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1)
우주천마 3077-10화(11/349)
2. 화일객잔 Motel Phobos (5)
2. 화일객잔 Motel Phobos (5) – 무공 모독이다!
보이지 않았다.
교주인 천마의 이름에 걸고 맹세컨대, 산전무악은 약관의 청년의 공격을 보지 못했다. 산전무악은 속을 게워내며 혼란스런 의식을 추스렸다.
어지간한 고수가 내공을 운용하며 휘두르는 칼날의 움직임조차 포착해낼 수 있는 스카우터다. 그런데 그러 스카우터가 인식조차 하지 못한, 그야말로 섬전같은 한 수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스카우터는 움직임을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천마신교 대주급의 내공통합운영시스템(QIOS)마저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상대가 외장형 내공 드라이브를 숨겨두고 있었건, 아니면 내공저장 캡슐로 기습을 했건 내공을 사용했다면 그걸 감지한 시스템의 대응방호기능이 복부에 내공을 집중시켜 충격을 경감시켰을 테니까.
하지만 시스템은 거짓말처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정말로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산전무악은 순간 머리에 떠오른 가능성을 부정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상대의 육체는 아무런 강화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순수한 내츄럴이다. 스카우터로 몸을 훑을 때 아무런 보안시스템도 없이 맨 몸이 그대로 보였기에, 그가 내츄럴이라는 것에 있어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내공을 쓰지 않으면 본존이 널 꺾지 못할 듯 싶더냐?”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아니, 믿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사람의 육체만으로 그런 일격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익힌 무공은 뭐가 된다는 말인가.
그는 마교인보다 더 마교인같이 사납게 웃으며 산전무악에게 말했다.
내공 없이도 너 하나쯤은 가볍게 제압할 수 있으니, 어디 한번 덤벼보라고.
노력에 노력을 쌓아온 그의 무공을 얕잡아보며 내미는 도발. 산전무악은 얼굴 양쪽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과연, 우주 천지에 그런 도발을 듣고 가만히 있을 무인이 있을까?
있을 리가 없다.
“······그 말을 후회하게 될 거요.”
청년의 공격은 잠시 그의 내장을 놀라게 했을 뿐, 치명적인 데미지를 주진 않았다. 그것이 한계인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것인지 산전무악이 알 방법은 없었다.
다만 그는 일어섰다.
철 지난 정신론이나 읊어대는 사부에게 도망쳐 사파에 몸을 담은 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쌓아온 무공이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모욕당할 만큼 싸구려가 아니라는 말이다.
산전무악은 상대가 내공을 못 쓰는 내츄럴이든, 내공을 숨긴 고수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저 온 힘을 다해 저 건방진 놈을 무릎꿇려, 제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일만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는 목진을 노려보며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땅에 붙을 것처럼 한껏 몸을 낮춘, 맹수를 닮은 자세.
혈랑마공(血狼魔功)에 최적화된 단전의 대주급 내공 드라이브가 출력을 올리며 미친 듯이 내공을 뿜어내고, 내공통합운영시스템의 유도를 따라 미친 이리떼와 같은 기가 전신의 세맥으로 퍼져나간다.
다리 사이부터 시작해 배꼽, 명치, 쇄골까지. 본래 차가운 음기가 지나야 할 임맥(任脈)을 혈랑마공의 핏빛 양기가 거칠게 헤집으며 올라와 두 눈에 자리잡고, 등을 따라 올라오는 독맥(督脈)에서는 뒷목 아래에서 갈라진 내공이 양 손으로 흘러들어온다.
마치 늑대의 송곳니처럼 굽어진 손끝. 그리고 그곳에 피어오르는 흉흉한 붉은 기운.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든 산전무악의 오른눈이 피에 굶주린 맹수의 그것과 같이 번뜩였다.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눈이 돌아간, 굶주린 이리와 같은 모습의 기수식.
천마신교에서도 자격이 있는 자나 익힐 수 있는 상급의 절기인 적랑마수(赤狼魔手)였다.
“기개는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나와주어야지. 흉흉한 눈동자 속 짙은 투기를 읽은 목진이 입가를 끌어올렸다. 자존심을 상처입고 미쳐 날뛰는 이리의 모습. 하지만 흥분 속에서도 차가운 이지를 잃지 않은 그 모습은 가르침을 내려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태도였다.
“오거라.”
다섯 수를 내어주마. 목진이 한 손을 들어 가볍게 까닥였다.
그것은 도발로선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고, 산전무악은 기꺼이 그 도발을 받아들였다.
“하!”
사냥감을 급습하는 맹수처럼 간격을 좁힌 산전무악의 관수(貫手)가 초식다운로드인터페이스(ADI)의 보조를 받아 송곳니가 되어 하단에서 찔러온다. 전뇌공간에서 수천 수만 번 반복한 출수에는 단 한 조각의 낭비도 없었다.
