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303)
요리하는 소드마스터-303화(289/318)
================================
21. 정사연합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왕적삼은 케인첼을 마을 뒤에 있는 작은 동굴로 데리고 갔다.
그곳의 입구에는 말라비틀어진 대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달콤한 꽃향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배가 부르자 잠이 오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던 마이아가 중얼거렸다.
“저건 고죽이화진(固竹梨花陣)이네. 어째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도사였구나.”
“……고죽이화진이 뭔가요?”
“아, 중앙 대륙에서는 조금 생소한 개념인가? 기문진의 일종인데. 대나무와 배꽃을 산발적으로 배치해서 무언가를 은폐할 때 사용하는 진법이야. 간단하게 말하자면 환영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돼.”
“환영 마법이라…….”
그러자 앞장서 가던 왕적삼의 움직임이 갑자기 정지했다.
아무래도 적잖게 놀란 모양이다.
“하여간 웬만한 고수는 집중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잘 숨겨 놨는데? 아마도 이걸 설치한 도사는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술법사일 거야.”
“마, 맞습니다, 어르신. 저건 제가 설치해 둔 기문진입니다. 크흑……, 은둔술에는 자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간파당할 줄이야…….”
“흐흐흐, 요즘 상단주 대리를 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알아 둬.”
“…….”
아무래도 끝까지 그 설정으로 밀어붙이려는 것 같았다.
동굴 안에는 커다란 천으로 싸여 있는 짐 보따리가 숨겨져 있었다.
왕적삼이 천을 걷어 올리자 작은 석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부적이 잔뜩 붙어 있었다.
이번에도 마이아가 왕적삼 대신 설명을 해 주었다.
“대충 저기 위에 올라가면 선술의 일종인 축지법(縮地法)을 쓸 수 있게 될 거야. 중앙 대륙식으로 말하자면 설치형 게이트라고 할 수 있지. 다만 아스트랄 차원을 이용해서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를 왜곡시켜서…….”
이래서는 도저히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케인첼은 한숨을 내쉬며 선술과 마법, 그리고 기문둔갑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마이아를 제지했다.
“일단 먼저 왕대인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어 보도록 하죠.”
그러자 왕적삼이 얼굴을 붉히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하하. 대인이라니, 부끄럽습니다. 하여간 알겠습니다. 조금 늦어진 것 같지만 전부 털어놓겠습니다.”
황녀 달기가 궁에 들어온 것은 대략 오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처음 봤을 때부터 참으로 단아한 외모의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후궁으로 들이셨지요.”
그렇지만 황궁에는 달기보다 훨씬 아름다운 여인이 산처럼 많았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달기는 그저 수많은 후궁 중에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후궁이 된 달기는 그 후로 서서히 폐하의 이상형에 가깝게 변해 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폐하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지요. 결국 황후의 자리까지 차지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어질고 매일같이 백성을 생각하던 황제가 갑자기 포악하게 변한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부하들을 잔혹하게 죽였습니다. 그것도 달군 쇠로 지져 죽이는 포락지형으로 말입니다…….”
왕적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 충성스런 부하들을 전부 죽인 폐하는 세금을 세 배로 올리고,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황후를 위해 보석으로 된 성을 세 채나 지어 주었지요.”
그렇지만 달기는 황제를 손에 넣은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녀는 중원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스스로 황제 폐하의 수양딸로 들어간 겁니다. 아내이자, 딸이라니……. 그게 도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달기에게 푹 빠져서 간이라도 빼 줄 것 같았던 황제는 달기의 패륜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정식으로 계승권을 손에 넣은 달기는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황태자에게까지 손을 뻗었다.
“크흑……. 그 명석했던 황태자 전하께서는 완전히 폐인이 되어 매일 식음을 전폐하고 달기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습니다……. 아마 죽이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아 있긴 한 모양입니다만…….”
그 와중에 달기에게 정이 다 빨린 황제는 마른 고목처럼 변했다.
“이제 그녀의 맨얼굴을 보면 평생 면벽 수행을 한 승려라 해도 맨발로 뛰쳐나올 정돕니다. 그건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수도 낙양은 달기의 것이 되어 있었다.
