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22)
우주천마 3077-121화(122/349)
19. 진염성녀 Devine Napalm Witch (7)
19. 진염성녀 Devine Napalm Witch (7) – 어림없지
번거롭지만 힘든 임무는 아니다. 인류정부 산하 무림교류부 관무집행위원회 소속 일등 집행관, 아테나 카푸르는 생각했다.
순양함도 없이 순찰용 우주선으로 은하 서부에서 북부까지 움직여야 하니 번거로운 임무요, 호위는 없지만 벽력자를 보자마자 제압할 수 있는 제압코드가 있으니 어려운 임무는 아니다. 나름 검강도 막아낸다는 S급 방호장비도 배정 받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번 임무는 북부에 잠깐 여행가는 셈 치자. 기왕에 밀린 휴가도 좀 쓰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네오 아티카에 도착하자마자 불타는 적웅문과 청령문의 상황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고작 사흘만에 이 사단이 난 거야?”
아테나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멍하니 내뱉었다. 옆에서 비슷한 표정을 짓던 부관이 말했다.
“보통 벽력자가 이렇게 빨리 집행을 시작하던가요? 보통 보름 이상은 걸리지 않나?”
벽력자가 인류정부에게 일부 화기 사용을 허락받은 사설 집행관에 가깝다지만, 그 무력 자체가 엄청나게 강한 것은 아니다. 해봐야 중소문파의 문주 수준에 불과하달까. 다만 그 군용병기를 일부 사용하는 만큼 다수의 중하급 무인들을 상대로 상성이 뛰어날 뿐이니 말이다.
애초에 벽력자들은 무림맹에 직접 의뢰해 무림공적으로 지목하기에는 급이 떨어지는 잔챙이 소규모 조직들을 소탕하기 위한 존재. 적웅문이나 청령문처럼 급이 좀 되는 문파를 상대하려면 오랜 현장조사로 철저하게 작전을 수립한 뒤에 집행에 임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런데 천향은 고작 사흘만에 두 문파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보통 그렇지. 그래서 이상한 거야. 34호 벽력자는 그동안 큰 트러블 없이 깔끔하게 임무를 처리했어서 벽력문 내 평가도 좋은 편인데······.”
“정신검사는요?”
“정상범주야. 성격장애 판정도 없고, 반사회적 성향도 기준치 이하였어. 감정이나 공감능력에도 문제 없고.”
“······그런데 왜 벽력자가 됐대요?”
과장 좀 보태서, 기본적으로 사이코패스 판정이나 그 외의 성격장애 판정 정도는 한두개씩 달고 다니는 게 벽력자라는 인종들이다. 말이 사설 집행관이지 하는 일만 보면 인간 사냥꾼 그 자체였으니까. 벽력자 중에서 비교적 정신적으로 양호한 케이스라면 일종의 사명감으로 일하는 2호, 6호 벽력자나, 안정적인 수입 때문에 일하는 28호 벽력자 정도밖에 없었다.
“방화광 기질이 강해서. 불이나 무언가를 불태우는 것에 상당한 집착이 있다네. 합법적으로 불을 지를 수 있대서 벽력자가 된 거라던데.”
“······불지르는 거에 흥분하는 파이로필리아(Pyrophilia) 변태가 정상이라고요? 벽력문은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나.”
“성도착증까진 아니고 단순 기호증이니 파이로필리아라기엔 좀 애매하지. 사회적 규범을 어길 정도로 광적인 집착은 아니라서 정상 판정을 받은 거야. 실제로 절제능력도 문제가 없어서 임무 외의 불필요한 방화를 저지른 사례도 없고.”
“공감능력에 문제 없다면서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미쳐도 진작에 미쳤을 거 같은데.”
“글세. 그건 모르겠는걸.”
아테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취향이 좀 기괴해도 그 취향에 휘둘리지 않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무리가 없으면 충분히 정상인이다. 벽력문에서 그정도면 손꼽힐 정도로 우수한 재원이 아닌가.
실제로도 벽력문 측으로부터 우수인재인 34호 벽력자에 대해 가능한 한 강압적인 무력 제재는 자제해 달라고 당부가 왔을 정도였다.
따로 전해 들은 벽력문주의 전언에 의하면 2호, 28호 벽력자와 함께 차기 벽력문주 후보로 내정되어있을 정도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마 34호 벽력자 측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벽력자가 아니라 다른 쪽에 있다는 건데.’
아 젠장. 아테나가 인상을 쓰며 욕설을 내뱉었다.
