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45)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45화(2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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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막에 내리는 비
밀푀유 나베가 마그누스에게 선사해 준 것은 잃어버린 미각만이 아니었다.
무려 일만 년을 살아온 에인션트 드래곤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한낱 미물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잠깐의 변덕으로 어울려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경우였다. 대부분 무심코 죽이더라도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게다가 마그누스는 어마어마하게 수다쟁이라, 자기 할 말만으로도 바쁜 드래곤이다.
그런 마그누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세헤라자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밀푀유 나베를 먹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마그누스는 텅 빈 그릇을 내밀며 호쾌하게 외쳤다.
“한 그릇만 더 주라. 설마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요리가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지 뭐야.”
“그만큼 마그누스 님의 미각이 약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자극적이지 않게 만든 약선 요리를 먹다 보면 금방 젊었을 때의 입맛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거 네가 만든 요리를 계속 먹어야 된다는 뜻이지? 뭐 썩 나쁘지 않은 조건이네. 그런데 설마 이렇게 어린 인간이 본룡에게 먹는 즐거움을 되찾아 주다니.”
“과찬이십니다.”
마그누스는 접시에 음식을 옮겨 담는 케인첼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실로 재미있는 인간이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이 지루하지 않겠어.”
흐리멍덩했던 마그누스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는가 싶더니 묘한 욕망이 떠올랐다.
그것은 벌써 수천 년도 전에 잃어버렸던 감정.
마그누스가 나베 요리를 먹는 사이, 세헤라자드는 무사히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그러다 결국 비를 내리는 제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상태가 되었지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잠깐만. 무언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슬부슬 잘 내렸잖아? 그게 비가 아니면 뭔데?”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세헤라자드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제가 아메후라시를 사용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비예요. 자연적으로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어요.”
그러자 마그누스의 입술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본룡의 안배를 박살 내 놓은 거야?!”
“……안배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가요?”
“본룡도 그렇게까지 안하무인은 아니라는 뜻이야. 마계의 문을 닫힌 채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마나가 필요하지. 그리고 그 대부분을 본룡이 제공하고 있어.”
그 결과 오스만 제국에 역사상 다시없을 어마어마한 대가뭄이 발생하게 되었다.
마그누스는 손가락을 펼쳐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에인션트 드래곤 정도 되면 이미 생물이라기보다는 정령왕에 가까워. 소울 스트림에 한 발 담그고 있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우려나. 하여간 모든 행동에 엄청난 제약이 따라. 무엇을 하든지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동화 또한 그 일부고 말이야.”
케인첼은 어째서 칼리오페가 항상 계약이니 맹약이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지 깨달았다.
받은 것이 있다면 그만큼 갚는다.
그것은 드래곤에게 있어 기본적인 행동 원칙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결국 대량의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불러올 열기를 상쇄할 수단을 마련해 놔야 했지. 본룡은 그것을 위해 1할의 드래곤 하트를 사용했어.”
무려 1만 년 동안 모은 마나가 쌓여 있는 드래곤 하트. 그거라면 일국의 기후를 바꾸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그러니까, 마그누스 님께서 비가 내리도록 도움을 주셨다는 말씀인가요?”
마그누스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세헤라자드의 물음에 답했다.
“그래. 정확히 아라비아 사막 정중앙에 드래곤 하트를 박아 놨다고. 인간이 절대로 침입하지 못할 아주 깊숙한 곳에 말이야. 조금 적은 감이 있긴 했지만 비가 잘 내리고 있어서 문제없는 줄 알았더니만…….”
‘그, 그거……!’
케인첼은 마치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을 느껴야 했다.
드래곤의 마나가 느껴지던 초대형 골렘의 코어.
그 제작자인 조이드는 전대 술탄의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비잔티움 지하에 공방을 만들었다.
마치 비어 있던 톱니바퀴가 딱 하고 맞아 떨어진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좀도둑의 정체를 알아낸 것 같군요. 마그누스 님, 혹시 그것을 설치해 둔 위치가 비잔티움 지하 아닙니까?”