관군 또한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중원 대륙 전체가 달기의 손에 들어가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역시 아까 전에 본 것과 똑같은 일방적인 학살이 동대륙 전체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아스모데우스의 목적.
그것은 중원 대륙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을 죽여 그 영혼으로 새로운 마계의 문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 여파는 중앙 대륙은 물론, 신대륙에까지 미칠 것이다.
그런데 왕적삼의 이야기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어째서 왕 대인은 황녀 달기에 대해 그토록 잘 알고 계신 거죠? 마치 바로 앞에서 보기라도 하신 것처럼 말이에요.”
“그건 말입니다. 제가 금의위 정보부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
왕적삼은 원래 곤륜산에서 신선이 되기 위해 수행을 쌓던 도사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 오욕칠정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해 하산해서 금의위에 들어갔다고 한다.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술법은 기척을 숨기는 것과 한 걸음에 백 리를 갈 수 있다는 축지법입니다. 그것을 이용해 중원을 돌아다니며 부정을 저지르는 이들의 정보를 모아 황실에 전달하는 일을 했지요.”
명나라는 브리타니아를 기준으로 보면 동쪽에 있는 대제국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중원(中原)이라 부르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직접 사냥을 하지 않고, 위치만 알려 준다고 해서 이빨 빠진 엽견이라 부르며 조롱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보람찬 일이었습니다.”
엽견이라는 말에 케인첼의 눈이 커졌다.
분야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버지 페인 지스타드가 하던 것과 거의 유사한 일이었다.
그 사실에 대해 말하자 왕적삼의 눈매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귀인의 춘부장께서도 엽견이셨던 겁니까?”
“예. 중앙 대륙에서는 하운드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같은 의미입니다.”
“후우……. 스승님께서 어째서 저에게 이 임무를 맡겼는지 이제야 알겠군요.”
왕적삼의 스승은 곤륜파의 장문인으로 태을선사라는 별호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태을선사라.”
“중원에는 강호무림이라 불리는 사회가 있습니다. 곤륜파 또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원래 무림과 황궁은 암묵적으로 불가침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문파의 장문인들은 달기를 방치했다가는 낙양뿐 아니라 중원 전체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태을선사를 중심으로 곤륜산에 반천련이라는 집단이 만들어졌지요.”
그것은 문자 그대로 하늘과도 같은 황제에게 거역한다는 뜻이었다.
보통 정파라 불리는 이들의 연합은 무림맹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째서 반천련이라 이름 붙인 것일까.
그것에 대해 묻자 왕적삼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그건 말입니다. 정파뿐 아니라, 사파의 고수들까지 힘을 합쳤기 때문입니다! 달기가 황녀가 된 날 밤. 중원 하늘 전체가 붉게 물들었습니다. 천기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수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게다가 곤륜파는 정파와 사파의 전쟁에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저 신선이 되기 위해 자신을 갈고닦을 뿐. 소속만 무림맹일 뿐 중립에 가까운 위치였다.
그런 곤륜파가 중심이 되었기에 반천련에 정파는 물론 사파의 고수까지 참가하게 된 것이다.
“결국 석 달 전에 무림 백 대 고수 중 절반 이상이 반천의 깃발 아래 결집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들 전부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초절정 고수다.
케인첼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천 년 가까이 전쟁을 벌여 왔던 정파와 사파. 그들이 중원 대륙을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그것은 칠죄종이라는 공통의 적과 맞서 싸운 영웅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다.
“당연히 낙양 정도는 순식간에 탈환하고 달기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천련의 결집이 끝난 직후, 곤륜산에 달기가 나타났습니다.”
곤륜은 수많은 영물이 수호하고 있는 신성한 장소. 말 그대로 천연의 결계가 쳐져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달기는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곤륜파에 찾아왔다.
“……순식간이었습니다. 반천련 소속 고수 중에서 절반 이상이 달기에게 반해 그의 충실한 수하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은 고수들도 달기를 잊지 못하고 폐인이 되어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왕적삼은 또다시 케인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마에 피가 맺힐 정도로 몇 번이고 땅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스승님께서 오늘 서쪽에서 귀인이 찾아올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저는 바로 당신과 만나기 위해 이 장소에 오게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반천련의 고수들을 위해 방금 만들었던 요리를 다시 한 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강호무림……. 아니, 중원 무림을 구해 주십시오……!”
