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90)
요리하는 소드마스터-290화(276/318)
================================
“일족을 위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되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거기 담겨 있는 내용은 단호했다.
조금이라도 오크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면 절대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불길약탈자 부족은 얼마 전까지 악마 대공 안드라스에게 협력하고 있었죠?”
“……부정하지 않겠네.”
그것은 이미 탈무스도 인정한 내용이었다.
탈무스는 으스러진 심장 부족이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몰락한 후,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오크족에게 미래는 없다. 악마에게 협력해서라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소중한 대전사를 다른 대륙으로까지 보냈지만 부상만 입고 돌아왔죠.”
“…….”
“애초에 안드라스는 오크족의 독립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던 겁니다. 그저 자신의 손발이 되어 움직여 줄 꼭두각시가 필요했을 뿐이겠죠. 지금까지 협력의 대가로 받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것이 차가운 비수가 되어 탈무스의 가슴에 꽂혔다.
지금까지 일족을 위해 해 온 모든 일이 그저 헛된 몸부림일 뿐이었다는 뜻이니까.
“그거야 임무에 실패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만약 성공했으면 적어도 레시피 하나쯤은…….”
“악마는 자신의 목숨이라도 걸려 있지 않으면 절대 계약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아요. 악마의 거짓말에 속아 마녀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케인첼은 간단하게 모르가나와 바토리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탈무스는 무언가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럼 자네는 으스러진 심장 부족이 몰락한 것부터가 안드라스의 계책이라는 건가?”
“물론 물증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수법이 비슷해서 말이죠. 특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몰아가는 부분이 말입니다.”
탈무스는 경악한 얼굴로 케인첼을 바라보았다. 안드라스가 줄 수 있는 능력은 몬스터를 부리는 것뿐이다.
몇몇 탑승형 몬스터에 한정되지만, 오크 주술사 또한 가능한 일.
그것만으로는 햄프셔 영지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광기가 설명되지 않는다.
“거기에 대한 해답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더군요. 안드라스의 에이전트가 그란 카락에게 누군가를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분명 중앙 대륙의 도이칠랜드라는 곳에서 고트프리트 왕자를 납치해 오라고 했네. 아쉽게도 실패했지만……. 그런데 그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그때,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거구의 오크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대족장 탈무스시여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제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큰 부상을 입고도 대족장 탈무스의 호위를 맡고 있던 카락이었다.
대전사의 칭호는 이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두 눈에 가득한 투기만은 여전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카락.”
“저자의 정체를 알 것 같습니다. 방금 전의 이야기로 확실해졌습니다. 그란 그레이, 아니 브리타니아의 소드 마스터 케인첼 반 지스타드……!”
카락은 어째 볼 때마다 상처가 쑤셨다며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서, 설마 인간이란 말인가?!”
카락은 쓰게 웃으며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남은 어깨를 어루만졌다.
“제 팔을 이렇게 만든 남자입니다. 비록 적으로 만나긴 했지만, 그 강함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허……. 아들의 숙적이 일족의 영웅이 된 건가……. 이게 도대체 무슨…….”
케인첼은 혼란스러워하는 탈무스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카락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무기조차 들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전장에서 생사결을 하는 건 전사의 의무. 허나 비록 동족의 가면을 썼다고 해도 우리 일족을 구하기 위해 한 업적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마. 그러니 할 말이 있으면 해 봐라. 들어주도록 하지.”
칼부림 정도는 각오하고 있던 케인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에이전트는 악마의 능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말하자면 아바타나 마찬가지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동시에 여러 명이 존재할 수 없죠. 만약 에이전트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면 새로운 계약자를 찾아봐야 됩니다.”
그리고 고트프리트가 에이전트가 된 것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탈무스는 케인첼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순식간에 이해했다.
“설마 안드라스가 오로바스의 능력을 이용해서 아르곤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다 무언가 사고로 전대가 죽자 새롭게 오로바스의 에이전트가 된 고트프리트의 힘이 필요해진 것이 아닐까요.”
탈무스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그때를 기점으로 안드라스가 철저하게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사역마를 대신 보내 명령만을 전하고 사라지곤 했다.
충격을 받은 것은 카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그럼 이 몸이 일족의 목에 채울 개목걸이를 위해 싸웠단 말인가…….”
케인첼은 혼란스러워하는 두 오크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인간이 오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런 모습으로 지내면서 뼈저리게 느껴 봤으니까요. 같이 싸우자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이런 모습으로 있는 것도 전부 그 두 악마를 쓰러트리기 위해서일 뿐이니까요.”
그러자 카락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그럼 지금까지 오크를 위해 한 모든 것이 그저 악마를 쓰러트리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케인첼은 어깨를 으쓱하며 원래 말투로 대답했다.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분명 씹어 먹어도 마음이 풀리지 않을 인간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전혀 밉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한동안 미친 듯이 웃어 대던 카락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탈무스를 바라보았다.
“대족장이시여. 이 인간의 신원은 앞으로 본인이 보장하겠습니다. 만약 허튼짓을 해서 일족에 누를 끼친다면 제 목숨으로 사죄하겠나이다. 비록 동족인 척 속인 것은 괘씸하지만 전부 일족에 이익이 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카락은 케인첼에게 다가와 멱살을 쥐었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여서인지 느껴지는 위압감이 엄청났다. 그럼에도 케인첼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이것이 카락 나름대로 보여 주는 친애의 표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만약 네놈이 한 말이 사실이면 악마 놈에게 한 방 먹여 줘야지 않겠나. 비록 부상은 다 낫지 않았지만 웬만한 전사보다는 나을 거다.”
케인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투와 행동은 거칠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안드라스의 에이전트를 상대로 함께 싸워 준다는 뜻이다.
