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ner Music Genius RAW novel - Chapter 174
EP 21 – 성이름 (6)
“누구……?”
-오빠?
인터폰을 보니, 집을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유아라였다.
다소 뜬금없는 유아라의 등장에 눈을 깜빡이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어, 아라.”
“아라가? 지금 시간에? 무슨 일이래?”
“나도 모르지.”
혹시나 해서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카톡을 확인해 봤지만, 유아라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연락도 없이 찾아오다니.
지금까지 없던 일인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평소와 다른 행동에 걱정이 돼서 일단 문부터 열어 주었다.
그러자 유아라는 안심이 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었고. 그 모습에 나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지금 시간에 무슨 일이야, 연락도 없이?”
“연락? 아, 맞아. 핸드폰을 놓고 왔구나.”
“어디에?”
“숙소에다가.”
숙소에 핸드폰을 놓고 왔다는 이야기나,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걸 보면 무슨 일은 없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인데?”
뻔뻔하게 신발을 벗으며 집으로 들어오려는 유아라를 향해 다시 묻는데, 유아라가 갑자기 우두커니 멈췄다.
얘가 왜 이러지?
이상한 유아라의 행동에 몸을 돌리니, 거기엔 성이름이 있었다. 커다란 셔츠라는 다소 편한 복장을 입고 있는 성이름의 모습에 유아라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언니 복장이 너무 편해 보이네요?”
“내일 스케줄이 없거든.”
노골적으로 자고 간다는 이야기를 한 건 아니지만, 유아라가 저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빡통은 아니기에 유아라는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사생활로 이러쿵저러쿵하기는 싫은데, 조심은 좀 하는 게 어때?”
“응?”
“아니, 뭐 여러모로 문제가 있으니까.”
말을 하기 껄끄러운지 머리를 꼬는 유아라의 모습에, 성이름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 올리면서 말했다.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뭐, 일단 믿어 볼게요.”
“그것보다 무슨 일인데?”
이러다가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나올 거 같아서, 서둘러 화제를 바꾼다.
그러자 유아라는 한숨을 내뱉더니 소파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우리 곧 컴백하는 거 알지?”
“내가 준 노래를 타이틀로?”
“응, 원래는 싱글로 컴백하려고 했는데, 반응이 괜찮아서 미니 앨범으로 내기로 했거든.”
그런 자세한 이야기까진 모르지만, 활동 시작이 좀 늦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뭐, 애초에 아이돌이란 게 곡만 받았다고 바로 활동을 시작할 정도로 가벼운 게 아니니까.
노래에 맞는 컨셉도 정해야 하는 데다 안무도 짜야 하고, 의상도 따로 구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늦어질 수밖에.
같은 의미로 쥬시 업의 컴백도 조금 늦어졌다.
참고로 이건 내게 있어서 굉장히 잘된 일인데, 성이름의 사촌 동생들이 소속된 아이돌 그룹의 활동이 아직 시작을 안 했기 때문이다.
어라, 잠깐.
이러다가 삼파전 일어나는 거 아냐?
그러면 내가 만든 두 곡과 ONE에서 준비한 아이돌이 싸우는 건가?
이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아라가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그래서 컨셉을 정하는데 정수정이 자꾸 폭주를 해서 말이야.”
“무슨 폭주?”
“나보고 성녀 컨셉 한 번만 하자고 하잖아! 지는 신도 컨셉 잡겠다고!”
“……?”
유아라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아서 눈을 깜빡인다.
갑자기 왜 성녀 컨셉?
이번에 내가 뉴 퀸즈, 정확히는 유아라한테 준 노래는 고음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사랑’ 노래다.
노래의 난이도가 굉장히 높고, 유아라로는 절대로 소화가 불가능해서 준 거지. 이번 쥬시 업의 노래처럼 닥치고 좋은 노래를 만들었다거나 해서 준 건 아니다.
뭐, 그렇다고 안 좋은 노래라는 건 아니고.
기본적으로 좋은 노래는 맞지만.
어쨌든, 내가 유아라한테 준 노래는 어디까지나 사랑 노래인데, 왜 성녀가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얘네도 다른 회사들처럼 뭔 이상한 컨셉 잡기로 결정했나?
“내가 준 곡은 사랑 노래잖아?”
“맞아. 그러니까 아가페적인 사랑을 보여 주자면서 말이야.”
“그것도, 사랑이 맞긴 하지.”
사랑이란 게 무조건 남녀 간의 사랑을 의미하진 않으니까.
“그래서 도망쳐 나왔어.”
“그렇게 숙소에서 막 나와도 괜찮아? 그것도 핸드폰도 없이?”
“걱정 마. 놓고 온 건 아이돌용 핸드폰. 내 개인용 핸드폰은 챙겨 왔으니까 이걸로 연락하면 돼.”
그리 말하며 주머니에서 아이폰 최신형을 꺼내는 유아라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이가 없어서 유아라한테 물었다.
