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18)
우주천마 3077-117화(118/349)
19. 진염성녀 Divine Napalm Witch (3)
19. 진염성녀 Divine Napalm Witch (3) – 이래서 재능 있는 것들은
– 권각(拳脚)이란 본디 사람이 날 때부터 지니고 태어난 가장 근본적인 도구이자 무기이니, 본능 속에는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이 잠들어 있느니라. 이를 선생지공(先生之功)이라 하지.
– 아니 그러면 권법을 왜 배우는데요? 그냥 본능대로 때리면 되는 거 아닌가.
– 쯧쯧. 어리석은 소리 말거라.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했지, 싸우는 법이라고 했더냐?
– 씨······무공 얘기하는데 당연히 싸우는 법으로 알아듣지.
– 자다가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한 공부를 오래 쌓은 무인이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야 간신히 권각술에 그것을 녹아들게 할 수 있느니라. 거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 그 깨우침을 자유자재로 일깨워 무공에 접목시킬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천하제일을 논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지.
– 거 참 스케일 큰 얘기네요. 근데 저는 딱히 권법으로 천하제일을 논할 생각이 없는데.
– 어허. 잠자코 듣기나 하거라. 네 성취가 낮아 깨닫지 못할 뿐, 이와 같은 가르침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나중에 다 깨달음으로 돌아오는 법이니라.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무공을 지도해주던 목진은 세령에게 그리 말했더랬다.
그리고 그는 옳았다.
‘근데 하필 이런 식으로 되돌려 받을 줄은 몰랐지!’
선생지공이니 본능 속의 권법이니 다 좋다. 좋다고.
좋은데, 왜 하필이면 그 대단하신 무공한테 그녀가 두들겨 맞아야 하는지 세령으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허이!”
“끄윽!?”
내질러진 검을 내공이 담긴 유리병으로 막고, 찔러 들어가는 발길질을 빙글 돌아 흘려내며 팔꿈치와 손등으로 연달아 복부와 턱을 때린다. 어떻게든 복부는 막아냈지만 턱을 얻어맞은 세령이 낮은 비명을 흘렸다.
정타를 맞았음에도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큰 데미지는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팠다. 그것도 더럽게.
세령은 저도 모르게 핑 도는 눈물을 삼키며 억울한 얼굴로 디마를 노려봤다.
노국취권을 펼치는 디마의 공격은 내공을 크게 담은 중타(重打)가 아니라 가벼운 잽과 같은 경타(輕打). 보드카의 성분을 변환해서 만든 유사 내공이기에 상대를 단매에 무릎 꿇릴 정도로 큰 데미지를 넣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공격이 막히거나 빗나가도 빈틈이 없다.
거기까진 괜찮다.
문제는, 도무지 공수(攻守)의 교환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이 벌써 일곱 번째의 공방이건만, 내가 때리면 안 맞고 쟤가 때리면 맞는다. 화딱지가 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이유이지 않은가.
‘시발, 하나도 안 읽히잖아!’
무림인이라면 원래 무공의 종류와 무인의 성향에 따라 고유한 결, 그러니까 리듬이라는 걸 가지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리고 그걸 읽어서 공방의 주도권을 지는 게 싸움의 기본이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눈앞에 있는 주정뱅이 무인에게는 그런 리듬이 조금도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엇박자로 리듬을 흩뜨리거나 아예 다른 리듬으로 바꾸는 고수들의 기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림수 따위 없이 그저 몸 가는 대로, 본능에 따라 튀어나오는 공격. 초식의 틀마저 벗어던지고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디마의 공격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대충 막 던지는 거 같은데 무공초식보다 막기 힘든 게 말이 돼?’
세령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목진이 말했던 본능 속의 무공, 선생지공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무아지경에 들어야 도달할 수 있다던 경지라며?! 술 쳐먹고 펼칠 수 있는 무공 경지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하긴 꽐라상태도 자신을 잊는 일종의 무아지경이긴 한가? ······는 개뿔. 아무리 강호천지가 복잡기괴하다지만 상도덕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
“흐흫, 왜? 화났냐요?”
“하, 니 같으면 안 빡치겠냐?”
술을 마셔서 그런가, 실실 웃으며 묻는 말이 그리도 얄미울 수가 없다. 세령은 다시 검기가 서린 검을 들어 그녀를 향해 베어 들어갔다.
하지만 목진의 말마따나 무공에 대한 기본이 부족한 세령이 휘두르는 초식은 그녀보다 한 수 위의 고수인 디마에게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고 날아드는 검들은 디마가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은 유리병 하나에 모조리 막히거나 빗겨나가고 있지 않은가.
‘아니 내공 드라이브를 바꿔도 되는 게 없냐!’
