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55)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55화(241/318)
================================
게다가 식당에 앉아 있는 손님의 낯이 묘하게 익숙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자,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 스타니스 기사 양성소에서 내가 만든 음식을 먹었던 수련 기사들이잖아.’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화덕 앞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던 셰프가 목소리를 높여 케인첼을 불렀다.
“어이, 신참! 지금 당장 식재료 창고에 가서 밀가루 한 포대만 가져오슈! 손님이 저렇게 많은데 가만히 있지 말고 말이유!”
‘저건 조프리 셰프잖아? 게다가 조리대에서 리조또를 만들고 있는 건 자이메 셰프군.’
혹시나 해서 식칼로 손가락 끝을 살짝 그어 보았다. 그러자 저릿한 아픔과 함께 새빨간 피가 뚝뚝 하고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통증은 느껴지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혼란에 빠져 비명이라도 지를 상황이다.
그렇지만 케인첼에게는 이미 이와 비슷한 일을 겪어 본 경험이 있었다.
명나라 출신 숙수(熟手) 적운과의 만남.
적운은 해적에게 납치되어 주방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의 원혼에 홀린 케인첼은 3년 동안 면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런데 실제로 흐른 시간은 30분이었어. 분명 이것도 비슷한 경우일 거야.’
결국 지금 케인첼의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 만들어진 환상이자 허구로 이루어진 세계.
‘그렇지만 피부에 닿는 주방의 열기마저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어. 게다가 적운 사부님과의 수련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얻은 스킬은 그대로 유지가 될 거야. 그렇다면…….’
“어이, 신참!”
“신참!”
“뭐 하고 있나 신참!”
이곳저곳에서 케인첼을 부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손에 쥔 채로 시련을 통과한다.
케인첼은 눈을 빛내며 식칼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힘차게 외쳤다.
“네, 갑니다!”
* * *
고든 램볼튼의 주방에서 일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손님은 끊임없이 밀어닥쳤고, 일손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럼에도 고든 램볼튼은 완벽을 요구했다.
“명심하도록 해라!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손님에게 내놓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최상의 서비스는 음식을 빛나게 하고, 손님에게 최고의 시간을 보내게 해 줄 것이다! 테이블에 놓는 물컵 하나까지 신경을 써라. 알았나!”
“예, 셰프!”
“그럼 22번 테이블에 베이컨 랭귀니 파스타, 치즈 리조또, 양파 수프! 아 참, 리조또에 치즈는 빼도록 한다!”
그러자 주문을 듣고 있던 브루노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치즈 리조또에서 치즈를 빼고 요리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손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맹물이라도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서 내놓는 것이 셰프의 기본이다! 뭐 하고 있나. 바로 움직이도록!”
“알겠습니다……!”
고든 램볼튼의 지시에 따라 십여 명의 셰프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케인첼에게 주어진 것은 주방의 잡일과 식재료 손질.
당연히 견습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양이 심상치 않았다.
‘대충 삼백 인분 정도 되네. 이 정도쯤은 양파 검술로……. 아, 요리 스킬은 사용할 수 없었지?’
게다가 식칼 또한 미스랄이 아닌 평범하게 철로 만든 물건이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에 위축될 케인첼이 아니다.
스타니스 기사 양성소의 주방에서 일할 때는 이것보다 더 많은 식재료를 혼자 손질하지 않았던가.
시련의 탑 안에서는 평생을 바쳐 갈고닦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맨몸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은 무기의 유무보다는 그것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째서 초급 검술은 남아 있는 거지? 기술이라기보다는 이미 내 일부라는 뜻인가?’
쾅-!
조프리 셰프가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칼을 케인첼 앞에 있는 도마에 내려찍었다.
“견습. 미안하지만 이것 좀 갈아 줄 수 있것수? 영 날이 안 드네. 어? 그 눈빛은 뭐유? 조리 도구 관리도 견습이 해야 할 일 아니유?”
조프리는 아무리 일이 바빠도 아침저녁으로 직접 자신의 칼을 갈곤 했다.
