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77)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77화(26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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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 빠진 천 옷 사이로 가늘게 뻗은 팔다리가 쭉 뻗어 나와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를 봐도 인간이다.
그런데 그 외모가 심상치 않았다. 연한 코발트 색 머리카락은 물기를 잔뜩 머금어서 촉촉해 보였고.
그 밑에 자리한 얼굴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나이는 스물은커녕 열다섯이나 넘겼을까 싶을 정도로 앳되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녀의 군청색 눈동자에서는 심해처럼 깊고 어두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세다니엘 블랙아니스 맞지?”
그러자 세다니엘은 헤실헤실 웃으면서 새하얀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응. 머메이드 맞아. 아 참, 말을 할 때는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해 줘. 청력을 바쳐서 이걸 얻은 거니까.”
“일종의 의태인 건가.”
“비슷해. 숨은 여전히 아가미로 쉬기 때문에 항상 젖어 있어야 하지만 말이야.”
세다니엘은 물기를 흠뻑 머금고 있는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귀 대신 피막으로 둘러싸인 지느러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
동물 중에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모습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머메이드 또한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세다니엘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묘하게 엘프 여왕 에이레네와 닮아 있었다.
고귀한 태생이라는 것이 단순히 농담은 아닌 모양이다.
무언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잔뜩 있었지만, 케인첼은 우선 완성을 앞둔 요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고기를 오븐에 넣어야 하니까 잠시만 비켜 주겠어?”
“읏흥…….”
세다니엘은 무엇이 그리도 불만인지, 묘한 신음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인간 같지 않은 외모를 이용해 케인첼에게 호감을 사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케인첼에게는 눈앞에 있는 요리가 훨씬 중요했다.
“이걸 오븐 안에서 한 시간 정도 구워 주면 속살은 분홍빛이 나면서 아주 부드럽고, 겉면은 바삭하게 잘 익거든. 게다가 시금치와 잣의 향이 배어들어서 아주 맛있을 거야.”
고기를 오래 구우면 육즙이 전부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퍼석퍼석하면서 질겨진다. 그 미묘한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아주 어렵다.
그것도 지금까지 한 번도 요리해 본 적이 없는 시 서펜트의 고기니 오죽할까.
그렇지만 케인첼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상적인 온도와 시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정말 완벽하게 멋지다니까.’
고기를 오븐에 넣은 후에는 곁들여 먹을 샐러드를 만들 차례였다.
그때, 지금까지 눈을 부라리며 선원들을 쫓아내고 있던 가웨인이 다가왔다.
“오우, 설마 샐러드까지 만드는 거야? 야전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요리를 먹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인데.”
그는 갑자기 나타난 세다니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엘릭서를 먹었을 때 간단하게 상황을 들은 것 같았다.
“맛이 강한 고기에는 역시 상큼한 요거트를 듬뿍 뿌린 오이 샐러드가 최고 아니겠어요.”
그러자 가웨인이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배 위에서는 먹지도 못하는 것을 왜 이렇게 잔뜩 싸 왔나 했더니 여기까지 내다보고 그랬던 거군.”
잘게 자른 오이 위에 요거트와 신선한 민트 잎을 듬뿍 뿌려 준 후, 그 위에 메이플 시럽을 끼얹는다.
그렇게 달콤한 즙이 배어 나오면 상큼함을 더해 줄 레몬을 갈아서 넣어 주는 것이다.
“이걸 마구 섞어 주면 새콤달콤한 오이 샐러드가 완성되죠.”
“잠깐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오븐 안에서 나는 냄새가 진짜 심상치 않잖아? 잣을 곁들인 시금치의 향이 시 서펜트 고기의 존재감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빨리 먹고 싶다는 뜻이다.
세다니엘이 질 수 없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나도 빨리 먹고 싶어. 머메이드는 날고기도 괜찮은데 그냥 먹으면 안 될까?”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호흡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는 머메이드지만 말이야.’
결국 시금치와 견과류를 넣은 시 서펜트 구이가 완성될 때까지.
케인첼은 가웨인과 세다니엘에게 시달려야 했다.
* * *
“드, 드디어!”
가웨인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테이블 위에 오른 요리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이것을 먹기 위해 이 길고 긴 항해를 버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 서펜트 고기는 줄로 묶은 후에 익혀서 그런지 먹음직스러운 격자 모양이 그대로 나 있었다.
서억, 서억…….
겨우 한 조각 잘랐을 뿐인데도 속이 꽉 차 있는 것이 느껴졌다.
연한 갈색의 고기는 보기만 해도 바삭할 것 같았고, 따로 소스를 뿌리지 않았음에도 진한 육향을 뿜어냈다.