인간과 오크의 애정 표현이 무안한지 탈무스가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험, 험. 아무래도 서로 구면인 것 같군. 하여간 그레이……. 아니, 케인첼 반 지스타드. 미안하지만 자네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다른 일족에게는 비밀로 해 주었으면 한다만.”
“물론이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탈무스와 카락은 어찌 받아들였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케인첼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면 대화고 뭐고 들고 있는 무기부터 휘두를 오크가 수두룩했다.
그들에게 일일이 사정을 설명하느니 이전처럼 대전사 그레이로 활동하는 편이 낫다.
“게다가 그쪽이 일족을 이끄는 데도 훨씬 편하니까요.”
“그렇지.”
“하여간 그린이라는 이름의 오크족 전사도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자도 인간인가?”
“일단은요.”
이것으로 오크 대족장과 전직(前職) 대전사의 완벽한 협력을 얻게 되었다.
그때, 다음으로 해방시킬 오크 부족이 있는 곳으로 정찰을 나갔던 와이번 라이더가 돌아왔다.
“그란 그레이! 드디어 제임스 밴 잭슨이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해오름 부족 주위에 다수의 병력을 포진하고 있습니다!”
케인첼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까지처럼 몰래 숨어들어 쉽게 오크들을 해방시키던 것은 이제 끝이다. 앞으로는 본격적인 무력 충돌을 해야 한다.
‘제임스를 잡아서 족쳐 보면 안드라스의 에이전트에 대한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지.’
케인첼은 허리에 차고 있던 식칼을 이차원 주머니 안에 넣었다. 대신 듀렌달과 프라가라흐를 장비했다.
드디어 제임스 밴 잭슨과의 전면전이었다.
* * *
케인첼은 오크 사이에 서 있는 가웨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엇이 그리도 불쾌한지 흉흉한 표정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린.”
“부히이이이익!”
의태의 패널티 때문에 음성을 사용한 대화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케인첼에게는 상대의 입술의 움직임을 읽는 독순술이 있었다.
“……아아, 세다니엘 양은 어쩌면 그리도 정숙하면서 아름다울까. 그녀를 위해서라면 악마고 뭐고 다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래도 한동안 머메이드들과 같이 다니더니 그녀들에게 푹 빠진 모양이다.
천성이 바람둥이다.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독신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케인첼은 광장에 모인 오크 전사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부터 소드 마스터로 알려져 있는 제임스 밴 잭슨의 사병들과 전면전을 치러야 한다.
작전은 간단했다. 케인첼과 가웨인, 그리고 카락 등의 정예가 적의 발을 묶고 있는 사이.
와이번을 탄 기동 타격대가 적진에 침투 후, 가지고 간 까망베르 치즈를 나눠 준다.
스튜와 달리 식어도 괜찮고 무게도 가볍다. 순식간에 배식을 끝낼 수 있으리라.
양측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 그런데 오크 전사들의 전의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그란 카락! 그란 그레이! 두 대전사가 함께한다! 우리들은 무적이다!”
“인간 따위는 내 도끼로 전부 다진 고기로 만들어 주마!”
“크롸쉬!”
그러자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게르마! 크롸쉬, 게르마!”
결국 보다 못한 케인첼이 모여 있는 오크 전사들의 앞에 섰다.
“이렇게 모여 줘서 고맙다, 용맹한 전사들이여. 허나 이번 작전에 필요한 병력은 서른이다. 기동력이 생명이라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니 양해해 주길 바란다.”
그러자 전사들이 모여 있는 오크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젠장 너무 많잖아!”
“서른이 아니라 오백은 되겠는데?”
“젠장, 일단 내가 먼저 간다!”
“이쪽도 질 수 없지……!”
대전사와 같이 전투에 나갈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영광된 일이었다.
게다가 무려 동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투다.
불길약탈자 출신은 물론, 다른 부족의 전사까지 모여 엄청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케인첼은 모여 있는 전사 중에서 숙달된 기수를 선별해야 했다.
“방식은 간단하다. 비병은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 정도쯤은 간단합니다. 저는 와이번 위에서 낮잠을 자도 될 정도로 능숙합니다.”
“그래? 그럼 마음 놓고 가도 되겠군.”
케인첼은 와이번 위에 올라타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라이더를 향해 몇 가닥의 파스타를 쏘았다.
오러로 이루어진 가느다란 면이 덮치자 와이번 라이더의 자세가 단숨에 흐트러졌다.
“끄에에에에엑!”
“미안하지만 불합격이다. 비병은 궁병의 1순위 공격 대상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계속해서 위치를 바꿔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다음!”
실처럼 가느다란 오러를 쏴서, 수십 미터 상공을 선회하는 와이번 라이더의 몸을 맞췄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정교한 테크닉이었다.
옆에서 기동 타격대 선발을 지켜보고 있던 카락이 중얼거렸다.
“쯧, 이 몸도 저거에 당했다니까. 다시 봐도 정말 무섭군.”
그 후로도 선발은 계속 진행되었다. 숙련된 비병은 빠른 속도로 날면서도 장애물이 나타나면 즉시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케인첼은 파스타 면을 이용해 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상황을 만들어 냈다.
“날아라……!”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벽 앞에서도 아브힘은 침착하게 고삐를 당겼다. 그러자 와이번이 그대로 몸을 세워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마스터 샤먼 로이텐. 완벽에 가까운 습보(襲步)군.”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깔끔하게 상승을 할 수 있는 거지?”
로이텐을 제외하고도 다섯 명의 오크 셰프들이 계속해서 테스트에 통과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브힘의 차례만을 남겨 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무언가 이상했다.
아브힘은 흥분으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케인첼에게 다가왔다.
“셰, 셰프……. 이게 도대체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