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314)
요리하는 소드마스터-314화(3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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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달을 그리는 마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구미호를 죽이는 것이 옳았다.
물론 색욕의 저주에 대항할 수 있는 마파두부 통조림은 넉넉하게 챙겨 오기는 했다. 그렇지만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럼에도 케인첼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미 브리타니아를 위해 칼리오페를 희생시켰잖아. 그런데 여기서 또 같은 일을 하라는 거야?’
그녀는 지스타드 영지에 있는 ‘문’을 봉인하기 위해 천 년 동안 잠들어 있어야 했다.
케인첼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잠에서 깨어난 직후에 칼리오페가 좋아한 요리를 해 준다고 약속하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진심으로 기뻐하던 그녀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했다.
‘게다가…….’
상아는 적운이 자신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적운은 해적에게 납치되어 바다 위에서 쓸쓸하게 죽어 갔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남겨진 적운의 마음과 조우했던 케인첼뿐.
‘……그러니까 적어도 넘겨받은 스승님의 마음만은 전해야 해.’
“흐응, 슬슬 마음을 굳힌 모양이구나.”
죽음을 각오한 달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아주 날카로워 보이는 칼날을 지닌 작은 단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치 식칼처럼 생겼다.
중부 대륙에서는 저런 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건가?
“크, 크흠!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일 생각인가 보구나. 기왕이면 허리에 차고 있는 커다란 검으로 일도양단해 주면 좋으련만. 뭐 그런 소리까지 해 놓고 자비를 구하는 것도 우스운가.”
달기는 여우가 본래 가지고 태어난 수명보다 몇 배는 더 살아왔다.
그렇지만 죽음은 여전히 두려웠다. 케인첼을 조롱하고 도발한 것 또한 그런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
그런데 이상하다. 무언가 옮기고 설치하는 소리만 들릴 뿐 좀처럼 죽이러 오지 않는다.
달기는 결국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질끈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녀의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어 있었다.
“……조리대라고? 인간……!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이냐! 지금 짐을 죽이지 않으면 곤란한 것은 그쪽일 텐데!”
순식간에 요리할 준비를 마친 케인첼은 구미호를 향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브리타니아에는 말이지. 최후의 만찬이라는 풍습이 있어. 죽음을 앞둔 이에게 평소 가장 즐기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거야.”
“거부권은?”
“할 수 있으면 해 보던가. 아 참, 저기 천장 위에 숨어 있는 금의위한테 물러가라고 해라. 덤벼 봐야 그쪽 피해만 커질 거야.”
달기는 이를 갈며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그렇지만 그녀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통하지 않는 이상 반항은 무의미하다.
결국 황궁에서 가장 고귀한 방 안에 간이 주방이 만들어졌다.
“흥, 설마 짐이 곧 목숨을 빼앗을 상대가 만든 요리를 먹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그렇다면 아주 큰 오판이다!”
“뭐, 먹기 싫으면 말고. 일단 조금만 기다려 주라. 대충 10분이면 완성이거든.”
“……!?”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달기의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 있던 여우 귀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녀가 평소에 먹는 것은 특급 셰프가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뿐.
그런데 겨우 10분 만에 완성되는 요리가 있다니.
‘역시 입으로는 싫다 해도 위장은 솔직하다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
케인첼은 먼저 제면대 위에 밀가루를 수북하게 쌓았다. 냄새가 구수한 것이 아주 질이 좋아 보인다.
“반죽? 설마 국수라도 만드는 것이냐? 흥, 짐에게 그런 저급한 음식을 먹이려고 하다니. 잠시나마 기대한 것이 어리석었구나.”
“기대를 하긴 했네.”
“……끄윽!”
역시나 원래 여우였기 때문인지 사고방식 자체가 단순하다. 저러니 아스모데우스에게 속아서 저주를 퍼트리는 매개체가 된 것이겠지.
적운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은 간수와 소금만으로 반죽해서 만드는 천하제일면이다. 그렇지만 지금 케인첼은 거기에 계란을 추가로 넣었다.
그러자 반죽의 색깔이 연한 노란색으로 변하며 살짝 비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삶기 시작하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게 변한단 말이지.’
달기는 관심이 없는 척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실눈을 뜨고 국수를 만들고 있는 케인첼의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쫑긋 서 있는 귀가 그 증거다.
‘계란면은 반죽하자마자 바로 생면으로 먹어야 맛있지.’