아무래도 시련의 탑의 관리인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다음에 아이리스를 만나면 디테일에 주의하라고 말해 줘야겠군.’
“바로 해 놓겠습니다, 조프리 셰프.”
“크, 크흠!”
조프리는 무안한지 헛기침을 몇 번 하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자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반 강제적으로 떠넘기고 갔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는 거죠? 응시자는 자존심도 없나요?
케인첼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그거야 남이 할 일까지 하면 경험치를 두 배로 얻을 수 있잖아.’
― ……아하하. 응시자는 정말 특이한 성격이네요. 하여간 함정에 빠지지 않고 1차 관문을 잘 통과하셨어요. 만약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서 칼부림이라도 벌였다간 바로 여기서 쫓겨나셨을 거예요. 바로 전 응시자의 경우 동급 용병이 피 기름이 묻은 칼을 닦으라고 던지자 발끈해서 그것으로 상대의 목을 찔렀거든요.
‘칼부림? 야, 아이리스……. 여긴 주방이야. 자신의 일을 떠넘긴 것 정도로 상대를 죽이거나 하진 않는다고.’
― 아.
일 처리가 너무 대충이다. 아이리스는 아무래도 생각 이상으로 얼빵한 성격인 것 같았다.
‘그런데 설마 시련 중에 이런 함정이 섞여 있었을 줄이야. 더 조심히 움직여야겠는데.’
― 그럼. 응시자님, 힘내세요! 응시자님이라면 분명 시련을 통과하고,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케인첼은 순식간에 칼을 갈아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것을 건네자 조프리가 연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고, 고맙수다.”
“주방에서 무딘 칼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옆의 사람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래서 항상 칼을 날카롭게 유지해야 하는 거고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요?”
“조프리 셰프가 항상 입버릇처럼 달고 사시던 말이잖아요. 그럼 손질해야 할 식재료가 많아서 이만.”
케인첼은 지금까지 거쳐 온 수많은 주방에서 배운 가르침들을 떠올리며 본격적으로 식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양파는 뿌리를 남겨 둔 채, 칼을 이용해 슬라이드 하듯 자른다.
연어는 꼬리 끝부분을 조금 자른 후 칼을 수평으로 돌리며 껍질을 벗겨 낸다. 그 후엔 꼼꼼하게 핀셋으로 가시를 제거해 준다.
그 다음으로는 대구를 손질할 차례였다.
그러자 매의 눈으로 주방 전체를 지휘하고 있던 고든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이봐, 케인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대구포를 뜨고 있습니다.”
“……나는 분명 생선은 필렛만 해 두라고 했을 텐데. 그런데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지.”
“다른 셰프들이 바빠 보여서 조금이라도 요리하기 편하게 해 드리려고 그랬습니다.”
“미리 포를 떠 놓으면 생선이 쉽게 마른다. 그래서 푸석푸석하고 맛이 없어지지. 그걸 알고서 한 일인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 밀가루를 약간 뿌려 놓았습니다. 어차피 피쉬 앤드 칩스를 요리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과정이니까요.”
옆자리에서 고기를 굽고 있던 브루노 셰프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들어온 지 한 달 된 신참이 고든 램볼튼의 명령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일을 벌인 것이다.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뻔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주방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고든 램볼튼은 크림색 눈동자로 케인첼이 포를 떠 놓은 대구를 살펴보았다.
도저히 신참이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솜씨였다.
“흐음. 확실히 오늘 대구를 사용한 요리는 피쉬 앤드 칩스뿐이지. 게다가 밀가루에 따로 간을 하지 않은 점도 좋군. 그건 요리를 할 셰프의 몫이니까. 하여간 앞으로는 내가 지시한 것만 할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고든 램볼튼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브루노는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설마 저 신참이 고든의 마음에 들었단 말인가!
“그런데 케인첼. 기존에 어느 주방에서 일했다고 했지?”
“브리타니아에 있는 아가페라는 레스토랑입니다.”
“아가페라……. 좋은 울림이군. 분명 아주 멋진 레스토랑이었겠지.”