분명 오븐에서 절묘하게 구워 낸 덕분이리라.
그 사이로 보이는 선명한 녹색의 시금치와 곁들인 요거트 샐러드는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돌 정도였다.
“으음……. 기다리는 선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먼저 먹도록 하지. 하핫, 꼬우면 그쪽도 소드 마스터 하든가.”
가웨인은 칼질할 여유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인지 썰어 놓은 고기를 그대로 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뒷골목을 전전하는 동급 용병도 하지 않을 천박한 식사법이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아쉽게도 그것을 지적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으, 으아……. 이거, 진짜…….”
쫄깃한 고기를 단숨에 베어 물자, 혀 위로 퍼져 나가는 진한 육즙과 농후한 기름의 맛이 느껴진다.
순식간에 입안이 온통 고기 맛으로 넘쳐흘렀다.
가웨인은 야전에서 몇 번이나 몬스터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누린내가 심하고 역한 맛이 나서 살기 위해 억지로 입에 욱여넣어야 했다.
그런데 케인첼의 손을 거치자 평소 먹는 음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야성적인 요리로 변했다.
잔뜩 들어간 향신료의 희미한 매운맛과 잣에서 배어 나온 기름기가 어우러진 시금치의 맛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동시에 한 달 가까이 끈질기게 괴롭힌 몬스터의 고기를 먹는다는 쾌감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같은 이유로 세다니엘은 한동안 고기에 손을 대지 못했다. 그저 붉어진 눈으로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동족을 죽인 바다의 폭군 서펜트 왕. 그 최후가 고작 이 정도라니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결심을 굳힌 것인지 포크를 움켜쥐었다.
“흥, 이까짓 거 기껏 해야 음식일 뿐이잖아.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라구. ……그럼 잘 먹을게.”
세다니엘은 고기를 입에 집어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뭐, 뭐야. 그 폭군이 이, 이렇게 촉촉하면서 부드러운 고기가 되었단 말이야? 마, 말도 안 돼…….”
아무래도 케인첼의 요리가 썩 마음에 든 모양이다.
어느새 고기를 전부 먹어 치운 가웨인은 이번에는 같이 나온 요거트 샐러드를 노려보았다.
“좋아, 이번에는 이걸 먹어 보실까.”
그리고 듬뿍 뿌린 민트 때문에 상쾌한 향이 나는 오이를 입으로 가져갔다.
은은한 산미를 머금은 단맛이 느껴진다. 그것이 진한 고기의 맛 때문에 느끼했던 입안을 산뜻하게 씻어 주었다.
씹을 때 나는 아삭거리는 소리는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오르게 만든다.
“크흑, 이거만 있으면 아무리 느끼한 고기라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가웨인은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자신의 앞에 가져다 놓고 먹기 시작했다.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선원들이 울상을 지었지만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어차피 고기는 많다. 가장 좋은 부위만 해도 다 먹는 데 며칠은 걸릴 양이다.
‘그럼 과연 시 서펜트에는 어떤 효과가…….’
[6성급 요리 ‘시 서펜트의 특성이 담긴 특제 바베큐’를 먹은 손님이 매우 만족해합니다.] [손님들에게 일시적으로 용오름(龍卷) 상태가 적용됩니다.]‘……용오름이라고?’
마침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아주 적당한 손님이 눈앞에 있었다.
케인첼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가웨인에게 일어난 변화를 지켜보았다.
“오옷, 가, 갑자기 무지하게 수영이 하고 싶어지는데? 지금이라면 헤엄쳐서 브리타니아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가웨인은 갑자기 웃통을 벗더니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우후후, 흐하하하하……!”
그리고 그대로 물을 박차고 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름 그대로 용오름이었다.
‘대충 체력이 무한에 가깝게 상승하고, 움직이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는군.’
아쉽게도 시 서펜트 고기는 가웨인이 바라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뭐, 즐거워 보이니까 저거로 된 거지.’
케인첼은 물살을 가르며 한 시간째 헤엄을 치고 있는 가웨인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다음 날.
에이허브 선장과 마로니에 호의 선원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브리타니아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들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아쉬워했다.
“귀환할 때는 어찌할 생각이오, 고용주. 어차피 식량도 넉넉하게 있으니 기다리겠소.”
“지금은 안전하다고 해도 언제 또 시 서펜트 같은 몬스터가 나타날지 몰라요.”
“괜찮소이다. 어차피 브리타니아를 떠날 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소.”
“제가 안 괜찮아요. 해결해야 할 일을 끝내기 전까지는 귀환하지 않을 생각인데 짐을 달고 있을 수는 없죠.”