그래야만 꼬들거리면서 담백한 맛이 제대로 느껴진다. 괜히 10분 만에 요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다.
케인첼은 물을 끓이며 국수에 넣어 줄 부가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중화팬에 기름을 두르고, 플람베의 불꽃을 이용해 화력을 최대한 끌어 올린다.
“기름에서 연기가 살짝 피어오르면 파, 마늘, 그리고 생강을 넣고 볶아 주는 거야. 여기서 향이 강한 생강을 너무 많이 넣으면 전체적인 균형이 깨지니까 조심해야 해.”
“흥, 그딴 요리에 관심 없느니라.”
“그러던가.”
알싸하면서 향긋한 냄새가 강해지기 시작하면 간장을 넣고 살짝 졸이듯이 다시 볶아 준다.
적운은 항상 기름, 파, 마늘, 생강, 간장이 들어간 요리가 맛이 없을 수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거기에 새우와 닭가슴살을 넣고 훈제하듯 강한 불에 볶아 준다. 그러면 향신료의 향이 배어들게 되어 더욱 맛이 좋아진다.
본격적으로 고기가 익어 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방 안에 그 냄새가 퍼져 나갔다.
그러자 달기의 몸에서 귀에 이어 꼬리까지 튀어나왔다.
“……? 이, 이 감정은 도대체…….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한 무언가가 뜨거워지는 것 같구나. 게다가 묘하게 그리우면서 행복한 기분이…….”
어째서인지 달기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그렇지만 케인첼은 요리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부터가 국수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으니까.
신선한 당근과 청경채를 넣고 볶으며 동시에 끓는 물에 계란면을 넣어 준다.
어찌나 반죽이 잘 되었는지 보기만 해도 탄력이 느껴졌다. 끓는 물에서 1분 30초 정도 삶으면 계란면 특유의 탄력과 맛이 제대로 느껴지게 된다.
“아 참, 간수를 넣고 만든 면은 잘 삶아 줘도 쓴 맛이 남거든. 그래서 찬물에 헹궈 준 다음에 털어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해 줘야 해.”
“…….”
“자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한 재료들을 섞어서 하나로 만들 시간이야.”
케인첼은 고소하면서 알싸한 냄새를 풍기는 고기 위에 달걀을 두 개 깨서 넣어 주었다. 그리고 열이 닿기 전에 냄비를 돌리며 프라가라흐로 잘 휘저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마치 스크램블 에그를 만드는 것처럼 몽글거리는 식감이 살아 있는 채로 익게 된다.
반죽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총 9분 30초. 이제 두 재료를 하나로 만들 시간이었다.
먼저 다른 재료 위에 꼬들꼬들한 계란면을 넣고 볶아 준다.
치이익-!
거기에 굴을 발효시켜 만든 소스를 넣어 주자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고기가 다 익으면 숙주나물을 수북하게 올린 후, 불을 끄고 남은 열기를 이용해 익혀 주면 된다.
이제 완성까지 남은 시간은 약 30초.
케인첼은 완전히 붉어진 눈시울을 한 채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구미호를 바라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그리운 마음이 들지? 그건 말이야. 이 요리가 스승님께서 배가 고픈 딸을 위해 항상 만들어 주셨던 요리라서 그런 거야.”
“……!?”
“상아가 좋아하는 재료와 면을 볶아 만들었을 뿐이라,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어. 그렇기에 이건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요리라고 할 수 있지. 뭐, 억지로 이름을 붙이자면 상아면이라고 해야 하려나.”
“……흑, 흐윽. 으아아아아앙!”
결국 참지 못하고 달기의 몸이 무너지듯 쓰러져 내렸다. 케인첼은 상아가 살아 있다고 확신했다.
“아 참,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적운 스승님은 도망친 것이 아니야. 독립해서 딸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불행하게도 해적에게 납치되었을 뿐이야.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으려고 했지. 다시 한 번 딸을 만나고 싶은 일념하에 말이야.”
“……아, 아아, 아아아……!”
어째서인지 구미호의 목소리가 두 개로 갈라졌다. 하나는 달기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조금 더 가녀리게 들렸다.
케인첼은 잠시 말을 멈추고, 품 안에 소중하게 간직해 온 머리 장식을 꺼내 달기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렇지만 결국 해적의 손에 잔인하게 살해되고 말았어. 그리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이걸 손에 꼭 쥐고 있었다고 해.”
