지금 만들고 있는 요리에 오스만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하면 긴장해서 서 있지도 못할 테니까.
자이메는 씨익 웃으며 케인첼의 어깨를 팡팡 소리가 나도록 두들겼다.
“사실 제게 숨겨 두었던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비장의 무기라니요?”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머물고 있는 숙소로 달려가 기름이 묻어 있는 종이를 한 장 꺼내 왔다.
보통 종이라고 하면 양의 가죽을 얇게 펴서 말린 양피지를 떠올리곤 한다.
그것은 가죽을 통째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그렇지만 대략 백 년 전부터 나무를 원료로 만든 종이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탑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다.
― 으하하. 파트너!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지만, 바로 그 양지(洋紙)를 대중화시킨 것이 바로 이 몸이다!
‘어? 살아 있었구나, 비숍.’
― 당연하지 않은가! 용언 마법에 당해 잠시 움직이지 못했을 뿐이다!
이상할 정도로 흥분한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마그누스에게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제압당한 것이 민망한 모양이다.
‘하여간 나무로 만든 종이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것이 백 년 전부터였지? 그럼 분명 마그누스가 알고 있는 종이는 양피지나 파피루스 같은 것뿐일 거야. 그런데 도대체 종이로 무슨 요리를 한다는 거지?’
― 음……. 종이에 물 같은 것을 끼얹나?
케인첼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자이메가 씨익 웃으며 시범을 보여 주었다.
“자, 이렇게 하면 종이로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참 쉽지요?”
케인첼의 손이 흥분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종이를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줄이야.
이것을 이용하면 1만 년을 살아온 마그누스조차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요리를 만들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