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62)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62화(24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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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차로의 악마
거기에 있는 것은 얼핏 보면 얼음으로 만든 조각상으로 보일 정도로 차가운 인상의 엘프였다.
“오랜만입니다, 호라이즌.”
엘 아카드 개국 때 보고 처음이니, 거의 1년 만에 얼굴을 보는 셈이다.
“바로 얼마 전에 본 것 같은데 무슨 소리인가. 이러다 정이라도 드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확실히 엘프에게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겠네요.”
그러자 호라이즌은 도대체 무엇이 불만인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흥, 개국 초기라서 바빴을 뿐이다.”
케인첼이 피식 웃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호라이즌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케인첼은 엘 아카드의 개국 공신이자 국보 프라가라흐의 소유자.
게다가 여왕인 에이레네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아무리 인간을 싫어하는 호라이즌이라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남자인 셈이었다.
“그런데 설마 에이레네와 같이 온 겁니까?”
호라이즌은 여왕의 전속 셰프이자, 친위 대장이다. 단독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가 있기는 하지만 무의 탑은 언제 오크의 습격이 있을지 모르는 장소.
엘프 일족의 여왕이라는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곳이었다.
“오늘은 나와 이 녀석뿐이다. 슬슬 은폐를 풀고 나와도 된다.”
수풀이 부스럭거리는가 싶더니 싱그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죄송해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적습에 대비하고자 실피르의 도움을 받아 잠시 몸을 숨기고 있었어요.”
그리고 연한 녹색 빛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트린 엘프 정령사가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여왕인 에이레네처럼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청초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미녀였다.
케인첼은 그녀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말했다.
“애플민트 양이시군요. 그럼 블랙페퍼와 클로버는 남아서 에이레네를 지키고 있나 보네요.”
그러자 애플민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일개 친위대의 이름을 기억해 준 것이 기쁜 모양이다.
‘어떻게 셰프가 향신료 이름을 잊어 먹겠어.’
그렇지만 대답은 애플민트가 아니라 호라이즌의 입에서 대신 흘러나왔다.
“맞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지원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다. 내가 인간을 만나러 온 것도 그것과 관련되어 있지.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호라이즌은 케인첼의 옆에서 끓고 있는 50인분의 수프 파스타를 가리켰다.
“설마 한 그릇 달라는 것은 아니겠죠? 죄송하지만 여기에는 고기며 버터 같은 동물성 식재료가 잔뜩 들어가 있거든요.”
“아니, 나는 이 음식을 먹은 감상이 듣고 싶다. 기왕이면 어떤 맛이었는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으면 한다.”
엘프인 호라이즌이 어째서 인간을 위해 만든 요리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일까.
근육 트레이닝을 하는 척 애플민트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던 이안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케인첼. 저 레이디의 이름이 말이야. 분명 애플민트라고 했지? 정말, 아……. 그러니까…….”
아무래도 무언가 외모를 칭찬하고 싶은데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식은땀을 흘리며 상투적인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 그의 한계였다.
“……정말 예쁜 이름이다. 혹시 괜찮으면 방금 부탁받은 것을 내가 해 봐도 될까? 미식가는 아니지만 최대한 맛을 잘 표현해 볼게.”
케인첼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해 준다면 저야 고맙죠.”
그러자 이안은 맡겨 달라는 것처럼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탑에 들어가 있는 동안 계절이 바뀌어 어느새 겨울이 되어 있었다.
날이 추워서인지 이안의 양쪽 뺨이 이상할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그럼 시식을 시작하겠소이다!”
이안은 수프 파스타를 평생의 숙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기 시작했다.
반쯤 녹은 치즈 밑에 쌉쌀한 풍미를 지닌 아스파라거스가 보인다.
먼저 국물부터 먹기로 정한 이안은 건더기까지 듬뿍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우유와 치즈가 듬뿍 들어가서인지 풍기는 냄새부터가 고소하다.