케인첼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반천련은 천 년 동안 싸워 온 정파와 사파가 손을 잡아 만든 연합이다.
그 세력은 군부를 장악한 달기와도 맞설 수 있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이미 풀코스 요리가 차려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것을 먹으려는 순간, 식탁의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자꾸 그렇게 무릎을 꿇으시니까 부담스럽잖아요. 알겠습니다. 떨어진 음식을 주워서 플레이팅을 새로 하는 정도겠지만, 협력하도록 하죠.”
“프, 플레이팅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아, 그러니까 요리를 해 주신다는 뜻이지요? 하핫, 역시 귀인은 통이 크십니다요.”
왕적삼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남자였다. 그가 어째서 곤륜에서 버티지 못하고 하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케인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를 원하는 손님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셰프의 가장 큰 기쁨 아니겠는가.
“그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무, 무엇입니까? 원하신다면 밤 시중이라도…….”
“……그런 것은 필요 없고요. 엽견으로 활동하시면서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셨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그러자 왕적삼은 묘하게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물론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 드리겠습니다. 밤새도 가능합니다.”
중원 대륙에 살고 있는 수백만 명 중에서 왕적삼이 상아를 만났을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그렇지만 금의위의 정보망을 이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
‘게다가 천둥도끼를 녹여 새로운 신기를 만들 장인도 찾아야 하고 말이지.’
케인첼은 대인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푸근한 인상의 사내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어쩌면 왕적삼과의 만남 또한 기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곤륜산은 분명 여기서 엄청 멀리 있지 않았던가요.”
“음, 초특급 파발마(擺撥馬)를 타고 가도 족히 석 달은 걸릴 겁니다. 거의 대륙의 끝과 끝이니까요.”
“…….”
“그렇지만 걱정 마십시오. 그래서 이게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왕적삼은 선술의 일종인 축지법(縮地法)을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기문진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 * *
“우선 축지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먼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걸 알아야 왜곡을 의식하면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거든요.”
그런 말을 하며 왕적삼은 품속에서 작은 한지를 한 장 꺼냈다.
그리고 붓을 꺼내 양 끝에 점을 찍었다.
“종이의 한 점에서 다른 점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케인첼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그러자 두 개의 점이 하나로 겹쳐졌다.
“맞습니다. 그게 공간 이동의 원리입니다. 점에서 점으로 통하는 직통 회선을 뚫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게 가능한 도사는 스승님 정돕니다. 제가 하는 축지법은…….”
왕적삼은 종이를 몇 번 포개서 접었다.
그러자 두 개의 점이 몇 겹의 종이에 가로막힌 형상이 되었다.
“축지법이 발동되면 이것과 똑같이 눈앞에 있는 공간이 접힙니다. 하지만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종이를 뚫고 나가듯이 왜곡된 현실을 꿰뚫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많은 내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종이 막은 열 겹도 되지 않지만, 왜곡의 벽은 훨씬 많습니다. 제가 한 번에 접을 수 있는 공간이 100리니 적어도 천 번은 해야겠지요.”
그렇게 10분가량 축지의 벽을 뚫고 나가는 설명이 이어졌다.
기본적인 요령은 부스터로 양쪽 다리의 근육을 강화해서 이동 속도를 높이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강화하는 것이 왜곡을 찢는 힘일 뿐이다.
“그럼 우선 시험 삼아 한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빙백신장까지 쓸 줄 아시니 금방 익히실 수 있을 겁니다.”
케인첼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축지의 진이 발동했다.
지이이잉-!
망막에 비치는 공간마저 왜곡되어 마치 뜨거운 사막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증기에 의해 전혀 다른 곳에 존재하는 물체가 비치는 신기루.
그것과 똑같이 100리 앞의 공간이 케인첼의 눈앞에 떠오른 것이다.
“우선 한 걸음!”
쿠웅-!
왕적삼이 발을 대지에서 떼는 순간, 그의 모습이 케인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와, 저게 축지법이구나!’
말 그대로 놀라울 뿐이었다.
케인첼은 다리의 근육이 아니라, 공간 자체에 오러를 담는다는 기분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천천히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