당장 당면한 문제는 불타는 두 사파문파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사상자가 적게 나오진 않았을 텐데, 관무집행위원회의 실책 때문에 문파 두 개가 싸그리 날아간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 보상을 얼마나 하게 될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걸 위에다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무슨 수를 써야 할지 고심하던 아테나의 귀에 다급한 부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어어! 저거 싸운다! 집행관님, 34호 벽력자 지금 싸우고 있는데요?!”
“뭐?!”
아테나의 고개가 다급히 함교 앞 패널에 떠오른 영상으로 돌아갔다. 부관의 말대로, 불타는 청령문을 배경으로 34호 벽력자가 웬 무림인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아테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밑에서 싸움을 중지시키기 위해서였다. 뭐가 어쨌건 이 이상으로 일이 커지는 건 막아야 했다.
“일인용 강하선 해치 열어. 당장 내려간다.”
“호위도 없는데 혼자서 가신다고요? 그러다 칼 맞아요!”
“방호장비 있으니까 죽지는 않겠지. 일단 일이 더 커지는 건 막아야 할 거 아냐! 잔말 말고 해치부터 열어!”
이러니까 호위를 달라고 했던 건데. 방호장비를 입고 강하선에 올라타며 아테나가 씨근거렸다.
무림인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보면 언제든 칼부림이 일어날 것을 상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벽력자랑 만나서 면담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한 거겠지. 비공식 임무라는 핑계로 호위 하나 붙여주지 않은 위원회를 씹어대며 아테나는 곧바로 청령문을 향해 강하했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은.
양 팔이 망가진 참혹한 모습으로 고통에 울부짖는 34호 벽력자와 그런 그녀를 죽이기 일보직전인 무림인이었다.
그렇기에 그 광경을 본 순간, 아테나는 저도 모르게 비명과도 같이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멈춰-엇!”
제발 멈춰라. 그녀의 소망이 닿았던 걸까. 무림인, 목진은 손을 내려쳐 천향의 목숨을 거두는 대신 고개를 들어 아테나를 바라봤다.
‘들어 본 듯한 목소리군.’
아테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목진은 그녀의 목소리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목진은 잠시 천향을 죽이는 것을 미루고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는 강하선을 기다렸다.
갑주와 비슷하게 생긴, 전신 방호슈트로 온 몸을 감싼 채 긴급히 강하선에서 내리는 여성. 목진은 아테나의 가슴께에 새겨진 푸른 행성을 감싸안은 월계수잎의 문양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관리가 여기에는 무슨 일이라는 말인가.
달리는 듯한 걸음으로 다가온 아테나는 당장에라도 천향을 죽이기 직전이었던 목진을 보고 머리에 쓴 바이저를 해제하며 다급히 말했다.
“잠깐, 잠깐만 멈춰주세요. 그쪽 무림인 분?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음.”
아테나의 얼굴을 본 목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째 목소리가 낯익다 했더니 구면인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등 뒤에서 히익 하고 기겁하는 세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진은 세령이 보이지 않게 살짝 몸으로 가리며 아테나를 향해 말했다.
“관의 집행관이 여기엔 무슨 일이시오.”
“34호 벽력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서 왔어요.”
“흐음. 관은 무림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거늘, 그 자를 반드시 관에서 맡아야 할 이유라도 있소?”
목진은 불편한 티를 굳이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지난날 철시귀옹 사태처럼 누가 봐도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무림인끼리의 일에는 관이 개입하는 건 금기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음······.”
이미 용적산에게 현재도 그와 같은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을 들은 바. 목진의 말에 정곡을 찔린 아테나가 식은땀을 흘렸다.
공식 임무는 벽력자의 무력 개입을 저지시키는 것. 이미 문파 두 개가 불바다로 변한 이상 공식 임무는 실패다. 바꿔 말하면, 정부 차원에서 간섭할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비공식 임무 핑계를 댈 수는 없지 않은가.
‘곤란한데.’
명분과 무력. 둘 중 하나라도 받쳐주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일등 집행관이라 해도 무림인과 마주해서 배짱을 부릴 수 없다. 명분이 없다면 곧바로 무림맹 차원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무력이 없으면 까딱 잘못한 순간 명줄이 달아나기 마련이니까.
제아무리 S급 방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지만 상대는 벽력자를 제압한 무림고수다. 실무를 뛰는 일선 집행관인 아테나는 상대가 얼마나 위험한 인간병기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일이 어떻게 꼬일지 모르는 이상 당장은 비공식 임무의 최우선 목표, 벽력자 한천향이 접촉한 배후세력의 정보부터 확보해야 한다. 아테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되도록 상대의 신경이 거슬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무림교류부 내부의 일이라 이유는 말씀드리기가 어려운데요. 그녀가 중요 사건의 참고인이라서 수사를 해야 하거든요. 어떻게 협조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수사라.”
하긴 광인이니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잠시 고민하던 목진이 팔짱을 꼈다.