게다가 은은하게 풍기는 콩소메 향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후룩-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국물이 전신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맛있다.”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먹는 것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호라이즌은 물론 애플민트까지 수프 파스타를 먹는 이안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크, 크흠. 이러다가 코로 들어가도 모르겠군.”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먹도록 해라, 인간.”
“오우!”
이안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푹 끓여서 투명해질 때까지 끓인 양파는 입에 넣는 순간 그대로 녹아 사라질 정도로 부드러웠다.
게다가 은은한 단맛이 감도는 부드러운 풍미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를 정도였다.
우유와 치즈가 듬뿍 들어간 수프는 그것만으로도 근사한 맛을 자아낸다.
거기에 야채와 버섯에서 배어 나온 채소 육수와 베이컨과 콩소메의 감칠맛이 더해진 것이다.
“후우, 정말 대단한데? 우유와 치즈부터, 베이컨과 야채까지. 들어간 재료는 몇 가지 안 되지만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맛을 내고 있어.”
어떻게 같은 재료로 만들었는데 이토록 맛이 다른 것일까.
게다가 국물에 푹 잠겨 있는 파스타 면의 맛도 얕잡아 볼 수 없었다.
케인첼이 즉석에서 뽑아낸 생 파스타는 촉촉하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그것을 듬뿍 말아 올려 한입에 집어넣는 것이다. 우적우적 씹으면 진한 크림수프의 맛이 느껴진다.
“파스타가 걸쭉한 수프랑 정말 잘 어울린다. 국물만 먹는 것도 맛있지만, 역시 이건 파스타 요리였어.”
파스타와 수프, 그리고 건더기가 혼연일체가 되어 수프 파스타라는 하나의 요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듬뿍 넣은 후추와 파슬리 가루가 느끼함을 잡아 주어 끊임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이안이 수프 파스타를 먹는 모습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일까. 어느새 케인첼의 주위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들은 접시 가득히 수프 파스타를 받아 들고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크흑. 정말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군요. 따뜻한 수프에 파스타 면을 넣었을 뿐인데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습니다!”
“파스타 면발이 살아 있어요! 도대체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쫄깃하면서 촉촉하게 만들 수 있는 겁니까?!”
“게다가 약간 들어간 버섯의 맛도 끝내줘. 씹을 때마다 진한 감칠맛과 함께 버섯 본연의 맛이 흘러나오는데 이게 진짜 별미라니까?”
호라이즌은 맛있게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을 배가 고프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케인첼이 물었다.
“미리 방문한다고 언질이라도 주셨으면 채식 요리를 준비해 놓았을 텐데요. 감자라도 좀 튀겨 드릴까요?”
“배가 고픈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솜씨로는 도저히 인간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지.”
호라이즌은 씁쓸한 표정으로 케인첼을 바라보았다.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보겠나, 인간. 나는 거래를 하고 싶다.”
호라이즌은 에이레네의 오른팔이다.
말 그대로 호위부터 식사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으며, 그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엘프가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처음인데.’
케인첼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라이즌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엘 아카드가 자랑하는 비병, 창공 기사단에 조금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이미 들은 것 같더군.”
“과거에 고트프리트를 따르던 수하들이 대거 탈영하고, 합중국 아르곤으로 망명한 것을 말하는 거죠?”
“거기까지가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심각하다고요?”
“그래. 마치 전염병처럼 고트프리트를 따르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벌써 1만 명 이상이 그에게 홀려 사라졌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령을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의 명령이라면 아이까지 바친다더군.”
게다가 고트프리트의 추종자 중에 대귀족까지 몇 명이나 포함되어 있어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프히들리 전하는 괜찮은 겁니까.”
“다행히 펜타그램과 바이마르는 건재하다. 그렇지만 고트프리트의 추종자가 더 늘어난다면 함락도 시간문제겠지.”
‘이러다간 엘 아카드가 반으로 갈라지겠는데.’