목진은 자신의 턱 밑을 노리고 찔러오는 산전무악의 손끝을 보며 팔을 들었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무리는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성미에도 맞지 않는다. 천마 이목진의 무공은 패도적인 내력을 마음껏 쏟아부어 힘으로 찍어누르는 강(强)의 무공이었으니까.
허나, 설령 내공을 쓰지 않는다 해도 고작 이 정도 공격을 쳐내는 잡기(雜技)가 어려우랴.
힘이 부족해 반대로 밀어낼 수 없다면, 옆으로 밀면 그만인 일.
찰나의 순간 산전무악의 팔에 목진의 손바닥이 닿고, 턱을 향해 쇄도하던 손이 하늘로 솟구친다.
‘또다.’
산전무악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자신의 공격을 쳐올린 목진의 장타를 바라보았다.
QIOS가 반응하지 않는다.
착각이 아니었다. 눈앞의 청년은. 내공 한 줌 없이 단순히 초식만으로 자신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산전무악의 눈이 목진의 눈과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의 눈은 겨우 이게 전부냐는 듯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눈길을 애써 부정하듯, 산전무악은 오싹할 정도로 거친 기합성과 함께 목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아!”
오금을 노린 좌수.
“이상하구나.”
눈을 베어들어가는 수도.
“출수는 흠잡을 곳이 없고.”
목젖을 찌르는 관수.
“이지도 또렷하며.”
옆구리를 가르는 족도.
“내공도 부족함이 없는데.”
거기에 미간을 내리찍는 손톱까지.
“어찌 너의 무공은 이리도 어설프다는 말이냐?”
살초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흉흉한 공격들이 목진에게 쇄도했지만, 목진은 시종일관 차분하게 그 모든 공격을 피하거나 쳐내며 옷깃 하나조차도 내어주지 않았다.
다시금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마치 한 번의 타격처럼 들릴 정도로 빠른 세 번의 연격이 꿰뚫은 장소는 쇄골의 천돌(天突), 명치의 거궐(巨闕), 배꼽 아래의 기해(氣海).
이만한 급소라면 내공이 없어도 내상을 피할 수가 없다. 산전무악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혈향을 느꼈다.
생사결이었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치명적인 요혈들을 내주었음에도 그가 고작 몇 걸음만 물러설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목진의 공격에 단 한 줌의 내공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더더욱, 그의 자존심을 헤집어놓았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상을 추스르는 산전무악으로부터 가볍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린 목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터운 내공과 완성된 초식을 보니 못해도 십수 년은 넘게 매일같이 수련을 했을 터인데, 정작 초식에 대한 이해는 갓 무공을 배운 아해마냥 백치 같구나. 깨달음 한 조각 없이 그만한 무공은 도대체 어찌 쌓았더냐?”
자연스럽지 않다. 목진이 천마신교의 무인과 겨룬 뒤 느낀 감상이었다.
완고한 스승에게 엄하게 배운 듯한 초식은 유연하진 않으나 효율적인 투로를 따르고, 공수에 따라 기를 내고 거두는 기공의 숙련도는 절정의 경지에 오른 노련한 무인처럼 자유롭다.
모르긴 몰라도, 그만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미혹들을 이겨내고 무공을 수련했음이 느껴질 만큼 훌륭한 성취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만한 무공을 쌓고도 시시각각 변하는 투로에 맞춰 초식을 활용하지 못하고, 초식의 연계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야 할 기의 흐름은 뚝뚝 끊기기만 한다. 평범한 경지의 무인이라면 모를까, 저만치 정교한 초식을 구사하는 경지까지 무공을 연마했다면 결코 존재할 이유가 없는 헛점들이었다.
‘주화입마라도 걸려 제 실력을 잃은 건가?’
어떻게 보면 오랜 수련을 쌓은 고수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제대로 무공을 익히지 못한 이류무인 같기도 한 기형적인 모습. 적어도 목진의 상식 안에서는 그런 상태는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최소한, 천마신교 산하의 무리를 이끄는 대주라는 자가 보일 모습은 아니라는 것.
“허어. 천마신교의 대주라는 자가 고작 이 정도라니, 이래서야 본존이 실망 이외에 무슨 감정을 내비칠 수 있겠느냐.”
도발의 목적이 아닌, 진심으로 실망하며 한숨을 쉬는 목진의 말에 산전무악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내공도 쓰지 않은 내츄럴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무인이 무슨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으랴. 아니, 이젠 스스로를 무인이라 칭하는 것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목진은 전의를 잃은 채 고개를 떨군 산전무악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세령에게 물었다.
“이 시대의 강호인이 다 저 자와 같진 않겠지. 아니 그러하냐?”