“너, 개인용 핸드폰도 있었어?”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이번 기회에 장만했지.”
“나 몰랐는데?”
내 말에 유아라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핸드폰을 까닥이면서 말했다.
“내 사생활용 핸드폰, 알고 싶어?”
“음, 그다지.”
“그것 봐.”
동생의 사생활용 핸드폰 따윈 알아서 뭐하겠냐고. 그냥 하나만 알고 있으면 되지.
내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아라는 한숨을 내뱉으며 이어 말했다.
“폭주하는 정수정을 피해서 도망을 나오긴 했는데. 막상 갈 곳이 없더라고. 그래서 일단, 오빠 집부터 왔는데 다행히 집에 있었네.”
“집에 없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오빠 스튜디오로 갔겠지. 사실, 원래는 거기부터 가려고 했는데, 그냥 여기가 더 가까워서 이리로 왔어.”
“거기도 없었으면?”
“부모님 집 갔겠지.”
거기까지 말을 한 유아라는 생각만 해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와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은 나와 달리 유아라의 경우엔 그렇게 나쁘진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좋다는 건 아니지만.
“맞아, 그 이야기 들었어?”
“갑작스럽게 그 이야기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일단, 음료수를 하나 꺼내 유아라한테 던져 준 뒤에 맨바닥에 앉는다. 그러자 나를 따라 서 있던 성이름도 내 옆에 따라 앉았다.
그런 성이름의 모습에 유아라는 잠시 눈치를 보았고. 그 모습을 파악한 성이름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유아라를 향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잠시 방에 가 있을게, 편하게 이야기해.”
“아, 응.”
곧이어 성이름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 그 모습을 보던 유아라는 속삭이듯이 내게 말했다.
“그래도 막 같이 듣겠다고 말을 하지는 않네.”
“그렇게 막무가내인 애는 아니니까.”
언뜻 보면 막무가내로 나만 따라오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최대한 다정하게 남을 배려해서 챙겨 주는 스타일에 가깝지.
“안 그래 보이는데, 뭐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서 그 이야기가 뭔데?”
“아빠 이야기.”
유아라의 입에서 나온 아빠라는 단어에 미간을 찌푸린다.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아버지를 만나 본 적이 없다.
엄마의 경우 몇 번이고 만났고 이제는 제법 자주 연락을 하지만, 아버지하고는 도저히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 이야기가 뭔데?”
“수술한다고 하더라.”
수술이라니.
다소 갑작스러운 유아라의 말에 내 눈이 조금 커졌다.
조금 오래전에 본 건 알고 있지만, 그때까지 아버지는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는데.
“갑자기 무슨 수술?”
자세를 바꾸고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프거나 죽었으면 하는 건 아니다.
“큰 건 아니고, 허리 쪽. 다치셨나 보더라고.”
“수술비는?”
“많이 든다는데. 뭐, 보험도 있고, 모아 둔 것도 있고 하니까.”
“허리 쪽이면 그래도 많이 부담스러울 텐데.”
우리 집은 그렇게 풍족한 집안이 아니다. 부모님 두 사람만 산다면 충분하겠지만, 내가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데다-지금은 아니지만- 유아라가 연습생 생활을 하느라 그 지원도 해야 해서 돈이 많이 들어갔다.
“엄마가 오빠한테 알리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말은 해 줘야 할 거 같아서. 그리고 돈은 걱정 마. 내가 내면 되니까.”
“너 돈 많아?”
“정산받기 시작했으니까, 어느 정도 있긴 하지.”
유아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 보니 유아라도 있으니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구나. 다만, 아버지가 수술한다는 건 좀 신경 쓰인다.
내일 아침이 되면 엄마한테 전화를 한번 해 봐야지.
“그리 어려운 수술은 아니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넌 걱정 안 해?”
“하지. 근데 걱정한다고 수술 확률이 올라가는 거 아니니까.”
아버지, 당신을 동정하는 건 아닌데.
당신 딸내미는 지나치게 냉혹합니다.
* * *
이야기를 끝낸 유아라는 성이름을 다시 불렀고. 나와 성이름 그리고 유아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수다를 떨었다고 해도, 이야기는 성이름하고 유아라가 했고, 나는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뿐이지만.
“그러면 언니는 이제 활동 안 해요?”
“에이키스?”
“네, 에이키스로요.”
“에이키스로서 활동은 아마 내년부터 할 거야. 1월쯤에 예정 잡아 놓고. 그 전에는 놀고 있을 수 없으니까 아마 다른 멤버들 개인 활동을 하지 않을까?”
1월쯤에 예정이라는 에이키스의 활동. 그거 아마 신중한이 내게 제안을 한 활동 이야기겠지?
내 개인으로선 에이키스보단 성이름 개인 활동을 맡았으면 좋겠지만, 신중한이 원하는 건 에이키스의 앨범이니까 어쩔 수 없지.
“너희는 곧 컴백한다며?”
