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87)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87화(27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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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결집하는 오크들
햄프셔 영지는 드넓은 영토에 비해 사람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장소였다.
국토의 대부분이 오지인 합중국 아르곤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곳의 영주인 제임스 밴 잭슨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보안관.”
“예, 제임스 님.”
“제7 햄프셔 저수지의 완공이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두 달 후면 끝입니다.”
그러자 제임스는 만족스런 얼굴로 붉게 물든 마정석이 가득 담긴 욕조에 몸을 뉘었다.
그는 화려한 백금발이 어울리는 귀족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눈동자만은 묘한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보안관은 마치 포식자를 마주한 초식 동물처럼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허나 아주 작은 문제가…….”
“말해 보거라. 오늘따라 마정석의 순도가 아주 높아서 기분이 좋구나. 약간의 실책 정도는 봐주도록 하지.”
“……그게 말입니다. 일정에 맞추다 보니 오크 노예의 소모가 너무 큽니다. 탈진해서 죽어 버린 놈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하핫! 그게 무슨 걱정인가. 대체할 놈은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많지 않은가. 하여간 전사의 피나 부족하지 않게 공급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웁…….”
피라는 단어에 보안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능하면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반사적으로 마음껏 숨을 들이마신 것이다.
그러자 제임스가 무엇이 그리도 유쾌한지 낄낄거렸다.
“이제 슬슬 이 냄새에 익숙해지는 것이 어떤가. 그런데 이 몸도 정말 운이 좋단 말이지. 설마 저열한 돼지 놈들의 피가 마정석의 순도를 한계까지 올려 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안 그런가, 보안관.”
뛰어난 마나 연공법이 있다고 해도 마정석에서 얻을 수 있는 오러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해도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제임스는 아주 우연하게 전사의 피를 먹은 마정석에서 엄청난 마나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무려 소드 마스터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오크가 죽었는지 알고 있는 보안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하하! 살아서는 노동력을 제공해 주고, 죽은 후에는 이 몸의 오러가 되어 주니 고마울 뿐이지. 게다가 앞으로 모든 저수지가 완공되면 한 번의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어 죽는 최악의 사태는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크 놈들이 준 식량으로 목숨을 연명해야 했던 굴욕 따위는 사절이다.”
“그런데……. 최근 오크 부족 중 일부가 노예에서 벗어나 독립을 획책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 몸을 사리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제임스는 마정석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마치 대리석으로 된 조각상을 보는 것 같은 떡 벌어진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예가 반항하면 전부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그와 동시에 우당탕탕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당황한 얼굴의 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여, 영주님! 지하실에서 오크 전사 한 명이 탈주를 했습니다……!”
“그래? 마침 뻐근했는데 참으로 잘됐군. 그럼 가볍게 몸이나 풀어 보실까.”
제임스는 벗어 둔 옷을 걸치고 옆에 놓아둔 검집에서 검을 빼어 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온몸이 피로 물든 오크 한 명이 미늘창을 들고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그르륵……. 우리는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는다! 차라리 전사로서 명예롭게 죽을 것이다!”
미늘창을 휘두르자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뿜어져 나왔다. 직선에서 곡선, 곡선에서, 면으로 변한 오러가 채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내, 팔! 내 팔이!”
그 어마어마한 기세 앞에서 병사들의 팔다리가 썩은 나뭇가지처럼 휘날렸다.
겨우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중상을 입은 병사가 넷이었다. 소중한 부하를 잃은 제임스가 혀를 찼다.
“쯧. 내가 오크 전사를 다룰 때는 분명 아끼지 말고 ‘몽환향’을 사용하라고 했을 텐데.”
몽환향은 중독성이 있는 약초를 섞어 만든 향이었다.
그 냄새를 맡게 하면 아무리 사나운 오크 전사라 해도 초식 동물처럼 얌전해진다.
오크들이 스스로 낙인이라고 부르는 현상과 몽환향 덕분에 인간보다 몇 배나 강한 그들을 노예로 부릴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재고가 거의 없어서 그만…….”
“그래?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제임스는 칼을 뽑아 들고 오크를 관리하는 병사의 목을 단숨에 내리쳤다.
“어? 저건 내 몸…….”
그와 동시에 병사의 모가지가 툭 하고 떨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병사는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평범한 사람은 검을 뽑아 드는 모습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쾌검이었다.
제임스는 병사의 피를 듬뿍 머금은 검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아직 배가 고팠다.
그러자 분노한 것은 오크 전사 쪽이었다.
“따르는 부하를 제 손으로 죽이다니! 어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
“흥, 말이 많군. 덤벼라.”
“크롸쉬, 게르마!”
그러자 안 그래도 커다란 오크 전사의 근육이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다.
적은 강하지만 그 또한 힘과 속도라면 자신 있었다. 오크 전사는 공격의 우위를 잡기 위해 빠르게 선공을 취했다.
마른하늘에 천둥이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오크 전사가 양손으로 들고 휘두른 할버트가 제임스의 머리에 작렬했다.