“……끄윽. 너, 아니, 다, 당신은 그걸 어,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것이냐, 인가요.”
이상한 말투였다. 아마도 달기와 상아의 의식이 뒤엉켜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
“내가 만난 것은 죽어서 원령이 된 스승님의 영혼이었어. 어쩌다 보니 면을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었지. 그렇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
달기는 케인첼이 내민 머리 장식을 바라보며 어깨를 떨었다.
그녀의 몸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보석에 비하면 돌멩이만도 못 한 물건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손에 쥔 순간 전신을 소용돌이치던 감정이 결정이 되어 눈을 통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아, 아, 아빠, 아빠……. 으, 으으, 으아아아아앙……!”
케인첼은 갓 만들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볶음면을 작은 접시에 옮겨 담았다.
“자, 적운 스승님이 전수해 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제 볶음면이야. 식기 전에 먹으라고. 아, 이런 저급한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던가?”
달기, 아니 상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먹을게요. ……제발 먹게 해 주세요. 아까 전에 한 말은 제가 한 것이 아니에요.”
“……혹시 상아?”
“예……. 제가 바로 상아예요.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의식의 표면으로 나오고 싶었는데……. 달기가 내보내 주지 않았어요.”
적운에게서 케인첼에게로 전해진 마음.
그것을 앞에 두고서야 겨우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상아는 훌쩍거리며 케인첼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멋있게 생긴 남자가 아빠의 제자라니…….”
“……잠깐만. 감동할 포인트가 조금 어긋나 있잖아?!”
언제 또 달기의 의식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케인첼은 상아의 손에 젓가락을 쥐어 주었다.
“하여간 이건 요리한 직후가 제일 맛있어. 적운 스승님이 직접 만든 국수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남기지 말고 먹어 주었으면 싶은데.”
“……안 그래도 엄청 먹고 싶었어요. 잘 먹겠습니다.”
상아는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활짝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 * *
선명한 주황색의 당근과 녹색의 청경채. 거기에 연한 갈색의 면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적운이 만들어 준 상아면 그 자체였다.
“……일이 끝나면 아빠는 항상 이걸 만들어 주셨어요. 그동안 어찌나 먹고 싶었는지……. 하아……. 마치 아빠가 살아서 돌아 온 것 같아요…….”
상아는 먹기 좋게 손질된 새우를 베어 물었다. 탱글거리는 식감과 함께 여러 소스가 어우러진 속살의 맛이 느껴졌다.
“아아, 너무 맛있다…….”
그다음으로는 숙주나물이다. 숨이 죽지 않을 정도로 절묘하게 익혀서 아삭한 맛이 살아 있다.
소스와 각종 재료의 육수를 한껏 빨아들인 면은 또 어떤가.
약간 퍽퍽하지만 담백한 닭가슴살과 청경채의 알싸함. 거기에 굴로 만든 소스의 감칠맛까지.
상아의 입속에서 한 그릇의 요리에 담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맛의 향연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접시에 가득 담겨 있던 볶음면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럼 거의 다 먹은 것 같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 조금 미안하지만 그 국수는 아직 완벽하게 완성된 것이 아니야.”
“네? 이렇게 맛있는데도요?”
“음……, 거기에 담긴 스승님의 마음을 전해야 돼. 사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그것을 위해서거든.”
“……정말 감사해요. 이런 식으로 아빠와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눈을 감으면 바로 앞에 아빠가 있는 것 같았다. 상아는 여우 귀를 세운 채 케인첼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스승님은……. 그러니까 네 아빠는 천계로 올라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 마디를 남기셨어.”
상아는 자신도 모르게 왼손에 쥐고 있던 머리 장식을 어루만졌다.
마치 아빠의 손처럼 투박하지만 묘하게 따뜻하다.
케인첼은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적운은 딸에게 반드시 돈을 잔뜩 벌어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그 미련이 남아 원령이 되어 케인첼과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랑한다.”
적운은 병으로 죽은 아내의 몫까지 얹어도 될 정도로 상아를 사랑했다.
“……행복해라.”
해적의 손에 잡혀 언제 죽을지 모를 상황. 그 순간에도 적운은 딸의 행복을 빌었다.
“아빠…….”
지금 이 순간 적운의 마음은 확실하게 케인첼을 통해 상아에게 전해졌다.
[8성급 요리 ‘달을 그리는 마음이 담긴 상아면’이 완성되었습니다.]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