내공 드라이브를 바꾸고 나서는 뭐든지 다 잘될 것 같았다. 고물딱지 같은 내공 드라이브를 달고 다니면서 그간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이제 알파 프라임 급 코어를 사용한 내공 드라이브를 달았으니 웬만한 무림인들은 가뿐히 때려잡고 다닐 것 같았더랬다.
하지만 그건 세령의 착각이었다.
내공 드라이브의 출력에서 비교적 우위에 있긴 하지만, 상대도 상당한 출력의 내공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고수인 만큼 그 차이는 무공의 숙련도로 메꿔지고도 남았던 것이다.
정작 최상급의 내공 드라이브를 달고 나서도 무공 자체가 부족해서 밀리고 있는 상황. 밑바닥 낭인들 사이에서 이름을 좀 날렸다고 한들 결국 고수들의 영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방증이었다.
디마와 싸우면서, 세령은 내공 드라이브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훗!”
나올 리 없는 타이밍에서 쏘아지는, 술잔을 든 것과 같이 검지만 덜 구부린 채 미간을 노리는 단배권(端杯拳). 아무리 가벼운 경타라고는 해도 미간과 같은 급소에 맞는다면 데미지가 적지 않기에 세령이 급히 고개를 젖혔다.
하지만 디마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민 손으로 고개를 젖히느라 앞으로 내밀어진 세령의 앞섶을 거머쥔 디마가 그대로 무게를 싣고 쓰러진 것이다. 당연히 같이 쓰러질 수 없는 세령으로서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좀!”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고 버티자 그 반동으로 다시 일어나며 턱 아래를 긁는 응조수(鷹爪手)를 막은 세령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물론 디마는 세령의 짜증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다시금 연속으로 주먹을 날려댔지만.
“얍얍!”
“얍얍은 염병 얼어 죽을!”
정신없이 디마의 공격을 받아내다보니 어느새 메인 홀 바깥까지 밀려나와 있을 정도다. 균형이 맞지 않는 자세로 내공도 얼마 안 담아서 때리는 데 왜 이렇게 아픈지. 제대로 막지 못해 욱신거리는 팔다리에 세령이 이를 갈았다.
이대로면 개처럼 두들겨 맞다가 패배하는 미래밖에 없다. 세령은 예전에 싸우던 습관대로 싸워봐야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 이제 남은 밑천을 탈탈 털어야 하지 않겠는가.
설령 그것이 아직 미완성의 깨달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세령의 눈에 진득한 독기가 서렸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도 결코 굴하지 않는 독심(毒心). 낭인 시절 그녀가 아득바득 살아남을 수 있던 원천인 사천당가의 핏줄이 또다시 눈을 떴다.
‘저 년이 작정하고 인파이트로 들어오는 건 어차피 못 막아. 그걸 상대하려면 아저씨가 알려준 방법밖에 없고.’
란나제착벽(攔拏提捉劈)과 권역(圈域)의 오법간합(五法間合).
대략적인 원리는 들어 알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실전에 녹여 써먹을 수준은 못 된다. 그걸 알고 있기에 목진이 몸에 익을 때까지 자신 이외의 사람과 대련을 금지한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급박한 상황에선 그 부족한 무리(武理)라도 어떻게든 써먹어야 한다. 상대의 리듬을 읽을 수 없다면 보고 막는 것만이 답이니까. 세령의 날카로운 눈이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디마의 손발에 고정되었다.
“아직도 포기 못했냐요?”
“끄윽?!”
가드를 굳히는 세령의 발악을 씹으며 가슴에 틀어박히는 디마의 단배권. 급소는 어떻게든 막아냈지만 슬슬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다. 약한 내상에 속으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피를 퉤 내뱉으며 세령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지만, 의식하고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핏 완전히 즉흥적으로 보이는 듯한 디마의 공격 속에 담긴 작은 규칙들이.
– 권(圈)이란 곧 너의 영역이니, 너와 상대의 권역을 아는 것이 간합(間合)의 시작이니라.
그녀를 지도할 때 목진이 말했더랬다. 울타리 바깥인 권외(圈外)의 공격은 막기에 수월하지만 안마당인 권내(圈內)에서의 공격은 막기 어렵다고.
‘술병은 권외, 나머지는 권내에서의 공격······. 시발, 이러니 못 막지.’
술병을 휘둘러 외부로의 방어를 굳히게 만들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통해 권역 내부로 파고들어 막기 어려운 공격들을 쏟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노국취권이 품고 있는 무공의 이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상대한 적들은 무기를 든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무공의 원리를 모르는 이들이었기에 대부분 권외에서 공격을 해 왔었다. 그런 전투에 익숙해진 그녀이기에 권내에서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면 대처법은······.’
