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15)
우주천마 3077-114화(115/349)
18. 초원뢰곡 Mongolian Hardbass Druid (6)
18. 초원뢰곡 Mongolian Hardbass Druid (6) – 인류정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음(音)은 곧 소리이며, 소리는 곧 파동(波動)이다.
과거 음공의 대가로 천음제(天音帝)이라 불리었던 전설적인 고수는 말년에 얻은 모든 깨달음을 녹여 이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음공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목진조차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구절로, 수많은 악사들이 그 짧은 말에 담긴 심오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만든 마성의 문장이기도 했다.
– 파동이라 함은 파도의 움직임을 뜻하는데 소리에 갑자기 웬 파도란 말인가?
– 파도의 소리야말로 궁극적인 소리라는 뜻이 아닐까?
– 파도와 같이 잔잔하게 가라앉음과 거칠게 몰아침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음공의 최고 경지다!
음공을 익힌 고대의 무림인들은 천음제가 남긴 문구에 대해 온갖 해석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천음제와 같은 전설의 경지에 도달한 이는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더랬다.
천년지재(千年之才)의 악사조차 온 세월을 갈아 넣었음에도 천음제의 깨달음에 닿지 못했거늘, 정작 음(音)을 모르는 천마 이목진이 그 문장의 참뜻을 깨달은 것은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뭐 이런.”
목진은 폭우처럼 쏟아지는 공격들을 정신없이 피하며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태어나서 이런 무공은 맞닥뜨린 적이 없었으니까.
땅에서는 설표들의 어깨에 달린 스피커로부터 최고 300BP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박자로 기를 가득 머금은 공격들이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웅웅거리며 대기를 울리는 우퍼의 낮은 진동을 타고 끊임없는 충격파가 몰아친다.
그는 전신으로 느꼈다. 천지를 가득 울리는 진동 그 자체가 소리의 연장임과 동시에 음공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이게 대관절 내가 아는 그 음공이 맞단 말인가?’
그가 아는 음공이라는 것은 단순했다.
저 멀리서 금을 연주하는 악사가 금줄에 내공을 실어 튕기면 그 소리가 검 혹은 권으로 화해 날아온다. 그러면 무인은 그 공격들을 피하거나 받아치며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하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기 전에 쏟아지는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면 악사의 승리.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 악사에게 도달하면 무인의 승리. 어떻게 보면 검수와 검수의 대결보다 쉽고 단순한 것이 바로 악사와의 대결이었다.
온갖 술수가 넘쳐나는 무림의 대결 중에서도 가장 직관적이고 평면적이라는 특징은 필연적으로 명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멀리서 날아오는데다 보이지도 않는 공격은 분명 위협적이다. 기를 축적하여 시간차 공격을 하거나, 여러 현을 한 번에 뜯어 근거리에서 충격파를 만들어내는 기예는 처음 맞닥트리면 대처조차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고정된 자리에서 날아오는 공격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음공이 고수에게 파훼당하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음공을 알지 못하고 있었구나.’
악기를 얼마나 잘 다루고, 연주하는 선율에 내공을 얼마나 잘 싣는가. 그것이야말로 음공의 핵심이라 생각했거늘, 그 모든 것은 단지 무지함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던 것이다.
그도, 강호무림도, 심지어는 음공에 삶을 바친 당대의 악사들조차도 알지 못했다.
소리.
음(音)이야말로 음공의 시작이고 마침임을.
기나긴 역사 속에서 그 단순한 진리에 도달한 것은 오직 천음제 뿐이었으니.
직접 손으로 줄을 뜯든, 스피커로 비트를 뿜어내든, 아니면 믹싱 머신으로 믹싱을 하든 소리만 만들어내면 그것이 곧 음공이라.
목진은 이제야 비로소 음공을 알게 된 것이다.
“하하!”
새로운 깨달음은 언제나 기분 좋은 고양감과 함께 찾아온다. 목진은 크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무수한 공격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호신강기를 끌어올리고 양 주먹에 권강(拳罡)을 빚어낸다면야 요란하게 피할 것도 없기야 하다. 그러나 목진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최선을 다하는 상대로 단순히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예의가 아니었다.
당사자인 이르비스는 의도치 않았을지 모르나, 좌우지간 큰 선물을 받았으니 그에 걸맞은 성의는 보여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목진의 손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묵직한 테너 드럼 소리를 따라 날아오는 무거운 도는 장타(掌打)로.
날카로운 크래쉬 심벌 소리를 타고 휘둘러지는 예리한 검은 수도(手刀)로.
통통 튀는 동크 베이스 소리에 묻어 쏟아지는 쾌속한 권은 정권(正拳)으로.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무수히 쏟아지는 소리의 군단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내며, 목진은 한 발짝 한 발짝 앞을 향해 나아갔다.
“이 미친······.”
이르비스는 할 말을 잃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고수이고 뭐고를 떠나, 기관총처럼 쏘아지는 공격들을 모조리 받아치는 모습은 현실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음공을 저렇게 파훼하는 인간이 있다고?’