만약 제대로 직격했으면 오러로 보호하고 있다 해도 일격에 몸이 반으로 갈라질 공격이었다.
그렇지만 제임스의 대응이 조금 더 빨랐다.
“……불릿 타임.”
오러 블레이드가 발동하자, 제임스의 몸이 오크 전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 해도 이해가 안 될 정도의 속도였다.
그리고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오크 전사의 몸에는 수십 개의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촤아아악!
그와 동시에 한 명의 몸에서 나왔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피가 뿜어져 나왔다.
제임스는 전신으로 오크 전사의 피를 맞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꺼억……. 잘 먹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햄프셔 영지에는 여전히 수많은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카우보이들이 그들을 죽여 마정석을 채취한다.
부족한 노동력은 오크 노예를 통해 보충하면 된다. 영지 전체가 제임스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햄프셔 영지에는 오크 노예가 거주하고 있는 빈민굴이 수십 개가 존재하고 있다.
케인첼은 우선 오크 셰프들과 함께 외곽에 있는 빈민굴에 잠입했다.
“오, 오크……!”
갑작스럽게 험상 굳은 얼굴의 오크들이 난입하자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지원군이 와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겨우 오크 노예를 지키는 데 많은 병력을 동원하는 영주는 없다.
지이잉-!
케인첼은 병사가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전에 파스타를 이용해 조용하게 만들었다.
“죽이지 않는 겁니까, 그란 그레이.”
“음. 괜히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 자칫 잘못하다간 피 냄새를 맡고 주위의 몬스터가 몰려올 가능성이 있다. 최대한 빠르게 원하는 것만 얻고 떠난다.”
커다란 솥을 들고 뒤따라오던 로이텐은 속으로 그레이의 침착한 지휘에 감탄했다.
와이번을 이용해서 빈민굴 근처까지 들키지 않고 침입한 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침투로를 이용해 적진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최소한도로 필요한 경비만을 제압한다.
마치 햄프셔에 있는 모든 병력의 움직임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불길약탈자 일족은 유독 엄청난 호전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지휘관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뛰어난 지휘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저래서 올 탈무스께서 대전사의 칭호를 내린 것이군요.”
빈민굴에는 거대한 모닥불을 중심으로 짚으로 된 움막이 늘어서 있었다.
큰 비라도 오면 단숨에 무너져 내릴 정도로 허술한 외형이었다.
“그럼 오랜만의 야전 취식인가.”
케인첼의 지시에 따라 오크 셰프들이 배식을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수없이 많이 연습을 해 보아서인지 10분도 되지 않아 모닥불 위에 커다란 솥이 설치되었다.
비프스튜를 끓이기 위해서는 반나절 이상 긴 시간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을 데우는 식으로 해야 했다.
비프스튜를 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하자 채소와 고기가 섞여 만들어 낸 이루 말할 데 없이 진한 향기가 풍긴다.
그것을 맡고 잠들어 있던 오크 노예들이 한 명 두 명 눈을 떴다.
“오크, 배가 고프다…….”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움막에서 나와 천천히 끓고 있는 비프스튜를 향해 다가왔다.
“줄을 서십시오! 요리는 많습니다!”
“……아라따, 오크. 줄 선다.”
로이텐은 나무로 된 접시에 비프스튜를 가득 담아서 내밀었다.
고기와 채소, 그리고 각종 향신료가 어우러져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농후한 냄새가 풍겼다.
그것을 받은 오크 노예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과연 이것으로 저주받은 낙인이 사라질 것인가.
“꿀꺽…….”
로이텐은 마른침을 삼키고 동족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어? 내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젠장, 제임스 자식에게 속았어! 그 엿 같은 향을 맡는 게 아니었어!”
“오, 세상에……. 자네는 로이텐 아닌가? 걸음마 할 때부터 본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나?”
로이텐은 묘한 감동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총명함을 잃고 노예로 전락했던 동족의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꾸준히 비프스튜를 먹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제 새롭게 탄생할 오크 셰프들이 함께할 것이다.
그런데 옆에서 함께 스튜를 나눠 주고 있던 아브힘의 상태가 이상했다. 노예들 사이에서 늙수그레한 오크를 본 후부터 갑자기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다, 당신은……. 족, 족장님 아니십니까……?”
거의 십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러자 늙은 오크가 아브힘을 바라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아브힘……. 너는 잘못하지 않았다……. 나쁜 것은…….”
“……!?”
그는 바로 아브힘의 아버지이자 으스러진 심장 부족의 족장이었다.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오크는 인간보다 훨씬 빨리 성인이 되는 대신, 수명이 2/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미스틱 아츠라도 각성하지 않고서는 타고난 수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늙은 오크는 6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아, 아버지……!”
아브힘은 떨리는 손으로 늙은 오크의 입에 스튜를 떠 넣었다.
그러자 흐리멍덩했던 눈동자가 또렷해지며 거기에 아브힘의 모습이 떠올랐다.
늙은 오크는 뜨거운 팔로 아브힘을 껴안으며 말했다.
“돌아왔구나. 아브힘……. 내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