“어떻게 알았냐? 맞아. 거기에 컨트롤 웨더 마법진을 설치해 뒀어.”
8서클의 절대 마법 컨트롤 웨더(Control Weather).
그 능력은 시전자의 마나가 미치는 범위의 기후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이었다.
동력원이 드래곤 하트였으니 원래대로라면 오스만 제국 전체에 비가 내렸어야 했다.
결국 자신의 생명을 깎아 가며 아메후라시를 사용한 세헤라자드의 노력이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럼 삼 일 전에 제가 만든 요리를 먹지 않겠다고 하신 것도…….”
“그래. 그저 비가 조금 덜 내리는데 앓는 소리를 하는 줄 알았지. 왜 인간들은 매번 그러곤 하잖아. 하여간 감히 쥐새끼 한 마리가 본룡의 드래곤 하트를 훔쳐 갔다 이거지?”
쿠구구구구궁-!
마그누스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고룡이라 해도 드래곤 하트를 잃으면 죽는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설치해 둔 광범위 마법진이 좀도둑 한 명 때문에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케인첼은 반사적으로 머랭을 발동시켜 세헤라자드의 몸을 감쌌다.
“그렇게 드래곤 피어를 마구 뿜어 대는 것은 자제해 주시죠. 소드 마스터인 저나 압둘라 공이라면 몰라도 맨몸인 세헤라자드 님에겐 치명적입니다.”
“아, 미안.”
“감사해요 케인첼 공. 지켜 주지 않으셨으면 선 채로 기절했을 거예요.”
“별말씀을.”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했다.
오러로 전신을 보호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나마 본체로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비록 노쇠하긴 했어도 최강의 색채룡 레드 드래곤다운 모습이었다.
“하여간 안 되겠다. 큰 거 한 방 먹여 주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아. 오랜만에 본체로 돌아가서 브레스를 크롸롸롸 하고…….”
“……그랬다가는 오스만 제국 전체가 불바다가 될 겁니다.”
“크, 크흠. 그럼 이렇게 하자. 그 쥐새끼 잡는 것을 도와주면 본룡이 충분한 보답을 해 주도록 하지. 특히 케인첼 너는 한동안 신세를 져야 하니 조금 무리한 부탁을 해도 들어줄게. 어때?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거래인 것 같은데.”
케인첼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문자 그대로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었다.
신화시대부터 살아온 에인션트 드래곤의 레어에는 분명 엄청난 금은보화들이 쌓여 있으리라.
그렇지만 케인첼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역시 고기 중에는 드래곤 고기가 최고 아니겠어. 에인션트 드래곤이니까 꼬리도 엄청 크겠고……. 그 정도면 한 달은 먹을 수 있겠지.’
과연 이번엔 얼마나 많은 오러가 오를까.
“하죠. 다만 혼자 잡기에는 골렘이 조금 커서 말인데요.”
“흐음, 알았어. 작전에 참가한 전원에게 보상을 해 주도록 하지. 뭐 어차피 보물이야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많으니까.”
마그누스는 케인첼이 자신의 몸을 노리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압둘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잔티움 지하에 숨어 있는 조이드는 전대 술탄의 목숨을 앗아 간 장본인이다.
그 복수를 도와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드래곤의 보답까지 받게 해 주다니.
케인첼의 시커먼 속을 모르는 압둘라의 눈에는 마치 알라가 보낸 사자처럼 보였다.
“……케인첼 공. 도대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려. 하여간 귀공만 괜찮으면 지금 바로 출발하고 싶소만.”
압둘라는 지금 당장이라도 클레이모어를 빼 들고 조이드를 쳐 죽이러 갈 기세였다.
그렇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 * *
아메후라시의 준비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애초에 세헤라자드가 가진 우인의 힘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그리 거창한 것은 필요 없었다.
“그럼 마그누스 님. 사막에서 오러를 흡수하는 것을 멈춰 주십시오.”