케인첼은 속으로 킥킥거렸다.
‘그거 당신이 만든 레스토랑이에요, 고든.’
“그런데 그럭저럭 쓸 만한 칼 솜씨에 비해 밀가루를 입히는 실력은 영 시원찮군. 잠시만 따라와 보겠나.”
고든 램볼튼은 케인첼을 파스타 반죽을 하고 있는 조프리의 옆으로 데리고 갔다.
파스타는 고든의 레스토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다. 아무리 많은 파스타면을 만들어 놔도 항상 부족했다.
“우선 파스타 반죽을 하는 시범을 보여 주마. 자세한 것은 조프리에게 배우도록 해라.”
그러자 주방 전체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뭐야, 지금 고든 셰프가 신참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려는 것 같은데.”
“그 까다로운 고든 램볼튼이 신참에게 말인가?”
“맙소사…….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뜨겠군.”
“이보게나. 해는 원래 동쪽에서 뜬다네.”
놀란 것은 아이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 으, 응시자.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빨리 마스터 셰프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건가요?
‘이상하게 고든 램볼튼이 나를 좋아하더라고.’
― …….
‘그러니까 내 요리 실력 말이야.’
고든은 다른 셰프들이 떠드는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케인첼에게 파스타 반죽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리 요리를 좋아해도 ‘반죽’하는 것까지 즐기는 사람은 없지. 가루가 고루 섞여 윤기가 날 때까지 꾹꾹 눌러 치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바로 반죽한 생면은 수분이 풍부하고 식감이 쫄깃해서 건면보다 훨씬 맛있다.”
“맛있는 요리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수고는 들일 가치가 있다는 뜻이군요.”
고든 램볼튼은 케인첼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특히 파스타는 공예와 비슷하다. 아주 창의적이지. 맛과 향뿐 아니라 두께, 모양, 크기, 색깔 등 원하는 대로 변주가 가능하다. 어떤 파스타를 만들지는 반죽하는 셰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
‘자, 잠깐만. 이, 이거…….’
케인첼은 마치 커다란 해머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까지 케인첼이 갇혀 있던 상자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대부분 가늘고 길게 뽑아내는 면과 달리 파스타는 그 모양이 굉장히 다양하다.
그런데 케인첼은 제면을 사용할 때 적운에게 배운 것만을 이미지했다.
그만큼 적운의 제면 기술이 엄청났고, 그렇게 만든 면의 맛이 환상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제면이 가진 능력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 파스타 또한 면의 일종이었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만들어 봤으면서 왜 그걸 생각하지 못한 거지?’
케인첼은 생 파스타를 반죽하는 고든의 손놀림에 주목했다.
들어가는 재료는 밀가루, 달걀노른자, 올리브 오일, 그리고 소금이 전부다.
고든 램볼튼이 말했다.
“파스타는 물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달걀이 가진 수분만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는 것이지. 파스타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소스보다는 면의 맛이다. 잘 만든 파스타는 삶은 면만 먹어도 맛있다.”
전부 고든에게 오래전에 배운 내용이었다. 그제야 케인첼은 시련의 탑이 고든의 환상을 보여 주고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미 다음 단계로 나아갈 단서는 케인첼의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20여 분쯤 반죽을 치댔을까. 하얗던 반죽에 점점 찰기가 생기면서 노르스름한 빛깔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고든 램볼튼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의 숨결은 몹시 거칠어졌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았다.
“절대 힘을 빼면 안 된다. 전신의 힘을 손끝에 모아 치대는 것이다. 자, 나머지는 네가 직접 해 보도록 해라. 견습……. 아니, 케인첼 반 지스타드.”
케인첼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고든이 방금 전까지 서 있었던 조리대 위로 올라갔다.
거기에 놓여 있는 것은 반쯤 완성된 파스타 반죽이었다.
‘이것을 완성하면…….’
분명 제면 스킬이 한 단계 진화할 것이다.
그것을 확신한 케인첼은 고든의 체온이 느껴지는 파스타 반죽에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