정석적인 방법은 상대를 밀어내거나 권역의 배치를 뒤집는 움직임으로 디마를 권외에 두고, 자신은 디마의 권내로 파고드는 것. 하지만 내공 드라이브 하나만 유리하고 나머지 모든 것이 불리한 세령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다.
여기서도 아저씨가 알려준 게 있었는데. 세령은 다시금 목진이 한 말을 떠올렸다.
– 권외의 공격은 란(攔)이 가장 적절하고, 권내의 공격은 나(拏)하기 좋으며, 아래에서 파고들면 제(提)하여 제압하며, 내려치는 공격은 착(捉)으로 사대하면 쉽게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느니라.
– 저 한자 몰라서 이해가 안 되는데 그냥 쉽게 설명해주면 안 돼요?
– 권역 밖에서 오는 건 막고, 권역 안에서 오면 휘감아 붙잡고, 아래의 공격은 끌어당기고, 위의 공격은 잡아채라는 소리다. 에잉, 요즘 것들은 한자도 모르면서 무슨 무공을 배운다고······쯧쯧쯧.
권역 안에서 오는 공격을 막기는 마땅치 않으니 휘감아 붙잡으면 된다.
문제는 선생지공의 묘리가 녹아있는 디마의 단배권을 붙잡을 수 있을 만큼 세령의 금나술(擒拏術) 테크닉이 숙련되지 못하다는 것.
하지만 상관없다.
– 다만 너는 금시천소무(金翅天嘯武)가 있으니 굳이 금나를 깊게 파고들 필요가 없느니라.
그녀는 굳이 금나술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목진은 말했다. 금시천소무는 상대의 공격을 쪼개버릴 정도로 강하게 쳐내서 막는 벽(劈)의 이치를 극대화시킨 무공이라고. 금시천소무는 그녀가 익힌 무공 중에서 목진에게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상승무공이었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치는 디마의 공격을 본 세령이 이를 악물었다.
‘이판사판이다.’
솔직히 쫄린다. 팔다리로 막는 것에 비해 주먹이나 팔꿈치, 무릎 등으로 정확하게 막는 것은 그 난이도부터가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못 막고 싸움 내내 얻어맞다가 패배할 바에는 시도라도 해 보는 게 맞다. 날아오는 디마의 술병을 검으로 막아낸 세령의 눈이 그 틈을 타고 품속으로 파고드는 주먹을 정확히 포착했다.
이놈을 조져버린다.
QIOS와 초식다운로드 인터페이스가 아닌, 그동안의 수련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따라 무의 본능에 몸을 맡긴다.
위에서 내리찍는 팔꿈치. 그리고 아래에서 찍어 올리는 무릎.
먹이를 물어뜯는 범의 아가리와 같이,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세령의 팔다리가 디마의 하박을 물어뜯었다.
작가의 말
.<아래 정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 지장이 없는 잡다한 설정놀음입니다. 흐름이 끊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정보) 선생지공이란 ‘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공부’라는 뜻으로,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본능을 뜻한다. 권각술의 영역에서 이 선생지공을 권법에 녹여내는 경지에 도달해야만 화경의 경지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정보) 디마 세메노바가 펼치는 노국취권은 알코올의 힘을 가호를 받아 일시적으로 선생지공의 힘을 빌리는 무공이다. 노국취권은 일반적인 템포를 완전히 무시한 무박자, 무형식을 지향하는 무공으로, 익히기 매우 어려운 무공이다. 술잔을 쥔 것 같은 주먹인 단배권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보) 노국취권에서 알코올을 분해시킨 내공은 일종의 유사 내공으로 주취공력(酒取功力)이라 부르는데, 진짜 내공처럼 묵직한 공격은 할 수 없지만 순간적인 폭발력을 내서 빠른 공격을 하는 데에 효율적이다.
정보) 디마는 평소 세상 만사 귀찮아하는 듯한 모습과는 달리 술에 취하면 성격이 조금 밝아지며 은근히 귀여워지는 모습을 보인다.
정보) 세령은 디마에 비해 명백한 하수다. 다만 생사결도 아닌데다가 내공 드라이브 빨로 어떻게든 간신히 버틴 것에 가깝다.
정보) 권내는 손을 앞으로 뻗었을 때 대체로 팔의 안쪽과 겹치며, 권외는 팔의 바깥쪽과 겹친다.
정보) 누구나 배우는 오법간합이지만 그 안에 담긴 깨달음 자체는 결코 쉬운 게 아니기 때문에, 목진조차 세령에게 오법간합에 대해 지도해주면서도 단시간에 그것을 실전에 적용할 만큼 제대로 깨우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