원래 음공을 상대할때는 막강한 검강을 앞세워 뚫고 들어오거나, 노이즈 캔슬링으로 소리를 중화해 화력을 줄이거나, 그도 아니면 음공을 증폭시키는 스피커를 제거하는 것이 기본적인 공략법이다. 결코 저런 식으로 무식하게 정면에서 전부 받아내는 전법 따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느릿한 선율에 미적 요소를 최대한 살려 연주하는 친선비무용 음악이면 모를까, 200에서 300BPM을 넘나드는 실전용 하드바스는 애초에 직접 받아내라고 연주하는 곡이 아니었다.
아무리 빠르게 휘몰아치는 리듬 때문에 들어가는 내공이 적어 화력 자체는 약한 축에 든다지만, 세상 어느 미친 인간이 그걸 정면에서 뚫어낸다는 말인가.
어느새 이르비스는 대원천후를 연주하던 손마저 멈춘 채 멍하니 목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중간 정도 와서 연주가 멈추었다는 것을 안 목진이 피식 웃었다.
“왜, 이젠 현을 뜯기가 힘에 부치느냐?”
“······정녕 사람이오?”
“조금 해 보니 박자가 귀에 익게 되더구나.”
어허허. 이르비스가 넋 나간 웃음을 지었다. 검강을 줄기줄기 뽑아내는 고수에게 힘으로 밀린 것도 아니고, 정직하게 무공 대 무공으로 파훼당하니 할 말이 없었다.
이윽고, 이르비스의 새까만 삼백안이 번뜩 귀광을 발했다. 악과 오기가 그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목진이 참으로 좋아하는, 무인의 눈이었다. 약하면 패배하는 것이야 무림의 당연한 순리라지만, 거친 무인의 자존심은 아직 꺾이지 않은 것이다.
“이제 와서 말하기엔 참 웃기는 소리지만 말이오.”
이 비무, 맥없이 지고 싶지는 않소. 이르비스가 품속에서 작은 앰플을 꺼내 팔뚝에 꽂았다. 토투가 낭인시장에서 암암리에 팔리는 마약성 부스터인 광폭정 앰플이었다. 그는 가만히 자신이 하는 짓을 구경하는 목진을 보고 툭 내뱉었다.
“가진 능력이 부족하면 도핑이라도 해서 발악해야지. 비겁하다 생각하오?”
마교의 교주였던 이가 웃었다.
“수단을 가리면 그게 정파지 사파겠느냐?”
그리 말할 줄 알았소. 시뻘건 실핏줄이 떠오른 눈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이르비스가 껄껄 웃었다.
이르비스가 현을 한 차례 쓸어내리고는, 이내 눈을 감고 손끝을 타고 느껴지는 소리를 한껏 들이마셨다.
“후-.”
음의 높고 낮음이 기계보다 정확하게 느껴지고, 하나의 박자가 수백 수천으로 쪼개진다. 한껏 확장된 감각은 음공을 사용하는 무인에게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영약이었다.
흐흐. 차오르는 희열에 이르비스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그의 피가 오직 이 초원뢰곡을 연주할 때만 끓어오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번 곡은 아까와는 조금 다를 거요. 나 이르비스가 연주하는 것 중 최고의 곡이거든.”
“그 곡은 무엇이라 하느냐?”
초원뢰곡(草原雷哭)!
광폭정의 효능 탓에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이르비스가 가장 좋아해 마지않는 곡의 이름을 높이 불렀다.
무인 이르비스로서 택한 마지막 발악이 결국은 아티스트 이르비스의 애창곡이라니. 한편으론 아이러니컬하면서도, 어찌 보면 그것이 우량카이 이르비스라는 사내다운 결론이었다.
이르비스가 힘차게 베이스 줄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묵직한 드럼과 높은 마두금(馬頭琴)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고대 악기 특유의 감성이 살아있는 락의 멜로디였다.
“그래, 이제야 좀 노랫가락답구나!”
날아오는 소리를 여유롭게 쳐낸 목진이 즐거이 소리쳤다. 조금 전과 같이 최소한의 내공만 끌어올린 손이 얼얼하니 저려오는 것이, 이제야 조금 쳐낼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일렉트로니카답게 소낙비처럼 끊임없이 몰아치던 하드바스보다는 느리지만, 그 음 하나하나에 담긴 거력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그러나 그것을 받아내는 목진은 연신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
눈표범의 포효와 검독수리의 울부짖음. 사람이 아닌 것들의 소리가 한데 뒤섞여 이르비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낮은 포효가 묵직한 발톱이 되고, 높은 울부짖음이 날카로운 부리가 되어 사냥감을 노리니 이것이 과연 사람의 무공인가, 아니면 초원의 무공인가.
목진은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웃었다.
“네가 초원을 연주하는구나.”
아무렴, 그렇고말고! 이르비스가 목진의 웃음에 마주 웃으며 소리쳤다.