짐이라는 단어에 에이허브 선장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매정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에이허브 선장은 바다 위가 아니라면 그저 꼬장꼬장한 늙은이일 뿐이었으니까.
“만약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서신을 띄워 주시오. 삼 주……. 아니, 이 주 안에 데리러 오리다.”
“정말 믿음직스럽군요.”
그렇게 에이허브 선장은 브리타니아로 복귀했다.
결국 신대륙에 남은 것은 케인첼과 가웨인 그리고 세다니엘까지 셋뿐이었다.
가웨인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세다니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레이디 머메이드는 어째서 바다로 돌아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계약은 분명 어제로 완수했을 텐데 말입니다.”
밤새도록 헤엄을 쳐서 그런지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게 변한 모습이었다.
평소의 그였으면 마드모아젤을 연호하며 밤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세다니엘은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덕분에 안전을 위협하는 패왕을 없앨 수 있었어. 전부 당신들 두 사람의 활약 때문이야. 원한다면 엘릭서를 더 줄 수도 있어.”
가웨인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엘릭서를 직접 먹어 봤기에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예비 목숨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다니엘의 말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케인첼이 물었다.
“그런데 엘릭서를 그렇게 마구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야? 음, 눈물이니까 울면 되는 건가?”
“……그, 그걸 어, 어떻게……?!”
세다니엘은 기절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란 얼굴로 케인첼을 바라보았다.
엘릭서가 머메이드의 체액 중 하나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것은 당사자뿐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케인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 절대로 도박하지 마라. 이 정도면 얼굴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써 붙이고 다니는 수준인데.”
엘릭서의 정체가 눈물이라는 것은 미식 스킬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유도 신문을 했어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동안 혼란스러워하던 세다니엘은 하늘이 무너져라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후우……. 맞아. 엘릭서의 정체는 머메이드의 눈물이야. 물론 아무렇게나 운다고 전부 엘릭서가 되는 것은 아냐. 진심으로 슬퍼서 흘리는 눈물만이 절대 재생의 권능을 내려 줘. 친족이나,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한 반려의 죽음 정도는 되어야 해.”
세다니엘은 몇 개나 되는 엘릭서를 가지고 있었다. 케인첼은 그녀가 얼마나 큰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여간 당신들의 활약 덕분에 서펜트 왕은 무사히 없앨 수 있었지. 그렇지만 아직 ‘몬스터 로드’가 남아 있잖아. 분명 제2, 제3의 서펜트 왕이 나타날 거야. 그걸 막기 위해서는 몬스터 로드를 없애야겠지.”
이번에는 케인첼이 놀랄 차례였다.
“……잠깐만. 너 몬스터 로드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거? 저 사람이 어젯밤에 알려 주던걸. 악마 대공의 클라이언트가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케인첼은 휘파람을 불며 딴짓을 하고 있는 가웨인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밤새 수영만 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결국 가웨인이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하다! 내가 무언가에 홀렸나 봐. 어제 시 서펜트 요리를 먹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불끈불끈 하더라고. 으하, 으하하, 으하하하…….”
결국 머메이드 일족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악마 대공이라는 공동의 적이 생긴 셈이다.
세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케인첼의 옆으로 걸어왔다.
“악마 대공과의 싸움에 협력할게. 이래 봬도 반세기 가까이 이곳 근해에서 살아왔어. 웬만한 인간들보다 합중국 아르곤에 대해서 잘 알아.”
케인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다니엘의 마음은 고맙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애초에 엘릭서라는 희대의 영약을 만들어 내는 머메이드지만 직접적인 전투 능력은 전무하다. 그런데 어떻게 악마 대공과의 싸움을 돕겠다는 말인가.
“오딘.”
까악-
이름을 부르자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케인첼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정보라면 이 녀석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어.”
“흐응? 마법 생명체네?”
악마 시트리의 이름을 직접 댈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케인첼은 지금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을 드래곤 로드의 이름을 팔기로 했다.
“지스타드 영지의 수호룡 마그누스 님이 빌려주신 거야.”
“……드래곤과도 알고 지내다니.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런데 정보 말고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더 있다구. 보고 나서 후회하지 마.”
“할 수 있는 일이라니?”
세다니엘은 손짓을 해서 옆에 앉아 있는 가웨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비늘 하나를 떼어 가웨인의 이마에 착 하고 붙였다.
“자, 깜짝 놀라지 말고 잘 보도록 해. 이게 바로 머메이드 일족이 수많은 천적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니까.”
세다니엘이 눈을 감고 무어라 중얼거리자, 가웨인의 몸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