“지금 열심히 준비 중이에요. 그래서 말인데요, 언니.”
“응?”
“우리 컴백하면 같이 챌린지 좀 해 줄 수 있어요?”
“그거야, 당연하지.”
유아라의 부탁에 성이름은 웃는 얼굴로 받아들였다.
그 모습을 보다가 혀를 찬다. 유아라 저 녀석, 성이름이 자기한테 잘 보이려 하는 걸 알고 영약하게 이용해 먹는 거 봐.
“아, 그럴 게 아니라, 그냥 우리 같이 유튜브 촬영할까?”
“그럴까요? 언니 유튜브에서 할까요, 아니면 저희 유튜브에서 할까요?”
“너희 유튜브에서 하자. 나 유튜브가 딱히 없거든.”
“에이키스 유튜브 채널은 있잖아요?”
“그건 조금 기획이 까다로워서 말이야.”
성이름의 말에 유아라는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좋아요.”
내 동생이지만 진짜 무섭다, 무서워. 처음에 올 때까지만 해도 ‘여기 왜 있지?’라는 시선으로 바라봤으면서 지금은 되게 사이 좋아 보이네.
“너무 어리광 들어 줄 필요 없어.”
“괜찮아. 딱히, 어려운 부탁도 아닌 데다 어차피 아라도 ASKM 소속이잖아?”
“맞아. 선배님이 후배 챙긴다는데!”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닌 거 같은데.
지금 성이름의 말은 유아라가 아무리 나대도 회사 직속 후배니까 걱정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거기다가 성이름의 경우 곧 재계약을 맺을 테니, 그러면 5년은 계속 후배로서 지내야 한다는 거잖아?
나는 혀를 차며 유아라를 바라보았다.
아이돌 선배로서 성이름이 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후배들 입장에서 성이름이 굉장히 무서운 선배라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다.
근데, 딱히 동정은 가지 않는구나.
쟤는 좀 개고생을 해 봐야 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성이름한테 최대한 빡세게 유아라를 굴려 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이 잠이 들었다.
아, 어디까지나 같은 집에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지, 한 침대에서 다 같이 잠을 잤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이름의 경우엔 유아라와 함께 손님용 방에서 잠을 잤고, 나는 내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이 됐을 때.
유아라는 자기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돌아가려고?”
“저녁에 스케줄이 있으니까, 슬슬 돌아가야지. 그리고 이때쯤이면 정수정도 진정이 됐을 거야.”
“택시는?”
“불렀지.”
“조심히 가고. 힘든 일 있으면 말해.”
내 말에 유아라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더니,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오빠가 무슨 일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빠가 해 준 말이니까, 누가 괴롭히면 오빠 좀 이용할게.”
“너무 팔아먹진 말고.”
“그래.”
“그러면 바이바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유아라는 집을 나섰고, 그 모습을 보던 나는 하품을 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직, 성이름은 자고 있으니까 그 전에 일을 좀 해결해야지.
꺼내 든 핸드폰을 조작해 은행 앱에 들어간다. 그러고는 은행 앱에 저장해 놓은 엄마의 계좌 번호를 찾은 뒤에 돈을 이체했다.
수술에 얼마나 돈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정도 금액이면 충분하겠지.
집을 구할 때, 돈을 많이 사용한 탓에 통장이 제법 가벼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걱정은 없었다.
얼마 전에 했던 콘서트 공연료부터 시작해서 헤드폰 광고료, 또 이번 분기 저작권료, 그리고 다모아 광고료도 곧 들어올 테니까.
그걸 생각하면 빠져나간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이 들어올 거다.
흠, 역시 저작권료는 신이야. 앞으로도 내 인생을 위해서 더 많은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 아들 무슨 일이야?
“네, 엄마. 다름은 아니고요. 곧 아버지 수술하신다면서요.”
-어떻게 알았어? 아라한테 들었어?
“예, 그렇죠, 뭐. 그, 돈 보냈으니까 계좌 확인하세요.”
예상하지 못했던 말인지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고. 곧이어 돈을 확인했는지 짧은 비명과 함께 굉장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이 돈. 이 정도 보내도 괜찮아?
“충분해요. 대신, 하나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아들?
“아버지 수술비 낸 사람, 저라고 좀 알려 주세요.”
-그래?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네.”
내 말에 엄마는 잘됐다는 듯이 말했다. 마치, 이번 기회에 나와 아버지 사이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돈을 보내고 그 말을 해 달라는 이유는 그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 사실을 말해 달라는 건 어디까지내 복수 때문이다.
아버지가 수술을 할 수 있었던 건 무시했던, 쓸모없다고 생각한 내 덕분이었다고, 내 덕분에 멀쩡하게 수술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걸 알고 나면 생각이 복잡해질 아버지를 상상하면, 뭔가 기분이 좋아진다.
소심하고 기가 찬 복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알게 뭐야. 애초에 난 효자도 아닌데. 그래도 돈은 부쳤으니 뜨거운 효자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나는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