“수사 정도라면 협조할 수 있소. 시간이 오래 걸리오?”
“아뇨아뇨. 수사 자체는 엄청 금방 끝나요. 심문하는 거니까.”
심문이라. 그건 또 이쪽의 장기지. 목진이 씨익 웃었다.
“내 빠르게 자백을 받아낼 방법은 있소만. 분근착골(分筋錯骨)이라고.”
“······하하. 괜찮아요. 그보다 빠른 방법이 있어서.”
분근착골이면 영화에나 나오던 무림인식 고문 방법 아닌가? 아테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벽력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든 행적을 기록하는 블랙박스를 달고 다니니 일단 블랙박스 자료만 확보하면 된다. 아테나는 아직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천향을 향해 다가가며 그녀의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댔다.
– 제압코드 확인. 행동 정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제압코드의 명령은 절대적. 강제로 몸이 굳은 채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천향의 팔을 본 아테나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블랙박스의 데이터를 카피하기 시작했다.
“어우.”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됐지. 새까맣게 타버린 채 그대로 얼어붙은 천향의 팔을 본 아테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마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한다면 사지 정도는 배양해서 이식하면 되니까 무림인으로서의 삶이 끝장난 건 아니라는 게 위안일까. 물론 재활치료에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
목진은 다만 팔짱을 낀 채 그런 아테나와 천향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대략 삼 분 정도 지났을까. 블랙박스의 데이터를 모두 카피한 아테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블랙박스 데이터가 있으니 비공식 임무는 성공이다. 물론 보다 자세한 사정청취, 그리고 벽력문으로부터의 당부를 생각하면 천향의 목숨줄을 붙여가야 제대로 된 성공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말이다.
‘정파도 아니고 사파 쪽이니까 거래의 여지는 있어.’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그녀의 선에서 웬만한건 다 들어줄 수 있다. 아테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정체불명의 무림고수를 보며 생각했다.
목진이 아테나를 향해 물었다.
“다 끝났소?”
“네. 협조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가능하다면······.”
막 목진에게 거래를 제안하려던 순간, 퍼억 하고 들리는 섬뜩한 소리에 아테나의 입이 닫혔다.
설마 아니겠지. 아테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가슴이 움푹 들어간 채 절명한 34호 벽력자, 한천향의 모습이 있었다.
아테나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협조는 할 만큼 했다 생각하오. 목진이 말했다.
“허나-.”
그의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살의를 품은 이를 살려둔 일이 없소.”
작가의 말
.<아래 정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 지장이 없는 잡다한 설정놀음입니다. 흐름이 끊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정보) S급 방호장비는 한정적인 상황에서 무림고수의 강기도 막아낼 수 있다. 물론 장시간 강기를 막아낼 수는 없기 때문에, 고수와 적대하게 된다면 S급 방호장비가 있더라도 최대한 빨리 도주하는 것이 정석이다. 덧붙여, S급 방호장비는 그 특유의 디자인이 멋있어서 인기가 많다.
정보) 보통 무림인이 강력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중하급의 개인이나 중소문파인 경우에는 벽력자가 파견되고, 벽력자가 감당할 수 없는 고수나 규모가 좀 되는 중견문파의 경우는 무림맹에 요청해서 무림공적으로 지정한다. 벽력자가 문파를 상대할 때는 오랜 시간 조사를 마친 뒤 철저하게 작전을 세워서 공략한다.
정보) 34호 벽력자 한천향은 조심성과 자제심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어 여태까지 임한 임무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다. 단,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녀의 방화욕구를 채우기는 했다. 이번의 사건도 사실 그녀에게 별다른 책임 추궁이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감행한 것이다.
정보) 정부는 확실한 명분이 없는 이상 무림의 일에 간섭하지 못하며, 되도록 무림의 법도를 존중하며 움직이는 것이 기본 노선이다. 강력한 힘을 앞세워 밀어붙이지 않는 이유는 과거 관무전쟁의 재전을 바라지 않고 공존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정보) 집행관 등을 포함한 관무집행위원회의 실무진은 호위 없이 무림인과 접하는 임무를 대단히 불편해한다. 당연히 실질적인 무력의 위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 신사적인 정파와 접촉하는 임무는 선호도가 높다.
정보) 분근착골의 수법은 공식적으로 고문을 지양하고 회유나 과학수사를 지향하는 현대 무림에서는 그 기술이 소실되어 도시전설에 가깝게 되었다.
정보) 블랙박스 데이터를 얻는 것은 딱 임무 성공을 위한 커트라인으로, 아테나의 입장에서는 간신히 문책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의 성과에 가깝다. 때문에 아테나는 가능한 한 한천향을 살려가려 했다.