케인첼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리 혈족을 만드는 드래곤의 피가 대단해도 동시에 오십 명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한계다.
그런데 설마 1만 명이라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합중국 아르곤뿐 아니라, 엘 아카드까지 브리타니아를 위협하는 적이 될 수도 있었다.
“역시 교차로의 악마가…….”
그러자 호라이즌의 길쭉한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교차로의 악마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인간.”
“……그게 말이죠.”
케인첼은 간단하게 오스만 제국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호라이즌은 짚이는 것이라도 있는지 낮은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악마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면 납득이 가는군. 내가 인간을 만나러 온 이유는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다.”
“저한테 요리를 배운다고요?”
“그래. 이상하게도 내 요리를 먹은 엘프들은 고트프리트의 능력에 당하지 않더군.”
호라이즌은 엘 아카드의 엘프 중에서 요리를 가장 잘하는 남자.
그가 만든 채식 요리는 대부분이 5성급 이상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요리 실력이 좋아도 호라이즌은 인간을 위한 요리를 만들 수 없다.
동물성 식재료를 입에 댈 수 없으니 맛을 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야 아무리 완벽한 레시피가 있어도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올 리 없었다.
케인첼은 빙긋 웃으며 아주 간단하게 그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호라이즌. 그럴 때는 대신 요리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 되잖아요.”
“크, 크흠. 내가 인간 따위에게 고개를 숙일 것 같은가.”
“그러면 아까 말한 대로 거래를 하도록 하죠. 요리를 만들어 주는 대신 미미르의 샘물을 조금 더 받는 것 정도면 어떤가요?”
“……그건 에이레네 님께 말을 해 보도록 하지.”
안 그래도 미미르의 샘물이 떨어져서 곤란해하던 참이었다.
게다가 고트프리트의 혈족 능력이 성장한 이유도 신경 쓰인다.
그것이 정말 교차로 악마의 짓이라면 더 강해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목적지가 정해진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케인첼은 무의 탑을 엘리자베스와 아벨에게 맡긴 후, 엘 아카드로 향했다.
* * *
애플민트는 바람의 중급 정령 실피르를 자유롭게 다룬다. 그 힘 덕분에 일행은 사흘 만에 바이마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는 적어도 이 주는 걸리는 여정인데. 게이트로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더 빠르네요.”
애플민트는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몹시 소심한 성격인 것 같았다.
“……이게 다 케인첼 님 덕분이에요. 그때 만들어 주신 맨드레이크 구이를 먹고 중급 정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맨드레이크 구이는 엘프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지만, 정령과의 인연은 한 번 만들어 두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케인첼은 혹시나 쓸 데가 있을까 싶어 맨드레이크를 있는 대로 챙겨 왔다.
“으윽…….”
“아.”
그때 갑자기 케인첼과 애플민트가 거의 동시에 신음을 토해 냈다.
케인첼은 상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십 개의 적의 때문이었고. 애플민트는 동화된 정령을 통해 느껴지는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고개를 들자, 그리폰에 타고 있는 기사들이 하늘을 선회하며 케인첼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용맹한 동지들이여! 모든 것은 고트프리트 님과 일족의 독립을 위해서!”
“고트프리트 폐하 만세!”
그 선두에 있는 것은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불의 철퇴를 들고 있는 남자였다.
“……저건 오러 블레이드잖아? 소드 마스터라는 소리군.”
케인첼은 엘 아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소드 마스터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미 죽은 발터 카이텔과 아돌프를 제외하면 겨우 3명이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던 소드 마스터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엑스…….”
그는 얼굴 없는 소드 마스터라 불리며, 능력은 물론 본명과 정체까지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남자였다.
그리고 까마귀의 눈을 통해 이제 곧 전투가 벌어질 바이마르 근교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상위 십마이자, 수많은 마족들을 이끌고 있는 악마 대공 시트리.
그녀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그때 만들어 주셨던 허니버터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