“흐아암……. 알았어. 본룡은 한숨 자고 있을 테니까 쥐새끼 쳐 죽이고 오면 깨워.”
마그누스가 항상 잠들어 있는 것 또한 마나의 소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
레드 드래곤의 기운이 사라지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던 공기가 제법 서늘해졌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는 엘프에게 치명적이다.
입고 있는 옷이 흥건해질 정도로 엄청난 땀을 흘리고 있던 아벨이 몸을 일으켰다.
“후……. 이 정도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 같군. 정말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아, 아벨. 몸은 좀 괜찮아? 지금부터 비가 내리면 훨씬 더 시원해질 거야.”
“……비라.”
케인첼은 창문을 열어 세헤라자드가 서 있는 알라의 신전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비잔티움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위치에 있었다.
곁에 있는 것은 수석 시녀인 자스민뿐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생명을 불살라 가며 비를 내렸던 수많은 우인이 함께였다.
세헤라자드는 기도하듯 양손을 모은 채, 소울 스트림에 말을 걸었다.
“구름아 어서 여기에 모이렴. 지금부터 메마른 대지에 비를 뿌려야 한단다.”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공기가 떨리는가 싶더니, 세헤라자드를 중심으로 엄청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비구름이 몰려들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비를 내렸지만 이 정도로 극적인 변화는 처음이었다.
그녀가 한 거라곤 그저 마그누스가 먹고 있던 밀푀유 나베를 조금 얻어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막 깊은 잠에 빠지려던 마그누스가 실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설마 컨트롤 웨더보다 더 많은 비를 불러올 줄은 몰랐네. 이게 인간의 마음이 가진 힘인가.”
갑자기 사라진 태양에 이곳저곳에서 환호성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구름이다! 드디어 비가 내리려나 봐!”
“으하하하! 여보 밖으로 나와 봐! 비가, 비가 내린다고!”
“알라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무스타파 3세 만세!”
세헤라자드의 귓가에 그들의 외침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이름은 외치지 않고 있었다.
지금 내리고 있는 비는 우인 세헤라자드의 아메후라시 덕분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것은 극히 소수의 인원뿐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제 마음은 케인첼 님의 요리를 통해 마그누스 님에게 전해졌어요. 그러니까 언젠가……!”
아메후라시는 기원이자, 비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이 형상화된 것.
그것이 세헤라자드의 손에 의해 구현되었다.
“……비야 어서 내리렴. 모두가 만족할 정도로 많이는 아니더라도. 모두의 마음이 촉촉이 젖을 수 있도록…….”
그러자 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어서 빨리 항아리 가지고 나와 봐! 언제 비가 그칠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많은 물을 받아 두어야 해!”
그렇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비는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도 계속해서 내렸으니까.
엄청나게 많은 양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스만 제국 전체에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메말라 가던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 갔고. 완전히 말라붙은 오아시스가 다시 차올랐다.
그렇게 단비는 세헤라자드가 완전히 지칠 때까지 6시간가량 내렸다.
무너지듯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받아 든 것은 자스민이었다.
“세헤라자드 님, 괜찮으십니까!?”
“……조금 지친 것뿐이에요. 그렇지만 이것으로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겠지요?”
어느새 그곳에 도착해 있던 압둘라가 주먹을 쥐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이제 뒷일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세헤라자드 님은 편히 쉬십시오!”
“고마워요 압둘라. 그럼 저는 이만…….”
세헤라자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어느새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절반이라도 구하고자 마음먹었다. 그에 따른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끊임없이 되새겼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 모두를 구할 길이 생겼다.
어찌 행복하지 않을까.
“……전부 당신 덕분이에요. 대륙 저편에서 찾아와 준 케인첼 반 지스…….”
케인첼은 생각 이상으로 많이 내린 비를 보고 중얼거렸다.
“이 정도 양이면 조이드의 공방도 무사하지 못하겠는데요. 그럼 익사하기 직전의 생쥐를 사냥하러 가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