“나 이르비스는 초원이요, 독수리와 눈표범이며, 또한 폭풍이올시다!”
폭풍? 의문을 담은 목진의 시선이 이르비스의 것과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의 눈은 이것도 한번 받아보라는 듯 도발적인 눈을 하고 있었다. 목진의 눈이 기꺼이 그리하겠다며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곡의 가락이 바뀌었다.
대초원을 품은 웅장한 선율에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폭풍의 선율로.
“그래, 과연 폭풍이로다.”
터무니없는 솜씨로 하드바스를 받아내던 무인은 받아치다 보니 박자가 귀에 익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악사는 아예 리듬을 비틀어버렸다.
음공 전용으로 튜닝된 초식다운로드인터페이스와 내공통합운용시스템이 그의 의지를 따라 신디사이징과 믹싱을 조율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주의 사이에 엇박자가 들어가고, 선율이 중간에 되감기는가 하면, 선율 속의 음이 별안간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단 한 조각의 규칙도 없이, 무인인지 악사인지 모를 이의 영감을 따라서.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연주되던 선율은 온데 간데 없고, 불규칙하고 즉흥적인 기교들이 목진을 향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분명, 악사의 말대로 우레를 품고 초원에 몰아치는 폭풍 그 자체였다.
“이것이 초원뢰곡!”
목진은 열기가 오른 목소리로 탄성을 터트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어줍잖게 리듬을 읽으려 들어봤자 헛수고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마음을 비우고 몸을 맡겼다.
세상을 울리는 노랫가락에.
그리고 그의 몸에 새겨진 무(武)에.
초원의 폭풍 속에서 무인이 즐거이 춤을 추었다.
폭풍을 연주하는 악사는 무인의 춤사위를 보고 흥이 올라 현을 튕겨댔다.
사파내전이니 청령문이니 적웅문이니 벽력자니.
그 모든 것들을 전부 잊을 정도로 흥겹게 두 사람은 춤과 노래를 즐겼더랬다.
“잘 놀았다.”
한껏 기분 좋게 땀을 흘린 목진이 이르비스의 앞에 서서는 상쾌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이리 신나게 연주한 것은 오랜만이었소.”
목진과 같은 얼굴을 한 이르비스도 마주 웃었다.
헌데 말이오. 그가 말을 이었다.
“이것들은 굳이 부쉈어야만 했소?”
목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머리가 박살난 네 마리의 설표였던 것이 보였다.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실컷 논 다음 너를 때릴 수는 없지 않느냐.”
그 말에 이르비스는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때리지 그러셨소. 이게 다 얼마짜린데.”
작가의말
저음쾌진격은 Apartje – Cheeki Breeki Hardbass Anthem,
그리고 초원뢰곡은 The HU – Yuve Yuve Yu 를 모티브로 만든 음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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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정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 지장이 없는 잡다한 설정놀음입니다. 흐름이 끊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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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천음제의 깨달음이 담긴 말인 ‘소리는 파동이다’는 현대 무림, 아니 21세기의 무림에서도 기본적인 상식이기에 이미 잊혀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깨달음을 얻은 이는 삼천 년 역사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적다.
정보) 목진이 천음제가 남겼던 깨달음을 얻긴 했지만, 딱히 그의 무공에 진전이 있는 건 아니다. 물론 목진이 음공을 쓰게 될 일도 없다. 목진은 음치이기 때문이다.
정보) 원시무림에서 음공을 익힌 악사와의 대결은 21세기의 리듬게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처음에는 공격이 하나씩 날아오다가, 실력이 쌓이면 동시에 공격이 날아오기도 하고, 고수의 영역에 이르면 발광패턴, 폭타, 빅장, 계단, 폴리리듬, 엇박 등의 테크닉이 섞여 어중간한 피지컬로는 악사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순살당한다. 물론 강력한 무림고수는 그냥 맞으면서 몸뚱이로 밀고 들어가기 때문에 불쌍한 악사는 대처법이 없다.
정보) 이르비스는 기본적으로 베이스 연주를 하지만, 척수와 무기를 케이블로 연결해서 생각만으로 신디사이징과 믹싱을 병행할 수 있다.
정보) 이르비스의 음악에 대한 재능은 천재적인 쪽에 속하지만, 무공에 대한 재능은 범재 수준이기 때문에 무공의 경지 자체는 더디게 올라가는 편이다.
정보) 부상당한 적웅문도들은 사파내전 규칙 상 이미 리타이어된 상황이기 때문에 맘 편히 휴대용 팝콘을 먹으며 두 사람의 대결을 관람했다. 몰래 영상을 찍었던 적웅문도들은 나중에 무림방송법에 빠삭한 정예문도 조장에게 엉망진창 혼나고 영상을 몰수당했다.
정보) 박살난 설표들은 매우 비싼 물건이다. 나중에 약빨이 떨어진 이르비스는 통장 잔고와 설표의 잔해를 보고 광광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