“······마교 적랑대주면 어디 가서 실력으로 꿀리는 사람은 아닌데요. 내공 드라이브랑 QIOS 전부 대주급으로 달고 있으니.”
“그래, 말 잘했다. 그 내공 드라이브라는 건 대관절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퀴오······뭐시기는 또 뭐고?”
아까부터 듣자하니 내공 드라이브란 게 없다 하면 무인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도대체 그게 뭐길래 저리도 목숨을 건다는 말인가.
세령은 그제야 눈앞의 고대인이 내공 드라이브가 없던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가 상상 이상으로 위대한 경지에 이른 존재라는 것도.
내츄럴의 몸으로 자신을 제압할 만한 경지에 오른 것도 기함을 금치 못할 일인데, 내공도 쓰지 않고 마교 대주급을 상대하다니. 농담으로도 꺼내기 힘든 이야기였다.
세령은 옛 기억 속 역사수업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공 드라이브 발명 이전에는 직접 사람의 몸에 내공을 쌓았었다는 이야기. 설마 이렇게 직접 눈앞에서 그 산 증인을 보게 될 줄이야.
세령은 아무런 기반지식이 없는 고대인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신중히 말을 골라 설명했다.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러니까 내공 드라이브는 사람 몸에 심어서 내공을 만들어내는 기관이고요, QIOS는 내공 드라이브에서 만들어낸 내공을 사람 대신 자동으로 움직여주는 시스템······그러니까 기관이에요. 이해가 가요?”
“······뭐라?”
목진은 순간 자신이 들은 것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공 드라이브라는 것이 기관이라고? 그리고 그걸 사람 몸 속에 심는다고?
목진은 오래 전 강호를 주유할 때 보았던, 손잡이를 돌리니 탁자 위의 인형이 움직이며 춤을 추던 신기하고 정교한 기계장치를 떠올렸다. 그가 아는 기관이라는 것은 으레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람 몸 속에 집어넣는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 미친 사술은 다 손대고 보는 혈교의 종자들도 그런 괴팍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사람 몸에 기관장치를 넣는다는 것부터가 믿을 수 없는데, 그런 기관장치가 내공을 만들어내는 것도 모자라 운기도 대신 해준다니. 단순히 말이 안 되는 것을 넘어 일생을 바쳐 내공을 쌓고 무공을 수련하는 모든 무인들을 욕되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리 쉽게 얻은 무공이니 제가 익힌 무공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목진은 주화입마(走火入魔)가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며 세령에게 되물었다.
“혹 이 시대의 무인이라는 치들은 모두 그런 기물(奇物)을 통해 무공을 쓰느냐?”
“보통은 그렇죠······?”
“······내 네게 나중에 물어볼 것이 많구나.”
먼 미래의 무인이라는 것이 이리도 괴이한 것이었다니. 하지만 그런 현실을 성토하기 이전에 일단은 눈앞에 벌어진 일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목진은 어느새 자신들의 주위를 둘러싼 적랑대원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내 너희를 이끄는 저 치에게는 큰 해를 가하지 않고 오히려 분에 넘치는 가르침을 주었으니, 이만 길을 비키거라. 알아볼 것이 많아 바쁜 몸이다.”
딴에는 나름 좋은 말로 해결한답시고 꺼낸 말이었으나, 눈앞에서 자신들의 대주가 박살나는 꼴을 본 적랑대원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었다.
“부하 된 도리로 그대를 조용히 보내드릴 순 없습니다.”
“감히 우리 대주님을 건드리고도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을 했냐?”
“······무공은 한미하나 주변에 부하만큼은 잘 두었구나. 허나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고쳐야 할 것이다.”
“뭔가 한 수를 숨긴 내츄럴이라 해도 바뀌는 것은 없소. 대주님을 해한 이상, 소협은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적랑대 전원을 쓰러트리기 전엔 못 나갈 거외다.”
부하들에게 신망은 있는 모양인지, 산전무악을 간단하게 제압한 목진을 앞에 두고도 적랑대원들은 흉흉한 기세를 풍겼다.
평소였다면 좋은 부하들이라며 덕담을 건넸을 테지만, 상상도 못한 현실에 혼란스러움을 간신히 억제하고 있는 목진은 그런 여유를 부릴 겨를이 없었다.
이천 년이 지났어도 좋다. 자신이 살아가던 천하가 독기에 물들어도 괜찮다. 이상한 철마차를 타고 다니는 우주시대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감히 무림(武林)을 칭한다면 그 근본만큼은 바뀌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이 목진을 분노케 했다.
그리고 그 분노 속에서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들을 마주한 순간, 목진은 굳이 참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하냐.”
그럼 원하는 대로 해 주어야겠지. 목진은 예고도 없이 눈앞의 적랑대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당연하게도, 그들 전원이 제압당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